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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강해 (1)
1%의 기적을 이루는 사람들
딤후 1:8-15
I. 서론
지금 러시아에서는 월드컵이 열리고 있습니다. 평소에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 분들도 월드컵 경기에는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만약 이번 월드컵을 시청하고 계신다면, 어느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으십니까? 아무래도 우리는 한국 사람이니 대한민국과 독일과의 경기를 가장 많이 기억하실 것 같습니다. 저는 이 경기를 라이브로 시청하지는 못했지만, 유튜브로 하이라이트를 봤습니다. 모두 잘 아시겠지만, 대한민국이 독일과의 경기에서 2:0으로 승리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 경기를 “1%의 확률로 이룬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기사에서는 독일이 7:0으로 대한민국을 이길 확률이 대한민국이 2:0으로 독일을 이길 확률보다 더 높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독일이 FIFA 랭킹 1위이고, 대한민국은 57위이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독일은 이번 경기에서 대한민국에 지면, 바로 16강 탈락이기 때문에 사력을 다할 수 밖에 없는 경기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과는 대한민국의 2:0 승리로 끝났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요? 당연히 모든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서 죽기살기로 뛰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축구 전문가들이 내놓은 논평들 가운데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한 선수가 있습니다. 바로, 골키퍼 조현우 선수입니다. 왜냐하면, 이 선수를 빼놓고 이번 승리를 이야기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과 독일의 경기가 끝난 후, 영국 BBC가 경기에 출전한 양 팀의 모든 선수들에 대해서 평점을 매겼는데, 조현우 선수가 양 팀을 통틀어 최고 평점을 받았고, 당당히 그 경기의 MOM(최우수선수)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전체 조별 예선 경기의 각 포지션별로 최우수 선수를 뽑았는데, 역시 조현우 선수가 최고의 골키퍼로 선정되었습니다.
저는 이번 대한민국과 독일의 경기를 보면서 이 경기가 디모데후서의 배경과 너무나도 흡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디모데후서를 기록할 당시의 상황은 초대 교회가 1%의 생존률도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외부적으로는 로마 황제가 기독교를 박해하고 있었고, 내부적으로는 신생 초대교회들이 분열되고 있었으며, 수많은 이단들이 생겨나서 기독교의 복음을 변질시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이런 상황에서 바울은 로마 감옥에 갇히고만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 로마 황제 네로로부터 사형당할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의 후계자인 디모데는 성격이 소심했을 뿐만 아니라 나이도 어렸고 몸도 약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마지막 남은 자신의 진액을 쏟아서 디모데에게 편지를 쓴 것입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를 읽어 보면, 바울의 주옥 같은 말들이 계속 등장하는 것입니다. 몇 가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딤후 2: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딤후 2:22,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딤후 3:14,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딤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딤후 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딤후 4:5,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우리가 오늘 읽은 본문인 디모데후서 1장에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권면한 내용이 나옵니다. 크게 두 가지입니다. 딤후 1:8,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딤후 1:13-14,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내가 너에게 들려준 복음을 지키라. 이 두 가지 권면은 바울이 말년에 디모데에게 개인적으로 한 것이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들어야 할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II. 본론
1. 먼저,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내용을 살펴 보겠습니다.
8절,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8절은 “그러므로”로 시작합니다. 8절 이전에서 형식적인 인사말을 한 후, 본격적으로 한 첫 마디가 디모데에게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것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디모데후서에서 계속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왜 바울은 디모데에게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말했을까요? 이 세상에서 고난을 받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텐데 말입니다. 그 이유는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갈 때, 고난은 피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절대 고난을 당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면, 이것은 수영을 배우려고 하면서 물을 묻히지 않겠다는 말과 같은 것이고, 피아노를 배우려고 하면서 건반을 두드리지 않겠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복음을 전파하면, 고난은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이 세상에서 선한 일을 많이 하신 분도 없을 것입니다. 어디를 가나 병자와 약자를 보살펴 주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사시면서 어떤 악한 행동을 했습니까? 아닙니다. 오직 복음을 증거하는 삶을 사신 분입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이 무슨 죄를 지어서 유대인들로부터 돌을 맞고, 네로로부터 사형을 당한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그렇게 된 것입니다.
“현대인들이 어떤 사고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을까”를 아는 방법 중 하나는 현재 베스트셀러로 팔리고 있는 책들을 연구해 보는 것입니다. 요즘 뜨고 있는 작가 중에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라는 교수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중세전쟁사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 역사학 교수입니다. 한국에도 이 교수의 책이 몇 권 번역이 되었는데, 50만부 이상 팔려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이 교수의 책 중에서 『사피엔스』라는 책이 있는데,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생물학에 따르면, 사람은 창조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사람에게 무언가를 ‘부여’하는 ‘창조주’ 같은 것도 없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맹목적인 진화과정뿐이며, 개인은 어떤 목적도 없는 그 과정에서 탄생한다.” 저는 이 작가의 생각이 많은 현대인들의 생각을 대변해 준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생활하면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고,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복음을 전할 때, 배척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입을 닫고 고난을 피할 것인가? 아니면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함으로 고난을 받을 것인가?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합니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그리고 우리에게도 동일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2. 둘째, “복음을 지키라”는 내용을 살펴 보겠습니다.
13-14절,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바울은 본문에서 “지키라”는 말을 두 번 반복해서 말했습니다. 여기서 “지키라”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필라쏘”(phylasso)인데, 문자적으로 “어떤 것을 잃어버리거나 손상을 입지 않도록 지키라”는 의미입니다. 같은 단어가 누가복음 11장에서 사용되었습니다. 눅 11:21-22,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더 강한 자가 와서 그를 굴복시킬 때에는 그가 믿던 무장을 빼앗고 그의 재물을 나누느니라”
그러니까, 바울이 권면한 것은 “복음의 내용을 잃어버리거나 손상을 입지 않도록 지키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왜 이런 부탁을 디모데에게 했을까요? 그 이유는 초대교회 당시 복음을 변질시키는 이단들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디모데가 복음을 굳건히 잘 지키기 위해서는 먼저 바울이 전한 복음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이 무엇인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9-11절,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11절을 보시면, 바울이 “이 복음을 위해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복음이란 9-10절에서 설명한 내용입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무엇입니까?
9절,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방법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위대로 심판하신다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살아남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조금 더 자세히 보시면, 구원과 소명이 함께 등장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9절,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무슨 말입니까? 구원받은 사람은 모두 소명자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입니다. 복음은 받기만 하고 끝나면 안 됩니다. 복음은 복음을 모르는 사람에게 계속 전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축구 선수 중에 이영표 선수가 최근에 쓴 책인 『생각이 내가 된다』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오늘날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루에 100원씩만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가난과 기근은 사라질 것이다.” 나는 깊은 충격을 받았다. 그 순간까지 이 세상이 불공평한 것은 모두 다 하나님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글귀를 읽고 난 후, 이 세상이 불공평해진 이유는 하나님이 불공평하셔서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은 내가 생각하는 공평과 하나님이 생각하는 공평의 차원이 다르다는 사실도 알려 주셨다. 그전까지 내가 생각한 공평이란 배고픈 아이 세 명 앞에 놓인 3개의 빵을 하나씩 나누어 주는 것이었다. 3개의 빵을 세 명의 아이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는 것만큼 공평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하나님의 방법은 달랐다. 하나님은 3개의 빵을 한 아이에게 모두 주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나누라!” 이것이 바로 세상의 공평을 이루는 하나님의 방법이고,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신 이유였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복음을 먼저 주신 이유는 “나누라”고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잘 보시면, 소명자로의 부르심 역시 우리의 행위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뜻과 은혜대로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나서 복음을 먼저 듣고 믿게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왜 이 말을 디모데에게 하고 있을까요?
디모데의 상황 때문입니다. 디모데가 에베소 교회를 담임할 때는 아시아에 있는 교회들이 모두 바울로부터 돌아셨습니다. 15절,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는 부겔로와 허모게네도 있느니라” 로마는 끊임없이 초대교회를 박해했습니다. 그리고 이단은 계속 생겨났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디모데는 소극적인 사람이었고, 나이도 어렸으며, 건강도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디모데 자신은 바울 뒤를 이어서 에베소 교회를 목회하기에 부적합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런 디모데에게 바울이 편지를 써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한 소명자로 부르신 것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다. 우리의 조건을 보고 우리를 부르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로 우리를 부르셨다. 사랑하는 디모데야,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야 한다. 그리할 때, 질그릇과 같은 우리를 통하여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III.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처한 환경은 어떻습니까? 로마 황제의 박해는 없을지 몰라도 현대 사회가 복음에 대하여 가지는 반감은 결코 적지 않습니다. 당장 예수만이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한다면, 세상에서 왕따 당할 것이 분명하고, 기독교만 옳다고 말하는 편협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고 비난을 들을 것입니다. 1%의 기적이 필요한 시점인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바울의 권면을 들어야 합니다. 1)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을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2) 복음을 지키기 위해서 복음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알고, 거룩한 소명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크신 은혜를 베풀어 주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