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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K울트라는 냉전 초기 미국 중앙정보국, CIA가 추진한 비밀 정신통제 연구 프로그램이다. CIA는 약물과 최면, 감각 차단, 전기충격 등을 이용해 인간의 의식과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지 시험했다. 특히 LSD 같은 환각제를 본인 동의 없이 투여한 사례가 드러나면서, MK울트라는 미국 정보기관의 대표적인 불법·비윤리 인체실험으로 기록됐다. 이 프로그램은 1953년 공식 승인됐으며, 블루버드 프로젝트와 아티초크 프로젝트에서 시작된 심문·행동조작 연구를 더 큰 규모로 확대한 것이었다.
CIA가 내세운 명분은 적국의 ‘세뇌’와 심리전에 대응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 프로그램은 적의 위협을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CIA가 직접 심문과 비밀공작에 활용할 수 있는 약물·최면·기억상실·행동통제 기법을 찾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미국 국가안보문서보관소는 MK울트라 관련 자료를 “CIA 역사상 가장 악명 높고 학대적인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에 관한 핵심 기록으로 설명한다.
이번에 공개된 기밀 해제 문서의 의미는 여기에 있다. 그동안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 포로가 초기 MK울트라 계열 실험에 동원됐다는 주장은 존 마크스의 저서 『만주 후보를 찾아서』 등을 통해 제한적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새로 공개된 문서는 블루버드 프로젝트 단계에서 거짓말탐지기, 약물, 최면 등을 활용한 심문팀 구상이 있었고, 한국전쟁 포로를 대상으로 한 실험 정황이 실제 CIA 내부 문서에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즉 이번 문서는 한국전쟁 포로가 미국의 정신통제 실험과 연결돼 있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증거다. / 편집자
기밀 해제 문서로 첫 확인…북한군 포로 대상 거짓말탐지기·최면·약물 시험 정황
개릿 김
미국 중앙정보국, CIA가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구금된 북한군 포로를 대상으로 초기 MK울트라 실험을 벌인 사실이 최근 기밀 해제 문서를 통해 처음 확인됐다. 문서에 따르면 CIA는 포로들에게 거짓말탐지기 검사 등 은밀한 방식의 정신 통제 실험을 시도했고, 이보다 더 침습적인 실험도 검토했다.
그동안 북한군 포로가 이 실험의 대상이 됐다는 언급은 1979년 언론인 존 마크스가 쓴 책 『만주 후보를 찾아서』가 사실상 유일했다. 마크스는 CIA 문서를 토대로, 악명 높은 MK울트라가 애초에는 ‘블루버드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시작됐다고 추적했다. 그는 이 책에서 1950년 10월 신원이 공개되지 않은 북한군 포로 25명이 ‘고급’ 심문 기법의 첫 시험 대상으로 선정됐다고 썼다. 그 목표는 ‘개인을 자기 의지에 반해, 심지어 생존 본능에 반해서까지 우리의 뜻대로 움직이게 통제하는 것’이었다.
MK울트라는 LSD 투여와 고문 등 극단적 실험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번 문서를 통해 북한군 포로들이 거짓말탐지기 검사 등 은밀한 실험에 동원된 사실이 확인됐다. 이와 함께 신체와 정신에 더 직접 개입하는 실험 계획도 드러났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는 미국 국가안보문서보관소가 2024년 12월부터 2025년 4월 사이 공개한 자료다. 이 자료는 ‘CIA와 행동과학: 정신통제, 약물 실험, MK울트라’라는 제목의 특별 공개 자료에 포함됐다. 보관소는 이를 “CIA 역사상 가장 악명 높고 학대적인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에 관한 핵심 기록 1,200여 건”이라고 설명했다.
이 공개 자료에서 블루버드 프로젝트가 처음 등장하는 문서는 1950년 4월 5일자 CIA 내부 메모다. 당시 CIA 국장 로스코 H. 힐렌쾨터에게 보낸 이 메모는 프로젝트의 목표와 훈련 계획, 예산을 적시하면서도 관련 정보의 접근 범위를 가능한 최소 인원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메모에는 거짓말탐지기와 각종 약물, 최면을 인격 통제 목적으로 활용하도록 훈련된 심문팀 구상이 담겼다. 팀은 3명으로 구성될 예정이었다. 의사, 가능하면 정신과 전문의, 최면술사, 거짓말탐지기 기술자가 한 조를 이루는 방식이었다. 의사와 기술자는 약 5개월의 훈련이 필요하지만, 감찰·보안 부서 소속 최면술사는 즉시 투입할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1951년 2월 2일자 메모에는 하이포스프레이 장치 6대를 확보할 수 있는지 문의하는 내용도 나온다. 문서는 이 장치를 피부를 뚫지 않고 분사식 주입 방식으로 진정제를 몰래 투여할 수 있는 실험 장비로 설명했다. '최루가스 펜’을 개조하는 방안과 작동 방식이 확인되지 않은 다른 장치들도 거론됐다. 그중에는 독일의 ‘샤인트트 권총’, 곧 사람을 죽은 것처럼 보이게 하는 장치도 포함됐다.
블루버드 프로젝트 예산은 6만5,515달러로 책정됐다. 여기에는 팀 급여와 주사기, 수건, 필름 카메라 등 장비 비용이 포함됐다. 수송 항목으로 1만8,000달러도 배정됐지만, 실제 해외 활동 지역은 문서에서 검게 가려져 있다. 다만 1년 뒤 열린 CIA 회의 기록 요약에는 ‘일본과 한국에서 육군이 거짓말탐지기 요원과 정신과 의사·심리학자 팀을 투입해 한국인 포로를 대상으로 진행한 프로젝트가 있었다’는 문구가 나온다.
초기 제안서의 중심은 인격 통제였다. 그러나 문서 곳곳에는 CIA가 더 넓고 야심적인 목표를 함께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흔적도 남아 있다. 미국·영국·캐나다 정보기관이 참여한 특별 회의 요약 문서에는 CIA가 인간의 마음이 특정 정치적 신념을 받아들이게 만드는 심리 요인을 연구하고, 공산주의에 맞서는 수단, 민주주의를 설득하는 방법, 노동조합에 공산주의가 침투하는 것을 막는 방법을 찾으려 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1950년 5월 9일 열린 또 다른 회의에서는 육군 의무감에게 뉘른베르크 재판 문서 요청 목록에 약물, 나르코 분석, 특수 심문 기법 관련 정보를 올리라는 주문도 나왔다.
당시 보안상 불가능하다고 판단된 시험 요청도 있었다. 1951년 9월 18일자 메모에 따르면, 그중 하나는 전화로 유도수면(SI) 상태에 들게 하는 외부 실험이었다. 작성자는 전화 최면이 지금까지 항상 성공적이었지만, 기관 내부 절차에 따라 시험하는 것은 아직 승인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메모는 프로젝트의 필요성을 실험·시험·연구로만 풀 수 있는 구체적 문제라고 설명했다. 여기에는 CIA가 무엇을 가능하게 하려 했는지 보여주는 질문들이 그대로 적혀 있었다.
“개인의 기본 도덕 원칙에 반하는 행동을 유도할 수 있는가?”
“대상을 붙잡아 한두 시간 안에 비행기를 추락시키거나 기차를 탈선시키는 일을 하게 만들 수 있는가?”
“사람의 성격을 바꿀 수 있는가? 그 효과는 얼마나 지속되는가?”
“어떤 조건에서도 완전한 기억상실을 보장할 수 있는가?”
약물로 기억상실을 유도하려는 구상은 곧 실제 시험으로 이어졌다. 마크스에 따르면, 블루버드 프로젝트 기술자들이 일본에 도착해 초기 시험을 진행했을 때 진정제 소듐 아미탈과 각성제 벤제드린을 조합해 4명에게 투여했다. 마지막 두 명에게는 추가 각성제인 피크로톡신도 투여했다. 이는 의학적으로 기억을 지우는 상태를 만들려는 시도였으며, 보고서상 성과가 있어 추가 실험을 추진할 만하다고 판단됐다. 마크스의 기록대로라면, 두 달 뒤 이 팀은 일본에서 북한군 포로 25명을 대상으로 더 ‘고급’ 심문 기법을 시험하기 시작했다.
이번 기밀 해제 문서에서 주목되는 또 다른 대목은, 미국의 적국이 미국과 비슷한 수준의 실험을 벌였다는 증거가 거의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MK울트라와 블루버드 프로젝트의 밑바탕에는 ‘적에게 붙잡혔다 돌아온 미군이 최면에 걸린 이중간첩일 수 있다’는 공포가 깔려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국 관객들은 훗날 대통령이 된 로널드 레이건이 출연하고 내레이션을 맡은 영화를 접했다. 이 영화들은 중국군과 북한군이 미군을 심리적으로 고문해 자신도 모르게 반민주주의 사상을 받아들이게 하는 장면을 보여줬다.
미국 사회가 떠올린 세뇌 이미지는 상당 부분 허구에 가까웠다. 리처드 콘던의 1959년 정치 스릴러 『만주 후보』와 두 차례 영화화가 대표적이다. 이 작품에서 미군은 북한군과 중국군에게 세뇌된 뒤 자신도 모르게 ‘잠복 암살자’가 된다. 특정 순간에 작동해 대통령 후보를 암살하도록 설정된 인물이다.
문서 곳곳에는 한국전쟁이 ‘잊혀진 전쟁’으로 남은 데 단순한 시간의 흐름만 작용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 나온다.
블루버드가 ‘아티초크 프로젝트’를 거쳐 MK울트라로 이어지면서, CIA의 목표는 ‘적이 쓰는 방법을 먼저 개발하는 것’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미군이 적에게 붙잡혀 세뇌된 뒤 돌아올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심리 실험 프로그램은 ‘불가피한 악’으로 정당화됐다. 그러나 한 기밀 해제 문서는 다른 사실을 말한다.
MK울트라를 이끈 CIA 화학자 시드니 고틀리브는 1983년 증언에서 한국전쟁 기간 미군 포로가 약물로 최면 상태에 놓였다는 증거는 철저한 조사 끝에도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과 북한이 사용한 기법 역시 “난해하거나 특별한 것”이 아니었고, “약물 같은 더 기술적인 수단”에 의존하지 않은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1952년 앨런 덜레스에게 보고된 메모에는, 적국의 유사 연구를 입증할 증거가 없는데도 CIA가 실험 자금 지원에 나서려 했음을 보여주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증거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내용이었다.
문서 모음에서 특히 적나라한 대목 가운데 하나는 CIA의 모스 앨런이 최면 심문의 효용을 두고 기관 직원과 나눈 대화 기록이다. 앨런은 “최면 상태의 사람은 정보를 말한다. 하지만 그 정보가 항상 정확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적었다. “특정한 최면 상태에서는 공상과 환각도 나타난다”는 이유였다.
약물과 주사기, 거짓말탐지기, 최면술사 비용이 적힌 예산표를 마크스의 기록과 함께 읽으면, 검게 지워진 문서의 빈칸은 여러 의문을 남긴다. 사실과 경험, 기억까지 통제하려 했던 CIA의 프로젝트를 이해하는 데에는 이 불완전한 기록 자체가 가장 많은 것을 말해 주는지도 모른다.
문서들은 한국전쟁이 ‘잊혀진 전쟁’으로 남은 배경에 시간의 흐름만 있었던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사람과 역사, 범죄는 저절로만 잊혀지지 않는다. 이번 공개는 역사가 서서히 잊혀지는 일과 누군가가 조직적으로 지우는 일 사이의 차이를 드러낸다.
원문 출처:
https://theintercept.com/2026/04/26/mk-ultra-korean-war-prisoner-experiments/?utm_medium=email&utm_source=The%20Intercept%20Newslet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