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 대조] 트렌트 회의 조항11과
성경 갈라디아서 1장9절 을
트렌트 종교회의 (1545~1563), 제 11항:
“누구든지 (인간 자신 노력으로 의롭게 되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에 의해 의를 덧입게 된다거나, 그를 통해 죄를 벗어나야지만 의롭게 될 수 있다 고 가르치면......저주가 있으리라”
갈라디아서 1장, 9절: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2. [복음/ 다른복음]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전한 "복음"과
사도들이 전하지 않은 "다른복음"
(갈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 3: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갈 5: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3. 저주를 선언하는 것은 선언하는 것인데, 문제는
성경대로 가르치는 것에다가 저주를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만 보았는데, 갈라디아서에서 사도가 전하는 내용과 정반대의 내용을 말하고 있는 것이 트렌트 회의(11항)에서 발견됩니다
그리스도가 주었고 그분의 사도들이 전한 복음 메세지를 전하면, 복되다고 선언하는 게 맞는데, (거기다) 저주를 선언하고 있는 것 말입니다
4. 장로교의 핵심 정신에는 그리스도 신앙 양심의 자유 라는 큰 가치가 포함돼 있습니다.
우리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를 말씀으로 먹이고 그들의 영적 상태를 돌보았던 직무를 감당한 사도들이, 국가적(종교적) 권세를 지닌 당국자들과 맞섰을 때, 그들 스스로도 한번 헤아려보라고, 양심에 비추어 판단하도록 종용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시대는 지나고, 그 모양이 변했었어도,
하나님의 뜻은 안볐했고, 그분말씀은 천지가 없어져도 안 없어지며 영원 무궁하리라 말씀합니다
하나님 자신이 변치 않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21세기를 살던, 31세기를 살던,
우리는 1세기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그들의 주님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말한 것처럼 동일하게 행동치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양심을 구속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그분만이 영원하시고 한결같으시며 지존 무상한 분, 우리 사람들을 지으신 분, 만드신 분이니, 그분께 만큼은 순종해도 좋습니다.
그분의 말씀만이 신자 개인의 신앙양심을 규율하실 수 있으십니다.
이 아침에, 다함께 고백하십시다: 다음 두곳 말씀을..
(행 4:19,20)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갈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