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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 칼 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
[제5장 과거와 세상에 빚을 진 사람들]
영어권에서는 발전적인 의미로 '과거를 물려받은 사람(heirs of the ages)' 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일본인은 진짜 과거에 빚을 진 사람이다 과거 뿐만 아니다 세상 모든 것에 빚을 지고 있다 세상에 태어난 것도 교육을 받은 것도 지금 별탈없이 지내고 있는 모든 것이 세상 덕분이고 빚이다
일본인이 생각하는 정의로움인 기(義)는 그런 모든 채무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아는 것이다 미국인은 그런 것들이 누구의 덕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본인들은 그런 미국인을 엽신여긴다 쉽지는 않겠지만 이런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들이 왜 갑자기 화를 내는지 왜 극단적으로 자기를 희생하는지를 이해할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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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말에 온(恩)이 있다 obligation, loyalty, kindness, love 등으로 번역되기도 하나 의미가 조금씩 다르다
일본의 온은 사람이 최대한 짊어져야 하는 채무 부담 등을 의미한다 상대방을 온진(恩人)이라 부른다 윗사람이나 동등한 계층에게는 온을 받았다 하나 아랫계층 사람한테 받을 경우에는 불쾌한 열등감을 느낀다
일본 교과서에 주인을 기다리는 하치라는 개 이야기가 나온다 개도 온을 갚는다고 설명한다
일본인이 빚을 지고 있는 사람은 최고 윗사람이다 시대에 따라 지방영주 봉건영주 쇼군에서 천왕으로 변한다 천왕의 온을 이야기할 때는 헌신적으로 한없이 갚아야 하는 것으로 연결된다
일본인에게는 온을 잊지 않는 것이 아주 중요한 덕목이다
일본군은 모든 경우를 천왕의 온과 연결시킨다 천왕의 이름으로 하사한 한개피의 담배 한모금의 사케(酒)에서 천왕의 온을 새긴다 가미카제(神風)는 천왕의 온에 보답하는 행위이다 태평양의 조그만 섬을 지키던 일본 병사가 곡싸이(玉碎: 구슬이 아름답게 부서지듯이 서슴없이 자살하는 것) 하는 것도 천왕의 온에 보답하는 행위이다
부모에게 받은 온도 있다 동양적인 효행의 기초이다 자식은 부모에게 빚을 지고 있으며 그것을 갚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여야 한다 일본 속담이 있다 '자식을 낳아 봐야 부모의 은혜를 안다' 미국에서는 부모에게 친절히 하는 정도이다 일본인은 이런 미국인을 멸시한다
일본인은 자기 자식을 잘 키우는 것도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일본인은 현실적인 보살핌을 갚는다는 생각에서 생전에 얼굴 본 적 있는 조상만 모신다
교사나 주인에 대한 온이 있다 그들은 세상살이를 잘 하게 해준 온진이기 때문에 무슨 부탁이든 들어줘야 하고 혹시 죽으면 어린 가족을 대신 보살펴 주면서 갚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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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을 받는 것은 대단히 중대한 사건이다 '받은 온을 만분의 일도 못갚는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연히 잘 모르는 사람에게서 온을 받을 경우 다시 보답해야 하는 부채를 갖게되기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 때로는 불쾌하게 생각한다 심지어 대등한 사람에게서 받아도 불안하게 생각한다 여러가지 온에 얽키기 싫기 때문이다
특이한 현상이 있다 일본인은 길거리에서 모르는 누가 다쳤을 때 경찰보다 먼저 도와주려 나서지 않는다 잘못하면 그사람이 원치않는 온을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과거 법령 중에 '싸움이 나면 쓸데 없는 참견을 하지마라'는 문구가 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을 도우려 들면 혹시 나쁜 이익을 노리는가 하는 의심을 받기도 한다
일본인은 온에 휩쓸리는 것을 싫어한다 모르는 사람에게서 담배 한개비를 얻어 피워도 마음이 편치 않다 정중하게 '기노도쿠(気の毒: '독이 있는 느낌')라고 인사한다 영어로 Thank you but I am sorry 등의 표현이다 아리가토(有り難う:'쉽지 않은 일입니다')라는 말은 내 물건을 사주는 것이 쉽지 않은데 사주어서 큰 은혜를 입었다는 인삿말이다 스미마센 (済みません: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도 '당신에게 온을 입었으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고 나도 은혜를 갚아야 하나 당장 보답할 길이 없고 앞으로도 만날 기회가 없어 무척 마음이 괴롭습니다' 라는 I am sorry I apologize 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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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강한 표현이 있다 가타지케나이(忝(な)い·辱い) '당신의 각별한 온으로 모욕을 입었다'와 '감사하다'라는 두가지 뜻이 같이 담겨있다 상인들이 단골손님에게 하는 인사말이다 첩으로 지명된 소녀가 영주에게 하던 인사말이기도 하다 바로 이 하지(恥)가 일본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감정이다
이런 채무감은 전력을 다하여 갚으려는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때로는 이런 부담스러운 온을 받지 않으려고 화를 낸다
인기소설 '봇창'에서 '...시골 학교에 배치되어 주변과 어울리지 못하는 봇창에게 한 선생이 친절하게 다가온다 어느날 이 친절한 선생이 뒤에서 봇창에게 나쁜 이야기를 한다는 소문을 듣고 괴로워 하던 봇창은 즉시 그 선생에게 지난번 그가 사준 빙수값 1전5리를 던져 주며 마음의 빚을 우선 정리한다....' 온을 먼저 갚고 싸우겠다는 행동이다
받을 만한 사람에게서 받는 온은 편안하게 받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오히려 고통이 된다 이렇게 일본에서는 누구에게 온을 받았다고 화를 내는 이유가 있다
미국인에게는 조그만 빙수라든지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라든지 하는 것은 댓가를 바라지 않는 일상적인 표시이지만 일본인에게는 반드시 갚아야 하는 빚이다 일본 속담이 있다 '온을 받으려면 한없이 넓은 마음을 타고나야 한다'
참조: <국화와 칼> 발췌요약 2020.03.28
다음은 제6장: 만분의 일의 은혜갚음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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