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은 일년 중 가장 짧은 달이지요
그러면서도 2월에는 설날과 대보름이라는
큰 연중행사를 품고 있는 큰 달입니다..
계절과 계절의 다리를 잇는 오작교의 달
봄의 전령사인 달..
신학기를 맞이하는 달
그래서 어쩌면
2월은 조금은 더 이런 저런 상념이 많아지는 달인지도
모릅니다..
2월에 나누고 싶은 이야기
‘죽지사(竹枝詞)’ 中에서..
집은 강릉땅 돌쌓인 강가에 있어
문앞을 흐르는 물에 비단옷 빠네
아침이면 한가로이 노 매어 두고
짝 지어 나는 원앙새 넋을 잃고 바라보네
나에게 누가
제일 좋아하는 여인 문인을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한 여인을 꼽을 것이다..
나에게 누가 또
제일 매력있는 여류문인을 묻는다면 나는 또 서슴없이
그 여인을 꼽을 것이다..
그녀는 우리에게는 허난설헌으로 알려진
'허초희' 바로 그녀이다
허난설헌은 1563년 양천 허씨를 달고
강릉땅에서 태어난다..
강릉은 묘하게 문인들이 많이 나며 특히 여류중에는
'신사임당'의 생가터 이기도 한 곳이다..
위로는 오라버니 봉과 아래로는 남동생 하나가 있는데
모두 대단한 문장가로 이름을 날렸던 터이며
특히 아래 남동생인 '균'은
'홍길동전'으로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바로 그
허균이다.
특히 동생 허균은
손위 누이를 끔찍하게 좋아하고 따랐으며 형제사이가
참으로좋아 사실 그녀의 글이 알려진 것도 모두
이 허균의 덕이니허균이 아니었더라면
그녀에 대한 것은 묻혀졌을 것이다..
사실 당시는 여자에게는 한학이 공적으로
허용되지 않던 시절이었으나
그녀는 스스로 오빠와 동생의 공부하는 틈바구니에서
어깨넘어 공부를 하여
8세 때 이미〈광한전백옥루상량문〉을 지어서
신동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중국의 선비는 저 글을 읽으면 마치 자신이 백옥루의
신선이 된 느낌이라고
감탄하였으려니 그녀의 재주를 알법 하다..
또한 용모와 천품이 뛰어났다고 전해 진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의 총명이 뛰어남을 보고
딸의 재지를 귀히여겨 함께 공부를 시켰으니
오라버니 봉의 친구인 '이달'에게서 공부하였다고
전해지긴하는데 확실치 않다.
허나 당시는 조혼제도가 만연한 터이라 그녀는
15세의 나이에 '김성립'
이라는 사람과 혼인하게 된다..
허나 그녀의 남편은 그리 멋진 사람은 되지 못했다..
아니 초희를 담기엔 턱없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그는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나 그리 큰 벼슬로
승진은 하지 못하고
기방 출입을 즐기며 살았다..
그리하여 '허난설헌'은 독수공방을 하며 살았는데...
규원(안방마님의 원망)
비단띠 비단치마 눈물 흔적 쌓였음은
임 그린 1년 방초의 원한의 자국
거문고 옆에 끼고 강남곡 뜯어내어
배꽃은 비에 지고 낮에 문은 닫혔구나
달뜬 뜨락 가을은 깊고 옥병풍 허전한데
서리 핀 갈밭 저녁에 기러기 앉네
거문고 마무리 해도 임은 안오고
연꽃만 들 못 위에 맥없이 지고 있네
'규원'이란 '새하곡'이나
한시의 테마를 나타내는 제목으로 규방 여인의
한을 읊을 때 짓는 제목이다...
전처 소생의 큰오빠와 더불어 허봉과 허균 모두
허씨 삼형제는문장으로도 알려지고 벼슬에도
오르는등 문장가 집안의 딸인데다가
어릴적부터 소문난 문재인 '허초희'
헌데 별 볼일 없는 문사인 김성립 ,
이들 관계가 원만하긴 애초에 어려웠다.
아니 성립은 애초 그녀의 남편 재목이 못되었던 것이다..
소위 처가와 아내에 대한 열등감 그것으로 인해
김성립은 밖으로 떠돌고 집안일에만 매달리지 않고
안방에 들어앉아 시를 짓곤 하는 그녀의 모습은
남편에게도 시댁에서도 고깝게
여기게 되었던 것이다..
시대를 잘못 태어나 날지 못하는 제비 ...
그녀가 바로 '허초희' 난설헌이었다.
남편의 외도와 시집살이 허나
그것이 그녀의 불행의 전부가 아니었다..
그녀의 처가인 허씨 집안에 불행이 닥친 것이다..
당쟁이 심하던 시절 오빠가 정적에게 당해 삭탈관직 귀향을 가게 되고
집안이 몰락하기에 이른다..
더우기 그녀는 자신의 아들 과 딸을 일년 사이로 차례로 잃는다.
또한 태중의 아이도 잃었으니 그녀의 아픔은 어떠했을까?
그녀는 그 모든 것을 詩로써 풀어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글들은 하나 같이 주옥같은지라
후세의 학자들은
'우리나라의 여류문인 가운데 가장 탁월한 이는
'허난설헌'이라고 말한다..
...................... ※ .....................
(난설헌의 작약도)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
푸른 난새는 채색 난새에 기대었구나.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가
붉게 떨어지니
달빛 서리위에 차갑기만 하여라.
친정은 멸문지화를 당하고 자식마저 연이어 잃어 버리고 그녀는
세상과 단절하여 시만 지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갑자기 몸을 씻고 옷을 갈아 입은 후에
"금년이 바로 3*9의 수(27)에 해당하니
오늘 연꽃이 이 서리를 맞아 붉게 되었다"고 하고는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그랬다.
꽃같이 붉은 겨우 27의 나이였다..
결국 그녀의 죽기 직전에 쓴 저 시는 바로 '임종게'(고승등이
자신의 죽음전에 남기는 마지막 글)였던 것이다..
...... ※ ........
그녀는 자신의 삶 모두를 시로 남겼으니 그녀의 시는 장롱에
가득 찼었다고 전해진다 허나 그녀는 임종 전 자신의 시를
불살라 없애달라고 했다 한다..
결국 그녀의 시들은 불에 타 사라지고 만다..
그것을 불사른 것은 시댁의 일이었을 것이나 어쩌면 그녀는
남편이 그녀의 글을 알아 줄 사람도 아니었고 자식도 없는 터에
결국 자신의 시를 세상에 남길 이유가 없었을 터
그냥 한서린 육신에 담고 깨끗이 세상과 작별하려 했던 것이다..
허나 세상 일은 모를것이 그녀가 친정에 남겼던 시고가 그녀의
동생인 허균에 의해서 소중하게 보관되고 있었다.
천부적 재능을 살리지 못하고 27세의 나이로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그녀였지만, 그녀가 세상을 뜨고
열 일곱 해가 지난 1606년,
때마침 그해 조선에 온 명나라 사신 주지번과, 부사 양유년이
허균과 친교를 맺고 있었다.
어느 날 두 사람은 허균이 보여준 죽은 그녀의 유고를 보고
그 훌륭한 시에 감탄하여 주지번은 허균에게 부탁하여 허균이 준
허난설헌의 시고를 명나라에 가져가
조선의 여류 시인 「허난설헌집」을 발간하였다.
그 시집은 명나라 도처에서 크게 환영받아 각지에서
시집의 주문이 쇄도하였다 전해진다..
명나라에서 그녀의 시집이 대단한 평판을 받자
곧 조선에 역수입되었지만,
허균이 1618년 반역죄로 처형되는 사건이 일어나자
그녀의 시집도 그대로 매장되고 말았다.
그리고 1692년이 되어서야 다시 조선에서
그녀의 시집이 출판되었다.
그리고 무역차 부산을 왕래하던 일본의 사신과 상인들도
이 시집을 일본에
가지고 가서, 1711년 분다이야 지로베에등에 의하여 간행되어
일본에서도 널리 애독되었다 한다..
참으로 모를 일이 세상 일이다..
유교의 양반사회에선 알려질 수 없는 그녀가 국제적 스타가
되어 버렸으니
아마 한류의 원조는 '허난설헌'이 아닌가 한다 .
.... 에필로그 ......
여자는 남자의 부속품으로 취급되던 시대에
'허초희'로 태어나 살고
'난설헌'이라는 호를 썼던 여인..
양반사회의 악습과 폐쇄 속에서도 초당을 끝까지
지키며 글로
모든 것을 승화했던 여인은 400년이 지나면서
최근에야 비로소 세간에 널리 알려지게 된다..
저 멀리 보이는 조금 떨어진 묘가 바로 허난설헌의 묘이다..
그리고 나란히 붙은 이 두묘는 일찍 잃어버린 아들과 딸의 묘이다..
그녀는 이렇게 묻혔고 ..
남편인 김성립은 그 위쪽에 허난설헌 사후 다시 결혼한 여인과
합장해 묻혀있다고 하니...
후세 사람들은 아쉬워 할지 모르려니와 어쩌면 난설헌 자신은
남편과 아니 묻히고 아이들 곁에 나란히 묻힌 자신을 다행히
여겨 자유로워 했을것이다..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때는 지금 현재이고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며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다.
- 레오 톨스토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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