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0. 30.
Knowledge is power. 프랜시스 베이컨이 한 말인데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많은 사람들이 베이컨은 몰라도 이 의미를 학생이나 자녀에게 강조한다. 지금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이 당장 필요하지는 않지만 언젠가 필요할 수 있으니 다다익선처럼 일단 많이 배워두라며 말이다.
안다는 것은 개념이나 이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경험, 가치, 문화 등 질적인 것을 아는 것도 포함된다. 전자가 후자보다 더 좋다거나 우월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우리 교육은 명확한 개념이나 이론에 지나치게 매몰되어 있다. 수학 공식이나 영어 문법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윤리나 사회 교과마저 개념에 치중하며 학생들이 가치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논의하는 과정을 소홀히 한다.
아이폰을 사달라는 자녀에게 반성문을 쓰게 한 부모의 글을 보며 오래 전 아웃 도어 겨울 패딩이 부모의 등골 브레이커가 되었다는 기사가 떠올랐다. 몇 년 전 스포츠 브랜드 겨울 패딩이 청소년들에게 유행이었는데 조만간 아이들 관심이 다른 것으로 옮겨가면 돈이 아까워 부모들이 이 옷을 입고 다닐 거라는 SNS 우스갯 글도 생각난다.
청소년들은 또래 문화가 강하므로 친구들이 입거나 가진 것에 대해 예민할 수 있다. 처음엔 한 두 명이 갖고 있어서 별 관심을 두지 않다가도 점점 그 수가 늘어나면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비단 청소년만이 아니라 성인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런 현상이 반복될 때마다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의 문제, 교육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비싼 제품을 갖고 다니는 아이들은 자신이 돈을 벌어서 산 것이 아니라 부모의 돈으로 산 것이다. 부모의 역할은 자녀가 미성년이므로 그들에게 기본적인 의식주를 제공하고자 노력하는 것이지 값비싼 물건을 당연히 사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반성문을 쓰게 한 부모를 비롯해 많은 부모들이 자녀가 원하는 것을 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갖는다. 미안한 마음이 강할 수록 자녀가 원하는 것을 어떻게든 마련하고자 애를 쓴다. 아이들의 관심사가 바뀌면서 동일한 현상이 반복되지 않을 수 있을까?
설사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자녀에게 비싼 제품을 사 줄 수 있는 부모라 하더라도 최대한 자제하길 나는 바란다. 사실 아이들에게 부모의 돈은 자신의 돈이 아님을 알려주는 것이 자녀를 진정 사랑하는 것임을 우리는 안다. 아는 것과 별개로, 아이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혹은 아이가 기죽지 않길 바란다는 이유로 부모는 아이가 원하는 것을 사주게 된다.
'등골 브레이커'라는 단어를 아이들이 만들지 않았다. 부모인 우리들이 다른 부모와 비교하면서 스스로의 삶을 힘들게 만들고 있고 아이들이 또래와 같지 않으면 속상하고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가정과 사회는 아이들에게 거울이다. 물질에 휘둘리지 않는 부모들이 많아질수록 아이들도 또래의 물질적 자랑에 덜 휘둘릴 것이다.
비단 부모만이 아니라 학교와 교사도 같은 역할이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교과서 지식을 전달하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지식의 가치가 무엇인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학생들이 12년 동안 성장하면서 고민과 논의할 수 있는 교육이 되길 바란다. 모든 아이들이 물질적인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성인도 그렇지 않으니 말이다. 다만, 지금보다는 그 수가 더 많아져야 우리 사회와 문화가 달라질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학교 교육에서 삶의 가치가 개념과 이론 습득보다 더 강조되길 바란다. 성인이 되어 필요할 지 아닐지 모름에도 불구하고 개념과 이론을 강조한다면 성인이 되어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가치에 대한 학습은 몇 배나 더 강조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는 것이 힘이 될 테니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지식을 습득하라는 조언 대신, 알아가는 것에 대해 비판적 사고를 갖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친구들과 치열하면서도 건전하게 논의하자는 교사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가치에 대한 고민과 논의를 하게 되면 Knowledge is power 만이 아니라 푸코의 Power is knowledge의 의미도 학생들이 자연스레 배우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