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판은 궁창, 궁판널, 궁창널이라고도 부르며
전통창호의 하부와 머름, 누각이나 정자의 난간, 불단이나 보좌 그리고 닫집 등에서 볼 수 있다.
하동 경충사 경충당의 창호궁판-세살문의 맨 아래 하부의 널판으로 막힌 부분
경복궁 자선당 창호의 하부 머름 궁판.
창호에는 궁판이 없고 그 아래 여섯 칸으로 구성된 것이 바로 머름이라 부르는 것인데
초록(뇌록) 널판으로 막힌 부분이 머름궁판이다.
경복궁 경회루의 난간 궁판.
궁판이 이중으로 가설되어 아래 궁판은 널판에 주홍색으로 안상 문양을 그려 놓았고
위쪽 궁판에는 안상 문양대로 풍혈(風穴:바람구멍)을 뚫어놓았다.
경주 불국사 대웅전의 수미단 궁판.
수미단 탁자에 칸칸이 나누어진 부분들이 모두 궁판인데 각 단마다 다양한 안상을 새기고
그 안으로 금색의 범어(산스크리트어)와 다양한 문양들을 새겨 장엄을 하였다.
고성 청량사 대웅전 부처님 좌대 궁판
좌대 측면에 위는 안상을 새기고 꽃문양을 넣고 아래는 안상문양 없이 꽃문양을 새겼다.
경주 천수사의 원통전 닫집 궁판.
닫집 기둥 사이로 네 칸으로 나누어놓은 부분이 닫집의 궁판인데
안상 문양을 새기고 그 안으로 각종 문양을 입체로 투각해놓았다.
이 외에도 옛가구 같은 것에서 칸을 나누어 널판으로 막아놓은 부분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우선 우리 전통창호의 다양한 궁판들을 살펴보기 전에
궁판에서 많이 보이는 안상(眼象)에 대해 잠시 살펴보기로 하자.
안상은 각종 궁판 뿐이 아니고 석물의 좌대나 건물의 석조기단에서도 보이는데
사각의 궁판이나 석면에 오금곡선으로 파내어 새겨놓거나 그려놓은 문양을 말한다.
아래 사진은 경주 불국사 대웅전 정면 석등 앞의 봉로대(배례석).
보통 배례석이라 부르는데 <불국사고금역대기>에 이를 봉로대(奉爐臺)라 하였다.
향을 피우는 향로를 모시는 자리인데 정면에 보이는 측면에 안으로 도드라지게 새긴 것이 안상이다.
합천영암사지(폐사지) 쌍사자석등.
쌍사자 발 아래 복련(覆蓮:엎어진 연꽃) 아래 팔각으로 된 하대석 각 면에 안상이 새겨져 있다.
합천 영암사지 건물터의 기단
사진에 보이는 넓은 판석을 면석(面石)이라 하는데 그 면석에 안상이 새겨져 있다.
김해 동림사 대원보전 앞 석등.
현대에 조성된 석등인데 역시 석등 맨 아래의 하대석 팔각면에 안상이 새겨져 있음을 볼 수 있다.
강릉 등명락가사 범종루 난간.
난간의 목재 궁판에 새겨진 구멍뚫린 문양도 안상이다.
그러면 이제 우리 창호의 다양한 궁판들을 살펴본다.
강진 다산초당의 세살문으로 사람이 드나드는 문의 높이가 낮아 궁판 없이 살대로만 문을 짰는데
이전 민가에는 궁판이 드물고 특히 건물 내부의 문들에는 궁판을 두지 않은 것이 많았다.
경주 불국사 대웅전 배면(뒷면)의 창호
문의 키가 별로 높지 않은데도 품격을 더하기 위해 이중으로 궁판을 넣었다.
그래도 그런대로 비례감이 없어 보이지는 않는 모습이다.
보통 하나의 궁판의 보편적인 높이는 방바닥에서 60cm 정도의 높이인데
이러한 높이를 전통건축에서 '굽도리'라 표현하고
이 굽도리의 두 배쯤 되는 120cm(약4자)의 높이 정도를 '징두리'라 한다.
대개 이전 한옥에서 보면 창문 달린 벽의 중방(창문지방) 아랬부분을 가리켜 징두리라 한다.
궁궐인 경복궁 사정전 세살(띠살)창호인데 궁판이 이중으로 구성이 되었다.
문의 키는 높고 문짝 하나의 폭은 좁다 보니 시각적인 비례감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과
그 품격 또한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가 돋보인다.
아무런 그림이나 새김이 없는 궁판인데 단청을 하게 되면 문양이 들어가게 된다.
사찰의 요사채인데 드물게 삼태극 문양을 두 개씩 궁판에 새겼다.
그런데 궁판 하나를 자세히 보면 오른쪽의 삼태극은 왼쪽으로 회전하는 모습으로
나머지 왼쪽의 것은 오른쪽으로 회전하는 형국으로 표현을 해놓았는데
이 또한 음양과 천지인 삼재라는 우주 만물의 근원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안상을 새기고 그 안에 꽃문양을 넣은 궁판
안상을 그리고 그 안으로 연화를 장식한 궁판
안상 없이 꽃문양을 새긴 궁판들.
게중에 안상과 비슷한 것도 있는데 단청의 문양초가 비슷한 것이다.
귀면상과 용상(龍象)의 궁판들
최근 한 박물관 전시회에서 이제까지 귀면(혹은 도깨비상)이라고 알려져 온 것들 중 귀면이 아니라
정면에서 본 용의 얼굴이라고 수정되어 발표하였다 하는데 아직 그 뚜렸한 근거를 보지 못하였다.
귀면이든 용면이든 그것에 담긴 상징은 비슷한 것이 아닌가 싶다.
아래의 창호는 상당히 값싸게 주문을 하여 중국에서 만들어 온 것인데
선입견인지는 몰라도 문양의 느낌이 낯설기도 하였고
목재 또한 소나무과가 아니고 전혀 다른 남방계통의 산물이라서
건물의 부재들과도 많은 이질감이 들었을 뿐 아니라 수명 또한 염려가 되었다.
직접 주문하신 스님께서도 문이 잘 만들어졌느냐는 목수의 질문에 한참을 망설이다 대답을 하셨으니
우리의 느낌에 무언가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이 정도로 우리 창호의 궁판에 대해 살펴보았다.
느껴보셨겠지만 궁판이 구성된 구조물들이 의도하는 바는
그 품격을 끌어올림과 아울러 좋지 않은 기운들을 막아보고자 하는 벽사의 뜻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슴을 알 수 있겠다. |
출처: 집, 사람 그리고 길... 원문보기 글쓴이: 이목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