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4일 emotional drawing 전시회를 드디어 다녀왔습니다.
언제나 시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끝나기 전에 바쁘게 다녀오는 건 무슨 심리인지...^^;;;
학창시절 방학숙제와 일기를 개학 전날이면 울면서 몰아하던 습성이 아직도 남아있는 듯 합니다.
평일 낮, 올림픽 공원은 운동하는 사람들과 뛰어노는 아이들, 그리고 벤치에 앉아 책을 읽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간간히 눈에 띄는 한가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였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있던 것 같기도 하고^^;;) 파란 하늘과 푸릇푸릇한 나무들을 바라보며 저도 아이들처럼 잔디밭에 누워 놀고 싶었으나 이 나이에 그러면 욕먹을까봐...친구들이라도 있었다면 도전해봤을텐데, 아쉽게도 혼자라...소심한 제 자신을 탓하며 미술관을 향해 느긋하게 걸어갔습니다.
처음으로 소마미술관을 가보았는데, [소마미술관, 이모셔널 드로잉전 꼭 가기!]라는 제 다이어리에 적혀있는 월별 목표로 인한 친숙함인지 어쩐지 낯익은 듯한 그런 기분이 들었습니다.
미술관에 들어갔을 때, 제 구두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서 발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최대한 발에 힘을 주고 걸어야만 했습니다.
왜 미술관은 모든 소리가 울려서 사람을 난감하게 만드는 건지...
미술관 바닥에 융을 깔아주고 싶었던 건 저 뿐인건가요?
도슨트가 있었다면 더욱 좋았을텐데, 아쉽게도 제가 간 시간은 이미 모든 도슨트가 끝난 시간이었습니다.
도무지 미적감각과 예술성, 그리고 미술 지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저이기에, 작품에 대한 이해는 포기하고 보는 걸로 만족해야만 했습니다.
제일 먼저 들어간 곳은 제2전시관이었습니다.
미술관이 친절하게 화살표로 표시해준대로 다니지 않고 보이는대로 다니다 보니... 동선을 불편하게 다녔습니다.
거기서 발견한 것은 비스크돌처럼 크고 까만 눈과 새하얀 얼굴을 가진 기괴한 인물들이었습니다.
까만 눈동자는 반짝이는 것 같기도 했지만 막상 가까이서 보고 있노라면 공허로 가득한...그런데도 빠져들어갈 것 같아서 더욱더 무서워져 벗어나고 싶은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김정욱]작가의 그림 속 인물들을 보자마자 방금 전까지 밝았던 기분이 공포로 가득해지는게....
그림 속의 아이들이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무섭지 않나요?
어쩐지 공포영화에서 꼭 아이들이 갖고노는 인형같아서...
(사진은 인터넷에서 떠도는 사진을 올립니다. 혹시 저작권에 관계된 사항이라면 삭제하겠습니다)
드로잉전이라고 해서 주로 캔버스나 종이에 그린 작품이리라 생각했는데, 영상작품들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아마도 [날리니 말라니]작가의 전시실에서 있었던 일로 기억하는데 (기록하지 않으면 뒤돌아서서 잊는 3초기억력...)
제가 몸을 비틀어가며 비디오를 보고 있을 때였습니다.
힐을 신고 가서 다리도 아프고 앉을 곳도 없어서 온 몸을 뒤틀며 영상을 보는데 한 가족이 들어오더라구요.
"엄마 이건 무슨 뜻이야?" 아이가 물었습니다.
부모님의 침묵....(내가 이 질문을 받으면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고민을 했지만, 저 역시 침묵말고는 아무 것도 못할 거란 생각이 들더군요...아님 반문도 좋겠군요!!)
제가 7세쯤 되는 아이와 미적감각이 똑같았나 봅니다.
"무서워 나가자.."라고 아이가 말하는데, 저 역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많은 작가들이 있었지만 가장 흥미로웠던 건 [호세 레가스피]작가의 [점액질]이었습니다.
제목만 보아도 끈적끈적하고 불쾌한 느낌이 들지 않나요?
전시공간 3면을 A4용지로 가득 채우고 있는 기괴한 그림들,
(사진은 인터넷에서 퍼왔습니다~문제가 된다면 삭제!!)
악마의 형상을 한 사람, 기괴한 성교, 탯줄로 연결된 아이를 칼로 찌르는 엄마, 아이를 먹는 사람 등등
이 전시회의 목적이 emotion, 즉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이 사람의 내면은 도대체 얼마나 흉흉한 것인지 가늠이 안 되더군요.
이 작가는 뭔가 굉장히 힘든 일을 겪었던 걸까? 혼자 별 상상을 다 해보았지만, 제 상상력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에, 세상의 모든 지식을 망라한 인터넷을 동원해야만 했습니다.
필리핀 출신 작가는 성적소수자(아마도 동성애자인가 봅니다)라고 합니다. 필리핀이란 나라가 90%이상의 가톨릭신자로 이루어져 있기에 아마도 성적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좋지는 않나 봅니다.
종교, 성(性), 문화적 표준에 의해 압도되는 한 개인의 내면을 묘사하고자 한다는 게 작품설명인데 그림과 작품설명이 이렇게 확 와닿는 경우는 별로 없었던 듯 합니다^^
그러고보니 이 전시회의 목적을 깜빡했네요.
[SOSFO(국민체육진흥공단_김주훈 이사장)가 운영하는 소마미술관은 공단창립20주년을 맞이하여 2009년 2월 19일부터 4월 19일까지 『이모셔널 드로잉 Emotional Drawing』展을 개최합니다. 이번 전시는 도쿄국립근대미술관에서 기획되어 교토국립근대미술관을 거쳐 소마미술관에 오게 된 순회전으로, 일본국제교류기금의 전폭적인 협조와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의 후원으로 개최됩니다. 애초에 아시아 및 중동지역 9개국에서 선정된 작가 16명의 드로잉 작품으로 구성되었으나, 소마미술관 전시를 위해 전시장 환경에 맞게 각색되었습니다. 또한, 본 전시에서는 소마미술관이 추천하여 선정되었던 김정욱 작가 외에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김소연, 이영빈 작가를 추가하였으며, 이 작가들은 모두 소마드로잉센터를 거쳐 간 역량 있는 작가들입니다. 소마드로잉센터를 통해 작업의 과정에 주목하고 작가가 품고 있는 근원적인 감성표현, 혹은 창작의지를 가감 없이 보여주는 작품을 발굴․전시해 온 소마미술관으로서는 이번 전시가 지역적인 경계를 떠나 Emotion 즉, 인간 본연의 감성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감성이란 인지(perception)의 문제를 떠나서 개인 성찰의 결과라고 할 수 있으며, Emotional Drawing은 구체적 대상에 대한 묘사라기보다 자신의 감정, 내면의 울림을 표현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보는 이로부터 좀 더 즉각적인 반응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지역적 문화적 경계를 떠나서 작품을 보는 사람에 따라 자신의 세월에 비추어 경험을 반추할 수 있는 감성의 시간, 작품을 창작한 사람의 감수성을 따라 전시실을 이동하면서 작가와 관람객이 좀 더 밀착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 이번 전시의 목표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나는 작가들의 emotion을 과연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전시회는 4월 19일까지입니다.
저와 같이 방학숙제 밀려서 하는 분을 포함해서 이 전시회를 몰랐으나 흥미가 생기신 분들 얼른 가셔야겠죠?
3000원 잊지 마시고 챙겨가세요^^
첫댓글 아. 글을 재미있게 잘 올리셨네요. 저두 미술관에 갈때는 운동화를 신고 가야겠습니다. 작품을 보는데 다른것에 신경쓰면 안되니까요. 예술적인 측면에서 관심을 두려고 하는데도 일반인적인 측면에서 볼때 작품이 공포스럽긴 하네요. 좋은 후기 감사합니다.
저도 미술관 갈때마다 운동화를 신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왜 항상 구두를 신고가게 되는지 모르겠어요~!!한참 돌아다니려면 발도 아픈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