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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 피곤하다
애들 앞에서는 찬물도 못 먹는다더니 '자기소개 하지마라'는 말을 '자기소개 하지마라'로 알아듣는 사람이 있다면 피곤하다. 인간들의 백 퍼센트는 자기소개 어법을 구사한다. 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다들 붙잡혀 있다. 결박되어 있다. 사람을 옭아매는 것은 관점이다.
발이 빠른 아킬레스와 한 걸음 앞서 출발한 느림보 거북이가 달리기를 하면 누가 이기는지는 아킬레스와 거북이 사정이다. 나와 상관없다. 둘은 가까워진다. 아킬레스와 거북이는 서로를 향해 전진한다. 아킬레스가 한 걸음 뒤에서 출발했다는 것은 관측자 사정이다. 관측자를 배제해야 한다.
구조론을 만만히 보면 안 된다. 초딩 같은 이야기를 하겠는가? 이건 심오한 이야기다. 객체 내부의 자체 질서를 보라는 말이다. 메커니즘을 보라는 말이다. 행복, 사랑, 쾌락, 명성, 성공, 불로장수 이 따위 썩은 이야기 하는 사람은 결국 자신의 관심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게 자기소개다.
열정, 흥분, 무의식, 대본, 권력, 의무, 의리, 다르마를 말해야 한다. 이건 자기소개가 아니다. 무엇이 다른가? 행복, 사랑, 쾌락, 명성, 성공, 불로장수는 1인에 해당된다. 한 사람의 문제다. 그게 자기소개다. 열정, 흥분, 무의식, 대본, 권력, 의무, 의리, 다르마는 최소 두 사람이 있어야 한다.
메커니즘이기 때문이다. 자석이 서로 끌어당기는 것은 메커니즘이다. 자석이 하나 뿐인데 무얼 끌어당기겠는가? 둘 이상이 모이면 열정이 작동하고 흥분하게 되고 대본이 발생하고 인간들이 연극을 하게 된다. 역할을 나누고 집단행동을 하는 것이다. 거기서 에너지의 방향성이 작동한다.
최소 두 사람이 모여야 서열이 정해진다. 포지션이 나누어진다. 골키퍼가 될지 공격수가 될지 결정된다. 그럴 때 인간이 흥분하는 것이다. 자기소개 하는 사람과 그것을 극복한 사람은 애초에 관심사가 다르고 호르몬이 다르다. 꼬맹이들 중에 좀 덜떨어진 애들이 꼭 자기소개 어법을 쓰더라.
'나는'이라고 하지 않고 '철수는'이라고 하여 자신을 3인칭으로 부른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동적 태도다. '나'라는 말은 능동이다. 내게 책임이 있다. 어린이는 책임이 없다. 자기소개 어법을 극복하려면 능동적 사고, 긍정적 사고, 주도권을 잡는 사고라야 한다.
권리와 의무는 비례한다. 내가 주도권을 잡으면 결과는 내 책임이다. 어린이는 그것을 회피한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 짓거리를 하고 있다면? 그게 자기소개다. 인간들은 대략 3분만 대화해보면 수준을 들킨다. 자기 생각을 자꾸 이야기한다. 왜 자기 생각을 말하려고 하지? 누가 물어봤냐고?
진리생각을 말해야 한다. 영국인들이 날씨 이야기만 두 시간 동안 주구장창 하는 이유는 영국 날씨가 워낙 변화무쌍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날씨는 공유되기 때문이다. 공유되는 것을 말해야 한다. 나는 진보다, 혹은 보수다 하는 놈들은 웃긴 자들이다. 니가 뭔데 진보에 보수냐? 황당하다.
역사와 문명의 진보는 대한민국이 하는 것이고, 인류가 하는 것이고, 인간은 묻어가는 것이다. 구조론은 진보도 보수도 아니다. 세계기준으로 보면 한국이 극도의 보수 포지션이므로 진보로 틀어서 균형을 맞춰야 하는 것이다. 누가 니 생각, 니 입장 물어봤냐고? 이런 자들과 대화를 하리?
우리가 발견해야 하는 것은 메커니즘이다. 메커니즘은 기계장치다. 중요한 것은 일정한 방향으로 날아간다는 것이다. 한 명이 들어가면 확률이다. 주사위라면 1/6이다. 여러 명이 들어가면? 여럿이면 공유하고, 공유하면 효율이 발생하고, 효율을 얻으면 이기고, 이기는 넘이 앞장을 선다.
쥐떼처럼, 개미떼처럼, 메뚜기떼의 이동처럼, 무리지어 날아가는 철새들처럼 전체가 일제히 한 방향으로 가게 되는 것이며 인간은 거기에 빨대를 꽂는 것이다. 거짓말을 하면 안 되는 이유는 지기 때문이다. 개인은 이긴다. 그러나 팀이 진다. 거짓말하는 팀은 한 번은 이겨도 장기전은 진다.
공자가 도덕을 강조한 것은 그것을 봤기 때문이다. 왜 착하게 살지? 기독교라면 심판이 두려워서? 불교라면 업보가 두려워서? 유교라면 평판이 무서워서? 착하면 팀에 스카웃될 확률이 높다. 세계대전이 벌어지면 착한 팀이 나쁜 팀을 이긴다. 왜일까? 여유있는 나라가 더 착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잘 살고, 잘 살면 여유있고, 여유있으면 굳이 나쁜 짓을 할 이유가 없으므로 착한 팀에 붙는다. 그러므로 착한 팀이 이기게 되어 있다. 나쁜 팀이 나쁜 짓을 하는 이유는 절박한 사정 때문이다. 여유가 없으므로 나쁜 짓을 하는 것이다. 에너지를 비효율적으로 쓰면 당연히 여유가 없다.
선이 옳고 악이 나쁘다거나, 진보가 옳고 보수가 나쁘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다. 개별적으로는 옳고 그름이 없다. 선과 악이든, 진보와 보수든, 여럿이 모여서 장기전을 해야 비로소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효율성이 작동한다. 신의 심판, 구원 같은 것은 없고 까르마니 윤회니 하는 것도 없다.
메커니즘이 있다. 에너지의 방향성이 있다. 팀플레이가 있다.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는 에너지의 일방향성이며, 방향성은 효율성이고, 효율성은 공유하는 것이며, 공유하는 것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이고, 그것은 서로 기대는 것이다. 의지하며 빚을 지는 것이다. 전부 한 줄에 이어져 있다.
우리가 선해야 하는 이유는 빚을 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보해야 하는 이유는 역시 빚을 졌기 때문이다. 원래 세상이 앞사람에게 빚을 지는 의무의 원리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도미노는 하나가 쓰러지면 모두 쓰러진다. 세상은 도미노다. 모든 도미노는 첫 번째 도미노에 빚을 지고 있다.
첫 번째 도미노의 이름은 '신'이다. 내가 이름을 그렇게 지었기 때문이다. '손'이라고 하면 손흥민이 당황하잖아. 세상은 서로 빚을 지고 빚을 지우는 연쇄고리에 의해 작동하는 것이며 거짓이나 속임수가 끼어들면 연쇄고리가 끊어진다. 시스템이 무너진다. 건강한 시스템이 끝까지 간다.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려면 서로 공유하는 것을 찾아야 한다. 가는 길이 다르면 대화할 수 없다. 언어가 같아야 대화할 수 있다. 자기소개 하는 사람과는 대화를 할 수 없다. 니 사정은 궁금하지 않다. 당신 생각은 묻지 않았다. 자기 생각을 말하지 마라. 공유하고 의지하는것에 대해 말하라.
신의 계획
세상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하느냐 안하느냐 액션의 문제다. 생각의 문제가 아니라 행동의 문제다. 인간은 행동의 연속성에 치인다. 다른 말로는 관성의 법칙이다. 경로의존성이라고도 한다. 인간은 루틴을 정해놓고 하던 짓을 반복한다. 생각하는 척 하지만 실제로는 미리 정해진 자신의 액션을 합리화 하는데나 머리를 쓸 뿐 객체 내부의 자체 질서를 보는 자는 없다.
보통은 상대방의 카드를 짐작하고 자신이 받아치기 좋은 쪽으로 유도한다. 상대가 ‘멍청아’ 하고 대꾸하면 ‘바보야’ 하고 받아치려고 상대가 그 말을 해주기를 바라고 게임을 그쪽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그럴 때 흥분한다. 인간은 흥분상태에 갇혀서 계속 흥분상태에 머무르는 결정을 내린다. 그것이 말하자면 대본이다. 보이지 않는 손에 말려든다. 수렁에서 탈출하지 못한다.
진보는 하고 보수는 하지 않는다. 서양은 했고 동양은 하지 않았다. 서양은 나라가 쪼개져서 지들끼리 싸우다보니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동양은 황제와 대결할 상대가 없으니 굳이 할 이유가 없어서 하지 않았다. 한국은 작은 반도국가다. 하지 않으면 죽는 구조다. 일본은 섬이다. 섬은 누가 쳐들어오기 전에는 굳이 할 이유가 없다. 굳이 안해도 되면 안하는게 인간이다.
지정학이 많은 것을 결정한다. 네거리는 하기가 좋고 막다른 골목은 하지 않고 버티기가 좋다. 조선은 막다른 골목에 있었다. 태평양을 지나가는 서양 범선이 굳이 조선에 들러야 할 이유가 없다. 지금은 해양세력이 대륙을 상대하려면 반도에 교두보를 만들어야 한다. 명문대 출신이 정치를 못하는 이유는 응석받이로 자라서 굳이 안해도 되므로 하지 않는 습관이 밴 것이다.
정치는 눈치 게임이다. 등 치고 배 만지는게 일상이다. 지금 명팔이들은 이재명을 만만한 호구로 보고 뜯어먹으려고 저런다. 이재명은 밑바닥을 겪어봐서 그런 소인배의 심리를 안다. 척 하면 삼천리지. 예수는 후흑학의 달인이다. 오른쪽 뺨을 때리면 왼쪽 뺨을 돌려대는 것은 스무 수 앞을 내다보는 원대한 포석이다. 베드로 같은 촌놈들을 상대하려면 그 정도는 해줘야 한다.
촌것들은 위악을 저지른다. 주도권을 놓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일회용으로 이용되고 버려진다는 전제를 깔고 들어간다. 하인이 상전을 상대할 때는 버려질 때를 대비해서 뒷주머니를 차고 상전의 약점을 잡아놓고 게임을 시작한다. 죽어보자고 말을 안듣는 이유다. 엘리트들은 말을 잘 듣는다. 진중권 부류 엘리트가 밑바닥 애들을 만나면 피꺼솟이 된다. 차별은 당연하다.
거대한 불신의 장벽이 있다. 장벽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사람은 노무현과 이재명이다. 김대중 엘리트 – 노무현 밑바닥 – 문재인 엘리트 – 이재명 밑바닥으로 교대하는 이유가 있다. 엘리트는 대중과 함께 가는 방법을 모른다. 왼쪽 뺨을 돌려대는 기술을 모른다. 갈수록 선두와 후미 간에 간격이 벌어진다. 후단협을 조지고, 공취모를 조지고, 당원들을 달고 가야 하는 이유다.
나는 태어난 이후 쌓아놓은 모든 생각을 모순이 없게 조립해서 커다란 하나의 덩어리를 만들어 놓았다. 보통사람과는 그게 다르지 싶다. 종교인들은 모순되는 부분을 그냥 뭉개고 넘어간다. 모순되는 이유는 자기 주장이 없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밑줄쳐가며 반박하는 습관 때문이다. 진보에게는 '넌 이게 틀렸어' 하고 꼬집고 보수에게는 '넌 이게 잘못됐어' 하고 헐뜯는다.
진보를 깔때 사용하는 논리와 보수를 깔때 사용하는 논리가 다르다. 알만한 논객들은 죄다 이 기술을 쓰고 있다. 그게 소인배의 행동이다. 자기 생각은 없고 그저 남의 생각을 빈정대는 것이다. 디오게네스, 노자, 장자, 니체 등은 잔재주를 피우는 원숭이에 불과하다. 이 부분에서 완벽한 사람은 역사적으로 딱 한 사람을 발견했는데 공자다. 공자는 확실히 자기 잣대가 있었다.
괴력난신. 개소리는 멀리하라. 술이부작. 자연의 존재를 발견할 뿐 자기소개를 하지마라. 온고이지신. 기존에 있는 진리의 수레에 내 생각을 태워야 한다. 조문도 석사가의. 벌거숭이를 벌거숭이라고 말해야 한다. 아침에 도를 듣고 저녁에 죽으려면 루틴을 버리고, 대본을 버리고, 무의식을 극복해야 한다. 지사의 용기가 필요하다. 온고이지신은 보수주의로 잘못 해석되었다.
시대적 배경을 감안해야 한다. 2500년 전에 역사가 진보하고 문명이 발전한다는 생각을 할 수 없다. 공자는 그저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고 했을 뿐이다. 직선을 놔두고 곡선으로 가면 손해다. 이왕이면 직선으로 가는게 에너지를 절약한다는 점에서 합리적이다. 공자는 합리주의자다. 구조론은 결함을 발견하고 채우는 것이다. 공자는 비뚤어진 것을 보고 바로잡았을 뿐이다.
공자의 눈에 보인 것이 왜 다른 사람 눈에는 안보였을까? 내 눈에 보인 벌거숭이 임금이 다른 사람 눈에는 왜 보이지 않았을까? 보고도 눈을 감은 것이다. 건드리지 않기로 암묵적으로 합의한 것이다. 왜? 하나를 건드리면 전부 건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괴력난신을 버리면? 너무 많은 것을 잃게 된다. 그렇다면 공자는 왜? 비전을 봤기 때문이다. 공자는 메커니즘을 본 것이다.
사람들이 거짓말에 관대한 이유는 그것도 써먹을 때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때로는 속임수도 필요하고 눈치도 필요하다. 자신을 방어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자는 무엇이 다른가? 팀플레이를 봤다. 개인전은 속임수가 요긴하게 쓰이지만 단체전에 속임수는 필요없다. 게르만족은 속임수로 로마군을 물리치지만 로마군은 압도적인 전력으로 물리친다. 속임수는 백해무익이다.
진보가 깨끗한 이유는 젊은 사람이 실력이 있으므로 굳이 부패를 저지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보수가 부패한 이유는 늙어서 퇴물이 되면 부패가 유일한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뉴이재명이 추악한 이유는 이재명팔이가 그들의 유일한 기술이기 때문이다. 공자는 압도적인 힘을 본 것이다. 그 힘은 개인이 아닌 팀에서 나온다. 팀을 유지하려면 인, 의, 지, 신, 예가 필요하다.
석가는 모순을 보고도 뭉갰다. 아트만이 없으면 윤회도 없다. 석가는 죽기 직전에야 바른 말을 했다. 윤회고 나발이고 다 필요없고 법을 따르라. 다르마를 따르라. 진리를 따르라. 의무를 다하라. 빚을 갚아라. 석가는 알면서 왜 윤회를 버리지 못했을까? 자궁의 존재라는 딜레마 때문이다. 이쪽에 무가 있으면 반대편에 유가 있어야 한다. 무가 아트만이라면 유는 다르마다.
아트만의 부정은 다르마의 긍정에 필요한 단서다. 아트만과 다르마는 대칭관계다. 다르마가 자궁이라면 아트만은 자식이다. 다르마가 필름이라면 아트만은 스크린의 영상이다. 이쪽이 그림자라면 저쪽은 빛이다. 그림자가 허상이면 빛은 진상이다. 그림자와 빛이 둘 다 가짜일 수는 없다. 석가는 다르마를 얼핏 봤지만 윤회라는 사람을 옭아매는 시스템을 대체하지는 못했다.
승단을 유지하려면 사람을 옭아매는 올가미가 필요하다. 우리는 진리에 묶여 있다. 의무에 묶여 있다. 빚에 묶여 있다. 집단에 묶여 있다. 석가는 연기가 서로 기대고 있는 사실을 알았지만 낳음의 자궁을 보지 못했다. 원본과 복제본 사이의 일방향성을 몰랐다. 공자가 본 집단의 방향성이 가지는 관성력의 힘을 석가는 보지 못했다. 소승에 머무르며 대승의 집단구원을 몰랐다.
부정은 긍정으로 가는 단서다. 비어 있음을 봤거든 그것을 채워 완성해야 한다. 석가는 아트만의 비어있음을 봤지만 채우는 방법을 몰랐다. 윤회는 여러 아트만의 연결이다. 무를 모아도 무에 불과하다. 다르마로 채워야 한다. 의무를 다하여 채워진다. 빚을 갚는다. 태어난다는 것은 권력을 공짜로 가지는 것이며 그만큼 빚이 발생한다. 석가는 그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어릴 때는 진보 말을 들으면 진보가 맞는 것 같고 보수 말을 들으면 보수가 맞는 것 같았다. 중도니 중용이니 하며 물타기할 수 없다. 자존심이 있지. 얼버무리는게 어딨어? 머리가 하얗게 되도록 생각을 했다. 선진보 후보수의 수순으로 해결했다. 원효의 화쟁과 같다. 전체적으로는 진보가 옳다. 진보는 동이고 보수는 정인데 동이 정보다 크다. 구조의 정답은 동적균형이다.
진보는 공격이고 보수는 수비다. 진보는 아이디어 열개를 투척해서 하나만 맞으면 맞고 보수는 열가지 중에 하나만 틀려도 틀린다. 수비는 한 구멍만 뚫려도 전멸하기 때문이다. 새는 바가지는 한 구멍만 뚫려도 못 쓰게 된다. 공격은 한 구멍만 뚫어도 성공이다. 열 곳을 공격하되 아홉 곳은 훼이크고 주공은 하나다. 조공은 거들 뿐. 진보는 틀려도 옳고 보수는 옳아도 그르다.
진보는 9개가 틀려도 그 과정에 1개를 성공시킬 확률을 높였다. 보수는 9개를 막아놓고 안심하다가 약한 고리 하나에 무너진다. 똑똑한 사람은 진보를 맡고 멍청한 사람은 보수를 맡는 역할분담이 최선이다. 정답은 중도가 아니라 메커니즘의 조절이다. 공간의 포석과 시간의 수순이 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면 망한다. 둘이 공유하는 축을 틀어쥐고 핸들링을 잘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모순은 메커니즘 안에서 화쟁된다. 갈등과 모순은 팀플레이 속에서 용해된다. 다름을 존중하고 공존할 수 있다. 서로의 일부를 공유하는 데서 에너지의 효율성은 얻어진다. 우리는 그 효율성에 빨대를 꽂아야 한다. 용감한 생각을 해야 한다. 남의 눈치를 보지 말고 뇌를 사용해야 한다. 메커니즘을 장악해야 가능하다. 인간은 서열동물이다. 이 언덕에서 무너진다.
대부분 서열 정하다가 망한다. 진리가 앞서고, 신이 앞서고, 의무가 앞선다. 의무가 있다는 것은 포지션이 있다는 것이다. 의무에서 권력이 나오는데 의무도 없이 권력을 잡으려 하므로 망한다. 행선지를 정해놓고 핸들을 잡아야 하는데 일단 핸들을 잡고 나중에 행선지를 찾으려 하니 윤석열된다. 윤석열이 용케 찾아낸 행선지는 자기를 운전석에서 끌어내리는 이정표였다.
자신에게 역할을 주려고 하므로 서열에 매몰된다. 의무가 없으므로 역할이 없다. 집단에 빚이 없기 때문이다. 궤도에 올라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의리를 빚진 존재다. 의무를 가진 존재다. 권력은 의무보다 작다. 권력이 의무를 넘는 순간 칼은 자기를 찌른다. 내게 주어진 의무를 발견하지 못하면 남을 험담한다. 자체동력이 없으면 남의 동력에 빌붙는다.
남을 괴롭혀 되돌아오는 반작용 힘에 빌붙으려는 수작이다. 똥파리는 당원들을 자극해서 반발력에 빨대를 꽂으려고 한다. 자기 힘이 없으므로 남의 힘을 건드려서 반작용에 묻어가기다. 남의 아이디어를 물어볼 수는 없기 때문에 면박을 줘서 상대가 실수로 자기 아이디어를 실토하게 만들려고 한다. 그것은 앵벌이다. 보수는 전체가 앵벌이다. 이찍은 인생 자체가 앵벌이다.
내게는 계획이 있다. 그것은 신의 계획에서 빌린 것이다. 나는 인간들이 어느 언덕에서 자빠지는지 알고 있다. '자빠짐 주의'라고 표지판을 세운다. 인간들은 서열본능에 자빠지고, 흥분해서 자빠지고, 집단 무의식에 자빠지고, 대본만 던져주면 자빠진다. 내시균형에 갇힌다. 경로의존성에서 자빠지고 루틴에서 자빠진다. 괴력난신에서 자빠진다. 공자 외에는 모두 자빠졌다.
나는 칼럼을 쓸때 오늘은 또 어떻게 인간들 뒤통수를 때려주나 하는 관점으로 접근한다. 그들이 수평에서 참호전을 벌일 때 나는 공중전을 펼친다. 그들은 대응할 수 없다. 예상하지 못한 각도에서 포탄이 날아오기 때문이다. 오마이뉴스와 한겨레들은 다르다. 그들은 평면 위에서 참호전을 벌인다. 어제 이만큼 밀렸으니 오늘은 우리가 이만큼 적군을 밀어내야 한다는 식이다.
그들의 기술은 주어를 놔두고 술어를 비트는 것이다. '아'를 '어'로 바꾼다. 밑줄 그어가며 팩트를 공격한다. 자료조사만 많이 하면 변희재도 진중권을 이긴다. 프레임에 의존한다. 프레임은 천칭저울이다. 밸런스가 복원되므로 잘해봤자 출발선으로 돌아온다. 술어를 비틀어봤자 주어가 원위치 시킨다. 술어를 '예쁘다'로 고쳐봤자 주어가 '오징어'라면 도로아미타불이 된다.
관점을 공격해야 한다. 주어를 치고, 전제를 치고, 사건의 이전단계를 쳐야 한다. 전투가 치열한 곳에 자원의 축차투입은 의미없다. 아군도 없고 적군도 없는 무주공산을 장악하고 거기에 새로운 전단을 열어야 한다. 그곳은 내가 먼저 유리한 지형을 선점하고 있으므로 나의 한 마디에 상대는 열 마디로 대응해야 한다. 지정학적인 정치지형을 이용하여 적의 손실을 강요한다.
우주에 힘은 하나다. 그것은 밸런스의 복원력이다. 강력, 양력, 중력, 전자기력, 암흑에너지까지 모두 밸런스의 복원력이다. 인간이 의무를 다하고 빚을 갚아야 하는 이유는 밸런스를 복원하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눌린 스프링은 원래로 돌아가려고 한다. 의리를 지키는 이유는 부부의 의리, 동료와의 의리에 의해 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의리의 근원을 추적하면 신에 이른다.
구조론은 쉽다
구조론은 쉬운데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니 황당하다. 초등학생의 아이디어를 발전시킨 것이다. 아홉살 정도의 분별력만 있으면 이해해야 한다. 문제는 배짱이다. 첫 단추를 바꾸면 다 바꿔야 한다. 송두리째 갈아엎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벌거숭이 임금을 벌거숭이라고 말해야 한다.
'라고한다의 법칙'이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액션이다. 네트 너머로 공을 받아넘긴다. 선수가 아니라 후수다. 상대의 반응을 끌어내려는 행동이다. 행동은 연속성이 있다. 상대의 다음 수를 의식하고 상대가 뭐라든 내가 다음 수로 받아치기 좋은 액션을 한다. 사건의 흐름에 말려든다.
지구가 평평한 것은 지구 사정이고 평평하다고 말하는 것은 인간 사정이다. 말하는 사람의 자기소개다. 나는 인간들이 이 언덕에 걸려 있다고 본다. 다들 말하기 좋게 말한다. 받아치기 좋은 액션이다. 벌거숭이를 벌거숭이라고 말하기는 편하지 않다. 자기를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보는 사람은 없다.
추령재 넘어 동해바다를 처음 보고 충격을 받았다. 뭐야? 지구가 둥글잖아. 애매하지 않았다. 이건 누가 봐도 둥글다. 이게 논쟁거리가 된다고? 인간들이 단체로 눈이 삔 거야? 사흘만에 지구가 둥근 30가지 시각적 증거를 찾았다. 35가지를 더 찾아 65가지다. 과학적 증거 빼고 눈에 보이는 것이다.
인간들이 도무지 생각을 안하고 산다는 증거를 대려는 것이다. 생각은 한다고 되는게 아니고 단서를 잡아야 된다. 무언가 부재를 느끼고 그것을 채워서 그림을 완성하는게 생각이다. 채울 것이 채워진 전체 모습이 미리 그려져 있어야 한다. 그것은 메커니즘과 시스템이다. 본능적으로 느껴야 한다.
물레방아나, 천칭저울이나, 모래시계를 보면 있을 것이 있다는 느낌이 든다. 허전하지 않다. 균형이 맞다. 들어가고 나가고 딱 맞네. 나오는건 있는데 들어간게 없다면? 뭔가 잘못된 것이다. 들어간건 있는데 나오는게 없다면? 역시 잘못된 것이다. 들어간 만큼 나와줘야 보기에 좋다. 안정감을 느낀다.
물레만 있고 방아가 없다거나, 모래시계의 윗부분만 있고 아랫부분이 없다거나, 천칭저울에 접시가 하나 뿐이라면 이상하다. 균형이 안 맞다. 비뚤어져 있다. 불안하다. 완전성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감각적으로 알아챈다. 구조는 갖춤이다. 앞뒤가 맞고, 선후가 맞고, 좌우 균형이 맞으면 편안하다.
커티스와 셰플리의 대논쟁도 황당하다. 안드로메다가 우리은하 안에 있느냐 밖에 있느냐다. 이게 논쟁거리가 된다고? 몽골 아저씨 시력 7.0으로 보면 명확하게 보인다. 우리은하가 10만 광년에 안드로메다가 250만 광년이면 대단한 차이가 아니다. 망원경이 없어도 시력이 좋으면 식별할 수 있다.
내부의 질서가 보인다. 성운은 별이 폭발한 잔해다. 척력의 작용이다. 은하는 별이 모여 있다. 인력의 작용이다. 에너지의 방향이 다르다. 은하는 가운데가 별의 밀도가 높다. 인력이 작용한 증거다. 안드로메다가 성운이라면 균형이 안 맞다. 비슷한 것이 우리은하 주변에 여럿 흩어져 있어야 한다.
안드로메다가 하나밖에 없다면 어색하다. 나무에 가지가 하나 밖에 없다고? 안드로메다 옆에 식별되는 작은 위성 은하가 두 개 있다. 역시 가운데가 밝고 주변이 흐리다. 인력이 작용한 결과다. 칸트의 섬 우주론은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니다. 칸트의 놀라운 통찰력도 아니다. 그것은 배짱과 자존심이다.
칸트는 벌거숭이 임금을 벌거숭이라고 말해버렸다. 왜? 칸트니까. 자존심이 있으니까. 과학자들이 개소리 하는 이유는 주눅이 들어서다. 뒷감당이 걱정된 것이다. 만유인력을 배웠으면 별들이 서로 당겨서 모인다는 사실을 알 것이고 안드로메다는 고르게 작은 별들이 모여 서로 잡아당기고 있다.
그곳만 특별히 작은 별들이 모여 있다는게 이상하므로 거리가 더 멀 것이다. 그렇다면 더 멀리 있는 은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칸트 생각이다. 우주는 균일하고 균형이 맞아야 하는데 안드로메다가 생뚱맞게 붙어 있어서 어색하므로 더 멀리 더 많은 은하들이 있어야 메커니즘이 들어맞는 것이다.
나뭇가지들이 균형있게 고루 흩어져 있는 것이 메커니즘이다. 자연이 규칙적이고 질서가 있는 것은 메커니즘 때문이다. 우주도 규칙적이어야 한다. 불규칙하다면 거리 차이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다. 칸트 생각은 천재의 통찰이 아닌 보통사람이 자연스러운 생각을 용감하게 말한 것이다.
셰플리 주장은 뉴턴을 모욕하고 있다. 학교에서 만유인력 안 배웠어? 진화생물학자들도 다윈을 모욕하고 있다. 라마르크의 점진적 진화는 틀렸다고 다윈 형님이 진작에 말했잖아. 그런데 왜 구부정한 반직립이 등장해? 왜 천문학자들은 뉴턴 싸대기를 치고 자칭 친명은 이재명을 괴롭히는 것일까?
쫄아 있기 때문이다. 베게너의 대륙이동설도 눈에 보이는 화석 증거가 있다. 알프스 꼭대기에 조개 화석이 쏟아진다. 알프스를 수직으로 5천미터를 밀어올리는 거대한 엔진은? 이런 것은 어린이도 알 수 있다. 높은 산은 화산이 폭발하거나 아니면 대륙이 밀어올리거나 두 가지 탄생방법 밖에 없다.
알프스가 뾰족한 것은 최근에 융기했다는 증거다. 정치판이 황당하게 돌아가는 것도 인간들이 생각을 안하기 때문이다. 1+1은 2가 안 된다. 배가 침몰하려고 하면 탈출해야 한다. 황금을 바다에 던지면 살고 던지지 않으면 죽는다. 바다에 던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상황에 다른 사람 눈치를 본다.
자기 판단은 없다. 간이 큰 사람이 먹는 판이다. 쫄아있는 이유는 자기 생각 전체를 통일하는 체계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태어난 이후 쌓아놓은 모든 생각을 모순이 없게 조립해서 커다란 덩어리를 만들어 놓았다. 보통사람과는 그게 다르지 싶다. 종교인은 모순되는 부분을 그냥 뭉개고 넘어간다.
구조론을 힘들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인간들이 다 바보라는 사실을 확인시키면 된다. 이것은 사건의 방향 문제다. 한번 방향이 틀어지면 나쁜 프레임에 갇혀서 탈출을 못한다. 애초에 뇌의 사용법에 문제가 있다. 왜 인간들이 자기소개 어법을 쓸까? 뭐든 자기를 개입시킨다. 라고한다의 법칙이다.
시스템과 메커니즘을 모르기 때문이다. 수학문제는 공식에 대입해 풀면서 사건문제는 메커니즘에 대입하지 않는다. 자기를 끼워넣어야 시스템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물레방아가 도는 것은 물레와 방아의 대결인데 떼어놓으면? 물레방아는 돌지 않는다. 내가 직접 돌려야 한다. 개입하는 것이다.
활이냐 화살이냐. 물레냐 방아냐. 식사냐 배설이냐. 입력이냐 출력이냐. 그것이 메커니즘이다. 원인과 결과가 한 세트를 이루는데 따로따로 분리한다. 화살이 안맞으면 활을 똑바로 쏴야 맞는데 대신 과녁을 키운다. 더 큰 과녁을 그려보세. 다들 이러고 있다. 맞은편에 활이 있다는 생각을 못한다.
머리 속에 메커니즘이 탑재되어 있지 않으니 부재를 느끼지 못한다. 애초에 생각하는 능력 자체가 없다. 선문답도 웃긴게 깨달음에 3초 이상 걸린다는 밥통들과 무슨 대화를 한다는 말인가? 물론 감이 떠올라도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느낌 자체는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기계적이다.
결과 뒤에 원인 있다. 화살 뒤에 활 있다. 방아 뒤에 물레 있다. 바퀴 뒤에 엔진 있다. 그것을 그것이게 하는 그것은 반드시 있다. 모든 자연의 존재는 모태가 있고 자궁이 있다. 화살의 자궁은 활, 바퀴의 자궁은 엔진, 그림자의 자궁은 빛, 단어의 자궁은 맥락, 존재의 자궁은 메커니즘이다. 낳음이다.
자연의 자궁은 낳음이다. 인간들에게는 낳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낳아지지 않고 어떻게 존재하겠는가? 뿌리가 없는데 어떻게 자라겠는가? 계곡이 없는데 어떻게 흐르겠는가? 낳는 원인과 낳아진 결과를 연결시켜 하나의 세트로 보는게 메커니즘이다. 거기서 결핍되면 어색함을 느껴야 한다.
생각은 결핍을 채우는 것이다. 산수문제도 빈 칸을 채운다. 정권을 재창출하려면 먼저 자궁을 건설해야 한다. 문재인은 그것을 하지 않았다. 씨줄 날줄이 모여야 되는데 좌파만 남기고 우파를 배제하니 높은 지지율로도 선거에 진다. 탁혁민만 혼자 튀었다. 물고기를 잡으려면 양쪽에서 몰아야 한다.
어부들도 쌍끌이를 아는데 탁현민 혼자 외끌이 하니 물고기가 오른쪽으로 도망친다. 여기서 결핍이 느껴지지 않나? 어색하지 않나? 오른쪽 바퀴가 빠진게 보이지 않나? 지금 자칭 친명들도 마찬가지다. 왼쪽과 오른쪽이 균형이 맞아야 쌍끌이가 되는데 누가 왼쪽에 있나? 왼쪽은 당원 주권이다.
장사꾼들도 귀퉁이로 가면 죽는다는 것을 안다. 네거리가 흥하는 이유는 왼쪽 오른쪽 어디로든 갈 수 있는 길목이기 때문이다. 네거리에 진을 치고 있다가 적군이 나타나면 반대쪽으로 도망치면 된다. 어디가 네거리냐? 중도다. 구석에 몰리면 죽는다. 그러나 사실은 약간 왼쪽에 옮겨 있어야 한다.
어차피 오른쪽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것이 왼쪽에서 출발해서 오른쪽으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 계속 왼쪽에 있으면 말라죽고 너무 일찍 오른쪽으로 가도 퍼져 죽는다는 것이 동적균형이다. 자전거는 페달을 밟아야 중심이 잡힌다. 중간은 균형이 아니고 전진하는 진보가 균형을 이룬다.
비행기는 날아야 뜨고, 물고기는 헤엄쳐야 살고, 인류는 진보해야 현상을 겨우 유지한다. 뜨고 난 다음에 날겠다는 사람은 죽는다. 균형이 잡히면 페달을 밟겠다는 사람은 영원히 자전거타기를 배우지 못한다. 왜? 메커니즘이 아니가 때문이다. 물레방아의 물레와 자동차의 엔진은 움직이는 것이다.
동이 정을 낳는다. 움직이는 것이 멈추어 있는 것의 어미다. 메커니즘은 움직임을 반영하고 있다. 나무는 자라는 메커니즘이고, 비는 내리는 메커니즘이고, 바람은 부는 메커니즘이고, 베는 짜는 메커니즘이고, 정치는 진보하는 메커니즘이다. 모든 멈추어 있는 것은 움직이는 것의 부속품들이다.
그냥 머리에 힘 주고 앉아있으면서 생각을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머리에 메커니즘을 그려야 한다. 이게 본능적으로 되는 것인데 안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가운데 잘록하게 노즐을 그리고 좌우에 에너지 입력부와 출력부를 그려야 한다. 무엇이 가운데 노즐로 모아주는가?
무엇이 출구로 뱉어주는가? 하나의 사건은 다섯가지를 결정해야 한다. 작용하면 곧바로 반작용한다면 이런 구조가 필요없다. 그러나 열역학 1법칙은 작용했는데 반작용이 은폐되거나 지연되기 때문에 만들어진 법칙이다. 팽이를 때리면 반작용은 어디로 갔지? 더 빨라진 회전속도 속에 숨어 있다.
질은 작용을 받아들이는 크기다. 질이 좋으면 외부 작용을 많이 받아들이고 질이 나쁘면 깨진다. 입자는 외부 작용을 내부에 저장하므로 반작용이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힘은 반작용의 방향을 틀어 풍선효과를 일으킨다. 운동은 반작용의 시간을 지연시킨다. 량은 반작용의 힘이 외부에 드러난다.
구조는 넓어진다
구조는 무조건 넓어진다. 엔트로피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각 단계마다 5배씩 선택지가 늘어난다. 나무는 줄기에서 가지와 잎으로 갈수록 숫자가 늘어난다. 무조건 증가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모래시계의 허리가 잘록하기 때문에 오해할수 있다. 이건 다른 이야기다.
구조.. 구조는 무조건 넓어진다.
모형.. 구조 모형은 좁아졌다가 넓어진다.
구조의 모형의 허리가 잘록한 것은 힘을 정밀하게 통제하려고 인간들이 도구를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허리를 부풀려 놓은 것도 있다. 자동차의 기어는 여러 단이 있다. 좁혀지지 않는다. 페인트붓은 접점이 넓다. 이는 짧은 시간에 많은 면적을 칠하려고 인간들이 넓혀 놓은 것이다.
인간들이 만든 도구는 대부분 상부구조를 인간이 맡고 하부구조만 작동하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그 접점이 되는 허리가 잘록하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에서 신과 인간의 손가락이 만나는 접점은 잘록하다. 미켈란젤로가 그림을 그렇게 그렸기 때문이다. 두 손으로 부둥켜 안으면 반대다.
허리가 잘록한 것은 지렛대의 원리를 사용하여 힘을 조절하기 쉽게 하려는 것이다. 펜치의 손잡이는 크고 날은 작다. 강한 힘을 낼 수 있다. 빠루라고 불리는 쇠지레의 손잡이는 길고 날은 짧다. 그래야 못을 쉽게 뽑을 수 있다. 즉 힘 부분을 예리하게 좁혀놓아야 힘을 통제하기가 쉬운 것이다.
볼펜과 종이가 만나는 접점은 좁은 것은 가는 글씨를 쓰려는 것이다. 큰 붓은 오히려 넓다. 쟁기의 날이 좁은 것은 소가 힘이 없기 때문이다. 트랙터는 쟁기날이 많아서 흙과 만나는 접점이 넓다. 불도저나 지게차의 날도 접점이 넓다. 피아노는 건반이 많고 기타는 현을 여럿으로 늘려 놓았다.
가야금은 열두줄이고, 거문고는 여섯 줄인데, 해금은 두 줄이다. 인간이 그렇게 만들었다. 모래시계의 허리가 굵으면 모래가 너무 빨리 떨어진다. 맷돌의 구멍이 넓으면 콩이 갈리지 않고 나온다. 힘을 전달하는 접점이 넓으면 거칠어진다. 전축의 바늘이 굵다면? 젓가락의 끝부분이 뭉툭하면?
힘 부분이 잘록한 것은 그래야 정밀하게 통제되기 때문이다. 바늘의 끝이 가느다란 것은 옷감이 얇기 때문이다. 소 코뚜레를 꿰는 바늘은 가늘지 않다. 뜨게질 바늘이나 가죽바늘도 굵다. 에밀레종을 매다는 종고리는 가늘지 않다. 운동은 시간을 통제한다. 주전자 물부리가 길면 천천히 따른다.
주전자 물부리가 짧으면 물을 엎지르는 수가 있다. 주전자 물부리의 길이는 적당해야 한다. 질, 입자, 힘, 운동, 량 모두 적당한 형태가 있다. 그 중에 힘은 각이 꺾이는 부분이므로 뾰족하거나, 잘록하거나, 날카롭다. 지렛대의 원리가 반영되어 있다. 받침점에서 작용점이 힘점보다 가까워야 한다.
질 - 울타리를 쳐서 외부를 차단한다. 울타리는 커야 한다.
입자 - 구심점이 되는 한 점에 모아야 한다. 바퀴살은 중심에 모인다.
힘 - 접점이 되는 날 부분은 예리해야 한다. 허리가 잘록한 경우가 많다.
운동 - 변화를 외부로 전달하는 부분은 적절한 길이를 가져야 한다.
량 - 변화를 외부로 빠져나가는 말단부는 많아야 한다.
엔진의 힘이 너무 강해서 약화시키려고 한다면 허리를 넓게 만들면 되는데 인간들은 언제나 힘이 부족하므로 그럴 일은 잘 없다. 돈이 너무 많아서 첩을 열명이나 들였다면 그 경우다. 시장은 제품을 넓은 공간에 전시한다. 이는 접촉면을 넓히는 것이다. 최대시야의 아이맥스 스크린도 그렇다.
사건 안에서 구조는 무조건 늘어난다. 하나의 계에 입자는 여럿, 하나의 입자에 힘은 여럿, 하나의 힘에 운동은 여럿, 하나의 운동에 량은 여럿이다. 의사결정은 여럿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부가 질이라면 어떤 손님이냐에 따라 남자 혹은 여자가 입자로 가정을 대표한다.
질 - 바퀴테는 넓다.
입자 - 바퀴축은 좁다.
힘 - 바퀴살이 하나이면 입자의 350도 각도 중에 한 각도의 바퀴살만 선택된다. 잘록한 모형은 바퀴살이 한개인 경우다.
운동 - 바퀴살은 적당히 길다.
량 - 바퀴의 요철은 적당히 많다.
구조의 힘 단계가 뾰족한 것은 힘의 방향을 꺾기 때문이다. 각이 꺾인다. 그것은 힘의 성질이다. 각이 여러번 꺾여서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모래가 옆으로도 떨어지게 구멍이 여럿인 모래시계라면? 잘록한 것은 인간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칼날은 예리하지만 영화소품용 칼은 날이 뭉툭하다.
질, 입자, 힘, 운동, 량 모두 적당한 형태가 있다. 힘은 허리나 관절에 해당하므로 허리가 가늘어야 하지만 스모 선수는 허리가 굵다. 하여간 집게 손가락은 코를 파기 좋게 만들어져 있고 새끼 손가락은 귀를 후비기 좋게 만들어져 있다. 각자 용도가 있는 것이다. 중지는 빡큐를 날리기 적당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