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파도가 소록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맑은 바람이 시월스러워 나무들의 몸짓이 유연하고 익어가는 유자 열매의 탐스런 웃음이 정겹게 다가온다. 길이 멀어 아침에 서둘러 집을 나섰는데도 시계는 벌써 오후 2시를 가리키고 있다. 그야말로 소록도는 먼 곳에 있는 섬이다. 일곱 번 고속도로를 갈아 탄 후 다시 국도를 한참 달려야 비로소 당도할 수 있으니 말이다.
▲ 만령당 중턱에서 바라본 소록도 마을 풍경
작은 사슴을 닮은 섬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 소록도! 한센인들의 아픈 몸과 흐르는 눈물을 잠잠히 위로해 주며 외롭고 서러울 때 품에 안고 그 삶을 다독여 북돋아 주었던 형님과 언니 같은 곳이다. 지금은 이 섬에 신식 건물도 많고 사람들 표정도 밝아 보이지만, 102년의 세월 동안 만고풍상 속에 숱한 상처와 격변이 끊이지 않았던 가슴 시린 현장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에는 한센인들을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혹독한 노동과 착취를 일삼았으며, 8·15 해방으로부터 한국전쟁을 거치는 과정 가운데서는 오히려 우리 민족에게 극심한 탄압과 집단 학살까지 당했던 슬픈 역사가 이곳에 흐르고 있다. 그 후, 뭍에서는 산업화, 민주화가 속도를 내며 진행되었지만, 소록도 주민들은 보호 격리라는 명분으로 인해 척박한 환경 속에 차별과 불평등을 마치 당연한 생활로 여기며 긴 세월을 그렇게 살아왔다. 이미 1992년에 우리나라는 한센병 종결 선언을 했음에도 세상의 시선은 여전히 차가웠으며, 2009년 3월에서야 소록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다리를 놓게 되었다. 육지와 직선으로 700m밖에 안 되는 거리를 무려 93년씩이나 걸려서...
▲ 추억이 서려있는 소록도 옛 선착장에서... (사진: 이남철)
한센병은 후진국형 피부질환에 불과하지만 전염성이 강하다는 이유로 별도의 장소에서 치료와 보호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병을 얻으면 본인 의지와는 상관없이 가족과 마을을 떠나야 했다. 표현을 곱게 해서 '떠난다'고 말한 것이지 사실상 한센인 대부분이 버림받은 상태에서 어쩔 수 없이 소록도에 와야만 했던 것이다. 자동차로 달려도 한나절이 모자랄 만큼 먼 길을 악성 괴담과 배고픔에 시달리며, 조롱과 핍박을 등에 진 채로 걷고 또 걸어서 이 섬에 당도하여 그 무거운 인생을 내려놓게 되었던 것이다. 가을 파도가 소록도를 쓰다듬으며 잔잔한 음성으로 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나이 먹은 나무들도 시월의 바람과 함께 아련한 추억 속에 잠겨 드는 듯하다. 아지오의 걸음이 소록도 길을 따라 아늑한 정취를 가슴에 담으며 말동무가 되어 본다.
소록도 청년들과 아지오
▲ 아지오와 소록도 청년들과 해변에서의 조우
소록도는 전라남도 고흥군 도양읍에 자리하고 있다. 면적은 3,79 제곱킬로미터(약 114만 6천 평)이며 500여 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평균 연령은 80세가 넘은 지 오래이고, 대다수 주민들이 30년 이상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한 때 이 섬에는 6천 명 넘는 주민들이 집단 수용 형태로 살기도 했으나 지금은 한센병 확산이 멈춘 상태여서 고령화와 함께 인구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소록도는 1번지와 2번지로 조성되어 있으며, 병원 종사자들이 1번지에 살고 한센인들은 2번지에서 6개 마을로 나뉘어 거주하고 있다. 잘생긴 나무들이 많고 아름다운 길도 많고, 주민들이 몸처럼 아끼는 교회도 많은 곳이 소록도이다.
그와 더불어 소록도에는 몇 안 되는 청년들이 살고 있다.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즐겨 타고 스마트폰으로 문화와 정보를 향유하는 사람들이다. 지난봄에 소록도 청년들이 먼 길을 달려 '구두만드는풍경'을 직접 찾아왔다. 다시 시작한 '아지오'가 건강하게 발전해서 멋지게 성공하기를 바라며 축하의 마음을 안고 방문하였다. 생산 현장과 일하는 사원들을 보며 무척 흐뭇해하였다. 마치 자기들의 일처럼 여기며 한껏 '아지오'를 격려하고 돌아갔다. 그들로 인해 소록도에는 '대통령의 구두 아지오' 이야기가 꽃처럼 피어났고 응원의 목소리도 커지기 시작했다.
▲ 아지오를 신은 소록도 청년들...
이 청년들 역시 소록도에서 30년 이상 거주한 사람들이다. 아주 어린 나이에 들어온 사람도 있고, 피 끓는 20대 초반에 병을 얻어 가슴을 치며 이 섬에 들어온 사람도 있다.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많았으며 세상과의 단절에서 오는 자괴감에게 인생 전체를 지배당하며 살아온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다. 그래도 소록도 청년들은 참 밝다. 어르신들이 많은 소록도에서 활력소 역할을 하고 부지런히 주어진 일들을 기쁘게 하고 있다. 언제나 손님을 반겨 맞으며 최선을 다해 대접하기에 힘쓴다. 우리 아지오가 소록도 청년들의 넉넉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참 좋고 행복하기만 하다. 어떤 사람의 나이는 56세, 다른 사람은 그보다 조금 많고, 또 다른 청년은 환갑이 내일 모레라 한다. 이렇게 젊디 젊은 청년들로 인해 소록도가 4계절 푸르고 아름다우리라 여겨진다.
아지오랑 소록도랑...
소록도는 곳곳이 볼거리로 가득하다. 일반 관광객들이 언제라도 찾을 수 있는 중앙공원은 멋진 나무들이 많기로 이미 소문이 나있고, 마을과 마을을 끼고도는 여러 갈래의 길들이 참 아름답다. 낮은 산비탈에서 노니는 사슴들과 매혹적인 바다 풍경은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비경 중의 비경이다.
▲ 옛날에는 흰사슴이 살았다지요~(사진: 이남철)
▲ 아름다운 소록도 해변에서(사진: 이남철)
동네마다 특색 있는 교회의 모양도 만날 수 있으며, 새로 만들어진 박물관과 전시관에서는 소록도 백년사를 한눈에 읽어 볼 수도 있다. 한센병은 정말 미운 질병이다. 손과 발을 손상시키는 경우는 다반사이며 얼굴과 시력까지 앗아가는 몹쓸 불청객과도 같은 질환이다. 이 지독한 한센병이 수많은 사람의 삶을 나쁘게 바꿔 놓았고 가족과 사회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악역을 해온 것이다. 소록도의 길과 오래된 건축물들은 손 발이 부자유스러운 한센인들이 직접 닦고 세운 것들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강제 노동에 의해 그 일을 했고 1950년대 말부터는 스스로 교회를 짓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건축물을 세워 왔다. 건강한 사람들도 하기 어려운 일들을 소록도에 산다는 이유로 억지로 또는 자발적으로 해온 것이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무 한 그루와 건축물 하나하나가 무척 소중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2010년 1월에 못 갖춘마디로 시작해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다가 냉혹한 세상 바람을 견디지 못하여 결국 3년 9개월 만에 문을 닫고 몹시 아파했던 '구두만드는풍경'이 아니던가?
백 년 소록도의 고난과 아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 바다에서 꿈을 낚는 소록도 청년들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아름다운 소록도 품 안에서 '아지오'는 겸손히 매무새를 가다듬는다. 문대통령과 많은 국민들의 응원에 힘입어 다시 일어선 ‘아지오’이기에 끝까지 견디며 더 노력하여 불편한 현실이 길을 막아서더라도 온 힘을 다해 도전하고 또 도전해서 반드시 '성공'이라는 목적지까지 청각장애사원들과 손잡고 쉼 없이 가기로 다짐해 본다. 가을 파도가 중매를 서고 '아지오'랑 '소록도'랑 손을 잡으니 시월이 더 근사해 보인다.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꿈이 더욱 튼실하고 선명하게 그려진다. 이제 ‘아지오’에 추운 겨울이 오더라도 전혀 염려가 없다. 견디면 이긴다는 진리와 봄이 되면 새순이 돋는다는 이치를 소록도에서 배웠기 때문이다.
아지오 신고 찾아간 소록도가 참 좋다. 따뜻한 가슴으로 맞아준 소록도 청년들이 아주 많이 고맙다. 이 느낌 이 사랑이 영원하기를...
첫댓글 . 사진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