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에서 눈아 오나 비가 오나 월-토 매일 아침 7시면 제주해군기지 앞에서 백배를 하며 그 자리를 지키는 분들이 있습니다. 13년 이상 그 곳에 계시는 정선녀 공소회장님은 또한 매일의 기록으로 그 소중한 일상이 역사가 되게 하는 분입니다. 그리고 월-일 매일 강정의 미사 전례를 준비하며 평화의 기도가 강정에 숨쉴 수 있도록 헌신을 다하는 분 입니다. 정선녀 회장님의 아래의 글을 꼭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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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평화의 빛을 찾아]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by 정선녀 잔다르크/제주 강정 공소회장
사도직 협조자인 저는 교구 주교님의 사명으로 파견된 곳에서 복음 생활을 하는 평신도입니다. 2007년부터 전 교구적으로 시작된 강정 해군기지 반대 운동에서 전체 도민과 함께 기도와 비폭력 저항 운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2012년 5월 임시로 마련된 평화센터에서는 교구민들과 연대자들, 예수회원들, 문정현 신부님이 함께하는 미사가 봉헌되었고, 이 자리에서 저는 강우일 교구장님으로부터 기지 반대 운동을 하는 현장에 파견되었습니다. 다음 날부터 '세계 평화의 섬' 제주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 밤중이든 새벽이든 뛰어나와 공사 차량을 막아서는 일이 혼란 속에서 계속되었습니다. 또 경찰에 체포 연행되어 경찰서에서 조사받고, 재판을 받으며, 연대자가 수감된 교도소를 방문하는 일이 일상이었습니다.
현장에 나갈 때마다 바오로 서간을 읽으면서 매일 용기를 얻습니다. 투쟁하는 와중에도 폭력적으로 제압하는 경찰들에게 시위자들의 권리와 종교의 자유에 관한 권리를 외쳐 결국에는 인정을 받았습니다. 미사와 묵주기도를 하는 동안에는 모든 공사 차량 이동이 중단되었고, 연대자들과 경찰, 용역들까지 지친 몸을 쉬고 영혼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2018년 10월 열린 국제관함식 이후 제주 해군기지에는 미 항공모함, 핵 추진 잠수함, 세계의 군함들이 자유롭게 들어옵니다. 하지만 오늘날까지 반대 시위는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평화 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궁금해하며 묻습니다. 해군기지가 완공되었는데 왜 계속 시위를 하느냐고요. 기지가 완공되었으니 건설 반대 운동은 실패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지요. 해군기지 건설을 인정하고 물러서는 것은 기지 건설이 재앙에 가까운 결과를 불러온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자포자기나 다름없습니다. 불법과 편법으로 세워진 해군기지 완공이 정당하다고 할 수 없지요.
해군기지 완공 후 우리들은 재앙에 가까운 환경 변화를 목격합니다. 은비늘 반짝이던 강정천 은어가 사라지고, 상수원에서는 유충이 나오며, 이 온 우주가 들어 있던 조수 웅덩이와 곳곳에서 솟아나는 용천수가 시멘트로 덮여 그 맑던 물이 사라졌습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물들, 특히 녹나무군락, 솔잎난, 긴꼬리딱새, 원앙이 사는 이곳을 우리는 안타깝게 지키고 있습니다.
저는 12년 넘게 매일 아침 7시에 생명과 평화를 위한 백배를 준비하고 기지의 특별한 행사나 훈련을 감시합니다. 코로나 종식 후에는 중국 선적 크루즈가 이틀에 한 번 들어와서 동남아시아 관광객들이 4시간에 이르는 입·출국 절차를 거쳐 버스로 이동하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사이 거대한 쓰레기 트럭이 오가고 물을 채우는 일이 반복되는 광경도 목격합니다.
매일 아침 11시에 시작되는 생명평화미사를 준비하고 음향 준비를 하면서 전례를 이끄는 것도 저의 일입니다. 거룩함의 본질을 잃지 않도록 깨어 있는 순간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저에게는 소명같은 시간이 되어 줍니다.
미사 전까지는 텃밭과 화초를 돌보고 길거리 천막 주변을 청소하며 이어서 전례를 준비합니다. 사계절, 특히 겨울과 한여름을 길에서 보내기란 인간적인 한계 때문에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예수님의 수난 묵상과 매일 복음 말씀으로 인내를 다하여 버티는 중입니다. 서울과 전주에서 한두 달에 한 번씩 미사에 함께하시는 신부님들에게서도 큰 위로를 받습니다.
전 세계 곳곳에서 잊지 않고 찾아오는 이들이 종파를 초월해서 미사에 함께하고 반생명적인 현장 상황을 직접 보고 듣는 이곳은 평화의 가치를 확인하고 연대하는 소중한 작은 교회입니다. 제주섬 곳곳에서는 전쟁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고, 상처의 아픈 딱지는 도민들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교종님의 말씀은 평화는 결코 무기로 지킬 수 없다는 가르침을 다시금 일깨워 줍니다. 이곳은 그런 가르침을 세계에 드러내고 호소하는 곳입니다.
하느님께서 함께하시는 골고타 고난의 현장인 이곳의 긴 투쟁을 2013년에 설립된 강정생명평화마을협동조합이 후원하고 있습니다. 육지에서 이곳에 와서 십여 년 넘게 연대하셨던 분들이 떠나면서 조합 일도 제가 맡게 되었습니다. 이 협동조합 덕분에 활동가들의 한 끼 식사와 영치금, 마을주민 벌금 대납, 전국의 어려운 현장을 지원하는 연대 사업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기도하며 땀 흘려 키워낸 곡식을 포장해서 팔려고 내놓을 때의 기쁨이 자못 크기에, 이는 생명의 선물이라고 자부합니다.
전쟁이 없는 상태를 평화라고 한다면, 이곳 강정은 전쟁의 씨앗이 종류대로 보관된 어마어마한 전쟁 씨앗 보관 창고가 아닐까요? 그런 가운데서도 "강정아! 너는 이 땅에서 가장 작은 고을이지만 너에게서 온 세상에 평화가 시작되리라."라는 강우일 주교님 말씀을 새기며 활동하는 우리들은 생명의 씨앗을 돌보는 생명평화 지킴이들이라고 자부합니다. 끝.
(글 전달: 변종영 도밍고)
사진: 2024년 3월 5일 미군함 히긴스(DDG-76) 이 들어왔을 당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