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기꽃과 홍매의 궁합
집은 낡고 낡았다. 풍우를 견디며 마흔 해를 버텨왔으니 보지 않아도 지붕을 받치고 선 기둥 속은 골다공증으로 숭숭하겠다. 그걸 알려주듯 열고 닫는 문은 늘 삐꺽거린다. 문은 자신이 살아있다고 비명을 지르지만 듣는 귀는 불편하다. 벽면의 시멘트는 갈라지고 페인트는 삭아 껍질이 비듬처럼 날린다.
이런 집을 큰 돈 들여 보수하자니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냥 살수는 없는 법, 심심하면 아내 친구들이 생쥐처럼 들락거려 신경이 쓰인다.
이왕이면 멋진 풍경을 보여주면 어떨까,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집안에 꽃을 가꾸는 일이다.
마당가의 텃밭, 담장을 따라 일렁이는 꽃그늘 아래 나무 벤치 놓고 그 위에 걸터 앉아 커피에 꽃향기를 타 마시는 기분은 얼마나 구수할까. 이런 생각에 미치자 내 발길은 곧장 묘목시장으로 향한다.
판암동 가는 길목, 육교 위에 개장한 묘목 시장이 아직도 호황이다. 묘목 시장엔 다종다양한 꽃나무들이 흘러넘친다. 뿌리에 무거운 흙덩이를 매달고 화들짝 꽃을 피운 놈들도 여럿이다. 물가가 고공행진을 하니 꽃값도 덩달아 올랐다. 앙상한 뿌리만 내놓고 있는 놈들은 몇 천원에 불과하지만 흙덩이를 싸매고 있는 놈들은 십만 원대도 있다.
이왕이면 꽃도 화려하고 오래가는 놈들을 골랐다. 화무십일홍이라고, 열흘 가는 꽃이 없다고 했지만 홍매와 설중매, 배롱나무꽃은 오래 간다. 꽃 하나가 오랫동안 피는 것이 아니라 여러 꽃이 어울려 피고 지는 기간이 오래가는 것이다.
이놈들을 차에 싣고 와 마당가의 텃밭에 옮겨 심었다. 꽃봉오리가 부푼 홍매는 붉게 타오르는 박태기꽃과 어울려 조화롭다. 박태기꽃과 홍매의 궁합이 낡고 오래된 주택을 살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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