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완의 '서장'통한 선공부] <36> 서장 (書狀)
왕교수(王敎授)에 대한 답서
선공부…의식의 주인되는 것
"매일 어떻게 공부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만약 일찍이 이성(理性) 위에서 재미를 얻은 적이 있거나 경전의 가르침 속에서 재미를 얻은 적이 있거나 조사의 말마디 위에서 재미를 얻은 적이 있거나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곳에서 재미를 얻은 적이 있거나 발을 들고 걸음을 옮기는 곳에서 재미를 얻은 적이 있거나 마음으로 생각하는 곳에서 재미를 얻은 적이 있다면, 이 일에는 전혀 쓸모가 없습니다.
만약 곧바로 쉬고자 한다면, 앞서 재미를 얻었던 곳에는 조금도 상관치 말고, 도리어 붙잡을 것이 없는 곳과 재미가 없는 곳으로 가서 한 번 헤아려 보십시오. 만약 헤아릴 수도 없고 붙잡을 수도 없다면, 이치의 길과 뜻의 길에 심의식(心意識)이 전혀 통하지 않음이 마치 돌멩이나 나무조각과 같음을 느낄 것이니, 이때에는 공(空)에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곳이 바로 자신이 목숨을 버릴 곳입니다. 절대로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총명하고 영리한 사람은 흔히 총명함이 장애가 되기 때문에 도를 보는 눈이 열리지 않아 접촉하는 곳마다 막히게 됩니다. 중생은 아득한 옛부터 심의식(心意識)에게 부림을 당하여 생사의 바다 위를 떠다니며 자유를 얻지 못합니다. 진실로 생사에서 벗어나 쾌활하게 되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단칼에 두 동강을 내어 심의식의 길을 끊어버려야 할 것입니다."
도(道)에 들어가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뜻으로서 아는 것 즉 의식(意識)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되는 것이다. 보통 사람은 태어난 이래로 의식의 노예가 되어서 의식이 부리는 대로 따라다니며 온갖 번뇌와 갈등을 겪는다. 선공부의 결과는 이러한 노예의 처지를 극복하고 오히려 의식을 자유롭게 부리는 의식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의식의 주인이 되는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의식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의식이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져 나오는가를 파악함으로써 의식을 지배할 수가 있다. 의식의 정체를 모를 때에는 의식이 이끄는 대로 따라다닐 수밖에 없지만, 알고 나면 의식이 저절로 항복해 오니 더 이상 의식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의식의 정체는 어떻게 파악할 수 있는가? 그것은 의식에 의지하지 않을 때 가능하다. 우리는 늘 의식에 의지하여 생각하고 판단하고 선택하며 살아간다. 순간 순간의 삶이 의식에 의지하여 유지되므로, 한 순간도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의식에 의지하고 있으므로 의식에 완전히 둘러싸여서 의식의 정체를 파악할 수가 없다. 의식의 정체를 파악하려면 의식으로부터 벗어나야 하는데, 의식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도 우선 의식에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어떻게 의식에 의지하지 않을 수 있을까?
먼저 현재 가지고 있는 선(禪)이나 도(道)나 공부에 대한 모든 관념과 견해를 하나도 남김 없이 과감히 버려야 한다. 아무리 확고하게 옳다고 여기는 견해라 하더라도 미련 없이 버려야 한다. 또 선공부의 결과에 대한 어떠한 기대나 예상도 두지 말아야 한다.
이와 같이 어디에도 머물지 않음으로써 내면적으로 철저히 가난해져야 한다. 스스로 초라하고 비참하고 두렵게 느낄 정도까지 철저하게 자신이 가진 견해를 버려야 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버려야 한다는 생각까지도 버려서 마음이 마치 의지할 것 없는 허공처럼 되면, 불안하고 답답하게 되는데 이 때에는 허공이라는 견해를 지어서도 안되고, 그 불안하고 답답한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다시 어떤 관념이나 견해에 의지하려고 해서도 안된다.
이와 같이 대상에 머물지 않음이 충분하게 되면, 어느 순간 의식을 지탱해주는 바탕이 저절로 드러나게 된다. 이 바탕은 비록 의식과 별개의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보아왔던 의식과는 전혀 다른 성질임을 경험할 수 있다. 이 경험을 하고 보면, 이제까지 의식에 의지하고 있었다고 여겼지만 사실은 의식은 겉으로 드러난 허깨비이고, 오직 진실한 것은 이 바탕일 뿐임을 알게 된다. 드디어 의식에 의지하지 않게 된 것이다.
김태완/ 부산대 강사.철학
[출처 : 부다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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