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운요호 사건, 강화도조약(1)
메이지유신으로 근대화한 일본은 급속히 제국주의화가
되어 대륙침략의 첫 단계로 정한론(征韓論)을
내세우며 조선을 침략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이즈음 조선에서는 강경한 쇄국양이정책을 고수하던
대원군이 실각하고 고종이 친정을 시작하면서
민씨 척족 세력이 집권하게 되었는데 일본에게 있어
대원군의 실각은 고무적 현상이었습니다.
일본은 1875년 5월 이미 대만정벌을 시도해 대만을
점령한 바 있었는데 조선이 이 소식을 듣고 겁을 먹었다고 판단하고 다음과 같은 외교 방안을 마련하였습니다.
대원군의 재집권 전에 개항을 성취하여야 한다.
군함 한 두 척을 파견해 해로를 탐측하면서 무력시위를
벌이면 일본이 교섭에 유리한 지위를 획득할 수 있다.
일본은 이러한 계획에 따라 영국에서 사들인 신식 전함
운요호 등 2척을 파견해 동해안으로 북상, 영흥만까지 순항하면서 무력적 시위를 벌이고 남해안과 동해안을 탐측, 시위한 뒤 1875년 9월 20일 강화도 동남방 난지도에 정박하였다가 이노우에 이하 수십 명의 해병을
초지진으로 침입시켰습니다..
강화해협을 방어하던 조선 수비병이 침입해오는
일본의 보트에 포격을 가하자 이노우에는 모함인
운요호로 철수하며 이를 빌미로 초지진에 맹렬한 근대식 포격을 가하여 초지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습니다.
같은 날 오후에는 제물포 영종진에 포격을 단행하고,
일본군 수병 22명이 영종도에 상륙작전을 펼쳐
일대격전이 벌어졌습니다.
이 전투에서 첨사 이만덕이 이끄는
400∼500명의 조선수비병이 맞섰으나,
조선군은 패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전투에서 사망한 조선군은 35명, 일본군은
2명뿐이었으니 그 전력 차가 참으로 컸습니다.
일본군은 닥치는 대로 불태우고 약탈한 후에
선상 파티를 벌인 후 유유히 나가사키로 귀향했습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조선 조정은 일본이 보낸 문서의
형식에 문제가 있네 없네 하며 논란을 거듭했지만,
정작 일본은 그런 데에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내일 또 이어서 계속됩니다.. *♡*
조선왕조
운요호 사건, 강화도조약 (2)
1876년(고종 13년)
일본 배 4척이 또 다시 강화로 접근했습니다.
귀국의 대신을 만나 의논하고 조약을 맺으려 하는데,
응하지 않는다면 곧바로 서울로 올라갈 것이오.
대체 조약이라는게 무엇이오?
두 나라가 국제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규범에 따라 체결하는 약정입니다.
이미 수백 년 동안 무역을 해왔는데
이제 와서 조약이라는 것을 맺을 필요가 있소?
무역을 하는 나라는 조약을 맺어야 하는데
그것이 국제적 관행이오.
국제적 관행 ???
1875년 2월 10일,
강화도 조약(조일수호조규) 체결을 위해 마주앉은
조선 대표 신헌과 일본 대표 구로다 사이에 처음으로
오간 이 대화는 이 조약의 성격을 단적으로 말해줍니다.
여기 초안을 잡은 13개 조약을 상세히 열람하고
임금에게 아뢰어 주시기 바랍니다.
만일 화목하던 관계가 나빠지면
우리 군사들이 상륙하는 염려가 있을 것입니다.
양국 대표가 협의하여 조약 내용을 결정하기보다
일본의 일방적인 요구를 조선이 받아들이느냐
마느냐의 모양새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의 본의는 수호조약 체결이 아니라,
전면전을 벌이려는 것이라는 의혹에 차 있던
조선은 처음부터 소극적으로 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틀 동안의 회담 이후 다소 조정된 조약안이
15일에 조선 조정에 회부되었고 조정은 숙의 끝에
이를 수용하기로 결정하니
이것이 바로 조일수호조약(강화도조약)입니다.
조선 정부는 종전의 부산 외에 항구를
개항하여 일본국인들이 오가며 통상하게 한다.
일본국 항해자들이 수시로
조선국 해안을 측량할 수 있도록 한다.
일본인이 조선의 지정한 항구에서 범죄를 저질렀을 때
만일 조선과 관계되면 일본에 돌려보내어
수사, 판결을 하게 한다.
고종은 그리 우매한 군주는 아니었으나 당시 상황에서
조약의 의미와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하기란 무리였습니다. 조정 신하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번 사태를 큰 위기로만 여겼는데
다행히 잘 넘기고 국가의 위신도 지켰다며 조약 수립을 기꺼워했고 신헌 등은 큰 포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조약은 엄연히 국권침탈행위였고,
이를 계기로 조선은 도마 위의 생선 신세가 되고맙니다.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하고,
준비해야 할 것을 준비하지 못한 대가는
참으로 고통스럽고도 슬픈 일 이었습니다..
내일 또 이어서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