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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남의 미학
명예를 물리고 공부하며 제자를 가르치던 곳
안동여행중에 빼놓을 수 없는 곳이라고 하면, 많은 곳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도산서원이 들어갈 거 같습니다. 동에서는 꼭 한번 가서 봐야 할 곳이란 느낌이 드는 것은 아마도 안동의, 한국의 정신문화를 대변하는 곳이라서가 아닐까 싶어요. 적 제170호로 지정된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 선생이 명예를 뒤로하고 도산서당을 지어 스스로 학문에 증진하고 제자를 가르치던 곳인데요. 지금으로 말하자면 사립학교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안동에는 유독 서원이 많은데 63개나 있었다고 하니 당시 다른 지역에 비하면 많은 숫자죠. 지금은 26개 정도가 남아 있다고 합니다. 산서원으로 가는 길은 의외로 구불구불합니다. 노련하게 운전하시는 기사님덕에 편하게 들어왔습니다. 주차장에 도착 후 입구를 따라 걸어가는 길도 또한 운치가 있는데 안동호 줄기따라 말끔하게 정리된 길, 길 가장자리에 깎아놓은 듯한 나무가 이색적입니다.
이제 도산서원으로 들어가서 하나하나 살펴볼까.
도산서원으로 가는 길입니다. 장자리 키작은 나무가 참 이쁘죠. 마치 방금 다듬어 놓은 듯 너무나 단정합니다. 리고 가던 길 코너쪽에 있던 "추로지향" 기념비입니다. 추로지향은 "중국의 맹자, 공자가 살았던 곳과 같이 안동은 예절과 학문이 빼어난 곳이다"라는 말로 공자의 77세손인 공덕성 박사가 도산서원을 찾아와 참배를 한후 500년 전의 퇴계 선생의 가르침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음에 감동을 받아 적은 글이라고 합니다. 글씨체가 아주 독특하죠.
안내판에 있던 건데요. 확대해서 도산서원 전체를 볼 수 있도록 해봤습니다.
위치를 알고 보면 좀더 이해가 빠를 듯 해서요... 안동호를 바라보며 골짜기에 사뿐히 내려앉은 듯한 곳이죠. 명당자리일 겁니다.^^
15번 도산서당 위치가 저 곳인데요. 사진에서 오른쪽 산허리에서 사진을 담으면 구권 1천원에 있던 그 사진과 비슷하게 나옵니다.
안동호 물줄기에 비친 하늘과 어지러운 나뭇가지가 자꾸 시선을 빼았네요.
뒤로 하고 가는 길이 이리 아쉬울 수가 없어요..
천광운영대/햇빛과 구름 그림자라는 뜻
퇴계 선생은 서원 경내를 중심으로 양편 산기슭이 절벽을 이룬 동쪽을 천연대 서쪽을 운영대라 불렀다고 합니다. 천연대는 시경에 나오는 술개는 하늘높이 날아오르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노네(연비려천 어약우연)라는 글에서 따온 것이고, 운영대는 빛과 구름 그림자 함께 돌고 돈다.(천광운영공배회)라는 주자의 관서유감 시에서 인용한 것으로 도산서당 일대를 엄숙한 수도의 장으로 꾸며 천리의 묘용을 깊이 사색하고 자연의 심오한 참뜻을 깨우치기 위해 조성한 자연체험장이다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주변이 자연과 더불이 더없이 좋은 곳이란 건 그곳에 서보면 알 수 있는데요.. 이런 경관속에서 공부가 되었을까 싶어요.
난 아마도 밖으로 나와 놀고 싶었을 거 같습니다.^^
오는 내내 눈에 들어왔던 저곳이 바로 시사단입니다.
시사단은 1792년 정조임금이 퇴계 선생의 학덕을 기리며, 영남 선비들의 사기를 높여주기 위해 과거를 보았던 장소입니다. 임금의 어명으로 과거를 볼 장소를 보기 위해 규장각 각신 이만수가 서원에 왔는데, 장소가 너무 협소해서 강건너 모래밭에서 과거를 보게 되었다고 해요. 당시 응시자가 7,000명이고 답안지를 낸 선비만도 3,600명이나 되었다네요. 비문은 당시 영의정인 번암 채제공이 지었다고 합니다. 1976년 안동댐의 건립으로 물이 차니까 주변 송림은 없어지고 이 장소를 보호하기 위해서 10m의 축대를 쌓아 올린거라고 합니다.
도산서원이 보이네요.
도산서원 앞 넓은 공터에 오래된 나무들이 있는데요. 가지가 늘어지고 늘어져 바로 땅에 닿을 듯합니다.이 서당과 함께 해 왔을 나무의 삶이 더 와닿은 도산서원 주변입니다.
서원 정문들어가기 바로 앞에 열정 이라는 우물이 있습니다. 동쪽 산 밑에 있는 깊은 우물로 찬우물이라는 뜻이라네요. 도산서당의 식수로 사용하던 우물인데요. 안내글에 보니.... '무궁한 지식의 샘물을 두레박으로 하나하나 퍼내어 마시듯 자신의 부단한 노력으로 심신을 수양해야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라고 이 우물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어요..아주 심오하죠..
이제 서원 안으로 들어갑니다...
계단형식으로 한단한단 올라가는 구조네요. 화단도 아마 계절마다 다양한 꽃과 나무를 볼 수 있도록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겨울의 모습이라 휑하지만 다른계절엔 주변도 무척이나 아름다울 것 같은 곳입니다.
정문으로 들어와서 왼쪽 농운정사 입니다.
농운정사는 학생들이 숙식을 하며 공부하던 곳으로 요즘의 기숙사와 같은 기능이라고 합니다. 선생께서 제자들이 공부에만 전념하도록 工자형 평면으로 건축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른 곳과 달리 유독 창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는데요. 그것은 방안을 밝게하고 환기가 잘 되도록 하기 위해서랍니다. (위 안내판 14번을 보시면 工자형이 잘 보여요)
담위 기와에 가는 가을이 모여있네요.
다시 중앙으로 나와서 이번엔 오른쪽으로 갑니다.
(이곳 화단에는 선생의 벗이었던 매화, 국화, 소나무, 대나무를 심었답니다.)
이곳은 도산서당입니다.
퇴계선생이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가르치기 위해 지은 건물인데요. 이건물 완공하는데만도 4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마루 방 부엌 3칸으로 되어 있구요. 서당 앞 연못에는 정우당이란 이름을 붙이고 연꽃을 키웠다고 합니다. 지금도 연잎이 물위에 보이죠. 연꽃이 필때쯤 퇴계선생의 걸음으로 지긋이 내려보고 싶네요.
(그리고 담엔 필히~ 전경을 담아보리라..다짐해봅니다. 귀차니즘이 발동하여 언덕에 올라가지 않았더니...전경사진이 없어요ㅜ,ㅜ)
학문을 하여 도로 나아간다는 문을 통과해볼까요...
서원 곳곳에 오래된 나무들이 더욱 멋스럽습니다.
이 고목나무를 회나무라고 한다는데요. 도산서원에는 회나무에 대한 전설이 있답니다. 이 나무에 열리는 수많은 꼬투리 중 하나가 저절로 소리를 낸다고 하는데요, 그 소리나는 꼬투리를 가슴에 품고 과거를 보면 장원급제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도산서원에서는 매년 한명이 과거에 급제를 한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ㅋ 그럼 이곳에 있던 많은 학생들이 모두 이곳에서 꼬투리를 집어갔단 거죠..일단 아무거나 품어보는거네요...소리가 났는지 아닌지 알 수 없으니...ㅎㅎ
진도문 옆으로 서광명실, 동광명실이 있습니다.
광명실은 만권의 서책이 내게 광명을 안겨준다는 뜻이라네요. 만권을 책을 읽어야 나에게도 광명이 올까요....만권..흑..
광명실에는 전국서원에서 가장 많은 책을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약 5,000여권이라네요. 동광명실엔 역대왕의 내사서적과 선생이 자주 보시던 책이 있고, 서광명실에는 근대에 발간된 책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문을 지나며 이제 전교당이 보입니다.
전교당으로 들어가기전 뒤돌아 봅니다.
이곳에서 내려 보는 것도 참 보기 좋습니다. 유난히 매화를 좋아하셨던 분, 매화나무가 이 겨울 이기고 가장먼저 꽃을 피우겠죠.
돌아가실때도 마지막 남기신 말이 "저 매화나무에 물을 주거라.."였다는 건 유명하죠..
전교당(늘 지켜야할 가르침)은 퇴계 선생이 돌아가시고 4년뒤 1574년에 지방의 유림과 선생의 제자들이 지은 건물입니다.
두칸의 방과 여섯칸의 마루로 되어 있는데요. 요즘의 학교교실과 같은 곳이라고 합니다. 현판은 조선 최대의 명필..한석봉의 친필이구요. 임금이 내린 사액현판입니다. 공립이 향교라면 사립이 서원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사액서원이라고 하면 국가에서 승인한 사립학교인거죠. 사액서원이 되면 나라에서 현판을 내리구요. 서책도 줍답니다. 그리고 꾸려나가야하니 전답(노비딸린)도 내린다고 합니다.
건물 뒤쪽으로는 삼문이 있는데요. 세개의 문, 동쪽문은 제관이 드나드는 문, 서쪽문은 제물을 운반하는 문, 가운데는 신이 들어가는 문이래요. 그 뒤로 상덕사가 있는데요. 퇴계선생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사당이구요. 신성한 공간이라 출입은 금하고 있답니다.
서원은 이렇게 두가지 기능이 있는데요. 하나는 학문을 가르치느 교육적 기능과 선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제향 기능입니다.
전교당(보물 제210호) 오르는 계단을 보면 오른쪽 왼쪽이 있죠. 좌측의 계단은 스승이 다니는 계단이구요. 우측은 제자들이 사용하는 거라고 합니다. 그리고 돌기둥이 보이는데요. 정료대라는 것으로 서원행사때 관솔불을 밝히던 곳입니다.
열린 문사이로 도산서원에 따뜻한 겨울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곳은 고직사인데요. 서원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묵던 곳입니다.
서원관리와 학생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역할을 했답니다. 이곳은 상고직사구요. ㅁ자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형태가 겨울에는 햇볕이 잘 들게 하여 따뜻하게 하고 바람을 막아준다네요. 그리고 여름엔 절반이상 그늘이 져서 시원하다고 합니다.
전교당 앞에 서서 내려다본 모습입니다.
문사이로 절묘하게 아래 문이 보이도록 설계했나봅니다 . 그런 위치에서 담아서 그런가요.^^
여긴 장판각입니다. 글자로는 목판을 갈무리 한다는 뜻인데요.
요즘으로 말하자면 책을 만들어내는 인쇄소 같은 곳입니다. 건물 위아래를 보면 통풍이 잘 되도록 되어 있구요. 뒷쪽은 나무판으로 막아뒀는데요. 뒤에서 내려오는 습한 공기를 막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이곳 목판들은 한국국학진흥원에 옮겨 보전되고 있다고 합니다.
우연히도 같은 눈높이라 재밌는 사진이 되었네요. 동광명실 본건물만 빼고 좌우로 본 모습입니다.
이것만 봐도 이곳 도산서원의 공간이 얼마나 넓은지 짐작이 가시죠. 이 것도 안쪽으로만 본 건데 말이죠. 앞쪽으로 떨어지는 완만한 경사를 갖고 있어서 앞으로 펼쳐지는 경치도 무척이나 좋은 곳입니다.
이곳은 하고직사입니다. 이곳은 ㄷ자형을 띠고 있습니다.
상고직사와 같은 학생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역할을 했을 곳입니다.
다시 봐도 멋진 나무들... 왕버들이 아닐까 싶은데...
도산서원을 만난 것으로 오늘은 꽉찬 하루였습니다.
주위가 파릇파릇할때 다시 보고 싶어요.
늘어진 나뭇가지가 커다란 구렁이 처럼 앞으로 뻗어있습니다.
멋지죠.. 손을 대고 가만히 쓰다듬어 봤는데요...세월의 흐름만큼이나 단단하고도 부드러웠습니다.
다시 돌아나오는 길
왔던 길을 따라 다시 내려갑니다.
길도 그대로이구요. 햇살 가득담은 안동호의 물도 잔잔합니다.
하지만 오던때의 나와는 지금 달라져있을 겁니다. 도산서원을 보지 않았던 내가 도산서원을 본 나로 바뀌어 있으니까요. 보았다고 다 아는 것은 아니기에 지금부터 좀더 관심있게 귀기울이려고 합니다.
퇴계선생의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 관직 명예를 버리고 스스로 몸과 마음을 닦으려고 했던 참정신, 그리고 그에 그치지 않고 후학을 위해 애쓰셨던 곳... 청렴하고 꾸밈없이 주어진 삶을 살다 가신 분이기에 지끔껏 그의 정신을 기억하고 기억하려는 이들이 많은 것이겠죠.
안동에서 꼭 가보아야 할 곳을 본 것으로 좋은 시간이었구요. 퇴계 선생을 다룬 책이라도 한권 더 읽어야 할 듯한 하루였습니다.
주변볼거리
산림과학박물관, 퇴계태실, 퇴계종택(최근 후손을 봐서 4대가 살고 있다죠..), 육사문학관, 오천군자리(광산김씨 집성촌), 유교문화박물관 등..
도산서원 관리사무소 - 054-856-1073
안동시 http://www.andong.go.kr/
네이버 원문 블로그 http://blog.naver.com/anndam/100094620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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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꼼꼼히도 담으셨어요~~ 대단!!^^
ㅎㅎ 과찬의 말쌈... 다들 꼼꼼히 담으셨던걸뭐...
사진에 상세한 설명까지... 저절로 공부가 된듯해요..
너무 멋지게 포스팅해주셔서 도움이 많이되었습니다..
도움이 되셨다니 더바랄바가 없네요..^^
고맙습니다.
천광운영대 사진에 넋을 잃습니다. 제가 이런 사진을 찍고 싶었던 것인데...ㅎㅎ
ㅎㅎ 어쩌다 좋은 장면을 잡기도하고...대부분은 그냥 지나치기 일쑤고 그렇습니다.
칭찬 고마울따름입니다.^^
꼼꼼하고 아기자기한 포스팅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