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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여행기를 작성하기 전, 사전에 확정된 장소에 대한 기본 정보와 최신 이야기 그리고 조선왕릉이라면 왕릉 주인에 대한 정보들을 조사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일상 속 여행은 철저히 본능에 따른 것이었으며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을 것으로 사료된다. 매우 무더웠던 여름날, 한창 카메라를 들고 주변을 바삐 다니던 와중이었다. 평소에도 시간이 있다 싶으면 항상 광화문과 청계천을 찾던 나는 문득 청계천의 그 끝이 무척 궁금해졌다.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그저 그 끝에 뭐가 있을까?라는 질문 하나가 날 움직이게 만들었으며, 그냥 카메라와 가방 하나만을 들고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정말 '그냥'. 물론 지도 어플을 통해 왕십리 부근에서 한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청계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 주변의 실제 모습을 확인하고 싶었기에 달력을 확인하고 일정을 정했다. 그날이 다가오자 아무런 생각 없이 청계광장에 도착한 나는 목적지를 향해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1. 청계광장
보통 서울 주변을 여행하거나 서울 시민들이 생각하는 청계천은 청계광장에서 종각역 주변으로 이어지는 구역을 말한다. 올해 다시 광화문에서 열린 빛초롱 축제도 청계천에서 밤하늘을 보통 수놓았는데, 설치물들이 깔린 그 공간들이 주로 이 주변으로 한정된다. 이명박 당시 서울 사지에 의해 조성된 청계천은 묻혀있던 그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물길이 이어지고 있었으며, 오늘날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장소로 자리매김했다.
북한산과 인왕산에서 흘러나온 물들이 모여 청계천의 지류를 이뤘다. 그에 대한 기록은 조선이 이 땅의 지배자로 우뚝 섰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이어졌다. 시간의 변화에 따라 주변의 풍경은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청계천은 변함없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청계광장 주변이 가장 바빠지는 시간은 오전 11시 30분부터다. 주변에 자리한 사무실에서 쏟아지던 그 직장인들의 행렬이 청계천을 주변을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 나도 이 주변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일주일에 한, 두 번 정도는 나 홀로 이곳에 앉아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있다.
한참을 걷다가 광교 주변을 넘어 종각역 쪽으로 넘어가기만 해도 금방 풍경이 바뀐다. 여전히 주변은 고층빌딩들이 즐비해 있지만, 수풀이 우거져 있는 그 사이로 물길이 쉴 새 없이 흐른다. 간혹 운이 좋다면 이곳 주변을 날아다니는 학이 물고기를 사냥하던 장면을 목도할 수 있는데, 숨 죽여 그 모습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연신 터져 나오던 탄성이 너무나도 이색적이었다. 이런 동식물들을 서울 도심 한가운데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수질관리가 그만큼 철저히 되고 있다는 증거이며, 가끔 바람이 불어올 때면 그 향긋한 풀내음이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요소로 작용한다.
벽에는 정조의 반차도가 자리했으며, 그 안에는 조선 초기의 기록과 당시의 조선왕릉의 형태를 살펴볼 수 있는 것들이 물에 잠겨 있었다. 본래 '정릉'은 오늘날 덕수궁 자리에 있었으나, 태종 이방원이 옥좌에 오르며 도성 안에 자리한 조선왕릉을 다른 곳으로 옮기도록 했다. 그때, 해체된 석조물들을 청계천 다리 복원 공사에 사용하게 했던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있는 것이다. 그 사실을 접하고 이곳을 걸었을 때, 그 모습을 눈에 담고자 한참을 살피던 순간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고층 빌딩들과 시간의 흔적들이 담긴 것들로 청계광장 주변을 설명할 수 있을 듯싶다. 사람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받는 만큼 오늘날 그 주변으로 블루보틀 커피와 더불어 보고 즐길만한 것들이 주변을 가득 채웠으며, 주말만 되면 이 주변을 여유롭게 보내고 싶은 사람들과 시위대들이 가득 채운다. 언제 어디서나 활기를 띄던 그곳. 한참을 걷다 보니 청계천 다음 구역으로 접어들 수 있었다.
2. 동대문
청계광장 권역을 지나 광교, 수표교를 지나치니 또 다른 느낌의 서울이 펼쳐졌다. 조선시대에 비유하면 한양 밖으로 흘러가던 경계에 자리했기에, 왕실행차도 옆으로 사부작 거닐던 내 발걸음이 시간의 경계에 서 있는 듯 했다. 더불어 고층빌딩들로 설명되던 곳에서 한층 그 건물들의 층고가 낮아지더니 번잡스럽던 그 직장인들의 발걸음 대신 시장상인들의 분주함이 이어졌다. 청계천 주변으로는 사람들이 많이 없었지만, 저 높은 곳에서 부터 들려오는 소리가 정겹게 느껴지기 까지 했으니 말이다.
나 홀로 여행을 시작하며, 분주해질 것 같았던 내 발걸음이 시간이 흐를수록 느려져 가는 것을 느끼고 있다. 덕분에 생각은 깊어지고, 주위를 유심히 살피며 밀도 있는 순간이 오롯이 담겼다. 흘러가는 청계천의 물이 고스란히 흘러가던 시간을 담아내고 있을 때, 현재와 맞닿아 있던 그 동대문의 모습에서 한창 흐르다가 시간이 지난 것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의 변화 어느 정도 거리를 둔 것 같던 분위기, 덕분에 나는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만끽할 수 있었다.
동대문 주변에 자리한 시장에 사무실을 둔 친구로부터 들었던 어느 날의 대화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무실로 출근하기를 수년, 그동안 주변의 사장님들과 친분을 쌓고자 마셨던 소주와 막걸리의 병을 헤아릴 수가 없다고. 더불어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다 보니, 어느새 어엿한 가게의 사장님으로 역할과 그에 따른 대우를 받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시장 상인들 사이에서 흘러나오던 그 일상 속 이야기. 그 안에 자리한 그들만의 문화들은 역시나 시간의 흐름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묵묵히 그들만의 길을 밟아가고 있었다.
한양의 경계를 넘어 밖으로 발걸음을 지속하니, 익숙한 콘크리트 덩어리의 건물들이 눈에 밟혔다. 게다가 청계천의 수위도 많이 낮아져, 더 많은 조류와 물고기들을 마주할 수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청계천에 들어간 사람들의 모습도 함께 마주할 수 있었다. 상당히 무더운 날씨로 상의를 탈의한 채, 청계천에서 청량감을 만끽하고 있었다. 개울가에 마실 나온 단란한 가족들의 모습까지 덕분에 서울의 다채로운 매력을 눈에 담을 수 있던 순간이었다.
서서히 동대문 권역에서 벗어나 왕십리 쪽으로 접어들자 지금껏 만나지 못했던 모습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다리의 교각과 더불어 청계천의 흐름을 살펴볼 수 없을 만큼의 수풀들이 우거져 있었는데, 버려진 공간인가 싶을 만큼 우거졌다. 바로 다음에 나오던 공간들을 통해 여전히 활용되고 있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서울이 아니라고 해도 될 정도의 비주얼은 신선함을 동반했다. 꽤 많은 거리와 시간들이 흘러갔음에도 불구하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던 청계천이었다.
3. 왕십리
낮과 밤이 달라 보이던 교각 주변으로는 분수가 반대편을 향해 발사되던 중이었다. 서울로 7017이 탄생했을 그 시점에, 오래 된 고가가 어떻게 재탄생 되는지를 지켜본 나로서는 그 존재에 궁금증이 절로 생길 수 밖에 없었다. 바로옆에 자리한 그 안내판을 보고 대략적인 이해를 가져갈 수 있었으며, 꽤나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특유의 분위기와 함께 어우러지던 그 철골 구조물의 모습에 마냥 이질감이 느껴지기 보다 그 존재감 만으로도 시간을 가늠할 수 있어 참으로 좋았다.
또 하나의 눈길을 끌었던 부분은 우거진 수풀들 사이에서 저 멀리 두 눈을 의심케 하는 구조물이 자리해 있어서였다. 저출산 시대에 젊은 커플들의 프러포즈를 돕고자 만들었다던데, 보자마자 이곳에서 실제로 프러포즈를 한 이들이 있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후기들을 찾아보니 몇몇 커플들이 이곳에서 행사를 치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 모습 또한 생각 외로 소박하면서도 정겨웠기에 바라보는 내내 흐뭇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청계천의 물길이 크게 돌아 한강으로 흘러 들어갈 때, 나는 그 모습을 먼발치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미연의 사고를 방지하고 싶어서였을까? 그 바로 앞까지 접근할 수 있는 길이 마땅치 않았으며, 그저 유유히 흘러가던 천변길과 멀리 보이던 한강을 통해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바로 접할 수 있었다. 물론 한창 진행 중인 여름의 그 중간에 서 있었으며, 몸은 이미 땀으로 젖어 있었기에 그곳에서 빠져나와 수분보충이 시급했다. 바로 옆으로 보이던 한양대를 크게 돌아 집으로 돌아가고 가 광화문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맡겼다.
한강에 가까워질수록 자연의 모습 그 자체였으며, 방해요소 하나 없이 유유히 흘러가던 그곳 사일러 정겹게 삼삼오오 모여 빨래를 하던 분들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불과 얼마 되지 않던 나날들의 이야기,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변화하지 않은 곳에 향수를 느낄 수 있던 공간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다. 단순한 호기심 하나만으로 시작됐던 여정의 마지막에는 사진과 지친 몸 그리고 다채로운 생각이 공존했다. 살펴보니 이와 같은 결을 가진 여행지가 몇 군데 더 있어, 종종 일상 속으로의 여행을 떠나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