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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연수의 수필세계
- 치열한 삶의 현장에 대한 인문학적 조명 -
권대근
문학평론가,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I. 로그인
수필의 윤기는 문학언어를 사용해서 화려하게 윤색을 하는 것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수필은 일상을 보다 윤기 있는 터치를 통해 그 빛깔과 체취를 더함으로써 새로운 감동을 발아시키는 작업이다. 그것은 얼마나 진솔하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느냐 하는 점과 인생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따뜻한 눈을 갖느냐는 기준에 의해 평가된다. 하연수에 있어서 수필을 쓰는 일은 진정한 자기를 만나기 위한 모색의 일환이다. 한국에서라면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들을 낯선 땅에서 많이 경험하게 되었고,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그는 왜 고향 땅을 떠나 이역만리 외진 외국 땅에서 살아야 하는지 묻곤 하며 살아왔다. 그는 인도네시아에 사는 동안 영원히 기억될 무엇인가를 위해 열정을 바쳐왔던 것이다. 그는 외국에 처음 온 부산신발인들을 자기 이상으로 사랑한다. 하연수가 문학에 심취하는 것은 어쩌면 이런 인연들을 지키고 배려하기 위한 방안일지도 모른다.
문학은 언어를 통해 구축된 삶의 실상이다. 그 안에 살아 움직이고 있는, 강한 의식의 주체들이 있는 힘을 다해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꾸려 나가고 있다. 인간은 무엇인가에 자신을 몰입시켜 그 안에서 보람과 행복을 찾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하연수도 마찬가지다. 인도네시아에 살면서 겪는 경험들을 처음 온 사람들을 위해 틈나는 대로 정리를 했고, 그런 글들을 다듬어 등단을 하고, 지금껏 써놓은 글들을 본격수필화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왔다. 몰입해서 하는 일이란 가치 있는 것이다. 시인 보들레르는 인간은 어느 하나에 미쳐야 한다고 했다. 그의 수필 안에는 압축된 삶의 진한 영혼이 서려 있다. 그 영혼을 만나기 위해 하연수는 본격수필의 매력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작가는 본격수필을 통해 자신만의 문학론을 갖고, 그 순수와 향기를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짧은 기간 속에서도 본격수필을 완성해 내었다.
타국에서의 삶은 누구에게나 벅차고 힘든 것일 수밖에 없다. 누구나 혼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시인은 외로우니까 사람이라고 했다. 혼자라는 사실을 애써 부정하기 위해 인연이라는 끈을 통해 남과 나를 하나로 묶더라도, 열정이 없으면 그것은 애착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은 누구나 무엇에 의지해 자기를 지탱해 나갈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제나 자신의 가슴을 안온하게 감싸줄 수 있는 따뜻한 둥지를 찾아 끝없는 방황을 계속한다. 그 둥지의 실체는 사람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존재일 수도 있다. 무엇인가에 열렬히 집착하거나 몰입하는 것은 둥지를 마련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하연수에게 그 대상은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소박하게 경험을 꼼꼼하게 기록하는 것이고, 유심히 관찰하는 일이다. 작가가 작품집을 ‘수필집’이라 하지 않고 ‘에세이집’이라고 고집하는 것은 그러한 글의 지성성과 본격성을 염두에 둔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인생의 깊이를 가진 사람들이 반성적 성찰을 통해 위기의 삶을 창조적으로 전환해야겠다고 피력하는 것이라든지 또는 튼튼한 삶을 더 튼튼히 다지겠다고 노력하는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인간화의 길이라 할 수 있겠다. 하연수가 수필가로 등단하고 처음으로 내어놓는 ‘본격수필집’은 아마도 ‘이것이 수필이다’라는 걸 말해줄 것 같다. 그는 본격수필에 대한 나름의 문학관을 가지고 있어서 더욱 의미 있다고 하겠다. 제재를 통해 주제를 내면화하고, 문장을 형상화로 풀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일반 수필에서는 문학성을 찾기가 어렵다. 그러나 하연수의 수필은 형상적 체험을 통해 문학성을 담보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여타 수필의 부정적인 인식을 잘 극복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제 삶의 바다에 낚시 바늘 같은 물음표를 던지는 하연수의 수필세계를 분석적으로 조명해 보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II. 왜 하연수 수필인가
하연수 수필의 특징에 대한 이해 없이 하연수 수필을 논한다는 것은 사업가가 시장조사 등등의 사전 지식 없이 사업에 착수하려는 것과도 같다고 하겠다. 지금까지 발간된 다른 수필집과는 달리 하연수 수필집은 여러 가지 특성을 지닌다. 무엇보다도 하연수 수필은 삶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안식을 줄 수 있는 문학이라는 측면에서 치유성을 갖고 있다고 하겠다. 한마디로 하연수 수필은 인간치료제다. 감동을 생명으로 삼고 있는 하연수 수필은 작가의 인품과 융화되어 문학성을 가지면서 한 편의 시보다 한 권의 소설보다 더 진한 감동을 독자에게 안겨준다. 이것은 하연수 수필만이 갖는 매력이다. 하연수 수필은 경험하지 않고서 체하는 ‘체함’의 문학이 아니라 가치 있는 경험만 골라 문학화한 ‘형상적 체험’의 문학이다. 하연수 수필은 허구 세계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진실의 세계를 다룬다는 측면에서 어느 수필보다 감동의 전달력이 강하다는 데 이견을 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인간이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 답은 생각할 수 있다는 사유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생각할 수 있다는 이 자연스러운 지각, 과학적이고 실용적이면서 미각적 감각에서 오는 진선미 이런 것들로 인간이 살아 있다는 존재를 인정받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안다. 생명은 원색의 덩어리다. 반짝반짝 광채가 나고 살아 움직이는 색깔을 지니고 있다. 눈동자는 검고 푸른 빛나는 색깔을 지니고 있으며 머리카락 또한 흑색이나 황금색의 싱싱하고 윤기 흐르는 생명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 생명이 식어가고 있을 때 그 광채를, 그 색채를 점점 잃어간다. 나무를 불태우면 회색빛으로 남듯이 하연수 수필은 이러한 인간의 식어 가는 생명을, 잃어가는 정신을 보충하여 주는 끝없는 인생의 이정표라 하겠다. 그는 한마디로 수필을 ‘새로운 의미찾기’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생활인의 단순한 인식을 넘어서서 수필 소재에 담긴 또는 묻힌 가치를 유의미하게 다듬어가는 작가정신이야 말로 하연수 수필의 멋이라 하겠다.
인간이 살아가는 가운데는 헝클어진 많은 사상들이 널려 있다. 그 가운데 인간은 희비가 엇갈리며 고뇌하고 번민하면서 우리 조상이 살아간 그 길을 살아간다. 경우에 따라 이 말을 듣고 저 말을 들으면서 어느 쪽의 말이 옳은지 자기 충돌을 빚으면서 수많은 날들을 고뇌의 사슬에 매일 때도 있다. 하연수 수필은 이러한 인생의 진로를 빠져나가도록 퇴로를 열어 주는 문학이다. 물론 다른 수필가의 글이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현대 문명이 가져온 사상의 혼란과 상상력의 약탈로 수필의 독자를 빼앗겼다면 하연수 수필은 본격수필로서 독자를 빼앗아 오고 있다. 그의 수필은 깊이가 있으면서도 난해하지 않다. 그것은 이치를 이야기하며 사리의 핵심을 찌르는 빈틈없는 글이기 때문이다. 생활 속의 이야기지만 이것이 한 편의 감동적인 수필로 승화할 수 있는 것은 하연수 작가의 삶과 예술에 대한 사랑과 치열한 탐구정신, 예리한 관찰력과 해박한 지식이 낳은 결과라 하겠다.
오늘날 사람들은 기계처럼 움직인다. 어제가 오늘이 아니며 오늘이 내일이 아니다. 시간마다 변하고 날마다 달라진다. 그 속에 살아가자니 인간도 기계화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스펙’, ‘취업시장’ 등의 어휘에서 인간의 기계 종속성이 잘 드러난다. 수필가는 그 속에서 변하지 않는 선량한 시민으로 남는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지루한 시간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추억하게 된다. 때문에 오늘과 내일의 시공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새롭게 창조된 세계를 만나는 것에는 언제나 설렘이 따른다. 하연수 수필의 감동이 주는 파장은 오래토록 영향으로 남게 된다. 그래서 독자들은 이 시대의 애절하면서도 간절한 인간 희구의 노래를 듣길 원한다. 이러한 욕구에 화답할 수 있는 문학이 바로 하연수 수필이라는 것이다. 하연수 수필은 우회와 왕복의 난해성보다는 솔직함과 유창함을 귀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현대인의 메마른 지성에 더욱 높은 차원의 정서를 부여해야 하는 시대적 요청의 문학이 바로 하연수 수필이다. 그러므로 하연수 수필은 미적 차원이 높은 문학적 예술로 더욱 승화될 것이다. 하연수 수필은 독자에게 생활에 대한 지배력, 통찰력, 생활의 가능성에 대한 식별별을 증진시킨다고 하겠다.
III. 삶의 흔적과 달려온 역사
그는 경북 경주 출신으로 경주고를 거쳐 영남대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문학신문사 우수잡지로 선정된 계간 「에세이문예」수필로 등단하여 문단에 나왔다. 2019년 등단기념으로 첫수필집 「그 벽에서 멈추다」를 기획하여 2020년 에세이집을 발간한 것이다. 하연수는 인도네시아로 간 후부터 꾸준히 인도네시아 생활과 보로부두르 문화에 대한 특별한 단상들을 정리하면서 수필가의 꿈을 키웠다. 지금은 한국문인협회 인도네시아지부 감사를 맡고 있다. 기업가로서의 인품과 탁월한 글솜씨는 2019년에 그에게 에세이문예신인상을 안겨 주었다. 그의 첫번째 에세이집은 40여 편의 본격수필로 구성되어 있으며, 편편마다 기업가로서의 경영에 대한 지혜와 인도네시아 문화유적에 대한 탁월한 안목과 식견, 그리고 삶의 풍요로운 의식이 담긴 주옥같은 작품이 실려 있다. 그에게 있어서 수필쓰기는 진실을 규명하고 참다운 가치를 발견하기 위한 투쟁이다. 그의 글은 삶에 대해 진정한 가치와 진리의 세계를 바라보며 깨달음의 느낌표를 찾아온 사람만이 지니는 향기를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먼저 내리고 싶다.
영남대 영어영문과를 졸업한 수필가 하연수는 고향 경주를 떠나 인도네시아에 살면서 누구보다도 고향을 그리워하며 수필가로서 또 가정적인 가장으로서 삶에 만족하며 산다. 인도네시아에서 본격적으로 수필을 쓰면서도 늘 지난 날을 반성적으로 성찰하며, 인도네시아로 오는 후발 주자를 위해 뭔가를 남겨두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었다. 수필다운 수필쓰기가 어렵다고 창작을 게을리 하지 않고, 본격수필론에 심취하여, 단번에 에세이집을 내어놓는 저력을 발휘하였다. 작품집을 탈고하고 나서는 후배들에게 이국 생활의 경험을 전하고, 독자들에게도 재미와 공감을 주는 글이었으면 하는 소망을 살며시 내려놓는 참 어른이다. 산업화의 물결로 인간이 기계화되고 인구급증에 따라 기존의 가치관도 많이 변모되었다. 한마디로 위대한 돌벽 앞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옷깃을 여미는 작가가 그리운 시대다. 하연수는 인간적인 포용력을 가지고, 의젓하게, 베풀면서 살아가고 있기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신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VI. 하연수의 수필세계
1. 보로부두르와의 만남과 구도여행
수필은 출발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수필의 품격이 달라진다. 하연수 수필의 가장 큰 물결은 보로부두르 문화유적에 대한 집요한 탐사기행에서 뜨겁게 요동친다. 이 수필집의 압권은 ‘보이지 않는다의 눈’으로 보로부두르의 불가사의를 파헤치는 열정을 보여주는 데 있다. 수필은 주제적 양식의 글이다. 참신한 인식과 정연한 논리가 만남으로써 독자를 지성과 관조의 세계에 머무르게 하여 감동으로 이끌 수 있는 법이다. 실상을 어떤 것과 비교하지 않고 그대로 널어놓으면 독자에게 실상의 맛을 미학적으로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연상과 상상으로 미의식에 접근하려는 독자의 영역을 침범하게 된다. 독자의 상상력과 연상력을 자극시키는 것은 비유와 대조기법이다. 비유와 대조는 인식의 어머니로서, 다양하고 광범위한 활동의 자유와 변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독자로 하여금 내용을 미적으로 음미하게 할 뿐만 아니라 공감에 박차를 가하게 해서 추상적 개념일 수밖에 없는 주제의식을 이미지화 하는 데 기여한다. 주제의식을 나타내는 데 관련된 재료를 선택해서 독자들로 하여금 주제를 미루어 헤아리게 하는 대표적인 작품이 <머리삐산 화산석>이다.
화산 신도로산에서 프로고강을 타고 보로부두르로 내려온 화산석들이 젊은 강남 신사풍이라면, 머라삐산에서 빠베란강을 타고 내려온 화산석은 투박한 강원도 명주, 학산 시골 농부풍이다. 머라삐의 투박해도 속이 부드러운 돌이 8,9세기 중부 자와 짠디 석탑 예술의 꽃이 되어 천수백 년 동안 숨을 쉬고 있다. 지금도 이곳에 와서 돌의 숨소리를 듣고 돌 향기에 취할 수 있게 해준 고대 자와 조각가들의 뛰어난 머라삐산 위대한 돌 앞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옷깃을 여민다.
- <머라삐산 화산석> 중에서 -
위 인용 글은 신들의 경지에 근접하는 보로부두르라는 위대한 걸작을 보고 느낀 그대로의 이야기가 수필가의 미학적 렌즈를 통하여 투시되고 각색되어 문학적으로 변용된 작품이다. 하나는 신사풍이고, 다른 하나는 농부풍이라는 대조의 기법으로 사상을 형상화한 까닭으로 이 수필은 일상의 단순한 기록이 아닌 문학으로의 승화가 가능한 것이다. 하연수의 에세이집 첫 작품 <그 벽에 멈추다> 역시 보로부두르에 대한 답사기다. 보로부두르 석탑 앞에 설 수밖에 없는 그는 이 돌벽 앞에 서면 넘치는 에너지로 충전될 정도다. 천수백 년 전 위대한 예술가들과 공감을 이루면서 가슴이 벅차오르고 갑자기 눈물을 쏟고 마는 그의 인도네시아 문화유적 사랑은 탐험가 수준을 넘어설 정도다. 위대한 걸작품에 대한 감동을 ‘이곳에 와서 돌의 숨소리를 듣고 돌 향기에 취할 수 있게’ 되었다고 표현하는 등 그의 문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원조선녀 마리아>라는 세 번째 수필은, 천재 조각가와 원조 선녀 마노하라 공주에 관한 묘사가 구체적이고 생생하다. <깔라의 두상>에서 보여주는 그의 철학적 해석과 인생에 대한 깊은 사유와 내공은 오랫동안 도를 닦은 선사의 입에서 나오는 신비한 화두를 연상케 한다.
보로부두르 동남방 언덕길을 올라가면 나는 언제나 떨리는 마음으로 마운드에 오르는 인생초보 투수가 된다. 동서남북, 중앙 상하 등 각 층 회랑의 많은 홈플레이트에는 각 방향을 대표하는 포수 부처들이 자리잡고 앉아서 각기 다른 수신호 무드라를 보내주고 있다. 삼대팀의 장단점을 뀨ㅔ뚫어보고 수비수들의 위치 선정을 해주고 투수를 잘 리드하는 포수들 중에서도 북쪽을 대표하는 어머니 포수 아모가파사를 가장 먼저 찾는다. 이 어머니 포수는 두려운 마음으로 마운드로 올라오는 초보 투수인 나에게 언제나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하게 공을 던지라고 주문을 한다.
- <어머니 포수> 중에서 -
인도네시아 보물 중의 보물인 보로부두르 유적의 신비성을 야구경기에 비유해서 인생의 지혜를 얻어내고 있는 이 수필은 문학적 성취가 매우 빛나는 작품이다. ‘오늘도 나는 보로부두르 어머니 포수 아모가파사의 두려워하지 말라는 시무외인 아브하야 무드라 수신호를 믿고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공을 던지는 멋진 투수가 되는 꿈을 꾼다.’고 하는 마무리 의미화는 그가 얼마나 본격수필시학에 바탕하여 수필을 문학적으로 풀어내는가를 적확하게 보여준다고 하겠다. ‘야구나 인생살이나 예측할 수 없고 두렵기도 한 찰나생멸 쪽으로 가면, 비밀 수신호 선정인을 보내는 아미타바 어머니 포수가 있다.’라는 문장은 보로부두르 사원 부처들에 대한 형상화와 의미화로써 본격수필의 쾌미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이 수필은 그의 문학적 기량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의 작품이 비유를 통해 주제를 정서화한 데 성공한 것은 꾸준히 관찰, 고찰, 통찰, 성찰로 이어나간 상상과 연상의 결과라 하겠다. 이런 상관적 사고는 무수한 체험들과 상상력이 가장 큰 힘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부분이다. 고대 중부 자와 천재 조각가들이 역순으로 장치해 놓은 보로부두르 돌벽의 비밀 문고리를 찾아 열고 문틈으로 보이는 장엄한 화엄의 꽃길을 볼 수 있기를 소원하는 <비밀의 문고리> 역시 ‘결론에 너무 집착하면 결론의 원인, 고정 분석이 없는 결과만 있는 직관에 빠지게 된다.’는 깨달음을 적재로 형상화한 작품이어서 이 수필 또한 문학적 성취가 빛난다하겠다.
문학은 어느 의미에서 사회 현실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인간 행위의 기록이다. <돌에 꽃을 피웠던 사람들>, <깔라의 두상>, <원조선녀 마노하라>, <그 벽에 멈추다> 등의 작품 안에는 어떠한 형태로든 보로부두르 연구를 통해 삶을 보다 견고히 구축해 나가려는 저자의 의지와 그 실천자의 모습이 드러나 있다. 남의 눈을 의식해서 할 말을 다 하지 못하는 것은 일종의 열등감이다. 문학은 단순한 자기애의 표현 수단이 아니다. 수필이 갖추어야 할 요건 중의 하나가 인식이다. 인식은 작가의 사회적 의식이요, 문학적인 힘이다. 여기서 말하는 힘은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문학 속에 내재하는 강력한 에너지다. 보로부두르 돌벽 조각의 근원적인 가치와 본질을 규명하려는 자세에 깃들어 있는 설득적 지성이 바로 하연수 문학의 매력이자 근간이라 하겠다. <소멸될 수 없는 별>은 우리가 놓칠 수 있는 사랑방정식의 어두운 측면과 사랑의 본질을 명쾌한 인식을 통해 잘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피카탄 왕자의 야망 성취도구로 이용당하고, 그 가치가 떨어질 때 버려졌던 프라모다와르다니 공주의 이야기는 고구려 왕자의 낭랑국 공격에 이용당하고 죽음을 당했던 낙랑공주 이야기의 쌍둥이처럼 대비되어 떠오른다.’는 대목은 그의 수필가적 능력을 잘 보여준다. 그는 주제의식의 구체화와 의미화를 위해 각국의 다양한 실화와 역사, 신화를 동원하고 있다. 공주의 실패한 정략결혼 이야기를 통해, ‘사랑은 유지 보수 그리고 보관법에 따라 그 유효기간이 길어지기도 한다.‘는 진실한 사랑의 중요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주제화를 위한 문학적 장치가 다 들어가 있다. 어찌 멋진 구도여행이 안겨다 준 선물이 아니겠는가.
2. 신발산업의 그늘에 숨겨진 사연들
하연수 수필은 어떤 측면에서 강물처럼 흘러가고 있는 역사의 한 부분에 대한 진솔한 기록이라 하겠다. 이러한 이유와 당위성 때문에 작가는 작가로서의 의식이 분명하다. 그의 수필은 시대의식과 역사의식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지나치게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데만 급급한 문학은 일시적 카타르시스의 도구와 수단은 될지언정 그 이상의 가치는 지닐 수 없다. 우리는 이제까지 문학을 자기 감정의 분출 수단이나 그를 위한 도구처럼 인식해왔다. 그러나 하연수는 보다 견고한 가치를 지닌 문학을 위해서 사회적 소명을 다하려 한다. 리얼리즘 문학으로서 수필의 의식은 개인의식의 형이상학적 지향보다는 사회의식의 형이상학적 전환을 필요로 한다. 수필은 단순한 삶의 기록이 아니라 보다 근원적인 의미에서 인간의 진실을 발견하기 위한 수단이고, 노력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하연수 수필의 또 다른 큰 줄기는 부산신발산업의 흥망과 인도네시아 이전사를 관통하고 있다. 문학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다. 신발산업의 시작과 끝은 숨겨져 있었던 이야기들로 인해 긴장과 감동을 동시에 준다. 그 과정의 환희와 아픔이 여러 작품에 잘 드러나 있다. ‘새들의 귀향’이란 작품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땅 인도네시아 진출 정착 교두보 역할을 했던 선발대 동료들이’ 귀국 비행기에 오르는 모습을 적절한 비유를 써서 절묘하게 풀어내었다.
옛 동료 중 한 사람이 삼십여 년 간 인도네시아 삶을 접고 귀국길에 올랐다. 이제 남아있는 옛 동료들의 수는 손꼽아 볼 수 있을 정도로 줄어들었다. 이렇게 같이 왔던 누군가 하나씩 떠날 때마다 나의 귀향시간도 점점 나를 압박해 온다. 새들이 해질녘 강가 둥지를 찾아가듯이 사람들은 익숙한 것으로 돌아가려는 본능이 있는 듯싶다. 그 습성은 남의 나라에 첫발을 딛는 순간부터 생겨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처음 접하는 낯선 장소, 음식 그리고 관습 등에 무의식적으로 저항하는가 보다.내가 처음 자카르타 핫타공항에 도착했던 그날 세관심사대에서 김치와 젓갈 등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발버둥하던 한국남자 생각이 난다. 그 남자는 공장 동료들이 김치, 젓갈 없으면 밥을 먹지 못한다고 울상이었다. 그렇다. 사람들은 자기가 살던 곳, 익숙해져 있던 음식, 습관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모양이다. 그래서 남의 나라 땅에 와서 살면서도 일이나 임무를 다하면 고향 당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을 버리지 않고 있는 모양이다.
- <새들의 귀향> 중에서 -
그는 한국의 신발산업이 무너지던 격동의 시절에 인도네시아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부산 신발 해외진출 선발대원들 중 한 사람으로 인도네시아로 왔다. 이 작품 안에는 말이 안 통하는 세관원들에게 한국 토종 음식을 안 뺏기려고 몸부림치는 동료들의 사투가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이런 측면에서 현실을 떠난 문학은 존재할 수 없다. 타국생활의 난관을 그린 작품들의 특성이나 성격을 보면, 하나 같이 ‘해외 용병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회한의 무게를 다루고 있거나, 개인적 특징들이 도전적, 진취적인 결단 속에서 갈등과 방황을 겪으며 긍정적으로 변모해 가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즉 이야기 속 인물의 심리적, 정신적 변화를 통해서 타국인 인도네시아에서 붉은 야생마로 변화된 인간상을 조망하는 것이다. 우리 신발산업이 인도네시아에서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이들 젊은 산업전사들의 흔들림을 삶의 질적 변화와 관련지어 파악해 봄으로써 현실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모색한 것은 바람직한 작가의 자세라 하겠다. 해외 한국문학의 가치 또한 이런 데서 찾을 수 있으리라 본다.
비록 2차전 초기인 해외이전 과정에서 부실한 대응으로 신발 종주국 깃발까지 빼앗겼지만 대량생산용 인하우스시스템의 원조이자 신발생산 종주국이었던 부산신발은 지금도 개발, 생산, 품질관리 등 모든 면에서 경쟁국보다 뛰어난 장점을 갖고 있다. 신발생산 종주국 깃발은 대만이 품고 잇기에는 너무 무겁고 힘에 겨운 깃발일 것이다. 부산신발이 잠시 잃어버렸지만 지금 이 붉은 악마, 아니 붉은 야생마 옷을 입고 있는 이 청년들이 힘을 길러 권토중래로 달려오고 있다. 이 붉은 야생마들이 신발생산 종주국 깃발을 되찾아오는 모습을 보고 난 후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 <붉은 야생마의 꿈> 중에서 -
신발산업의 종주국 깃발을 찾아오겠다는 한국 신발인의 욕망에 기댄 탈영토성을 적나라하게 엿볼 수 있었던 것은 이 에세이집이 보여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고장난 세상의 단면들이 하나같이 그 배경을 이루고 있어서 재미를 안겨준다. 그는 이 수필에서 부산신발의 대명사였던 K상사의 공중분해가 부산신발산업의 붕괴를 알려주는 서막인 줄 몰랐다고 고백하고 있다. 탈출구가 없어 무너져가는 신발산업의 현장을 지켜보았던 저자는 어떻게든 신발산업의 종주국 깃발을 대만에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를 ‘야생마의 꿈’으로 잘 형상화해내고 있다. 인간의 심리세계로 그 시선이 전환된 본격수필의 빛깔과 무늬도 확인할 수 있어서 다행스러웠다. 하연수의 <붉은 야생마의 꿈>은 산소마스크를 끼고 시한부의 삶을 살다 부도를 맞고 쓰러져 악덕기업주 명찰을 달고 경제사범으로 잡혀가는 신발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를 지켜보며 받은 충격을 안고 살아가면서 완전한 독립과 정착을 이루어가는 전개가 너무 진지해서 긴장감을 준다. 자존심 덩어리로 살면서 겪는 화자의 심리적인 갈등이 꿈과 현실을 오가며 치밀하게 묘사되어 꿈을 쫒는 야생마 청년들의 삶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작가의 시선이 현대인의 내면풍경을 지향하며 다양한 변주로 나타나고 있는 점 역시 높게 평가된다.
<자존심 덩어리>와 <안쫄 바다에 뜨는 추석달>은 부산신발 산업의 영광을 인도네시아에서 이어가고자 했던 한국 신발인들의 애환이 담겨 있어 심금을 울려준다. 신발회사 부사장을 하면서 받았던 월급의 30%도 안 되는 페이를 받고 후배 회사의 고문으로 있다가 한국인들이 명절이면 자주 찾는 자카르타 도시 북쪽 바다 휴양지 안쫄바다에 몸을 던진 한 신발인의 안타까운 죽음이 가슴을 쓰리게 한다. 아들과 마지막 여행을 하고 최후를 맞은 신발인의 추락을 사건화해서 보여주는 <자존심 덩어리>는 세상일, 세상인심의 냉정함을 잘 보여주었다. 인간의 잠재의식 속에 있는 욕망의 그림자가 어떻게 자존심 덩어리로 변해가는가 하는 세상사의 야멸찬 진실을 가슴 아프게 전개시키고 있다. 화려했던 시절의 감추어진 인간의 욕망이 세상의 인심에 닿지 못해 비극적 결말로 끝나는 과정을 무리없이 서술하여 공감과 함께 연민을 자아내게 한 것은 감동을 목적으로 하는 문학의 이상을 잘 실현했다고 볼 수 있다. 개인의 존재가 무시된 현실의 리얼리티를 통해 높이 올라갔던 사람이 어떻게 내려와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는 이 수필은 진정한 자신의 위상을 갖고 싶은 사람이 자기혁명으로 자존심을 치환시켜내지 못하면 결국 잘못된 길을 걷게 된다는 걸 말해준다. 그가 그려낸 한 신발인의 비극적 최후가 인도네시아 정착이 얼마나 힘들었는가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문학은 한 시대의 구성원이 지닌 고유한 정신이며 체온이고, 도도한 흐름이어야 한다. 문학은 그 시대와 역사를 담당하고 있는 구성원이 무엇을 갈망하고, 무엇을 위해 자기의 희생을 소진하며, 그들에게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수단이나 도구의 하나이기에, 문인은 자기 모습을 견고하게 유지해야 한다. 하연수의 <연어의 꿈> <예방 불주사>, <비 그리고 커피>, <한일전 응원단장>, <마법의 원탁>, <도마뱀 꼬리 자르기>, <내 마음 속의 담석>, <그곳이 천국이라니>, <남십자성>, <허물을 벗는 그림> 등의 작품은 한국적 한의 정서와 한국인의 혼과 얼을 인도네시아 현실 적응기를 문학화하고 있어서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부산신발인의 좌절과 홀로서기가 한국인의 상승의식과 어떻게 연결되며, 억눌린 타국의 삶 속에서 자존심에 대한 근원을 캐고자 한다. 하연수의 글을 읽으면서 절실히 느끼는 것은, 인간은 누구나 혼자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저마다 인연에 안겨 그 품을 떠나지 못하지만, 자기에게 주어진 길을 따라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하연수의 이런 인도네시아 경험담이 진솔함과 버물어진 이야기라서 소설화하면 더 흥미 있는 글이 되었을 것이다.
3. 날선 인식에 담긴 세태풍자와 저항
수필은 사람들의 눈이 미처 이르지 못하거나 별스럽게 보이지 않아 스쳐 지난 것을 찾아내어 그것이 갖고 있는 소중한 가치와 진실한 의미를 세상에 전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배재된 수필은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다. 수필은 인간학으로 인간을 향한 순수한 애정의 편린이기 때문이다. 바라보는 이와 대상 사이에 애정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대상은 온기와 냉기를 품는다. 사건과의 대면은 그것에 의미를 주는 인식을 중개로 해서 이루어진다. 부당하고 모순된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자신이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닫혀진 현실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타인에 대한 가학적 행위가 엄청난 사회적 재앙을 몰고 올 수 있다. 이 같은 현실을 외면할 수 없는 것이 하연수 수필가의 사명이다. 하연수는 ‘보이지 않는다’의 눈으로 어떠한 형태로든 이 같은 현실을 말해야 하고, 이에 대한 각성과 반성을 촉구하고자 한다. 하연수는 이런 현실을 '침묵하지 않는다'의 입으로 말하고자 하는 작가다. 그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비판과 올바르지 못한 일에 대한 고발에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
고통을 견디지 못했던 세 명의 조선 소녀들은 죽거나, 죽음의 길을 택했다고 한다. 남은 열 명 중 세 명은 패전이 가까워 올 무렵 일본ㄱ구 자신들이 저지런 소선 소녀 할머니들에게 행한 범죄사실을 은폐하려고 세 명씩 구덩이에 몰아넣고 던진 수류탄에 죽었고, 순설르 기다리던 일곱 명의 조선 할머니들은 현지인 도움으로 탈출해서 산 속으로 숨었다했다. 식민지 땅 조선 소녀들의 가슴에 박힌 다섯 개의 못은 누가 빼줄 수 있을까? 이런 쓰레기들의 욕정풀이 위안부로 끌고 온 일본이라는 나라가 조선 소녀들의 가슴에 첫 번째 못을 박았고, 자기 배만 잘 채울 줄 알았지 이렇게 끌려가는 자기 백성을 보호해 주지 못했던 조선이라는 나라 지도자들이 소녀들 가슴에 두 번째 못을 박았다. 세 번째 못은 범죄사실을 숨기려고 조선 소녀 할머니들을 구덩이에 몰아넣고 수류탄을 던진 일본군들이 박았다.
- <다섯 개의 못> 중에서 -
위의 수필에서 볼 수 있듯이 하연수의 시선은 예리하면서도 그 문제점이나 원인 등에 대해서는 매우 논리적으로 접근한다. 그러면서 닫혀진 현실 속에서 억압받는 사람들로 하여금 막힌 출구를 뚫고 나갈 수 있도록 이끄는 역할을 한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비극적 최후를 맞는 조선 소녀들의 수난사를 추적하면서도 이러한 과정에서 대응하는 자신의 해박하고 날선 인식의 일면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하연수는 이것을 사명감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녀들의 고통을 잘 보이겠끔 ‘못’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첫 번째 못은 일본이라는 나라가, 두 번째 못은 조선의 지도자들이, 세 번째 못은 일본군들이, 네 번째 못은 일본이 한 번 더 박았고, 다섯 번째 못은 동족인 한국 사람들이 박았다는 것이다. 남의 나라로 끌려갔다 돌아온 같은 동포 여인들의 아픔을 철저하게 외면하는 우리 민족의 이기적 풍습을 정조준하는 하연수의 칼끝은 예리해서 시퍼렇게 보일 정도다. 그의 날선 인식이 그간의 잘못된 것에 대한 통렬한 반성을 촉구한다.
이 작품은 삶의 질서는 의식이 없는 행위, 또는 개인의 무절제한 욕망을 통해 속절없이 무너지게 된다는 바를 주제로 다루고 있다. 너와 나를 떠나 인간의 분별없이 행하는 악습을 통해 상처받고 있는 조선 여인들의 입장 변호를 통해서 하연수는 사물과 사건에 대한 자신의 견해와 느낌, 그에 대한 역사적인 맥락과 사실 관계를 고려하여 객관적으로 피력하고, 판단케 한다. 우리 민족이 저질렀던 과오를 가열차게 반성하고 비판하며 그 가해자들을 단두대 위에 세우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작가가 피해자 여성을 인식함에 있어 각별한 배려와 함께 신중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하는 것은 그것이 사람의 가치를 결정해 주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에게 있어 수필 쓰기는 진실을 구명하고 참다운 가치를 발견하기 위한 투쟁이다. 작가는 이러한 것을 구현하기 위해 조선 소녀들이 끌려와 일본군들의 성노예로 끌려갔던 길의 답사를 감행했던 것이다. 마치 그 현장을 보고 있는 듯 실감있는 묘사로 독자들에게 서늘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아픔을 주는 행위와 상처로 인한 고통을 ‘못’이라는 제재로 멋지게 형상화한 것이다.
얼마 전 머리 희끗희끗한 동포 노인 네 명이 한국돈 백 원도 안 되는 카드놀이를 하다 현지 경찰에 잡혀 가서 삼년형을 받고 자카르타 서부 반튼 T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아무리 이 나라 법규정이 도박을 금지한다고 해도 이 정도는 훈방으로 끝내도 될 일인데 이렇게 최고형을 받게 하니 정말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가만히 보면 카드놀이 때문에 당했다기보다는 현지 경찰 가족의 자존심과 감정을 상하게 한 것에 대한 감정적 복수였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남의 땅에 와서 살면서 현지인들을 무시하고 감정을 상하게 하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말고 살아야 안전하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 주는 사건이었다.
- <먹잇감이 되다> 중에서 -
나라간 문화의 차이로 인한 소통의 부재가 낳은 비극의 원인을 추적하는 저자는 단순한 이야기꾼이 아니다. 자신만의 독특하고도 개성적인 수필을 빚어내어 감동을 주고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사건에 대한 예리한 관찰과 깊은 사고, 그리고 적절한 표현 기교가 뒤따라야 한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누구나 흔히 볼 수 있고 누구나 흔히 생각할 있을 정도의 평범하고도 비개성적인 수필에 지나지 않게 된다. 하연수는 단순히 사건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수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사건의 이면을 파고들어가서 인과 내지는 상관 관계를 들추어낸다. 그 치열함이 작가의 미적 상상력과 조우해서 좋은 수필이 되는 것이다. 작가는 현지 경찰의 엉터리 수사와 감정적 기소를 보면서 고정화된 사고를 털고 은폐되어 있던 인간의 본질 내지는 인생의 본질을 살펴보자고 한다. 사건이 중심이 된 삶의 실체를 구명하기 위한 하연수의 노력은 언제나 비판적 성찰에서부터 비롯된다. 정기적인 소양교육의 제도화가 급선무라는 인식에 고개를 끄떡이게 된다. 비판이 내부로 향한다는 말이다.
이로써 우리는 사건의 진상을 통해 하연수의 우리 국민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큰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는 교양인의 일부로 자신을 인식함으로써 세상과 만나고 세상과의 화해를 도모하고자 하는 작가다. 지상에 존재하는 사건과 사물은 누군가에 의해 존재적 의미를 부여받느냐 안 받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 하연수는 ‘이해가 되지 않는 풍습과 법이라 해도 철저히 지키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주지시킴으로써 본래 그가 의도했던 수필집의 목적인 외국살이의 길라잡이로서 기능과 역할에 최선을 다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의 수필세계는 나라사랑의 마음이 날선 인식의 기반 위에서 꽃으로 피어났다고 하겠다. 진정한 삶의 가치는 물질을 통해 획득하고 정신에 의해서 결실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삶의 진면목은 반성과 성찰에 그 근간을 두며, 이를 바탕으로 하여 잎을 피우고 꽃을 만들어내어야 한다. 하연수의 수필은 이런 정신으로부터 출발하고 있기에 감동이 세포를 타고 흘러넘치는 것이다.
인생에 있어 자신과 희망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무서운 것은 없다. 인생을 부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고 자신을 잃어버린다면 삶에 대한 의욕을 잃어버리고 앞으로 전진할 기력마저 빠지고 만다. 이것은 바로 자아를 버리는 일이고 인생 전체를 포기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하연수 수필가는 일상적 삶을 영위하면서도 또 하나의 세계를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평범한 사람은 자아의 일상적 삶만을 영위하지만 하연수 수필가는 자기의 쓸쓸한 마음을 나뭇잎에서 발견했을 때, 그것을 그냥 스쳐지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새로운 삶을 찾아 존재하고자 한다. 즉 수필적 자아의 삶을 꿈꾸고자 한다. 참된 사랑을 맛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참된 문학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가 어렵다고 영국의 시인 "키츠"가 말했듯이 수필도 그러한 생활의 자세가 요구된다. 영혼을 갈고 닦아 더욱 빛내고자 하는 과정이 없으면 수필은 쓰여질 수가 없으며, 자아와의 피나는 싸움이 없었으면 <하얀 포말>, <빙점의 마지막 장>, <마귀도 악몽에 질린다>, <누렁이의 눈 속>, <불도저 소리>, <바다 사이 두 절벽> 등 이런 명작을 쓰는 수필작가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4. 토포필리아에 묻어나는 토속적 서정
하연수 수필의 네 번째 그림자 형상은 눈물보다 끈적한 고향과 혈연에 대한 그리움의 미학이다. 고향을 떠나와 자수성가한 작가의 삶에 비추어 수필에서 고향과 인연에 대한 그리움은 필연적으로 자주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타국 생활의 정신적 긴장이나 공동체 의식의 상실이나 비인간화는 도시적 병리 현상으로 인하여 파생될 수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움은 언어적 소중함을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일종의 아름다운 의식의 성찬이다. 그것은 새로운 자기 탐색을 위해서도 보람 있는 일이지만 아름다운 삶의 영토 확장에도 바람직한 일이다. 또한 그것은 얽매인 일상의 생활에서 새로운 창조의 기쁨을 누리는 희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여기에는 필시 토포필리아 원리가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 자식 사랑은 인간적인 향기를 구성하는 요체다. 무조건적이고 희생적인 아버지로서의 헌신적인 삶이 항상 눈물나게 아픈 기억으로 다가온다. 가정은 남성들에게 눈물이며, 영원한 안식처다. 전통적으로 가장의 위치는 바깥이며 가장의 임무는 가족 구성원을 돌보고 그들에게 풍요로움과 정서적 안정을 제공하는 것이 사회적 통념이다.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것은 하연수는 자기 가정뿐만 아니라 다문화가정에도 크나큰 관심을 갖는다는 점이다. 하연수는 한 가정의 리더로서, 자녀들을 민주적으로 양육한다. 매년 오월 첫 주 어린이날 전후하여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서부 공단 지역인 땅그랑 찌트라 따만라야 마을에서 열리는 다문화가정의 잔치를 화소로 쓴 <오월의 꽃>에는 그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려는 인도주의적 지성이 뜨겁게 솟구치고 있다.
비록 적지 않은 한국인 아버지들이 현지 가정을 남겨놓고 떠나버린 일은 도적적으로 용서할 수 없지만, 그들도 먼 이국 땅에 와서 공장을 짓고 설비 가져와서 설치하고 많은 현지인들을 모집해서 복잡한 ㄱ술을 가르치고 생산 수출을 지도 관리했던 이들의 그 헌신적인 노력은 분명 있었다. 훗날 한국신발 봉제산업이 인도네시아 땅에서 다시 꽃필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들 중 일부가 어렵고 외로운 이국 생활에서 나날이 얼굴을 맞대고 지내던 인도네시아 여공들의 모습에서 큰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다 정이 들어 가정을 이루었다. 지금까지 그 가정을 지켜가는 책임감있는 한국인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자신이 만들어놓은 가정과 가족을 남겨두고 떠나버린 한국인 아버지들은 분명 원망과 지탄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 용서받지 못할, 무책임한 아버지들이 다하지 못한 아버지의 책임 중 조금이라도 대신해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모여 지금 이 아이들을 후원해 주고 있다.
- <오월의 꽃> 중에서 -
한국인 아버지가 버리고 간 아이들에게 오월의 꽃 잔치를 열어 아버지의 나라 사람들과 함께하며 그들이 버림받은 꽃이 아님을 알려주는 일에 동참하는 하연수는 ‘세상에 이유 없는 존재가 어디 있으랴. 모두 타고난 능력과 외모는 다르지만 자립심이라는 정신적 자세와 그 값어치는 같다.’라고 이 수필에서 적고 있다. 아버지가 없는 다문화 아이들을 향한 애정이 어떠한가를 알 수 있는 수필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먹고 자란다. 그들이 자립심을 가지고 독립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부모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사랑이다. 물질이 전부일 수 없다. 하연수는 이런 진리를 이 작품을 통해 잘 보여준다. 이 수필의 문학성은 결말 단락에서 여지없이 발휘된다. ‘고고한 사월은 더 이상 오월에는 꽃이 없다고 단언하지만 오월의 하얀 꽃들이 꽃이 아니라면 벌들은 왜 오월의 꽃을 찾아 천리 먼 길을 찾아오는지.’라는 대목에서 문학적 성취는 절정을 이룬다. 자식의 앞길을 위해 치성을 드리는 어머니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이는 건 진정성의 힘이다. 성공한 지식인으로서 사회적 책임과 도리를 다 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만끽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서 어려운 이웃에 대한 후원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고자 한다. 구세군의 종소리가 공허해져가는 요즘이라 이런 글이 더욱 가슴에 와닿는다.
<내 마음 속의 담석>은 한 인간의 삶에 있어 부모의 역할과 헌신이 얼마나 큰가를 확인할 수 있게 하는 글이기도 하다. 아들을 인도네시아로 보내는 노모의 모성을 아프게 보여준다. 자식의 앞날만 걱정할 줄밖에 모르는 한국의 전통적 여인의 헌신이 자신을 채찍질하며, 우리들에게 부모의 자리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교통사고로 다쳐 휠체어를 타고 귀국길에 오르는 한 신발인의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면서, K의 운명에서 ‘운’자가 다시 움직여주면 내 마음 속에 남아 있게 될 회한의 담석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 질 수도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며, 깊은 상념에 잠기는 하연수는 훌륭한 인격을 갖춘 분이기에 명멸하는 공항의 불빛 아래에서 듣는 작별가에 회한이 절절히 베어 있다. 신발업계의 전설로 불리는 K에 대한 하연수의 연민과 회한은 그가 완전한 인격체임을 의미한다. 그것은 자기 삶에 대한 진지한 조명이며, 인간에 대한 애착으로써 자신의 건강한 미래를 향한 의무인 것이다. 결말을 반성적인 성찰로 마무리해서 독자를 공감의 장으로 이끈 점도 좋았다. 다시 사모곡으로 이어지는 그의 수필을 한 편만 더 살펴보자.
이 추운 날, 편하고 모셔야 할 분을 집 밖에서 떨며 입관을 기다리게 만드는 객사 판정의 기준은 무엇이며, 돌아가신 분도 살아있는 사람들도 모두 힘들게 만드는 수백 년 전 곰팡이 낀 관습을 고집하는 문중은 어느 시대 가문이냐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렇게 옳고 그름을 다지던 집안 어른들도 이 때만은 슬픔이 복받친 내 행동을 못 본 척하며 격한 감정이 가라 앉을 때까지 기다려주었습니다. 아머님 당신께서 즐겨 다니셨던 큰 들 건너 문중 산 양지바른 곳에 자리를 만들어 모셨습니다. 당신의 혼이 머무르시든 아니든 그곳 지신과 나무신들에게 소주를 뿌려주며 어머니가 외롭지 않게 좋은 친구가 되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내 굼 하나 이루어 보겠다는 욕심에 영문도 모르는 가족들의 생활무대를 이역만리 낯선 땅으로 송두리째 옮겨놓고, 그렇게 해서 성공했다 한들 어머니 당신과 약속 하나 지키지 못한 사람이 세속적 성공을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환송 나온 가족들 사이에 어느 할머니가 눈에 띄기라도 하면 내 기억 속 어머니 당신께서 나타나십니다.
- <부도난 어음> 중에서 -
어머니를 고향에 두고 멀리 인도네시아로 와서 산 까닭으로 임종을 지키지 못한 불효의 마음을 ‘부도난 어음’으로 의미화하여 문학적으로 풀어낸 수작이다. 이 작품은 그가 살았던 시간들 중에서도 가장 짙은 외로움을 동반한 작품이다. 사모의 향기가 서려 있던 시간들에 그의 효심이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부도난 어음’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수필은 자기 자신에 대한 적극적인 반성적 성찰의 표명이어야 한다. 그러할 때 좋은 수필을 낳을 수 있다. 이 수필은 잊을 수 없는 인물을 소재로 취택해 정서와 그를 통해 획득되는 깨달음을 유감없이 기술한 글이다. 자신의 생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통해 튼튼한 삶을 가꾸어나가려는 자세에 주제의식을 담아 잘 형상화했다. 진솔한 고백으로 자신의 삶을 반성적 성찰대 위에 놓을 수 있는 겸양과 예지를 지닌 작가이기에 그에게 거는 기대 또한 크지 않을 수 없다. 지키지 못한 약속을 ‘부도난 어음’으로 치환하여 지배적 이미지로 부각시킨 전략으로 볼 때, 하연수의 문학적 재능은 기성작가를 능가한다고 하겠다. ‘다시 어머님 당신의 아들로 태어나면 약속을 지키는 좋은 아들이 되겠다.’고 하면서, 그는 살아생전에 어머니가 하시던, ‘사람이 살면 천 년을 살더냐? 어디에 살든 가족과 모여 행복하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 아니냐?’라는 말씀을 되내이는 것으로 볼 때, 앞으로 큰 작가로 성장할 것 같다.
V. 로그아웃
에이브럼즈는 문학의 기능을 거울과 등불 두 가지로 나누고 있다. 작가는 캄캄한 밤에 등불을 들고 어둠 속을 헤매는 영혼들의 갈 길을 일깨워주는 선지자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작가는 그 시대를 물끄러미 비쳐주는 거울이어야 하는가. 문제는 거울이 중요하다 등불이 중요하다가 아니라 문학이 지녀야 할 기본적인 미덕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는 이런 논쟁 자체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수필은 문학이 되어야 한다. 거울이니 등불이니 순수니 참여니 하는 변별은 그 다음의 문제다. 동시에 그것은 세계관의 문제이기 때문에 좋고 싫음의 판단이 있을 뿐 우열의 기준이 될 수가 없다. 수필이 상상력이나 예리한 관조, 지적 통찰의 체로 걸러지지 않은 채 쓰여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수필은 단순한 체험의 나열이어서도 안 되고, 결코 관념의 퇴적장이어어도 안 된다. 화려한 수식어의 나열이나 이미지의 배합에 몰두해서도 안 된다. 수필은 삶과 세계에 대한 고도의 세련된 지적 통찰이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 있어서 하연수의 다루지 못한 수필, <물숨과 공기숨>, <바다 사이의 두 절벽>, <불도저 소리>, <하얀 포말> 그리고 아들 이야기인 <산타의 선물>, <누렁이의 눈 속> 등은 제목만 봐도 본격수필임을 짐작할 수 있는 수작들이다.
하연수는 글감을 생활 주변의 세태와 그를 둘러싼 사건 속에서 찾아내는 작가다. 처음에 소개된 <그 벽에 멈추다>에서부터 마지막의 <해당화 열매>까지 어느 작품 하나 가볍거나 문학성이 떨어지는 것이 없다. ‘글은 곧 그 사람이다’는 버폰의 표현에 정확히 맞는 언행 일치의 삶을 사는 작가인 것 같다. 선비 집안에서 자라나, 평생을 신발업계에 투신해서 헌신한 사람으로서 그의 글은 잔잔한 교훈을 주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해박한 지식을 가진 신인작가로서 그의 글에는 부조리에 대한 따끔한 질책이 담겨 있는가 하면, 한 가정을 편안하게 리드해가는 가장으로서 일상 속에서 느끼는 편편들에 대한 다소곳한 정감도 있다. 차분함과 여유에서 나오는 그의 글에는 오늘을 사는 출향인의 가슴 저린 애환이 있고, 고모님의 사연이 담긴 <해당화 열매>는 진한 감동을 준다. 법적 의무와 도덕적 의무를 다룬 <하얀 포말>에는 가치가 충돌하는 삶의 현장에서 시시각각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해야 하는 생의 딜레마가 녹아 있다. 친구 누나의 기구한 인생행로를 그린 <빙점의 마지막 장>이란 수필도 매번 선택의 순간을 맞는 실존적 인간의 모습을 잘 그려내었다.
수필 <빙점의 마지막 장>에서 그는 ‘어둠과 밝음이 공존하는 생의 공간, 사람은 각자의 기준으로 사람을 보게 마련이 아닌가. 누가 누구를 탓하랴.’라고 말한다. 초극할 수 있는, 아름답고 신선한 ‘다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 세계를 통해 삶의 기쁨을 만끽하고, 처절한 절망의 늪에서 헤어나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 그러나 현실이라는 벽으로 해서 어쩔 수 없이 각박한 삶을 자처해 그 길로 들어서기도 도망치기도 한다. 보다 중요한 것은 주체자의 마음가짐이다. 물질만이 기쁨과 행복을 주는 것은 아니다. 나를 있게 한 과거의 끈으로 튼튼한 미래를 열려는 창조적이며 포용적 마인드가 중요하다. 친구간의 우정이 그려진 <누렁이 눈 속>에서 그는 겸손하게 ‘생을 달관하고 삶의 고뇌까지도 관조할 줄 아는 지혜는 언제쯤 내 가슴으로 들어오려나.’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그 벽에서 멈추다>의 발단부, ‘보로부두르 벽 앞에 선다. 단호한 벽이 여기저기서 숨길 조이면, 나는 그저 신음소리로 무너진다. 내 안의 반란이 인다. 그 앞에 서면 전율과도 같은 쾌감이 세포신경을 자극한다.’라는 문장을 다시 읽으며, 열정이 뿜어내는 거친 호흡과 시선을 끌어들이는 흡인력을 그에게서 느낀다. 다른 한편으로는 필마의 기운이 실핏줄을 타고 온몸 구석구석까지 파고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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