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환과 추억을 머금은 안동의 서민문화를 대변해 온 '버버리찰떡' 추억의 맛을 되살렸다는 입소문을 타면서 지금은 연간 300여만개 정도가 팔려 나갈 정도로 인기절정이다.
꼬박 하루 걸리던 서울 유학길에 어머니는 신문지에 둘둘 만 찰떡을 건네주셨다. 아침 첫 떡 사오라는 심부름에 애가 탄 나머지 대신 떡메를 쳐주고 사들고 오던 떡. 떡 파는 할매가 힘들어 하면 지나던 이발사도 한 말 치고, 순사(경찰)도 한 말 치고, 체보(우체부)도 한 말 치고, 국등생 손자도 한 말 치던 서민들의 삶과 애환이 녹아든 우리 떡.
찹쌀을 쪄서 떡메로 치고 팥고물을 얹어 불쑥 내밀던 떡, 안동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볼품없는 떡이 있다. 새벽길 장꾼들이 안동 장에 도착하자마자 콩나물국 한 그릇과 함께 허기진 배를 채우던 떡. 바로 80년 전통의 ‘안동 버버리찰떡’이다. 우리 어머니의 손맛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는 그 떡이 추석을 앞두고 그 향이 향수와 함께 스며든다. 한 입 가득, 맛있어서 말을 못 해 버버리찰떡 경주에 황남빵, 강원도 안흥찐빵이 있다면 안동에는 버버리찰떡이 있다. 하지만 버버리찰떡은 꼭 안동에 가야만 맛 볼 수 있다. 80여년 전통을 고집하면서 하마터면 사라질 뻔 했던 버버리 찰떡을 5년여 만에 새롭게 부활시켜 상품화에 성공한 버버리찰떡 집을 찾아 나섰다.
안동 신시장 서쪽 끄트머리 옛 안동농고 사거리에 자리한 10여 평 남짓한 가게를 들어서자 아주머니들이 찰떡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고두밥으로 찐 찹쌀을 떡메로 쳐낸 찰떡에다 정성껏 고물을 묻힌다. 떡 하나하나에다 여러 차례의 손질과정이 거치면서 손맛이 절로 배어든다. 한쪽에선 찹쌀을 찔 때 나오는 하얀 김이 온통 떡집을 감싼다. 붉은색 팥 고물 떡을 만드는 사람, 흰색 고물 떡을 빚는 이, 찹쌀을 얄팍하게 펴 밑 떡을 만드는 사람 등 자동화 시스템처럼 아주머니들의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자동화 시스템은 안하나요? 라는 질문에 “버버리찰떡은 마카다 사람이 만들 잔니껴! 옛날 할매가 손으로 치대고 툭~끄나가(끊어서) 고물 얹차주던 그 맛을 살릴라꼬 안 하니껴!” 떡집 아지매의 말이다. 정말 사람 손을 타지 않는 것이 있다면 낱개 포장 정도이다. 자동화된 포장기계 힘을 살짝 빌릴 뿐이다. 모두 다섯 종류의 떡을 만들어 낸다. 밑떡은 찹쌀을 6시간 이상 물에 담갔다가 쪄내 30차례 이상 떡메 세례를 받는다. 소금과 설탕으로 간을 맞혀 반죽해 떡 틀에 1㎝정도 두께로 얇게 펴 알맞은 크기로 잘라 둔다. 고물은 붉은색 팥 고물과 껍질을 벗겨 흰색이 나는 기피 팥 고물, 노란색의 콩가루 고물, 참깨와 검은 깨를 사용한다. 고물에도 짜거나 달지 않게 간을 맞춘다. 조용히 비결을 물어보니 “비결이 따로 인니껴! 떡 카(과) 고물 카(과)의 간 맞추기에 있지.” 옆에서 보다 못한 주인이 거든다. “떡메로 치대 작은 밥알이 씹히는 찰떡의 식감(食感)은 요즘 기계로 마구 갈아 만든 떡으론 도저히 흉내도 못 내지요! 이게 비결이라면 비결입니다”고 말했다. 80여년 전통, 서민 먹을거리의 부활 버버리찰떡은 1922년 안동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2001년 한 차례 명맥이 끊어졌다가 2004년 들어 새롭게 부활했다. 안동 신시장내 명물인 ‘안동간고등어’와 구시장 ‘안동찜닭’과 함께 재래시장이 낳은 대표적인 지역 전통음식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떡은 일제시대 때부터 안동지역 인근에서 새벽에 출발해 안동 장으로 몰려들었던 장꾼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었던 한 끼 대용식이었다. 영주와 옹천, 풍산 등 안동 인근에서 아침밥을 거른 채 고구마, 채소, 고추를 이고지고 안동 장에 내다 팔기 위해 새벽길을 걸어 온 장꾼들이나 장보기에 나섰던 사람들이 희뿌옇게 먼동이 터 오를 무렵 떡집 앞 길거리에 모여 앉아 찰떡 한 덩이와 콩나물국 한 그릇으로 출출한 배를 채웠던 애환이 서려 있는 떡이다. 당시는 다들 떡 상도 없이 그냥 손에 들고 먹었다. 또 아이들이나 노부모님 간식용으로 간고등어 한 손과 함께 귀가 길 손에 들렸던 떡이다. 아버지를 기다리던 아이들이 너무나 반가워했던 떡. 장보러 나온 시골 할머니가 점심 대신 사먹고 손자에게 못줘 미안해하던 아련한 추억의 그 떡, 안동지방 전통혼례에도 등장한다. 폐백 때 며느리를 덜 나무라라는 뜻에서 ‘버버리찰떡’을 사다 시어머니 입에다 억지로 물리는 풍습은 아직도 안동에서 이어진다. 버버리찰떡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기억하고 있는 할매들은 약간의 허풍이 가미된다. “당시 버버리찰떡은 크기가 강아지만 했어. 어른 손바닥만한 찰떡에다 팥고물 대신 값싼 양대콩(강낭콩)이나 수수로 만든 고물을 두툼하게 얹어 줬지. 떡 한 덩이하고 콩나물국 한 사발이면 한 끼가 그저 그만이재”라고 회상한다. 보통 찰떡은 손에 떡이 묻지 않을 만큼 고물을 살짝 묻히지만 버버리찰떡은 고물을 아래위로 떡 두께만큼이나 두툼하게 바르고 얹어 붙여주는 게 특징이다. 한마디로 떡고물은 꾸밈이라는 의미보다 양을 늘여주는 덤이라는 의미가 더 크다. 세련된 멋은 없어도 푸짐하고 먹음직하도록 만들어 내놓았던 것. 이렇게 시나브로 명맥이 끊겼던 버버리찰떡은 2004년 10월 옥야동 버버리찰떡 신형서(53) 대표에 의해 다시 되살아났다. 입소문을 타면서 요즘에는 연간 300여만개 정도가 팔려 나간다. 버버리찰떡의 인기는 곧바로 지역 농민 수익증대로 이어진다. 이 가게에서만 한 해 동안 쓰는 찹쌀 소비량이 80kg들이 1천여 가마, 팥 80kg들이 300여 가마에 이른다. 찹쌀은 농업기술센터가 추천해 엄선된 안동, 예천산만 쓴다. 또 팥도 마찬가지. 콩가루용 콩은 안동의 특산품인 ‘생명의 콩’을 구입해 사용한다. 전통 우리 떡이기에 수입산 농산물이 들어갈 수가 없다. 신대표는 “방부제가 전혀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쉽게 상하지 않게 급냉 방식을 개발했다.”며 “떡을 영하 30도 이하로 급냉 시켰다가 해동하면 희한하게도 맛이 그대로 살아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판매 대리점이나 지점망 등 국내 유통망 확충에는 부정적이다. 맛과 품질관리의 문제도 있지만 무엇보다 “버버리찰떡은 안동에 가야만 먹을 수 있는 안동만의 전통음식”이라는 독보적인 전통식품 이미지를 지키고 싶기 때문이다.
첫댓글 찰떡노래 잘 듣고 갑니다.
먹고싶은 버버리 찰떡..순사도 치고 체보도치던 찰떡~
좋은 시간 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