솔지
김정원
서울에서 담양으로 갓 시집 온 새댁, 바깥일은 아무것도 할 줄 몰라 포도시 집안 청소와 삼층밥 짓는 일로 시집살이 초년을 보내던 어느 날, 시어머니가 처음으로 며느리에게, “솔지 좀 담아 놓아라.” 언명하고 밭일을 나갔는디, 감나무 가지 사이에 찡겨 뉘엿뉘엿 지는 해를 등지고 삼간집에 돌아와 저녁밥상을 받아보니 기절초풍하기 일보직전이라
아직은 서먹서먹한 고부가 마주한 밥상에는 고춧가루 듬뿍듬뿍 버무린 솔잎만이 잔뜩 쌓여 있고 정작 솔지는 눈을 씻고 봐도 없었는디, 어쩨야쓰까 어쩨야쓰까 속 터지는 시어머니가 허벌나게 뿔이 나서 며느리에게 한마디 내뱉는 거라 “니는 솔도 모르냐? 저 텃밭에 널린 것이 죄다 솔인지도.” 성난 고릴라처럼 시어머니가 가심팎을 탁탁 치며 마을회관으로 핑 마실 나가고, 무담시 나무라는 듯 댑대 얼척없는 며느리도 속으로 한마디 대꾸하는디, 그 혼잣말이 가관이라 “소나무 잎이 솔이지요, 무엇이 솔이랍니까?”
돼지주댕이맹키로 입을 삐죽 내민 아내가, 시골학교 선생인 남편이 퇴근해 사립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쪼르르 달려와 따져 묻는디, “솔잎이 솔 아니야? 오늘 낮에 어머니가 솔지를 담아 놓아라 하시기에 뒷산에서 애써 솔잎을 따와 소금 뿌려 숨죽이고 김치처럼 담아 밥상에 올려놓았는데, 어머니는 다짜고짜 역성만 내셔. 그 영문을 모르겠어. 밥맛없으시면 밥맛없다고 솔직하게 말씀하시지…….”
“당신, 여태 그것도 몰랐단 말이야? 명문대 사범대 국어교육과를 나왔다는 사람이. 전라도에서는 부추를 솔이라고 하는 줄도.” 남편이 반쯤 빠진 배꼽을 가까스로 다시 집어넣으며 아내에게 되묻자, 어린 아내는 히마리없이 그 자리에 철퍼덕 주저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엉엉 우는 거라 농사일을 당최 할 줄 모르는 아내, 시어머니 맴에는 반푼어치도 안 차는 며느리지만, 남편은 마냥 귀엽기도 하고 쪼까 짠하기도 해서, 뽀짝 다가가 등을 토닥토닥 두들겨 달개며 전라도를, 두꺼운 책이 아닌 투박한 전라도 생활을 하나하나 가르치기로 마음먹은 거라 여기에서는 ‘김치’를 ‘지’라고 하고, 지 담을 거리를 ‘지까심’이라고 한다는 것부터 반찬을 ‘건개’라고 한다는 것까지
김정원
전남 담양 출생. 2006년 『애지』로 등단.시집 『꽃은 바람에 흔들리며 핀다』, 『줄탁』.
―『시에티카』2010. 상반기 제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