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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심님의 글을 대하면서 내 어릴적 무심코 봐왔던 추억들이 새록새록 지나간다
동네에서 누군가 돌아가시면 잔치아닌 잔치의 성대한 의식을 치루게 된다
온동네 사람에게 연락을 취하고 특히 일꾼들이 우선적으로 나서게 되고
분야별로 나뉘고 모여서 음식과 한쪽에서 상여가 나갈 채비를 한다.
새끼를 굵거나 가늘게 꼬아 상여를 조합하며 산소준비도 미리 시작한다
상여가 나가기 전날 저녁엔 앞소리꾼을 앞세운 빈 상여의 예행 연습까지 봤으니 거부감 없이 접해왔고
죽음 또한 내 집안엔 없었으니 그다지 심각하지 못했던거 같다
또한 우리밭 북쪽으로 가장자리에 사용치 않을땐 넣어두는 상여집이 있었으니
행사때 오가는 모습이나 모형에도 별다른 감정이나 모습을 느끼지 않았는데
사라진지 오래이고 죽음과 관련된 일을 하다보니 좀더 세심함이 간다고나 할까...........
이 글의 저자가 제주의 박물관을 돌아보면서 올린 글이 정감이 가고
내 마음 깊숙히 공감대를 만들어 생각의 여운을 길게 드리운다
꼭두
누구와 함께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갈 것인가?
■■■
이승과 저승을 이야기하면서 그리스 신화의 카론과 스틱스강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저승의 뱃사공인 카론은 망자의 영혼을 태우고 이승의 마지막 종착지를
스틱스 강가를 떠나 저승으로 향한다
흔히 증오의 강이라고 불리우는 스틱스는
슬픔의 강, 탄식의 강, 불의 강 그리고 마지막으로 망각의 강인 레테의 강을 지류로 두고 있다
이 강을 건너 망자는 하데스가 지배하는 저승에 도착한다
공교롭게도 남자들은 저승으로 가는 뱃삯을 내야 한다
그리스에서는 1일 노동자의 하루 품삯인
1오볼로스를 카론에게 주어야 배를 태워 줬다고 한다
장례에서 이 뱃삯을 챙겨 주는 일은 그래서 매우 중요한 의식이었다고 하니
갑자기 중국 영화에서 보던 중국인들의 가짜 돈을 태우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것 역시 망자 가정에서는 노잣돈을 주기 위해 태우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었다
베르길리우스 였던거 같은데
로마의 건국 이야기를 적은 서사시 아이네이스에 나왔던 카론에 대한 조사를 찾아 보았다
다행히 바로 나온다
그의 조사에 따르면 흔히 만화나 그림과 같이
조금은 다른듯 하지만 그래도 상상이 가능해진다
그곳에서는 무섭고 누추한 사공인 카론이 지키고 서 있는데
그의 턱에는 손질하지 않은 백발이 텁수룩하고 눈은 불을 켜고 노려보고 있다
그 어깨에서는 때묻은 외투가 매듭으로 묶인 채 아래로 쳐져 있다
그는 손수 상앗대로 배를 밀고 돛들을 손질하며 거무스름한 나룻배로 사자들을 건네준다
큰 힘이 들겠지만
신의 노년은 건장하고 푸른 법이다■■■
인간은 죽음 이후
누군가에 의해 어딘가로 다다르고
다시 심판 받아 길로 인도되는
영생의 존재라 믿는다
그 누군가는 거역할 수 없는 존재로
이승으로 되돌아가고픈 용기 자체를 없애 버리는 그 역할을 맡은 자로서
선을 권하고 후손의 번영까지 고대했다
우리의 민간신앙은
죽음 이후 첫 만나는 저승사자로 하여금
망자를 염라대왕 앞으로 데리고 가게 하였다
그 이미지는 전설의 고향에선
검은색 도포를 입고 창백한 모습을 한 존재로 묘사 되었다
그러나 굿에서 저승사자는
오히려 군졸에 가깝다고 알려지고 있다
그 모습이 어떻든
창백하면서도 인정사정 없는 단호함은
죽음의 상황이 불가역적이라는 사실을 묘사하기 위한 설정이라고 생각한다
성경은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기준점을 요단강으로 표시하고 있다
물론 갈릴레오를 거쳐 사해로 흐르는 요르단 강이 실재로 존재하고 있지만
성경의 요단강은 죄를 짓고 천국으로 건너가는 경계로서
한번 건너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설정은 동서양이 같다
우리의 장례문화에서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동행이 존재하는데 그것이 꼭두다
꼭두각시라는 인형 정도의 의미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꼭두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또 다른 세계로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곳을 건너가는 망자를 향한 배려심을 느끼게 해준다
사람의 외로움은
살면서 본질적으로 느끼는 일이라고만 생각 했는데
죽어서도 어쩔수 없이 계속된다는 두려움 때문 이었을까?
혹은 죽는 순간까지
이승에서 못다 이룬 성과나
못다 이룬 성과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리기 어려운 것임을 보여 주기라도 하는걸까?
상여 앞에서 저승으로 길을 인도하는 저승사자는 무섭고 누구도 앞을 가로막을수 없는 형상이다
대신 상여에 꽂힌 꼭두는
오히려 소탈하고 재밌는 표정으로 무척 흥미를 끈다
망자를 윽박지르거나 뱃삯을 받는 것도 아니고 무서운 얼굴로 망자를 어렵게 만드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꼭두는 망자가 가는 길에 동반자로 함께하면서 편리함과 존중심을 불어넣고 있다
인물들도 다양하고 동물들도 다양하다
망자를 안내하거나 수호하고 혹은 시종으로서 역할과 함께 광대 역할에 이르기까지
살면서 나름 성공한 사람들이 가졌을 법한 다양한 혜택을 죽은 자에게 부여하려 하고 있다
죽은자의 상태가 현세에 계속 되기만 한다면 그 사람은
말 그대로 성공한 혹은 권력자여야 했으리라
특히 예전의 세상에서 사람들이 이뤘으면 하는 다양한 목표를 제시해 준다
이뿐이 아니라 동물들도 함께 하고 있다
용 봉황 거북이가 있는가 하면
각종 나무와 연꽃도 보인다
언뜻 보아서는 봉황이 닭처럼 보이기는 하고 용이 뱀처럼 보이긴 하지만
그 의미는 전달이 된 듯하다
아무튼 죽은 자를 저승으로 보내는 도구로서 상여는
이미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지만
의미에서만은 매우 훌륭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상여에는 온갖 정신이 담겨 있다
꽃상여도 있고 수많은 꼭두도 망자와 함께 세상을 떠난다
멋지게 장식되어 있는 상여가
상을 치른 후 태워 없어져 버렸다는 사실은 매우 슬프면서도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꼭두의 매력은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정교한 예술가들의 인형이 아니라
마을 주민들이 필요에 의해 급하게 만들어 색을 칠해놓은 나무입니다
그래서인지 모양도 단순하고 표정도 단순하거나 익살스럽고 혹은 과장된 것들도 보인다
그 무엇을 보아도 실생활에 필요한 소탈함을
지닌 진면모를 보는듯 해 흐뭇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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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여가 못가는 길이나 장소는 없다
양쪽으로 두줄씩인데 모두16명과 20명이 한조로 움직인다
제아무리 좁고 가파르거나 험하여도 지나가고 오른다
그렇게 어떤 장애물도 뚫고 나가는게 특징이고
사람의 능력이요
죽은 자에게 더해지는 처세술인듯 하다
어릴적엔 꼭두에 별 생각이나 의미조차 없어서 기억에 아무것도 없음이 아쉽다
한지로 대충 모형만 꾸려진 요즘은
아주 드물게 시골을 고향에 둔 사람끼리 행사격으로 정을 나누고 있지만
그것도 화재 위험이 있어서 함부로 다루지는 못한다
첫댓글 옛날 시골의 장례나 잔치는
그 자체만으로도 큰 행사이지만
실재는 음식을 나눠 먹고
없이 사는 이에겐 식사 한끼라도 그 일이 진행되는 동안만은 푸짐하게 대접하는
미풍이 있었다
말하자면 거지들도 문앞이나 골목에 서성이면
오가는 주민들이 불러서 배불리 먹이던 모습이 생각난다
조선시대에 꼭두라는 동반자 인형이 있었다.
꼭두는 과거 상여 장식 등으로 사용되어진 인물, 동물, 화조 형태의 목조각이다.
피안으로 가는 길의 안내자, 동반자의 역할을 하며,
소망과 위로의 의미도 담고 있다.
‘꼭두’는 완성이다.
생전에 망자가 갖지 못했던 것, 생전에 갖지 못했던 권위, 생전에 사랑했던 동물,
생전에 정을 나누던 시종 등의 모습으로 구현돼,
못갖춘 것을 채우는 것이고, 죽어서도 혼자가 아니라는 이승의 연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