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학산소극장에서 극단 집현의 김태수 작, 이상희 연출의 <트라우마 in 인조>를 보고
공연명 인조
공연단체 극단 집현
작가 김태수
연출 이상희
공연기간 2013년3월20일~24일
공연장소 인천 학산소극장
관람일시 3월24일 오후 4시
인천 학산소극장에서 극단 집현의 김태수 작, 이상희 연출의 <트라우마 in 인조>를 관람했다.
인조(1595 ~ 1649)는 조선의 제16대 왕(재위 1623~1649)으로 1607년(선조 40) 능양도정(綾陽都正)에 봉해졌다가 후에 능양군(綾陽君)으로 진봉되었다. 1623년 김류(金瑬)·김자점(金自點)·이귀(李貴)·이괄(李适) 등 서인(西人)의 반정(反正)으로 왕위에 올랐다. 인조는 광해군 때의 중립정책을 지양하고 반금친명(反金親明) 정책을 썼으므로, 1627년 후금의 침입을 받게 되자 형제의 의(義)를 맺었는데, 이것을 정묘호란이라 한다. 정묘호란 이후에도 조정이 은연중 친명적(親明的) 태도를 취하게 되자, 1636년 국호(國號)를 청(淸)으로 고친 태종이 이를 이유로 10만 대군으로 침입하자 남한산성(南漢山城)에서 항전하다가 패하여 청군(淸軍)에 항복, 군신(君臣)의 의를 맺고 소현세자(昭顯世子)와 봉림대군(鳳林大君)이 볼모로 잡혀가는 치욕을 당하였는데, 이것을 병자호란이라고 한다. 1645년 볼모생활에서 들아온 소현세자가 죽자 조정은 세자 책봉 문제로 시끄러웠으며, 봉림대군을 세자로 책봉한 뒤 소현세자빈 강씨(姜氏)를 사사(賜死)하는 비극이 일어났다.
이 연극은 반정(反正)으로 즉위한 인조가 두 차례의 호란을 겪게 되고, 삼전도에서의 청나라에 항복한 후 세자내외와 수많은 여인을 인질로 보낸다. 척신들의 권유로 인조는 계비를 맞이하게 되고, 계비의 젊은 육체에 탐닉(耽溺)하게 된다. 세자빈 강 씨는 청에서 무역을 해 경제적인 입지를 높이는 한편 세자와 더불어 유학의 공소한 이론보다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실학적 입장을 견지한다. 조선조정에서는 척신과 계비의 간계로, 인조에게 세자내외가 불충한 의도를 지닌 것으로 거짓 고해, 9 년 만에 귀향한 세자를 죽이도록 종용하고, 강 빈마저 사약(賜藥)을 내려 죽도록 만든다. 그러니 인조인들 어찌 정신적인 아픔이 없을 것인가? 연극의 제목에서처럼 인조의 흉몽과 반신불수 같은 증세가 자주 나타나면서, 측근이며 환관인 상선(尙膳)의 충언으로 인조가 과거를 회고하며 자각(自覺)에 이르도록 하고, 앞으로의 발전적인 방향으로 국정에 임하도록 하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무대는 배경 막 가까이 부드러운 색감의 천을 천정에서 바닥까지 겹겹이 늘어뜨려 놓았고, 중앙에 붉은 색깔의 천을 서너 걸음 앞쪽에 늘어뜨려 눈에 확 띠게 해 놓았다.
붉은 색의 천은 인조가 대신들에 의해 온 몸이 결박되는 흉몽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왕비와 금실이 좋을 때에는 서로 붉은 천의 양끝을 휘어잡고 밀고 당기면서 애정을 표현하기도 한다. 상복을 입은 출연자들이 수의를 입고 천을 끌어당길 때에는 흰 천으로 바꾸어 사용한다. 상여꾼들이 등장할 때에도 물론 흰 천을 사용한다. 그리고 무대천체를 덮을 수 있는 흰 천은 시신을 옮기거나, 장면전환용으로 큰 펄럭임과 함께 사용될 때에는 대단한 볼거리다.
무대좌우에 악기를 든 출연자를 등장시켜 직접 연주를 하도록 하는 것도 어울리는 장면이지만, 도입에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오는 비장 침울한 곡에서부터 국악관현악단의 여민락(與民樂) 연주음은 이번 공연에서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고,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민재, 김학재, 유학승, 강현식, 유지수, 이수진, 박진성, 제희찬, 김관장, 권귀빈, 박지은, 이정현, 이지혜, 하현수, 정원형 등 출연자 전원의 호연은 관객의 우레와 같은 갈채를 이끌어 냈고, 안무 최태선, 사진 임승규, 의상 이수진, 무대감독 이용수, 조명 이승호, 소품 최다연, 조연출 한희선, 음향 김세응 등의 기량이 골고루 돋보여, 극단 집현(대표 최경희)의 김태수 작, 이상희 연출의 <트라우마 in 인조>를 기억에 길이 남을 연극으로 창출시켰다.
3월24일 박정기(朴精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