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석: 나의 소견 123번. "144,000은 구원받은 총수가 아니다 / 형제의 글에 100 % 공감하면서. 2006-05-23. 계7:1-3, 계21:14, 계21:12
이름 : 계시록사랑
게시일 : 2006-05-23
"144,000은 구원받은 총수가 아니다!!!"
나 나름대로는 긴 고민을 해 오던 부분이라 이제 99.9% 해결되고나니 너무나 기뻐서 이렇게 쓰지 않을 수가 없어서 몇자 올린다.
144,000을 구원받은 총수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한결같이 계7:9절이하의 '흰옷입은 무리'를 동일한 구원받은 총수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런데 '흰옷입은 무리'는 7:14절에 보면 "이는 큰 환란에서 나오는 자들인데"라고 되어 있다.
여기 '큰환란'이란 말을 인생의 환란들을 말하는 것이라고 어떤분이 주석해 놓으신것을 보았는데 그렇게 생각할 수는 없는것 같다.
크다, 작다는 상대적인 것이어서 보다 작은 환란이 있기에 큰 환란이라고말을 사용한 것으로 이해되는데, 즉 모든 인생은, 모든 성도들은 동일하게 큰 환란의 생애만을 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생이 고난이요, 환란과 같다 할지라도 비교적 큰환란을 겪고 당하며 견딘 사람보다 가히 비교될 만큼 평안하고 안정된 생애와 신앙의 삶을 살다가 하나님 앞에 이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쉽게 생각하자면 1차대전, 2차대전, 한국전쟁과 같은 상황에서 못먹고 못자고 불안과 공포와 두려움가운데 생명의 위협을 크게 느끼며 떨었던 그런 경우,이런 경우가 큰환란을 경험한 이들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하는 말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모든 사람들까지 한꺼번에 묶어서 큰환란에서 나오는 자들이라고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이것만 보아도 흰옷입은 무리는 특정한 큰환란의 시기(7년환란)와 관련해서 나오는 무리이지 전 인류의 모든 세대와 모든 상황에서 나오는 구원받은 총수라고는 생각되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들과 동일한 무리로 보는 144,000도, 신약의 성도12 * 구약의 성도12 * 많다 라는 만수1000을 계산한 신구약의 구원받은 총수라는 주장은 흰옷입은 무리와 동일선상에서 볼때 일차적으로 틀렸다 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7:3절에보면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라고 되어 있고 이들 인침받은 자들의 수가 십사만 사천 이라고 되어있다.
이것은 환란의 바람(계7:1)이 불기전에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다시 두번째의'인을 치는 사건이다. 그것은 보호의 인, 권능의 인, 사상의 인등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모든 성도들에게 치는 1회적인 구원의 인, 성령의 인은 아닌것 같다.
"우리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라고 했으니 이미 구원받은 이들에게 다시 인을 치는 것이다!!.
이와달리 이것이 구원의 인이라고 본다면,
7년 환란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환란과 구원의 인과 관련하여 본다 할지라도 성도가 구원의 인 받기까지 세상의 환란의 바람은 불지말고 한사람 한사람 모두 구원의 인받고 난 후에 세상의 환란의 바람은 불어라 하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성도가 환란중에 구원의 인을 받기도 하고, 환란후에 구원받기도 하고(신구약 전세대로 볼때), 환란 전에 구원받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7년 환란을 인정할 경우에는
이곳 7:1절과 3절의 환란 전에는 모든 성도들이 구원의 인을 받아야 하며 환란때에 들어간 이후에는 한명의 사람도 더이상 구원의 인, 성령의 인을 받을 수 없고 구원의 기회는 끝난 상황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그것은 일단 뒤로 미루어 두고(여기서는 생략하자...)
다시 그들과 동일인으로 보는 흰옷입은 무리를 볼때 그들은 '큰 환란에서 나오는 자들'이다.
.......
서로 일치할수 없다
(무천년설과 역사적전천년설 모두의 경우)
여기에서 '나온다'라고 하는 것을 '겪고 나온다'라고 하면 이미 앞에서 말한바와 같이 모든 성도들은 전세대에 있어서 큰환란을 모두다 겪은 것은 아니고, 또 7년환란을 모두 겪게 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나온다'라고 하는 것을 '겪지않고 피해서 나온다' 라고 일률적으로 본다고 해도 모두가 7년 환란중 큰 환란을 피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 큰환란에 떨어져 고난을 당하거나 죽음을 당하는 이들(미련한 처녀)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큰환란이 어떤 환란인지에 관한 구체적인 것에 집중하지는 말자
구원받은 총수중엔 큰환란에서 나오는 이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이도 있다.
흰옷입은무리는 구원받은 총수가 아니다.
따라서 144,000도 구원받은총수는 아닌게 된다
곧 144,000의 상징적 해석 12*12*1000의 해석도 무의미해진다.
144,000을 구원받은 총수라고 보는이들은 흰옷입은무리와 공동 운명체라는 것을 뗄래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관계인것 같다.
이로볼때 144,000과 흰옷입은무리는 신구약의 전시대에서 나오는 이들이 아니다라고 결론짓는다
이들은 마지막때 7년환란과 관계된 이들이다.
흰옷입은무리는 7년환란가운데서 나오는 셀 수없는 큰 무리인 보다 많은 성도들의 무리이고
144,000은 이제 상징적인 해석은 배제하고, 보다 적은 무리인 환란 전에 인맞음으로 선별된 하나님의 종들의 무리라는 것을 생각해보게 된다.
이러므로 144,000은 숫자 그대로 실제의 수라고 생각할수 있다. 정확한 수이든 ~쯤 되는 수이든...
이들은 환란 직전 인맞는 모습을 보게 되고, 인맞는 이유는 환란 기간의 특별한 목적(사명)을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각지파 가운데서 선별되어서, 그리고 각지파별로 12,000 씩 선별되어서 나온 하나님의 종들이란 것을 확인 하게 된다. 그래서 이들은 (환란 기간중의)특별한 무리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계10장, 11장에 나오는 (환란 기간중의)특별한 이들인 1260일간 권세받고 예언하는 두증인과 연결된다.
요약하면 이러하다.
*흰옷입은 무리는 큰 환란에서 나오는자들이고 (7년환란),
*그러므로 144,000도 구원받은 총수가 아니고 (환란직전에 다시 인맞는 종들)
*이들은 서로 다른 무리이고 구별되며
*흰옷입은 무리는 환란에서 나오는 셀수 없는 큰무리 성도들이고
*144,000은 구별되어 선별된 특별한 목적(사명)을 지닌 종들이다
*이들은 10장, 11장의 1260일간 다시 예언하는 두증인과 연결된다.
나는 여기에 대해서 많이 고민한 편이다.
144,000을 두증인과 연결해서 이렇게 해석하시는 분이 많지 않으신 것 같다.
무천년설을 주장하는 24~26%(?)가 구원받은 총수로, 그리고 50%정도 되는 전천년설중 상당수인 세대주의는 유대인으로, 역사적전천년설중에도 구원받은 총수로 해석하시는 분들(박윤선, 이병규...)이 많다는 사실때문에 확신이 흔들흔들 할때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도 감사한건 계시록과 종말론을 집중적으로 20년 30년이상씩 연구하신 성경연구가 깊으신 분들은 동일하게 이에 대하여 해석이 같으시더라는 것이다.
어쨌든 위의 내용으로 나는 확실히 확신하기로 했다.
읽는 분들에게도 조금이나마 어느 한부분 확신을 가지는데 힘이 실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144,000에관한 자세한 해석은 이곳 홈페이지의 민목사님의 정리를 보면 확실해질 것이다.
위의 나의 소견은 다만 개인적으로 내가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된 스파크가 일으난 부분을 올린것에 불과하다.
<응 답>
형제의 글에 100 % 공감하면서.
'계시록 사랑'님의 글은 문제의 계시의 내용의 핵을 성경적으로 잘 드러낸 아주 훌륭한 견해요 해석입니다.
성경은 문장적으로 해석해야 진리가 밝혀지고 분명한 뜻이 나타나 그 말씀을 믿고 우리의 소망을 말씀에 기대할 수 있습니다.
글은 하나의 문장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나타낸 하나의 완전한 문장입니다.
어린이들의 작문에서부터 학자들의 전문적인 학문의 논문에 이르기까지 그 글을 사람들이 읽고 이해할 수 없다면 그런 글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는 공허한 글이 되어 버립니다.
무슨 글이나 글에는 분명한 내용, 뜻, 의미가 들어가 있어야 하며 그것을 읽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글에 그것이 없다면 그 글은 주언부언하고 있는 미친소리지 사람에게 읽으라고 쓴 글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야 더 말할 나위 있을 것입니까? 형제는 계시록 7장의 144000의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해석을 이처럼 문장적으로 잘 처리하셨습니다. 형제의 해석은 어느 신학자의 신학적 견해보다 어느 주경학자의 성경 해석보다 더 훌륭하고 더 성경적입니다.
격려와 박수를 보냅니다.
2006년5월24일 민병석 목사
***123-1번. Re: "144,000은 상징성을 가진 실제의 수". 2006-05-24
이에 덧붙여,
144,000이란 수의 상징성을 완전히 버려버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담아두신 구원의 의미와 뜻까지 함께 버려버리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 수는 완전히 상징성만을 가진 수라기 보다는 실제의 수이면서도 여기에 하나님께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질수 있도록 상징성을 더해 놓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때 12*12*1000=12지파: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의 자격 * 12사도:사도적 신앙,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받은 성도들을 의미함 * 많은 수 =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았고, 영적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의 자격을 갖춘 사람(성도)들이 많다 라는 것을 뜻하는 상징성으로 보고 싶다.(12지파와 12사도의 의미는 민목사님의 저서 "재림의 메세지 101" p697의 내용을 바른 해석으로 알고 그대로 적용했다)
.......
셀 수없는 온교회의 성도를 이러한 상징적인 숫자를 들어 표현한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숫자를 실제의 숫자로 만들어 거기에 상징성을 돋보이게 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신약 은혜의 성령시대의 개막도 120문도의 성령받은 수로 부터 있어졌는데 그것을 교회의 수12*만수10 =120이라고 하고 이것을 신약교회시대의 모든 성도라고 해석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이것은 앞으로 전개될 신약시대의 교회를 (넉넉히) 꽉 채울 수 있는 출발점 선상에서의 충분한 수가 된다는 뜻의 상징성(대표성)을 가진실제의 수일 것이다.
그리고 12사도도 온교회를 대표하는 상징성(의미)을 띤 실제의 수이다. (계21:14)
12지파도 온교회를 뜻(상징)하는 수이며 또 실제적으로 존재했던 열두지파 실제의 수이다. (계21:12)
이렇듯 숫자의 상징성이라는 것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실제의 숫자의 중복과 반복을 확인하고 우리는 거기에다 상징적 의미를 발견하고 붙이는 수동적 입장이지, 실제를 무시한 상징만 홀로 남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든경우의 적용이 실제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24장로도 신구약의 모든 성도를 상징하는 대표성을 띤 실재적인 구약의 인물(선지자)들로 나는 믿고 싶다. (상징적 의미뿐만 아니라 실재이니 경배도 하고 면류관도 벗어 던져드리고 또 "큰 환란가운데서 나오는 자들이니"라고 요한에게 말도 해주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수는 실제의 수이면서도 인류의 마지막에, 총결산때에, 추수때에 온교회(모든성도)의 충만함(충만한 수확)을 뜻하는 대표성(상징성)을 가진 숫자로 '하나님의 종들의 무리'를 하나님께서 구성해 놓았다고 보는 것 말이다.
굳이 끝까지 상징적인 표현이라고 주장한다면 더 할 말이 없지만, 나는 144,000은 상징성(총결산의 대표성)을 가진 실제의 수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