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장
박혜경
간잽이가 고등어의 대가리를 야물게 낚아챈다. 시퍼런 등짝이 금방이라도 철퍼덕 일어설 기세다. 무슨 경건한 의식이라도 치르듯 패랭이 모자를 쓴 간잽이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짭조름한 바다냄새가 나는 간잽이의 손길이 닿자 긴 여행으로 단잠에 빠졌던 고등어가 눈알을 번뜩인다. 소매 끝에 불쑥 튀어나온 간잽이의 양손은 하얀 저고리 탓에 더욱 검붉은 빛깔을 띤다. 50여 년을 간잽이로 살아왔다니 아마 손끝에서도 하얀 소금꽃이 피어오를 듯하다. 소금꽃 속으로 그 옛날 아버지의 얼굴이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어릴 적 우리 가족은 안동에서도 한참 먼 두메산골에 살았다. 산골이라 살아서 꿈틀거리는 해산물을 구경한다는 건 할아버지 환갑잔치에나 있을 법한 일이었다. 아버지는 가끔 임동면 챗거리 장터에 나가 마른 고추를 팔곤 하셨는데, 고춧값을 제법 받은 날이면 장터에서 돌아오는 아버지의 거친 손에 간고등어 한 손이 들려 있었다. 막걸리와 흙냄새만 나던 아버지의 옹이 박힌 굵은 손마디에 모처럼 비릿한 바다냄새가 났다. 두메산골에만 살던 내게 그 냄새는 바다에 대한 알 수 없는 동경을 불러왔다. 비린내 나는 아버지의 손을 돛단배처럼 이리저리 오래도록 흔들어댔다.
고등어는 등이 푸른 생선이다. 넓은 바다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고 등짝에 지도를 그린 듯 푸른 줄무늬가 깊게 새겨져 있다. 푸른 지도는 오랜 시간 바다여행에서 파도와 싸운 흔적들로 더욱 선명하다. 태평양의 푸른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고등어가 한없이 부러웠다.
고등어는 등이 푸르지만 뱃살은 눈부시게 희뿌옇다. 생선은 보통 등이 푸르고 배는 은백색을 띠는데 이는 천적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고등어의 푸른 등도 천적인 바닷새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한 처세술이다. 고등어는 봄에 산란하여 가을 무렵이면 단백질 함량이 가장 많아 ‘가을 고등어는 며느리도 주지 않는다.’는 속담처럼 으뜸으로 친다.
쌈지에 돈이 조금 만져지는 가을 추수철이 되면 아버지가 챗거리 장터에 다녀오시는 날도 잦아진다. 어머니의 속이 대문 앞 감나무 잎처럼 붉게 타들어가는 것도 모르고 아버지는 챗거리 장터 노름판에서 밤을 꼴딱 지새웠다. 달이 잠들고 부엉새가 몇 번을 울고 나서야 아버지는 새벽 별을 머리에 이고 장터에서 돌아오셨다. 밤새 기다리다 지친 어머니가 잔소리를 할라치면 아버지는 전쟁터에서 승리한 개선장군처럼 으스대며 전리품으로 간고등어를 내놓으셨다.
간고등어는 서민 밥상의 단골 반찬으로 값싸고 흔하면서도 영양이 풍부하여 바다의 보리라고도 불린다. 한 손만 구워도 할아버지에 손자까지 거뜬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 간고등어를 구워 먹고 나면 입술에 반짝반짝 윤기가 난다. 그런 날은 학교에 갈 때까지 입에 묻은 기름기를 닦지 않은 채 오래오래 비린 맛을 핥아먹었다.
안동은 내륙지방이라 싱싱한 해산물을 맛보기 어렵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영덕 강구항으로부터 해산물을 구입하는데 이러한 지리적 특성으로 안동간고등어가 만들어졌다. 그 옛날 등짐을 진 장꾼들은 영덕의 강구항에서 고등어를 등에 지거나 달구지에 싣고 이른 새벽 안동으로 출발하였다. 안동을 가기 위해 황장재 고개를 넘어 날이 저물어서야 진보 신촌마을에 도착한 장꾼들은 봉놋방 구석에서 굽은 허리를 잠시 눕혔다가 이튿날 새벽 다시 길을 나서 저녁나절이 돼서야 임동면 챗거리 장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챗거리 장터까지 오는 동안 고등어는 내륙지방의 선선한 바람과 햇볕을 쪼이며 서서히 익어간다.
하지만 고등어는 성미가 급하기 때문에 잡아 올리는 즉시 죽어버리고 그때부터 부패하기 시작한다. 강구항에서 출발한 지 하루가 지나 그대로 두면 고등어 내장이 썩어 먹을 수가 없다. 안동까지 가려면 아직 하루가 더 남았기 때문에 장꾼들은 챗거리 장터에서 고등어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제거한 후 왕소금을 뿌려 염장처리를 하였다. 부패를 막기 위해 소금을 뿌렸지만 이러한 염장처리는 고등어의 맛을 훨씬 더 구수하고 담백하게 만들었다. 부패하기 직전에 나오는 고등어 특유의 효소가 소금과 어우러져 깊은 맛을 돋워준 것이다. 챗거리 장터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안동까지 십 리를 더 걸어가는 동안 고등어는 소금간이 잘 배어 짭조름하고 감칠맛이 나는 안동간고등어가 된다.
챗거리 장터에서 아버지 손에 잡혀 온 간고등어는 두메산골 우리 집까지 오면서 적절하게 소금간이 배고 숙성이 되었다. 이른 아침부터 아궁이 숯불 위에는 지지직 쏴아쏴아 간고등어 익어가는 소리가 암탉소리와 어우러졌다. 숯불 위에서 노릇노릇 익어가는 간고등어는 즐거운 듯 파도소리를 냈다. 비록 뒤집혀지면서 한쪽 눈알이 빠지긴 했지만 간고등어는 황금빛깔 비단옷으로 갈아입은 채 밥상 한가운데 위풍당당하게 누워 있었다. 어머니는 고등어 가시를 발라 아버지와 우리 밥그릇에 차례대로 얹어주시고는 정작 당신은 눈알 빠진 대가리만 빨고 계셨다. 고등어를 구워 먹은 날이면 가끔 나는 태평양 바다를 여행하는 꿈을 꾸었다.
오후가 되자 ‘안동간고등어축제’에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고등어를 등에 진 장꾼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염장을 하는 행사장 옆에는 석쇠에 구워진 간고등어 시식코너도 있다. 반가운 인사와 악수, 왁자지껄 인파들 사이로 간고등어 익는 냄새가 구수하게 파고든다.
간잽이는 흘깃 고등어를 보면서 눈대중으로 무게를 가늠하고 왼손으로 아가미를 잡아 올리면서 다시 정확한 무게를 단다. 그 사이 오른손으로 적정한 양의 소금을 잡는다. 고등어의 무게를 다는 왼손과 소금을 뿌리는 오른손이 거의 동시에 움직인다. 간잽이의 양손은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 야무진 저울이 된다.
소금을 한 움큼 퍼 올린 오른손이 허공에서 춤을 춘다. 하얀 천일염이 싸락눈처럼 고등어 뱃속으로 녹아든다. 겉손과 속손에 골고루 소금꽃이 피어난다.
소금을 너무 적게 치면 고등어가 빨리 상하게 되고 너무 많이 치면 짜서 고등어 고유의 맛이 사라진다.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게 적당한 양의 소금을 골고루 간이 배도록 쳐야 한다. 염장을 치르자 전쟁터에서 부상당한 병사처럼 퍼질러 있던 고등어는 다시 생기를 찾아 눈알이 반질거린다. 고등어 뱃속으로 녹아든 소금꽃은 푸른 바다가 되고 어느새 고등어 눈알 위에 파도로 출렁인다.
간고등어는 두 마리의 고등어를 아가미에 꿰어서 한 손으로 판다. 그 옛날 딸린 식솔이 많았던 배고픈 서민들에게 한 마리의 자반고등어는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다. 그래서 인심이 후했던 장꾼들이 조금 큰 겉손에다 그보다 작은 속손을 끼워서 서비스로 주었던 게 아마 지금의 간고등어 한 손으로 이어진 게 아닐까.
언뜻 보면 겉손과 속손은 어미와 자식 같다. 어미가 어린 자식을 품속에 꼭 안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다시 보면 자식이 늙은 어미를 등에 업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정오가 지나 간잽이의 가녀린 등에도 그림자가 업혔다. 반백 년 가까이 장터를 떠돌아다니며 굴곡진 세월을 살아온 간잽이의 삶. 주인에게 충실한 그림자는 주인의 굽은 허리를 그대로 닮아있다. 그림자는 간잽이의 굽은 등을 포근히 안아주고 간잽이는 그림자를 듬직하게 업고 있다. 겉손과 속손이 포개진 간고등어처럼 그림자와 간잽이는 다정하게 한 손이 된다. 시간이 흘러 속손이던 그림자는 햇살을 먹고 키가 자라 어느새 겉손이 되어 간잽이의 등을 보듬는다.
삶을 살다 보면 간고등어처럼 적당한 숙성이 필요할 때가 있다. 문득 아이가 말썽을 피웠을 때 대뜸 화부터 내거나 무슨 큰일이라도 벌어진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던 기억이 스친다. 감정을 조금만 더 비우고 숙성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나의 삶은 훨씬 더 감칠맛 나지 않을까.
썩은 내장을 들어낸 텅 빈 뱃속에 왕소금을 삼키고 맛있게 숙성되어가는 안동간고등어처럼 나의 묵은 감정들을 하나씩 비워내고 염장을 한다. 매서운 감정들이 서서히 익으면서 소금꽃으로 피어나겠지. 그 옛날 챗거리 장터에서 달려온 듯한 바람이 소금꽃을 안고 뒹군다. 내일 아침 숯불 위에서는 지지직 쏴아쏴아 푸른 파도가 출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