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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두뇌집단간의 전략싸움이다.
어느 일방의 정략이 성공적이라면 반대의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은 된서리를 맞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오늘의 정치세력에서만 이런 경쟁관계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오늘의 정치세력은 과거의 정쟁을 통해 배움의 수를 확인해야만 한다.
솔로몬의 정부는 그야말로 신생정부이다.
여전히 민심은 솔로몬에 대해 그렇게 후한 점수를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솔로몬의 나이 어림도 그렇지만 왕자로서의 출신이 그렇게 썩 마음에 드는 위치는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솔로몬은 엉겁결에 왕이 된 인물이기에 여전히 왕의 수업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비록 다윗의 추상 같은 유언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민심은 유동적일 수밖에 없었다.
아도니야의 어정쩡한 쿠테타는 일단 수습이 된 상황이다.
그러나 언제든지 솔로몬의 실정이 문제로 들어나면 터져 나올 휴화산과도 같은 상태이다.
아도니야를 위시한 수구세력은 비록 수면 아래로 자세를 감추고 있지만 언제든 터치고 나올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야말로 솔로몬의 통치는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은 위기의 연속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솔로몬의 뒷심이 되어 주었던 다윗이 죽고 말았다.
다윗의 죽음으로 솔로몬의 정치는 시계 제로의 폭풍전야의 상황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아도니야가 꼼수를 부린다.
아도니야는 밧세바를 방문하여 청원을 한다.
그런데 그 아도니야가 밧세바에게 한 말에는 나름의 의도가 내포되어 있었다.
우리 말 가운데 언중유골(言中有骨)이란 말이 있다.
말 속에 자신이 하고픈 진정이 들어있다는 의미이다.
그 진심을 감추고 에둘러 말한다는 것이다.
학깃의 아들 아도니아가 밧세바를 찾아왔다.
그 녀에게 자신의 일그러진 소망을 말하며 들어줄 것을 청한다.
그리고 아도니아의 제안에 밧세바는 순순히 그 청을 받아들인다.
결과적으로는 아도니아는 자신의 제안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
그렇다면 과연 아도니아는 앞으로 전개될 결과를 과연 몰랐을까?
적어도 아도니아가 밧세바에게 청원한 그 내용이
솔로몬으로 하여금 어떤 반응이 일어날 것인가를 전혀 예측하지 못하였을까?
만약 죽음의 숙청이라는 피를 부르는 일이 된다면 그래도 과연 아도니아가 밧세바에게 청원을 넣었을까?
밧세바에게 아도니아가 청원한 것은 한 여인을 자신에게 넘겨달라는 것이었다.
그 여인은 아비삭이었다.
다윗의 말년에 그의 차가워진 몸을 덥히기 위해 이스라엘 전국을 뒤져 선발된 미모의 여인이다.
아비삭은 자신의 그 빼어난 미모 탓에 불행한 삶을 산 가장 대표적인 여인이다.
아도니아가 죽음을 예상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아비삭을 원한 까닭이 무엇인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성찰을 통해 솔로몬 통치의 특징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다윗이 왕이 된 것은 자신의 의지라기보다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야 할 대목이 많다.
천진스러웠던 목동의 시절에 늙은 예언자 사무엘의 방문이 그의 생애를 바꾸어 놓았다.
사울이 왕으로 버젓이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차세대 왕으로 지목되었고 기름 부음을 받았다.
그 일로 인해 다윗은 전국적인 인물이 되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론 사울의 표적이 되었다.
오랜 방황과 피신의 과정을 통해 그의 진심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슴에 스며든다.
그리고 사울의 죽음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다윗의 왕 됨은 인정받게 된다.
그러나 그 과정도 녹녹한 것은 아니었다.
그 만큼 새로운 정치집단의 등장은 기존의 세력들에 의해 반발과 견제를 받게 된다는 사실이다.
물론 다윗은 그 과정을 개인의 탁월한 카리스마로 극복한다.
그렇다면 다윗의 뒤를 이은 솔로몬의 등장에도 그런 권력투쟁의 과정이 왜 없겠는가?
아도니아의 반란 모의와 재빠르게 판단하고 기지를 발휘한 나단의 활약으로 솔로몬은 왕위에 등극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 모든 것도 다윗이 살아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솔로몬의 왕 됨을 지켜주는 든든한 버팀목인 다윗이 죽는다.
물론 다윗은 솔로몬의 통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제반조처를 사전에 다 해두었다.
심지어는 마지막 가는 자의 그 넉넉함, 모두를 내려놓는 용서의 미덕조차 포기한 채
솔로몬의 통치를 위해 극약처방을 유언으로 남긴다.
우리가 성경에서 보는 다윗의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오직 한 곳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다윗의 죽음에 대한 애도나 슬픔이 표현된 구절이 없다는 것이 너무도 이상하다.
적어도 열왕기의 기자는 다윗의 죽음을 그렇게 슬퍼할 안타까움이 없다는 암시를 한 셈이다.
열왕기 기자는 다윗의 죽음에 대해 애통하기 보다는 무미건조한 단순한 보고만을 남긴다.
“다윗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워 다윗 성에 장사되니”(왕상 2:10)
요 얼마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인해 국민장이 치러졌다.
그리고 잠시 숨을 고를 무렵 다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국장을 치렀다.
거듭되는 장례의식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죽음을 애통해 하며 슬퍼하고 함께 그 안타까움을 나누었다.
국민장과 국장의 규모나 진행상황, 그리고 백성들의 반응 등 기록할 일들이 엄청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다윗의 존재감을 한번쯤 생각해 보라.
그렇다면 어떻게 다윗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간단하게 처리될 수 있을까?
그 까닭이 무엇일까를 곱씹어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다윗의 죽음에 대해, 그리고 그의 통치에 대해 속속들이 새겨볼 여유가 없다는
긴박한 사정들이 숨겨져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결과 열왕기의 기자는 신속하게 다음 말로 넘어간다.
“솔로몬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왕위에 앉으니 그의 나라가 심히 견고하니라.”(왕상 2:12)
열왕기 기록자의 평가는 무엇을 말하는가?
적어도 그 표현은 솔로몬의 통치가 오랜 기간 지속되었고,
그래서 그의 통치행위에 대한 최종평가나 혹은 최소한 중간평가의 의미를 지닌 표현이 아닐까?
문제는 왜 열왕기 기록자는 이처럼 신속하게 다윗의 통치를 마감하고
이제 막 통치를 시작한 솔로몬의 통치에 대해 최종 평가식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열왕기 기자는 다윗의 통치와는 사뭇 다른 솔로몬의 통치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다윗의 죽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나타낸 것이다.
다윗이 성군이었느냐는 판단은 전적으로 후대의 몫이다.
그러나 적어도 선지자의 관점에서 다윗의 죽음을 판단할 때에 사실은
슬퍼할 구석이 없다는 암시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솔로몬의 통치로 발 빠르게 옮겨간 가장 중요한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밝히고자 함이다.
열왕기 기자는 솔로몬의 통치에 대해 “그의 나라가 심히 견고하니라”는 심상치 않은 표현으로
단락을 맺고 또한 끝맺음을 한다.(왕상 2:12와 2:46하 참조)
그러므로 솔로몬의 통치력을 암시하는 “견고함”에 대한 서술은
솔로몬 통치의 바탕이 어디에 기인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다윗은 철저히 개인적인 카리스마에 근거하여 이스라엘의 통치자가 되었다.
반면 솔로몬의 통치력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이름과는 정반대로
강력한 권력에 기초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것은 살해행위까지도 계산에 넣은 정적에 대한 무차별 숙청이요 제거였다.
그 첫 번째 대상이 아도니야였다.
아도니야는 어떻게 생각하면 무모한 도전을 한 셈이다.
과연 아비삭을 달라는 그 부탁이 단순히 미모의 여인이 탐나서 한 부탁이었을까?
아니 적어도 머리 좋은 솔로몬이 아도니야의 그 부탁을 단순하게 처리하지 않으리란
계산을 해 보지 않았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어쩌면 정치적 생명이 끝나버릴 수 있는 무모한 부탁을 감히 한 까닭이 무엇일까?
우선은 밧세바와 아도니야 사이의 대화를 통해 그 과정을 재검토해 보도록 하자.
아도니야의 방문에 밧세바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솔로몬이 왕이 된 이후 밧세바는 어떤 위치에 있었나가 하나의 관건이긴 하지만
적어도 왕의 모친으로 적당히 뒤에 처져 있지는 않았으리란 판단이다.
밧세바가 어떤 지위를 누렸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밧세바의 기질 상 직간접적으로 솔로몬의 통치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그런 만큼 솔로몬의 통치에서 어머니의 간섭을 제어하는 일이 또 다른 숙제가 되었음은 자명한 일이다.
그리고 그 일은 의외로 간단하게 처리될 수 있었다.
왕의 통치에 있어서 친인척의 간섭은 참으로 피 말리는 일이다.
좋은 의도이건 또는 이익을 챙기기 위한 의도이건 친인척이 비리에 연루된다는 것은
통치자로선 치명적인 아픔이다.
그런데 솔로몬의 통치 초기에 있어서 밧세바의 위세는 대단했을 것이다.
사실 다윗 앞에서 밧세바가 무릎 꿇는 기지를 발휘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솔로몬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사독이나 선지자 나단의 공도 대단하지만 여전히 중요한 것은
다윗 앞에 직접 무릎을 꿇은 밧세바의 움직이는 행동의 결과였다.
밧세바가 비록 솔로몬의 모친이며 왕의 등극에 일등공신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내세워 솔로몬의 목을 조른다면 어떤가?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와 밧세바 사이에 있었던 모종의 약속은 말이 청이지
사실은 그렇게 하겠다는 결정이었다.
아도니야는 “왕이 당신의 청을 거절하지 아니하리이다” 말하므로
솔로몬의 유약함과 측근 세력에 쌓여있음을 암시한다.
사실상 결정권은 솔로몬이 아니라 밧세바에게 있다는 식의 표현이었다.
위기 뒤에 위기라고 새로운 위기가 솔로몬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친인척을 대표하는 최측근의 사람이 부모가 아닌가?
더구나 솔로몬을 왕으로 만드는데 절대적인 공헌을 한 사람이
자신을 낳고 기르고 세운 어머니 밧세바라면 어떻겠는가?
최측근의 친인척에 의해 공의로운 정치는 물 건너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표면적으로는 아도니야의 제거이지만 사실은 아도니야를 비롯한,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밧세바까지 포함한 친인척 세력의 제거인 것이다.
아도니야의 제거는 오히려 단순하고 쉽다.
그러나 중요한 두 사람이 남아있다.
그들이 곧 밧세바와 아비삭이다.
밧세바와 아비삭은 모두가 솔로몬의 왕 되는 과정을 훤히 알고 있는 인물이다.
물론 밧세바는 적극적으로 솔로몬을 왕으로 만드는데 역할을 다한 사람이다.
반면 아비삭은 다윗의 뒤에서 그 과정을 말없이 지켜본 인물이다.
솔로몬이 왕이 되는데 있어서 중요한 모종의 비밀들을 여과 없이 모두 알고 있는 인물들이다.
밧세바야 솔로몬을 왕으로 내세운 인물인 만큼 솔로몬을 배반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더구나 사랑하는 남편을 잃어버리면서까지 지켜낸 지위이기에 솔로몬의 왕 됨을 적극적으로 지켜낼 사람이다.
그런데 아비삭은 어떠한가?
그는 마음만 먹으면 솔로몬이 왕이 되는 과정을 폭로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사실 아도니야가 굳이 아비삭을 원한 까닭은 단순히 미모에 반한 것으로 해석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아도니야와 아비삭 사이에 모종의 결탁이나 제휴가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 편이 아도니야가 솔로몬의 반응을 예측하면서까지 무모하게 밧세바와 담판을 벌인 이유일 것이다.
밧세바와 나눈 이야기 속에 아도니야가 여전히 왕위에 오르지 못한 아쉬움과 야심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아도니야는 여인의 질투심을 교묘히 이용하여 아비삭을 자신에게 아내로 줄 것을 간청한다.
물론 아도니야의 노림수는 아비삭을 자신의 수중에 넣는 일이다.
아도니야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아비삭을 원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중병을 앓고 있던 다윗이 용단을 내려 솔로몬에게 왕위를 물려주기까지의 비밀을 누가 알고 있는가?
그 비밀의 열쇠를 쥐고 있는 대부분의 인사들은 모두 솔로몬의 측근으로 포진하고 있다.
그런데 단 한 사람, 솔로몬의 측근이 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그가 곧 아비삭이다.
그녀는 타고난 미모 때문에 오히려 침묵을 강요당하는 위기의 여자이다.
아비삭은 다윗의 마지막 여자이다.
그녀가 실제로 다윗과 더불어 성관계가 있었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녀가 다윗의 침소에 든 마지막 여인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 만큼 그 누구보다도 솔로몬이 어떻게 왕이 되었는가에 대한 비밀을 송두리째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 정보를 아도니야가 역이용할 수 있다면 정세를 뒤바꿀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아도니야의 노림수는 바로 이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밧세바의 질투심을 건드려 아비삭을 자신의 아내로 삼도록 충동질 한 것이다.
밧세바의 입장은 어떠한가?
밧세바 역시 한 미모 덕택에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 다윗의 아내가 된 사람이다.
오로지 자신의 아들인 솔로몬이 정권을 틀어쥐는 것만을 목표로 살아온 여인이다.
그러나 밧세바 역시 한 때는 다윗의 총애를 받던 여인이 아니던가?
그런 만큼 그 누구보다도 아비삭의 존재에 대해 경쟁심을 갖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여인을 아도니야가 아내로 달라고 하지 않는가?
밧세바로서는 아비삭에 대해 묘한 도전의식을 갖고 있었는데 그야말로 쾌재를 부를만한 일이 아닌가?
아비삭이 만약 아도니야의 뜻대로 그의 아내가 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밧세바의 가슴의 상처가 무엇인가?
두 남자의 아내라는 굴레를 지울 길 없었던 밧세바의 입장에서 아비삭에게 안겨줄 상처가 무엇인가?
만약 아비삭이 아도니야의 아내가 된다면
그녀는 아버지와 아들, 두 남자의 아내라는 기가 막힌 상황이 벌어지지 않겠는가?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자 밧세바는 주저하지 아니하고 아도니야의 청을 도와주겠다고 단언한다.
밧세바의 그 비굴한 질투심과 아도니야의 교묘한 계략이 맞아떨어지는 순간이다.
밧세바는 단숨에 솔로몬에게로 달려간다.
그리고 왕의 어머니로서 대단한 영접을 받고 좌정한 군신들 사이에서 위세를 뽐낸다.
그도 그럴 것이 솔로몬이 왕의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이한다.
뿐만 아니라 솔로몬이 그녀에게 절을 한다.
솔로몬으로서는 물론 아들로서의 예를 갖춘 것이다.
그러나 신하들이 좌정해 있는 상황에서 솔로몬이 밧세바에게 절을 한다는 그 정황 자체가
밧세바의 위세를 가늠할 수 있지 않겠는가?
솔로몬은 왕의 자리로 돌아가 그녀를 앞으로 나와 앉도록 청한다.
그 때에 그녀가 앉은 위치를 주목하라.
그녀는 주저함없이 왕의 오른편에 앉는다.
이 모두가 솔로몬을 왕으로 만든 어머니의 위세인 것이다.
밧세바는 솔로몬에게 사소한 청이라면서 말을 꺼낸다.
당연히 들어주어야 한다는 위압적인 언질이 깔려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솔로몬의 반응은 의외였다.
솔로몬은 지금이야말로 어머니의 권력남용을 차단할 절호의 기회임을 예측한 것이다.
솔로몬은 아주 단호하게 그 사안이 단순한 남녀 사이에 있을 수 있는 치정의 문제가 아님을 밝힌다.
아도니야의 제안은 왕권도전과 연결된 중요한 사안임을 선포한다.
그런 만큼 그 제안을 한 아도니야와 그의 측근 인사들의 죽음은 마땅하다는 논조를 펼친다.
아울러 그 정략적인 제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어머니인 밧세바 역시
퇴출의 대상임을 강력하게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아도니야 일당의 호시탐탐 반전의 기회를 노리는 그 노림수가 아비삭의 포섭이었다.
솔로몬 등극에 대한 비밀의 열쇠를 쥔 아비삭을 데려오기 위해 아도니야가 사용한 꾀는 밧세바의 질투심이었다.
여인의 질투심을 교묘하게 흔들어 아비삭을 아내로 주도록 충동질한 것이다.
아도니야는 밧세바가 실세임을 인정한다.
솔로몬을 움직일 수 있는 오직 한 사람이라고 그녀를 추켜세운다.
그렇지 않아도 눈에 가시일 수밖에 없는 아비삭의 신세를 한 순간에 망가뜨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 밧세바가 냉큼 아도니야의 제안을 수용한다.
그러나 솔로몬은 그의 이름과는 달리 평화의 방법으로 권력을 틀어 쥔 인물이 아니다.
그의 카리스마는 다윗의 카리스마와 전혀 다르다.
여전히 주변의 권력자들은 전적으로 솔로몬을 지지하고 있지는 않은 상황이다.
반대세력은 호시탐탐 반전의 기회만을 엿보고 있다.
그런데 그 상황을 일거에 역전시키고 확실하게 권력의 중심으로 다가설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솔로몬 통치의 방해요소로 등장할지 모를 최측근세력을 단숨에 정리할 수 있는
일거양득의 상황이 주어진 것이다.
지혜로운 솔로몬이 이런 정세를 읽지 못했을 리가 없다.
아도니야가 무엇 때문에 아비삭을 원하는지, 그 노림수를 훤히 들여다 본 것이다.
그리고 단호하게 아도니야를 감싸고도는 수구세력의 제거를 위한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이다.
뿐만 아니다.
밧세바의 위세, 다분히 정치 지향적인 성향을 지닌 어머니의 치마폭에서 단숨에 벗어난 것이다.
솔로몬은 비로소 인의 장벽에서 벗어난다.
열왕기 기록자는 솔로몬의 통치가 비교적 빠른 시일에 안정기에 접어든 그 정황을 우리에게 일러준다.
솔로몬의 안정적 통치가 급선무이기에 열왕기 기자는
다윗의 죽음에 대해서 그렇게 커다란 관심을 드러내지 아니한다.
달랑 몇 자 적는 것으로 그 위대한 다윗 서거의 기사를 마감한 것이다.
그 까닭은 바로 솔로몬의 통치기반이 어떻게 신속하게 안정을 맞을 수 있었는가에 있다.
아울러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솔로몬은 솔로몬답게 통치하기보다는
권력의 힘으로 억압하고 제거하고 잘라낸 세속정치의 달인임을 그려주고 있다.
형제살해를 비롯하여 수구집단의 전격적인 제거와 숙청,
그리고 반발집단에 대한 강력한 경고를 통해 과도기적 상황을 빠르게 안정화할 수 있었다.
모든 통치자의 바람은 안정적 토대 위에 자신의 뜻을 펼쳐보는 것이다.
솔로몬은 그 뜻을 실행에 옮긴다.
안정된 기반 위에 자신의 친위집단에 의한 정치를 실험적으로 펼치기 위해
기존의 권력층을 어떻게 제거하고 제압할 것인가를 가장 확실하게 보여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통치자들에 대한 평가적 의미를 지닌 언어를 사용하여 솔로몬 통치의 의미를 제시한다.
그 말은 이것이다.
“솔로몬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왕위에 앉으니 그의 나라가 심히 견고하니라.”(왕상 2:12)
같은 의미의 말이 정치구도 마무리 과정에 다시금 소개된다.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에게 명령하매 그가 나가서 시므이를 치니 그가 죽은지라.
이에 나라가 솔로몬의 손에 견고하여지니라.”(왕상 2:46)
솔로몬통치의 초기 과정의 이야기를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해야할 필요가 있었을까?
왕상 2:12와 2:46은 사실상 동일한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구도는 자연스레 인쿠르지오의 구도를 연상하게 만든다.
솔로몬 통치의 구도를 신속하게 마무리하게 된 배경과 과정을 그 속에 담아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열왕기 기자는 솔로몬의 통치가 어떻게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이루게 되었는가를 밝힌 셈이다.
놀랍게도 솔로몬의 통치는 아도니야와 요압, 시므이의 처형이라는 극약처방을 토대로 세워졌다는 전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금 물어야 한다.
“솔로몬의 손에 견고하여지니라”는 말에 감추어진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왜 열왕기 기자는 솔로몬의 통치를 이렇게 피의 복수에 근거한 안정으로
간단하게 정리해 주는 것일까?
화평의 사람인 솔로몬의 피 바람을 부르는 숙청을 통해 안정화되었다면 그것이야말로 역설이 아닐까?
그 역설이 열왕기 기자가 내린 솔로몬 평가라면 또한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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