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과의 동침 / 최문자
이십 년 넘게 벽 같은 남자와 살았다.
어둡고 딱딱한 벽을 위태롭게 쾅쾅 쳐 왔다. 벽을 치면 소리 대신 피가 났다. 피가 날 적마다 벽은 멈추지 않고 더 벽이 되었다. 커튼을 쳐도 벽은 커튼 속에서도 자랐다. 깊은 밤, 책과 놀다 쓰러진 잠에서 언뜻 깨보면 나는 벽과 뒤엉켜 있었다. 어느새 벽 속을 파고 내가 대못처럼 들어가 있었다. 눈도 코도 입도 숨도 벽 속에서 막혔다.
요즘 밤마다 내가 박혀 있던 자리에서 우수수 돌가루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벽의 영혼이 마르는 슬픈 소리가 들린다. 더 이상 벽을 때릴 수 없는 예감이 든다. 나는 벽의 폐허였다. 그 벽에 머리를 오래 처박고 식은땀 흘리는 나는 녹슨 대못이었다.
-『그녀는 믿는 버릇이 있다』 ,랜덤하우스
코리아,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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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자 시인이 2006년에 쓴 시편이다. '더 이상 벽을 때릴 수 없는 예감이 든다'던 한 줄의 싯구는 현실이 되어 2014년 돌연 이별을 맞는다. 2015년『파의 목소리 』, 2019년 출간한『우리가 훔친 것들이 만발한
다』에서는 <벽과의 동침> 그 후, 남편의 부재에 관한 시편들이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