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 지우개의 행방 / 김도언
나는 지우개를 잘 잃어버린다
마른세수를 한다, 나를 흔들어 깨우는 움직임
글자를 써 내려가는 동안 눈이 내렸다
일기장에 꾸며낸 하루가 가득하다
창밖이 온통 새하얬는데
굵어지는 눈보라 속에서 우리는 제 자리를 지켰다
자주 입는 외투에 보풀이 일었다
엉긴 시간을 손톱 끝으로 뜯어낼 때
입가에서 각질이 떨어져 나간다
인정하는 일에는 찌꺼기가 생겼다
나는 무뎌지는 것이 두렵다고 쓴다
이건 꾸며내지 않는 이야기
책상 위를 쓸어 담는다, 나를 내버리는 움직임
페이지 채로 찢어낼 수도 있었지
종이 끝을 팽팽하게 잡아당겼을 때
창밖에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눈사태가 불빛 쪽으로 손짓하는 사람을 보았어
황급히 창문을 열자
창밖에는 따사로운 도시의 아침이
눈은 내린 적 없었다는 듯이
시치미를 떼고
나는 보풀 가득한 외투를 입고 집을 나선다
지난밤 무사했나요? 이웃에게 묻자
적당히 선선하고 평화로웠다는 대답들
정말 없던 일이었나요?
나는 지우개를 다 쓰기 전에 잃어버린다, 그러나
나는 목격한 눈사태에 대해
희미한 손짓에 대해
정화하게 진술하기 위해서
입속에서 혀를 굴리며
이미 쓰여진 세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 길위에서 헌 지우개 하나를 줍는다
지우개는 단단하다
[우수상] 보풀장 / 김예림
감자탕의 식은 살코기를
발라 먹다가
공에 맞았다
그건 감자탕집에 딸린 보풀장에서 나온 공
공을 쥐고 놀자
엄마는 나를 보풀장에 던져 놨다
거기서 기다려
그 위로 몸을 빠뜨리면
석고에 본을 뜨듯
공들이 내 몸에 맞게 자리를 옮겨 다녔다
손에 잡히는 공은 전부 던져 봤다
바닥이 보일 때까지 공의 무덤을 파헤치는 놀이
사실 그게 나인 놀이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들은 보풀장의 주인공이 된다
주체가
될 수 있다
공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시험해 보고 싶었다
있는 힘껏 허공에 떠 있는 순간은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다웠다
수많은 공과 분리되는 지점
은 바로 그런 거니까
풀장에 누워서
그녀가 나를 찾을 수 있을지
가늠해 봤다
몇몇 아이들이 내 쪽으로 들어와
나를 던지고 놀았다
혼자 감자탕의 뼈를 발라 먹고 있을 엄마의
뒷모습에
공을 던져주고 싶었다
사실은 엄마가 나를 기다려야 했다
아이들이 지나다니는 자미마다
파도가 생겼다
공기 바깥으로 넘치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는 공의 뒷모습
누군가 풀장에 들어와 공을 두고
다시 돌아나간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동아쏘시오그룹이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 공원에서 진행된 ‘제42회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을 마쳤다고 10일 밝혔다.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은 1983년 시작해 올해 42회를 맞이한 여성 백일장 대회다. 여성이면 누구나 무료로 참여할 수 있으며 참가자들은 선정된 글제에 따라 시, 산문, 아동문학(동시, 동화) 등 한 부문을 선택해 글을 짓는다.
행사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하고 수석문화재단, 동아제약, 동아에스티,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한다. 특히 올해는 작년보다 두 배 늘어난 4000만 원의 상금이 걸렸다.
제42회 백일장에 선정된 글제는 기다림, 지우개, 뜨개질, 공연으로 총 613명이 참가했다.
각 부문별로 장원 1명, 우수상 1명, 장려상 3명, 입선 4명 등 본상 27명과 특별상 2명을 포함해 29명에 대한 시상식도 이어졌다. 김도언 씨(시), 김복애 씨(산문), 고혜성 씨(아동문학)가 장원을 수상했다.
올해는 백일장 외에도 어린이 눈높이 도슨트 투어, 문학강연 및 콘서트 등의 부대행사도 준비됐다.
시상식에서 백상환 동아제약 대표는 “동아제약은 지속적으로 순수문학을 지원하고 글을 통해 세상을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