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송화꽃)
채송화 꽃씨 청초 이용분
온 대지를 그렇게도 뜨겁게 달구던 여름은 가고 아침저녁 찬바람이 선듯 불어 이제는 초가을 문턱에 이르렀다.
올해 따라 우리 아파트 입구 화단 가장자리에 채송화를 색깔도 골고루 가즈런히 심어 놓았다. 원래 내가 유난히 좋아하는 꽃이긴 하지만 내가 심은 게 아니고 역시 꽃을 좋아하는 아파트 우리 동 반장님이 이를 심어 놓은 것이다. 빨깡 노랑 흰색 오렌지색의 요모조모 화사한 꽃송이들이 아파트를 드나들며 볼 때 마다 여름동안 내내 마음을 즐겁게 하여 너무나 행복했다.
아침에 지금쯤이면 하고 조금 일찍 내려가 보면 꽃은 아직 안 피었고 너무 늦게 나가면 그 여린 꽃잎이 다 피어 시들어 있다. 꽃이 알맞게 피는 때를 맞추기가 정말 까다롭다. 그냥 보고 지나치려면 너무 안타까워 아주 작은 카메라이긴 하지만 지금의 나로선 조금 무거운 걸 핸드백 속에 넣고 오며 가며 고 예쁜 것들을 찍어야만 마음이 편했다.
모든 게 한철이라 이제 꽃이 피는 세(勢)도 시들하여 꽃송이도 작아지고 피는 봉오리도 드물어지면서 씨앗이 앉기 시작하였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매번 꽃송이가 피고 질 때 마다 씨가 생겼을 테지만 이제나 저제나 무심히 지내다가 이제 찬바람이 제법 쓸쓸하게 부니 문득 꽃씨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요맘 때면 백일홍 분꽃 맨드라미 봉숭아꽃들의 씨앗이 영근다. 다음 해에 꽃을 보려면 부지런히 꽃씨를 받아 말려두어야만 된다. 최근에는 고맙게도 화훼업자들이 여린 모종을 하나하나 까만 비닐화분에 심어 키워 파니 그럴 필요가 없이 됐다. 하다못해 배추모종과 고추모종 가지모종도 그리하니 농업도 전문기술화시대에 이르렀다. 우리 모두 조금은 가난했던 시절 가을이면 꽃씨를 나누고 봄이면 비 오는 날 꽃모종을 바꿔 심으면서 이웃간에 서로의 애뜻한 정을 나누던 일이 그리운 옛 풍속이 되었다.
요즘은 서양봉숭아니 채송화도 서양채송화가 나돌아 이런 토종 채송화를 만나기가 드물어서 은근히 마음속으로 즐거워하던 참이었다. 이른 봄 이 꽃을 심은 것에 고마워하는 내 말에 반장님 말씀이 "심어 놓으면 해 마다 그 자리에서 다시 싹이 돋아나서 핀다" 하여 모종이 유난히 비싼 걸사서 심었다나. 해마다 반복적으로 심으려니 그 비용도 무시 못 하게 들어서 겨울을 난다기에 그랬단다. 장사꾼도 몰랐거나 팔기 위해 아무렇게나 대답을 한 모양이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경험하지 않은 것은 모르게 마련. 채송화는 일년초라 한해 피고 나면 그뿐이지 그 자리에 또 싹이 나고 피지는 않는다. 혹시 떨어진 그 씨앗이 다음 해에 그 자리에 다시 나는 요행이 생긴다면 모를 일이긴 하지만...
사실 올해는 유난히 날씨가 더워 그냥 지내기도 힘든 데다 남편이 수시로 건강이 시원찮아서 그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이제 꽃도 늦게 피니 지질치고 씨앗도 늦게 맺은 것이니 시원찮고 드물다. 모든 게 다 시절이 있게 마련인 것을...
아파트에 살게 되고는 한 뼘 심을 내 땅도 없는 데 예하던 습관대로 씨를 받는 나를 발견하고 한편 고소를 금치 못 하겠다. 정원이 있는 옛집에 그대로 사는 큰 아들에게 주어 내년 봄이 되면은 이 채송화 꽃씨를 정원 한 귀퉁이에 심어 보라 권해 봐야지 하며 조금은 마음에 위안을 얻는다.
2013.9.6
(서양봉숭아)
(서양채송화)
(백일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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