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울과 다윗 Ⅳ (삼상 20:1-42)
영적적용 : 성경론
요약
성경은 거울과 같아서 가까이 할 때 성도를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어 놓고 만
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성경의 위대성을 인식하고, 성경을 잘 알아야 하며, 성
령의 도우심을 받아 자세한 연구가 필요하고, 말씀을 깨닫는 대로 지식에 그치
는 유혹을 버리고, 성경이 말씀하는 바를 따라서 힘써 훈련하되, 성경이 본바탕
을 들추면 진실로 회개하고, 어린이와 같은 순순한 말씀으로 순종하고, 성경 속
에서 예수를 만날 때 천국의 삶이 열리는 월삭의 축복이 함께 한다.
설명
본문은 다윗이 요나단을 통하여 사울의 의중을 파악하여 멀리 피신길에 오르
는 내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은혜받는 삶의 비밀을 교훈합니다.
1. 말씀 앞에서는 아무 것도 숨길 수 없다.
2절 중 "내 부친이 대소사를 내게 알게 아니하고는 행함이 없나니"
1) 대소사 - 구원과 삶의 전반적인 내용이다.
2) 요나단에게 숨기지 않음 - 성경 계시의 충족성과 투시성을 보여준다.
2. 성경을 잘 알아야 한다.
3절 "내가 네게 은혜 받은 줄을 네 부친이 밝히 알고 스스로 이르기를"
☞ 성경은 비밀이지만 택한 자에게는 개봉되고 계시된 말씀이다.
3. 성경을 깨달으려면 성경을 자세히 보아야 한다.
5-6절 "‥ 네 부친이 만일 나를 자세히 묻거든 그 때에 너는 말하기를"
☞ 비밀의 말씀인 성경을 자세히 보아야 한다.
4. 성경 앞에서 절대로 복종해야 한다.
17절 "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하므로 그로 다시 맹세케 하였으니"
☞ 성경은 피로 세운 언약의 말씀이므로 지켜야 한다.
5. 해석은 원저자의 도우심을 받아야 한다.
19절 "숨었던 곳에 이르러 에셀 바위 곁에 있으라"
☞ 에셀바위는 '도움'이란 뜻으로 해석에는 성령의 조명이 필요하다.
6. 성경을 통하여 죄악을 깨닫고 회개해야 한다.
34절 "다윗을 위하여 슬퍼함이었더라"
☞ 사울의 본심이 드러났듯 성경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통회해야 한다.
7. 하나님 말씀에 따라 행해야 한다.
38절 "요나단이 아이 뒤에서 또 외치되 지체 말고 빨리 달음질하라"
☞ 쏜 화살을 따라 소년이 움직이듯 말씀을 따라 어린이처럼 순종해야 한다.
8. 말씀 속에서 예수 만나 영원히 모셔야 한다.
42절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 이처럼 성경 속에서 예수 만나 경배하고 사랑하고 영원히 모셔야 한다.
강해
오늘은 사울과 다윗 네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육신관리법에 대하여 말
씀을 드렸습니다. 육신관리는 말씀과 지혜와 기도로 하라고 했습니다. 그럴 때에
육신은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시험거리가 되지 않고 하나님을 잘 섬기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이 요나단을 통하여 사울의 의중을 파악하여 멀리 피신길에 오
르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영에 속한
사람이 되는 길과 신령한 하늘의 문이 열리는 원리를 보여 줍니다.
그런데 오늘 해석은 영적비유 해석법인데 비유에서도 특별히 문맥의 흐름을 잡
아서 해석하는 그런 특수한 해석이 되겠습니다. 참고적으로 비유란 어떤 사물만이
사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거대한 역사의 흐름이 비유가 될 수 있고, 성경의 어떤
사건이 비유가 될 수 있고, 심지어는 성경의 문맥의 흐름도 비유가 될 수도 있습
니다. 이 비유의 오묘성을 발견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우리가 영에 속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많이 듣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과
연 어떻게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을 분별할 수 있는가? 그래서 어떻게 하면 하늘
의 신령한 문이 열려지는가? 그 답을 말씀드리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답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우리를 온
전케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아무 것도 숨길 수 없습니다.
2절 중반절에 "내 부친이 대소사를 내게 알게 아니하고는 행함이 없나니 내 부
친이 어찌하여 이 일은 내게 숨기리요 그렇지 아니하니라" 했습니다.
이 말씀은 부친이 요나단에게 모든 것을 알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문자
대로라면 요나단은 부친과 관련하여 모든 것을 다 안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여
기서 보여주는 원리가 바로 성경의 투시성입니다. 투시성이란 거울과 같이 명료하
게 우리의 숨겨진 모습을 보여준다는 뜻입니다. 이런 말씀들을 경험해야 우리가
변화를 추구하게 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
라"(히4:12-13) 했고 주의 동생 야고보도 하나님의 말씀을 거울이라고(약1:13-14)
했습니다. 이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고쳐나갈 때 우리는 영에 속한 사
람이 됩니다.
2. 우리들도 성경을 잘 알아야 합니다.
3절에 "다윗이 또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네게 은혜 받은 줄을 네 부친이 밝히
알고 스스로 이르기를 요나단이 슬퍼할까 두려운즉 그로 이를 알게 하지 아니하
리라 함이니라" 했습니다.
앞 번에는 요나단이 아버지를 다 안다고 했지만, 이번에는 다윗의 응수인데 즉
꼭 그렇지만은 않고 도리어 사울이 요나단의 비밀을 다 알고 있을 것이라는 것입
니다. 사실 요나단이 다윗을 보호하고 있는 것은 분명 둘만의 비밀이었습니다. 알
면 사울이 가만 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이미 짐작으로 요나
단이 다윗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으며 어떤 언약을 맺였으며 어떻게 하고 있는지
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예수님과 우리와의 언약의 비밀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울이 그
비밀을 알았듯이 우리도 성경이 아무리 하나님의 비밀의 말씀일지라도 알아야 합
니다. 마13:10 이하를 보면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하셨습니다. 성경에 비유의 진수가 있음
을 알아야 비로소 접근하게 되어집니다. 성경이 모두 비유로 된 것은 물론 아닙니
다. 그러나 비유를 모르면 큰 손해를 봅니다. 앞으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이
런 관점에서 성경해석학을 써서 성경 기자들의 관점이 무엇이었는지 밝히고자 합
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성경의 비밀을 알 권리를 주셨다
는 점입니다. 성경을 알 때 비로소 영에 속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3. 성경을 깨달으려면 성경을 자세히 보아야 합니다.
5-6절에 "다윗이 요나단에게 이르되 내일은 월삭인즉 내가 마땅히 왕을 모시고
앉아 식사를 하여야 할 것이나 나를 보내어 제 삼일 저녁까지 들에 숨게 하고 네
부친이 만일 나를 자세히 묻거든 그 때에 너는 말하기를 다윗이 자기 성 베들레
헴으로 급히 가기를 내게 허하라 간청하였사오니 이는 온 가족을 위하여 거기서
매년제를 드릴 때가 됨이니이다 하라" 했습니다.
당시 월삭은 달이 시작하는 날이므로 이틀 동안 하나님께 제사하며 가족끼리 모
여서 잔치를 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에는 종교적으로 만이 아니라 가족적으로
도 좋은 풍습이 있었습니다. 우리들도 월급타는 그 주에 하루 밤이라도 부모님을
찾아 가족들이 함께 하나님께 예배하고 모여 먹으며 즐겼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윗도 사울의 사위이므로 그 자리에 나타나지 않으면 물을 것이라는 것
입니다. 그런데 묻되 자세히 물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월삭을 이유로 해서
사울이 다윗을 죽이고자 작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동사는 자세히 묻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성경을 자세히 보아
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말씀을 나에게 적용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울
이 다윗을 죽이려고 했듯 그 말씀으로 죽일 것은 죽이고 살릴 것은 살려야 합니
다. 그래서 성경은 통독도 필요하고 정독도 필요합니다. 그것은 히1:1에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셨다고 하셨고, 사34:16에서는 "너
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 본문 연구가 잘 이루어
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먼저는 다윗이 은신처에서 사흘을 숨
었듯 자기 인간의 견해는 온전히 숨겨져야 하고, 또 한 가지는 다윗이 베들레헴으
로 갔다고 말하라 했듯이 베들레헴은 떡집으로 예수 혹은 성경을 가리듯 성경 속
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보되 내 선지식으로 보지 말고,
우리가 좋아하거나 필요한 것만 뽑아서 봐서는 안되고, 가장 염려스러운 것은 지
식 늘리기 위해서 성경을 보는 것입니다. 훈련이란 같은 내용을 반복적으로 적용
시키는 것이 훈련이기 때문에 지식을 탐하는 사람에게는 신앙훈련이 되지 않습니
다. 성경이란 아무리 해부해 봐도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즉 예수가 구주이시고 또
예수와 함께 죄에 대하여는 죽고 하나님과 의에 대해서 사는 것이 곧 성경입니다.
그래서 8절 말씀대로 죄악이 있으면 네가 나를 죽이라고 했듯 말씀을 나에게 적
용시켜야 합니다.
4. 성경 앞에서 절대로 복종해야 합니다.
10절에 "다윗이 요나단에게 이르되 네 부친이 혹 엄하게 네게 대답하면 누가 그
것을 내게 고하겠느냐" 또 17절에 "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하므로 그로 다시 맹세케
하였으니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 같이 그를 사랑함이었더라" 했습니다.
이 말씀은 사울이 다윗이 도망가지 않도록 비밀로 하라고 엄명한다 할지라도 요
나단은 생명을 걸고 다윗에게 가르쳐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럴테니 네가 왕이 된
후에 나와 내 자손들을 잊지 말아 달라는 것입니다. 당시에 왕조가 바뀌면 전의
왕족들은 모두 몰사를 시켰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구테타의 불씨가 되기 때문입
니다. 그렇지만 그렇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둘이 맹세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요나단의 믿음과 겸손을 봅니다. 요나단은 왕이 될 자였으나 하나
님께서 다윗에게 함께 하신 것을 보고는 그 뜻에 절대 복종했습니다.
이와 같이 아무리 육신의 반발이 크더라도 우리의 의지는 주의 말씀을 절대로
따라야 합니다. 여기 서로 맹약한 것처럼 절대 순종해야 합니다. 성경이 무엇입니
까?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의 피로서 우리를 사랑하사 구원하신다고 맹세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너를 생명 걸고 사랑한다. 그러니까 너도 나를 기억하라' 이것
이 바로 다윗과 요나단의 맹세요 주님과 우리와의 약속이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보았으면 생명 걸고 지키자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으로 믿어지지 않는
말씀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기고 믿어야 합니다. 믿어지는 것만이 믿
음의 은사인줄 알지만 안 믿어져도 믿는 것이 바로 믿음의 은사입니다. 또 지키면
손해 같은 말씀도 있을 것입니다. 손해가 있어도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결국은
손해가 아닙니다.
5. 성경의 원저자이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18-23절 내용입니다. 19-20절에 "너는 사흘을 있다가 빨리 내려가서 그 일이 있
던 날에 숨었던 곳에 이르러 에셀 바위 곁에 있으라 내가 과녁을 쏘려 함 같이
살 셋을 그 곁에 쏘고" 그랬습니다.
이 말씀은 요나단이 사울의 동정을 살펴 그 의중을 몰래 다윗에게 전할 방법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사흘 있어야 할 이유는 그 때야 비로소 사울의 심정을 알기
때문입니다. 첫 날은 부정하여 참여 하지 못한 줄로 알겠지만 부정은 하루에 끝나
므로 다음 날에는 무슨 이유로 나오지 않았는지 캐 물을 것이고 그 날 사울의 반
응을 알아서 그 다음 날 알려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은둔처가 에셀바위입니다. 에셀이란 도움이란 뜻입니다. 즉 성경을
깨닫는데 도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성경을 깨닫도록 도와줍니까? 성령이십
니다. 벧후1:19-21에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
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했습니다. 여기 사사로이 풀지 말라란 바로 다윗
이 자기를 감추라는 은둔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에셀바위에서 사흘을 숨고
그는 약속에 의하여 요나단이 쏘는 화살의 메시지를 받게 됩니다. 이처럼 성경을
깨닫기 위하여는 나의 사사로운 생각을 다윗이 사흘을 숨듯 온전히 십자가의 죽
음에 넘기고 겸손한 심정으로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여기서 화살은 생
각 혹은 말씀을 상징합니다. 그럴 때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실 것입니다. 만약 성
령의 도우심이 없다면 성경도 해석되지 않을 뿐아니라 해석된 설교를 들어도 깨
달아지지 않게 됩니다.
6. 성경을 통하여 자신의 죄악을 깨닫고 회개해야 합니다.
24-34의 내용입니다. 33-34절에 "사울이 요나단에게 단창을 던져 치려 한지라 요
나단이 그 부친이 다윗을 죽이기로 결심한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식사 자리에서
떠나고 달의 제 이일에는 먹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 부친이 다윗을 욕되게 하였
으므로 다윗을 위하여 슬퍼함이었더라" 했습니다.
이 본문은 다윗의 불참을 묻는 사울에게 요나단이 다윗이 가르쳐 준대로 대답한
결과 사울의 본심이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그러자 요나단은 분노하고 금식하며 슬
퍼하며 사울을 떠났습니다. 여기서 보여주는 것은 자신의 본바탕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자신의 문제점을 깨달았으면 진심으로 회개하라는 것입니
다. 또 요나단이 자기 아버지에 대하여 세상에 이럴 수가 있는가 본노한 것처럼
죄에 대한 분노를 느끼라는 것입니다. 또 요나단이 금식하며 슬퍼함 같이 우리도
죄악을 애통하며 슬퍼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 요나단이 사울을 떠난 것처럼 죄에
서 강하게 떠나야 합니다.
그래서 약2:21 이하에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누구든지 도를 행하지 아
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 보
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했습니다.
그런데 요나단이 슬퍼한 이 날이 언제인지 알아야 합니다. 월삭입니다. 월삭은
매월 첫날로서 새 삶이 시작되는 천국의 예표입니다. 이 날 가족이 모여서 공동
식사를 하듯 저 천국에서 온 구원의 가족들이 모여서 하나님 앞에서 잔치할 것입
니다. 이처럼 성경을 사모하며 요나단처럼 슬퍼하며 회개하는 자에게는 최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주의 말씀처럼 놀라운 영의 세계가 열리게 될 것입니다.
7. 하나님 말씀에 따라 행해야 합니다.
35-40절의 내용입니다. 38절에 "요나단이 아이 뒤에서 또 외치되 지체 말고 빨리
달음질하라 하매 요나단의 아이가 살을 주워 가지고 주인에게로 돌아왔으나" 했
습니다.
본문은 요나단이 아버지가 다윗을 죽이려는 의중을 파악하고 다윗에게 그 사실
을 전달하려고 활쏘기 연습을 가장한 내용입니다. 이미 두 사람은 화살을 아이의
뒤에 쏘느냐 앞에 쏘느냐에 따라 다윗이 안심하든지 아니면 도망칠 것이 약속되
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나단은 위급한 상황이기 때문에 화살을 세 번 아이의
앞에 쏘아 앞으로 달려가서 주워오라고 외칩니다. 이 소리를 다윗이 숨어서 다 듣
습니다. 그러니까 여기 화살은 보통 화살이 아니고 죽느냐 사느냐 생명과 같은 화
살 즉 굉장한 메시지가 담긴 화살입니다. 그러니까 이 화살은 하나님 말씀의 상징
입니다.
또 그것을 주워 오기 위해서 달려가는 아이는 그 말씀대로 살라는 귀한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뒤에 있으면 뒤로 돌이켜야 하고 앞에 있으면 앞으로 달려가야 합
니다. 이처럼 잘못 갔구나 돌아오라 하면 예 실수했군요 하고 속히 돌아와야 하고
네 앞에 있다하면 목표를 향해 매진하라 한줄 알고 달려가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
아이와 같이 하라는 대로 순종하는 순수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요나단이 아
이를 다루는 모습을 보세요. 아주 강직합니다. 그것은 혹시 다윗이 아이에게 발견
될까봐 다른 곳에 헛 눈 팔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듯이 우리도 하나님 말씀 외
에 다른 곳에 헛 눈을 팔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성경을 깨닫게 되면 이제는 우리에게 귀한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
다. 그것은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고 나아가 인격적으로 분
리되는 성결이 이루어지기 시작함입니다. 성경은 밝은 빛이기 때문에 성경을 깨닫
게 되면 어둠의 육적인 것들이 떠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즉 불신앙을 버리고 하
나님께 돌아오고 나를 낮추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며 세상죄를 멀리하고 신령한
거룩을 추구하게 되며 염려하고 근심하던 것들을 이제는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맡
기며 내 뜻을 고집하던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물으며 남으로 알던 사람들을
나의 지체로 받아들이고 육신의 일만 열심하던 것에서 이제는 영의 풍성을 위해
서 노력하게 됩니다. 이렇게 계속하여 변화될 때 점점 영에 속한 사람으로 변화되
어 갑니다.
마지막. 말씀 속에서 예수를 만나 마음에 영원히 모셔야 합니다.
41-42절입니다. "아이가 가매 다윗이 곧 바위 남편에서 일어나서 땅에 엎드려 세
번 절한 후에 피차 입맞추고 같이 울되 다윗이 더욱 심하더니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
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하였
느니라 다윗은 일어나 떠나고 요나단은 성으로 들어오니라"
아이를 보내고 두 사람은 비밀리에 만나 입을 맞추고 울었습니다. 깊은 사랑과
우정을 나누던 친구가 비극적인 현실 앞에서 기약 없이 헤어져야 하며, 그 중 한
친구는 목숨 보존을 위해 정처 없이 방랑해야 하고, 이유 없이 반역자로 몰려 도
피의 길을 떠난다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에 둘은 설움이 복받쳐 울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우리에게 성경 속에서 예수를 만나 다윗이 세 번 절했듯 주님을
경배해야 하며, 또 입을 맞추었듯 주님을 사랑해야 하고, 그리고 서로 맹세하여
여호와께서 영원히 계시기를 축원했듯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영원히 떠나지 않
아야 하는 것입니다. 요나단과 다윗이 비밀히 만났다는 것은 성경 속에 감추어 계
신 예수님을 반드시 만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요일 2:24에 "너희는 처음
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
희가 아들의 안과 아버지의 안에 거하리라" 고 말씀했습니다.
<결론>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말씀 속에 하나님 나라가 있고 예수님이 계십니
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사모하십시다. 그래서 거기서 예수님을 만
나고 그 말씀대로 적용시켜 온전히 변화받고 새로워집시다. 그래서 월삭의 하나님
의 나라가 여러분께 활짝 열리는 귀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