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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집단 고용허가제 개입, 무엇이 문제인가?
최현모(이주노동자인권연대 연대국장)
들어가며
지난 7월 고용허가제 관련 주요 사항을 심의․의결하는 외국인력 정책위원회를 주관하는 국무 조정실은, 아무런 사전 논의와 여론 수렴 없이 중소기업 중앙회 등 산업연수제 문제의 핵심인 연수추천 단체들에게 또다시 고용허가제 대행업무의 일부를 위탁할 것을 내정하였다.
또한 지난 10월 2일 노동부 주최 토론회를 통해 중소기업중앙회 등에게 송출국에서의 인력 선발부터 입국 후 교육과 사후관리까지 맡길 것을 밝혔다. 더군다나 이러한 논의가 이미 작년 12월부터 비밀리에 진행되어왔음이 드러나 시민사회단체와 이주노동자들은 더욱 충격과 분노를 금할 수 없는 실정이다. (출처 : 중기중앙회 등 이익집단의 고용허가제 개입반대 공동투쟁본부 투쟁자료집)
2005년 7월, 외국인력정책위원회에서 2007년 1월 1일부터 산업연수제를 폐지하고 외국인력정책을 고용허가제로 일원화하는 방침을 확정 발표했다. 그러는 한편, 2006년 2월 이후 8차례가 넘는 비공개 회의를 통해 일원화 이후 고용허가제 대행기관으로 기존 산업연수추천업체를 편입시키는 운영방안을 내정했고, 이를 위한 세부운영방안을 마련해 왔다. 이 같은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주노동자인권단체와 노동 ·시민단체들은 『중기중앙회 등 이익집단의 고용허가제 개입반대 공동투쟁본부』 결성하여, 제도운영의 '공공성'을 확보를 원칙으로 하는 고용허가제에 중기중앙회(전 중기협), 대한건협, 수협, 농협 등의 이익집단을 개입시키는 것은, 겉으로는 산업연수제도 폐지이지만, 내용상으로는 산업연수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익집단의 고용허가제 개입, 무엇이 문제인가? 이에 대해,
본 발제문에서는 기존의 산업연수제와 그 운영을 맡아 온 연수추천단체의 실상에 대해 언급하고, 고용허가제의 도입취지를 다시 한번 검토하면서, 최근 국무조정실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고용허가제 일원화 이후의 업무대행기관 선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더불어 고용허가제 도입의 기본취지에 입각한 제도 운영의 바람직한 형태를 제안하고자 한다.
1. 산업연수제의 실상
1991년 ‘해외투자기업연수생제도’의 도입에서 출발하여 1994년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주관한 ‘외국인산업기술연수생제도’로 본격화된 산업연수제는 2004년 고용허가제가 실시되기 이전까지 외국인력제도의 핵심을 이루며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산업연수제의 운영과정은 송출비리와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권침해의 온상으로 지적받으며, 이주노동자인권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와 연수생으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에게서도 비난을 받아왔다.
실질적으로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연수생'이라는 이름을 붙여 저임금 장시간의 노동 착취, 강제노동, 임금체불 등 각종의 인권 및 노동권 침해를 양산해 왔다. 뿐만 아니라, 그 운영을 맡아 온 중기중앙회 등의 연수추천단체와 송출회사가 연수생들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저지른 송출비리와 사후관리를 빙자한 횡포와 억압이 끊이지 않았다. 때문에 산업연수제는 연수생의 권리보장은 외면한 채 돈벌이의 대상으로 전락시켜 착취와 억압을 제도적으로 보장해 준 '현대판 노예제'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2. 연수추천단체는 누구인가?
산업연수제는 중기중앙회의 관리감독 하에 많은 연수추천단체가 개입되어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현지에서의 모집에서부터 송출과정, 입국 후 사후관리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 대한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역할은 대부분 송출비와 사후관리비를 챙기는 것에만 그치고 있는 것이 밝혀졌다. 특히 중기협(현 중기중앙회)은 백억이 넘는 사후관리비를 받아오면서도 모든 책임을 송출업체에 넘긴 채, 기본적인 사후지원은 고사하고 오히려 고충을 토로하는 연수생에 대해 상식이하의 인권억압을 저지르거나 강제출국 협박 등 온갖 횡포를 자행해왔다.
중기중앙회가 국회 산업자원위원회 조정식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를 통해 지난해, 중기중앙회는 사후관리비 명목으로 93억원을 거둬들였으나, 실제적인 사후관리 실적은 매우 미미한 것으로 드러났다.
중기중앙회가 제출한 '05년 연수애로 상담일지'에 따르면, 총 462건의 애로상담 실적이 대부분 전화 안내정도로 종결처리 됐으며, 그나마 중기중앙회가 직접 처리한 것은 50여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후관리비로 93억원을 거둬들인 것과 대비하면 '전화 한통에 1,700만원'이라는 수익을 올린 셈이고 50여건의 실제 직접처리 건으로 보면 한통에 1억 6천만원에 해당한다.
중기협(현 중기중앙회)의 비리는 연수제 도입초기인 94년 중기협 연수협력단장이 송출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아 처벌된 것을 시작으로, 98년에는 중기협 회장이 연수생 관리업체 선정 청탁 대가로 2천만 원 상당 물품을 받아 기소되었으며, 2001년에는 국정감사를 통해 104억에 달하는 연수생 적립금 등으로 차량구입, 퇴직금 지급 심지어 콘도를 구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2002년에는 중기협의 전 상근부회장 등 간부 2명이 50여명의 브로커와 결탁하여 필리핀과 중국으로부터 300여명의 불법 입국을 알선하고 5억여 원을 받아 구속되는 등 거의 매년 끊이지 않고 언론을 장식했다. 또한 올 해 7월말에는 연수추천단체 중 하나인 대한건설협회를 통해 산업연수생을 고용한 대우건설이, 건설협회의 지침에 따라 사업장 이탈을 막는다는 목적으로 연수생 41명에 대해 강제적금을 들게 하고 이에 대해 지급하지 못하게 하는 인권침해 사건도 있었다.
중기중앙회, 대한건협 등 연수추천단체들은 산업연수제 대행 첫해인 94년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비리를 저지르고 실제 연수생의 인권 ·노동권은 묵살하며 산업연수제를 ‘현대판 노예제’로 만드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온 것이다.
3. 고용허가제의 도입취지
지난 2004년 도입된 고용허가제는, ‘현대판 노예제’로 비난받았던 산업연수제를 폐지하고 올바른 외국인력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시민사회단체와 이주노동자들의 오랜 노력 끝에, 대체적인 제도로 도입되었다. 그러나 도입초기부터 제기된 산업연수제와의 병행문제와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선별 합법화, 사업장 이동제한 등의 독소조항들로 인해 새로운 제도에 대한 기대를 상쇄시켰고, 이주노동자의 인권보장에도 충실하지 못하다는 지적받아왔다.
다만 제도운영의 공공성을 확보하고 이주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함으로써, 이주노동자를 ‘연수생’으로 규정하여 착취하고, 이익집단에게 운영을 맡겨 송출비리 등 온갖 비리를 양산해온 산업연수제에 비한다면 한 단계 나아간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즉,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를 내국인노동자와 동등한 ‘노동자’로 인정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 외국인력제도로서 정부주도의 ‘공공성’을 그 근간으로 하고 있어, 이주노동자를 상대로 이익을 창출하려는 각종 비리를 막을 수 있는 법적 테두리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고용허가제가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의미를 갖는 것은 제도운영의 공공성 확립과 이주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을 그 취지로 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4. 고용허가제 일원화 이후 업무대행에 관한 정부논의의 문제점
최근 국무조정실의 ‘산업연수제 폐지에 따른 고용허가제 운영체계 개선 방안’과 노동부의 ‘고용허가제 업무 대행기관 세부운영방안’ 이 공개되면서 정부가 이미 지난해 말부터 비공개 회의를 진행하며, 산업연수제하에서 송출비리와 인권침해로 악명을 떨쳐온 중소기업중앙회, 대한건설협회 등 연수추천단체를 고용허가제에 편입시키는 것을 골자로 고용허가제 업무대행기관 선정논의를 해왔음이 밝혀졌다. 이에 따르면 연수추천단체를 대행기관으로 지정하여 해외 현지에서의 노동자 선발과 면접을 직접 실시하도록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입국 후 인권과 노동권 교육을 해야 할 교육과정도 이익집단에게 맡길 계획이며, 심지어 고충처리, 재해사고 지원 등 이주노동자의 인권보호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안마저 고용주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산업연수제하에서 조직이기적인 이권추구로 비난을 사고 있는 이익단체에 위탁하겠다고 하고 있다.
국무조정실로 대표되는 정부부처가 고용허가제 업무대행기관으로 중기중앙회 등 연수추천단체를 고용허가제 업무대행기관으로 선정하고자 하는 논거는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산업연수제를 운영해 온 연수추천단체가 그 노하우를 살려 고용허가제 업무를 대행하게 함으로써 효율적인 제도 운영이 가능하다.
둘째, 예산과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정부가 민간(사업주와 노동자간)의 업무에 직접 개입함은 적절하기 않다.
셋째, 고용허가제 관련 업무의 대행기관을 복수로 지정하여 운영함으로써 경쟁에 의한 서비스의 질 향상을 도모할 수 있다.
이상의 논거에 대해 다음의 문제를 제기한다.
1. 중기중앙회, 대한건협 등 연수추천단체의 ‘노하우’는 각종 비리와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권유린의 ‘노하우’이다.
“산업연수제의 연수추천단체를 고용허가제의 대행기관으로 지정하고자 하는 것은 오랫동안 외국인 근로자 업무를 담당해 왔던 산업연수제 운영단체의 노하우를 활용하여 외국인 근로자 도입업무의 원활한 추진과 서비스 제고를 위한 것으로서”
(출처 : 고용허가제 일원화와 관련 공개질의답변서, 2006. 9. 26. 국무조정실)
“사업장 배정후 법무부에 외국인등록, 근무처변경, 체류기간 연장 신청대행, 출국 지원등의 일은 업종단체(연수추천단체)에서 대행하지 않고 산업연수생을 사용하는 업체에서 외국인노동자를 대신하여 직접 수행한다. 또한 외국인에 대한 고충상담, 이탈방지현장방문 등 사후관리업무는 업종별단체에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해외송출기관의 국내 지사가 주로 담당하고 있다.
송출기관의 국내 지사는 관련 비용을 외국인에게서 받는 송출수수료에 포함시켜 충당하고 있다. (중략) 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사실은 산업연수제 대행 기관에서 사후관리 업무를 송출기관의 국내지사에 ‘위탁 관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주로부터 막대한 금액에 달하는 사후관리비를 징수하고 있다는 점이다.” (출처 :「외국인력제도통합에 따른 효율적사후관리 방안연구」 설동훈 외 4인)
정부는 중기중앙회, 대한건협 등 연수추천단체의 노하우를 높이 사고 있다. 그러나 설동훈 교수 등이 연구를 통해 작성한 글에 따르면 연수추천단체는 막대한 액수의 사후관리비만 챙겼을 뿐 사후관리에 관한 실제적인 일은 송출업체에 떠넘겨 왔을 뿐이다. 즉 연수추천단체에 이주노동자 사후관리에 관한 노하우는 사실상 없다.
이러한 사실은 최근 국정감사에 제출된 자료를 통해서도 밝혀지고 있다. 중기중앙회가 제출한 자료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중기중앙회에서는 2005년 1년간 총 462건의 연수애로 상담을 했는데 이중 400여건은 송출회사의 국내지사 직원이 처리했고, 채 60여건만이 중기중앙회 직원이 처리했을 뿐이어서, 실제 사후관리업무는 해외송출기관의 국내지사들이 진행하였음이 드러났다.
그나마 해외송출기관의 국내지사가 처리했던 상담조차 연수생과 사업주가 겪는 문제를 풀 수 있도록 도와주는 상담이 아니라 사업주의 입장에서 연수생에 대한 일방적인 지시와 협박성 답변으로 일관한 상담을 진행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중기중앙회 자신이 제출한 상담결과 자료를 보면, 체류 연장이 가능 여부를 묻는 연수생에게 체류연장은 불가능하다고 답변하며, 이탈 시에는 퇴직금도 받을 수 없으며 현지의 가족들이 재판에 회부된다는 등의 공갈 협박을 하기도 하였다.
중기중앙회 스스로가 인정하고 제출한 자료를 통해 밝혀진 것처럼, 산업연수생 관리를 통해 사후관리 업무에 대한 노하우를 쌓아 왔다고 주장하는 중기중앙회가 실제로는 사후관리업무를 거의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으며, 해외송출업체의 국내지사를 관리하고 감독해야 하는 중기중앙회가 관리감독 책임조차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중기중앙회는 산업연수제 관리대행업무를 맡은 94년 이후 현재까지 산업연수제 사후관리에 대한 노하우를 쌓아왔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번 국정감사 제출자료 분석을 통해 밝혀진 결과를 볼 때, 실제 중기협이 주장하는 자신들의 노하우란 실제로는 중기협 자신이 아닌 송출업체 국내지사에서 수행한 사후관리업무 실적을 자신의 실적으로 위장하는 노하우일 뿐임이 드러났다.
이와 같이 비리와 인권침해의 노하우만을 축적하고 있는 연수추천단체에 해외 현지에서의 면접 · 선발부터 입국 후의 사후관리에 이르는 전반적 과정의 대행업무를 맡긴다는 것은 온갖 비리와 인권침해로 얼룩진 산업연수제의 실패를 다시금 반복하겠다는 것일 뿐이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면서 원활한 업무추진과 서비스 제고를 기대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다.
2. 예산 · 인력의 부족을 이유로 이익집단 편입을 정당화하며 사후관리비 징수를 운운함은 이익집단을 위한 이권보전 특혜일 뿐이며, 동일업무를 여러기관에 위탁함으로써 발생하는 혼선과 비효율을 자초하는 탁상행정이다.
“업무대행료 및 취업교육비는 사업주, 사후관리비는 사업주 및 근로자가 각각 부담하는 것을 원칙. 수수료 산정은 사후관리비 등을 포함하여 구성 항목별 금액 및 징수 방법 등 세부사항 별도 마련.”
(출처 : 산업연수제 폐지에 따른 고용허가제 운영체계 개선방안, 2006. 8. 국무조정실)
“고용허가제 운영은 당연히 국가의 관리감독사항이라고는 하겠으나 기업 등에서 필요한 인력을 도입하는 과정을 막대한 인력과 예산을 들여 국가기관을 설립하여 국가가 직접 관리 운영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이고 효율적인지 의문이며”
(출처 : 고용허가제 일원화와 관련 공개질의답변서, 2006. 9. 26. 국무조정실)
위의 정부주장을 요약하면 ‘국가에 의한 공공운영의 필요성은 당연히 인정되나 예산과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민간 이익단체에 이를 맡기고 사업주와 이주노동자에게 사후관리비를 받아 이익단체의 이권을 보장하면서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제도 운영을 하겠다.’는 것이다. 일면 그럴싸해 보인다.
그러나 이는 중기중앙회, 대한건협 등 이익집단의 이권보전을 위한 억지논리에 불과하다. 즉, 수수료 등의 책정을 통해 비용을 충당하고 이를 통해 사후관리 등을 함에 있어 당연히 인정되는 정부기관을 통한 공공운영 방식이 아니라, 그간 비리와 인권침해로 악명을 떨쳐 온 이익집단에 맡겨 산업연수제에 이어 고용허가제하에서도 지속적인 이권을 보장해 주겠다는 것이다.
고용허가제의 기본취지는 제도 운영의 공공성 확보와 이주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이다. 그런데 정부는 공공성을 뒤로하고 이주노동자의 인권침해를 방조하면서 이익집단의 이권을 챙겨주겠다고 한다. 오히려 사후관리를 위한 비용을 고용허가제 운영예산의 항목으로 하여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업주들로부터 ‘고용분담금’ 등을 징수하는 방법으로 받아 정부기관의 인력을 충원하고 필요시설을 확충하는 것이 고용허가제 도입의 기본 취지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지난 해 국내 학자들을 통한 위탁 연구결과가 시사하는 바, 동일한 업무를 여러 기관으로 나누어 맡김으로써 발생되는 업무의 중복과 혼선, 비용의 증가, 행정효율의 저하 등의 문제점 지적만을 고려해도 연수추천단체인 4개의 단체에 업무를 위탁하려는 의도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3. 이익집단인 연수추천단체의 고용허가제 대행기관 편입은 한국정부 스스로 송출국과의 MOU를 깨고, 송출비리의 만연을 묵과하겠다는 것이다.
“필리핀 노동부(DOLE)는 본 양해각서에 따라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노동자를 모집, 선발, 송출하는 책임을 가진 정부기관이다. 본 양해각서를 이행함에 있어 필리핀 노동부와 한국 노동부는 필리핀 노동부 산하기관으로서 필리핀 정부예산으로 재정이 충당되고, 필리핀법에 의해 해외송출을 규제하도록 규정된 POEA(필리핀해외취업관리청)가 송출기관으로서 모집, 선발, 송출에 직접 참여하는데 동의한다.”(출처 : 「필리핀과 체결한 MOU 내용 일부」)
이를 분석하면 인력송출에 관한 업무를 맡아야 할 기관으로 첫째, 노동부의 산하기관일 것, 둘째, 정부법에 의해 해외송출을 규제하도록 지정된 기관일 것, 셋째 필리핀 정부예산으로 재정이 충당될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정부는 이 같은 세가지 조건이 고용허가제 인력송출기관의 최소조건임을 양해각서를 통해서 합의하였으며, 이 같은 기준으로 다른 송출국과도 유사한 내용의 양해각서를 체결하였다.
이는 단순히 송출기관에 대한 기준을 정하는 것을 넘어 고용허가제 운영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한 규정이다. 그런데 노동부의 산하기관도 아니고, 법률에 의해 규정되지도 않았을 뿐만아니라, 정부의 예산에 의해 운영되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사업주와 이주노동자로부터 사후관리비를 받아 부당한 폭리를 취해 온 중기중앙회, 대한건협 등 이익단체를 대행기관으로 지정하는 것은 한국정부가 스스로 공공운영의 원칙을 깨는 것이 될 뿐이다.
이는 향후 현지 송출국들의 MOU 해당조항의 수정 및 자국 송출시스템을 노동부 관할하의 경쟁체제로의 변환하겠다는, 상호주의에 입각한 “정당한” 요구에 부딪혀 공공송출의 근거를 상실하게 될 뿐 아니라, 실제 송출국내 유사한 이익집단의 참여가 현실화될 경우, 고용허가제의 기본전제인 공공송출원칙은 무너지고 송출비리의 만연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이것이야 말로 산업연수제하에서 송출비리를 통해 이권을 향유해 온 이익단체가 가장 바라는 바가 아닐까 한다.
4. 경쟁체계를 통한 서비스 질 향상을 운운함은 밀실논의를 통한 특혜선정을 합리화하는 억지논리에 불과하다.
고용허가제의 도입취지상 제도운영의 공공성 확립을 고려하면 민간에 의한 업무대행의 여지는 인정될 수 없다. 설령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바와 같이 고용허가제 업무대행기관을 복수로 선정하여 경쟁체제를 통한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주장을 그대로 인정한다 해도,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일반적인 경쟁체제의 모습은 정부의 주장과는 거리가 멀다.
즉, 정부의 공공업무를 민간에 위탁하여 효율을 기하기 위한 경쟁체제는 대행기관의 선정에 앞서 업무 위탁의 필요성이 인정되는가를 검토하고, 위탁의 범위를 분명히 한 후, 업무수행에 필요한 예산 및 인력, 시설기준, 업무처리 감독기준 등을 정하여, 이에 참여할 의사를 가진 자의 공개신청을 받아 투명한 절차를 통해 요건에 맞는 자들을 선정한 후, 이들로 하여금 업무를 수행하게 함과 동시에 정기적인 심사를 통해 이를 점검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 고용허가제 업무대행기관 선정에 관한 논의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 진행되었다. 국무조정실의 주도로 진행된 논의과정에 여론을 수렴하려는 노력은 찾아볼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고용허가제의 중요사항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심의를 거치도록 하고 있는 ‘외국인력고용위원회’가 열리는 상황에서도 이에 참여하고 있는 위원들마저 대행기관 선정에 대한 논의사실을 모르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정부의 정책논의과정은 공개적인 절차를 통한 여론수렴을 거쳐 이루어지는 것이 민주행정의 기본 상식이다. 고용허가제의 도입취지가 공공성의 확립에 있다는 것을 상기할 때 이러한 민주적 절차는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경쟁체제 통한 서비스의 질 향상 운운함은 밀실야합을 통해 이익집단의 이권보전에 급급해 온 정부의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며, 본말을 전도시킨 억지이다.
5. 정부의 위선과 안일 속에 외국인력제도의 파행이 계속된다.
정부는 고용허가제로의 일원화에 대한 결정이 확정되었다고 발표했다. 정부의 결정대로라면 2007년 1월 1일부터 한국 땅에 연수생이라는 이름의 이주노동자는 없어져야 한다. 그러나 내년에도 산업연수생은 존재한다. 중기중앙회, 대한건협 등 연수추천단체와 송출업체들의 연수생을 대상으로 한 인권침해 노하우 경쟁도 계속된다. 정부가 자신있게 발표한 일원화는 사실상 없다. 그저 산업연수생의 도입만 정지될 뿐이다. 정부는 기존 정책에 의해 결정된 연수생 도입인원이 남아있고, 연수추천단체 및 송출업체 그리고 연수업체 사업주들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다고 한다.
정부는 마지막 연수생이 도입된 후 1년이 지나면 모든 연수생의 지위는 고용허가제하 노동자가 되어 고용허가제로 편입된다고 한다. 나름 정부의 의지가 가상할 만도 한데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을 넘어 안일하기 그지없는 정부의 태도에 고개가 내둘러진다. 산업연수제하의 시스템에 따르면 연수생은 1년의 연수와 2년의 연수취업 노동자의 신분으로 노동을 한다. 연수기간 1년은 말할 것도 없고 연수취업 2년도 연수추천단체와 송출업체의 관리를 받고 있다. 분명 연수취업기간은 국내법상 노동자로써 이들에 관한 업무는 당연히 노동부의 소관이었어야 함에도 연수추천단체와 송출업체의 관리를 받는 것이다. 그 논리는 기존의 정책결정에 따른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논리라면 일원화 이후 1년이 지나면서 연수추천단체와 송출업체는 연수업체의 몇몇 사업주를 동원하면서 기존의 질서유지를 요구하는 경우 이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인가? 단호한 의지를 보이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그때 가봐야 알 일이다. 산업연수제와의 병행과 그로인한 외국인력제도의 파행은 2007년 이후에도 얼마나 계속될런지 모를 일이다. 결국 정부의 안일함으로 인해 고용허가제로의 일원화가 1년이 지나는 시점이 돼서야 분명해질 상황이다.
나오며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제도 본래의 근본취지에 입각하여 정책을 결정하고 추진해 나가는 원칙을 견지해야 할 정부가 스스로 윈칙의 부재를 시인하고, 억지의 논리를 내세우며 그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게다가 그동안 심각한 문제점이 지적되어 온 이익집단을 고용허가제 운영과정에 개입시킨다는 것은 정부가 외국인력정책의 올바른 운영을 포기하겠다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
정부는 고용허가제 일원화 이후의 제도운영에 대한 모든 논의를 원점으로 돌려 고용허가제의 근본 취지에 입각하여 노동부를 중심으로 한 정부기관에 의한 운영체계를 확립하고, 이주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을 저해하고 있는 사업장 이동제한 등의 독소조항 개폐 등 실질적인 제도 개선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