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종교때문에 미쳐돌아가던 시절 1618년부터 1648년까지 유럽에서는 무려 30년동안 전쟁이 벌어졌다 이름도단순하다 30년전쟁 요즘기준으로도 긴전쟁인데 그시대에 30년이면 거의한세대가 통째로 전쟁속에서 살았다는뜻이다 그런데 재미있는것은 같은시기 동아시아에서도 꽤큰사건들이 이어지고 있었다는사실이다 한반도 일본아들이 처들어와 1592년에일어났던 임진왜란이 1598년에 끝난뒤 조선은 말그대로 불탄 집을치우는 중이었다 나라곳곳은 폐허였고 백성들은 겨우 숨을돌리고 있었다 그런데문제는 남쪽만이아니었다 북쪽에서 새로운세력이 빠르게 커지고있었기 때문이다 훗날 청나라가되는 후금이었다 이때 조선을 다스리던 왕이 바로광해군이다 광해군은 꽤 현실적인 인간이었다 명나라와의 의리는 중요했지만 북쪽에서 힘을키우는 후금을 괜히자극할 필요도없다고 생각했다 한마디로 외교 전략은 이것이었다 현명한판단 둘다 건드리지말고 상황을보자 이외교가 시험대에오른 사건이있었다 1619년 심하전투다 명나라가 후금을 공격하면서 조선에게말한다 우리랑 같이가자 거절하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결국장수 강홍립에게 약1만3천명의 군사를 주어파병한다 하지만 광해군은 몰래 밀지를보낸다 형세를잘보고… 대처하라 외교적으로 번역하면 이런뜻이었다 명나라 체면은세워주되 우리까지 같이 망하지는말자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명나라군대는 후금에게 크게패배했다 강홍립은 상황을보고 후금에항복하며 이렇게말한다 이거… 우리왕이 시켜서 억지로온겁니다 후금도그말을 어느정도 받아들였고 덕분에조선은 큰화를 피할수있었다 꽤현실적인 외교였다 요기까지는 그런대로 박수를 보낼만했다 하지만 임진왜란을 치루었던 조선의멍청한 선비들은 이외교가 마음에 들지않았다 그들은 명나라와의 의리를 더중요하게 생각했다 의리는 무슨얼어죽을.. 결국 서인세력은 쿠데타를일으킨다 총대장은 김류라는실세 인조의 신임을받았던 이귀 현실주의자 최명길 청나라 항복문서를찢은 김상헌 야릇한성격 송시열 이들이구테타를 일으킨 주역이다 성공했으니말이지 이때 실패했다면 무기징역 혹은 사형감이었다 1623년 인조반정이다 광해군은쫓겨나고 인조가 왕이된다 그리고 외교정책이 갑자기바뀐다 요즈음처럼 중립 외교없다 현실외교없다 이제 슬로건은 단하나였다 친명배금 명나라와는 친하고 후금은배척한다 문제는 후금이 이슬로건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는것이다 결국 전쟁이터졌다 1627년 후금이조선을 공격한다 이런 칠칠맞게 이것이 정묘호란이다 조정은 강화도로도망가고 결국후금과 형제 관계를맺으며 전쟁을끝낸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않는다 1636년후금은 국호를 청나라로바꾸고 더강력한 제국이된다 그리고 황제 홍타이지가 조선에게말한다 이제 형제가아니라 신하가 되는게 어떠한가 조선은 거부하는데 멍청하게스리 삼척동자가 판단했어도 이렇게 국토가 쪼그라들지 않았을텐데 아무튼 청나라군대 10만이 밀고내려온다 이것이 병자호란이다 안타까운일이다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들어가버티는데 무려 47일동안 문제는식량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었다 결국더 버티지못하고 항복한다 짜잔 항복식은 한강가 삼전도에서 열렸다 여기서인조는 청 황제에게 세번절하고 아홉번 하이바를조아리는 삼배구 고두례를한다 그리고 이장면을 기념하기위해 세워진것이 바로 삼전도비다 멍청한 신하들이 당파싸움에다 큰나라에 사대를 한다했던것이 결국 피를부른것이다 바로 이시기 유럽에서는 훨씬더 큰난리가 벌어지고있다 그유명한 30년전쟁이다 전쟁의 시작은 아주황당했다 1618년 보헤미아의 개신교귀족들이 가톨릭탄압에 항의하며 합스부르크 왕의사절단 세명을 성밖창문으로 내던져버린 이른바 프라하 창문 투척사건이 그발단이었다 보헤미아는 현재의 체코공화국 서부 지역을말한다 30년전쟁의 발단이된 그유명한 창문투척사건이 일어난곳이 바로 보헤미아의 수도였던 프라하이다 지금의 독일동쪽 오스트리아 북쪽에 딱붙어있는 분지지형이다 당시 보헤미아왕국은 신성 로마제국내에서 가장 세력이강하고 부유한 지역중하나였다 황제를선출할 권리가있는 7선제후중 한명이었을만큼 정치적 위상도대단했다 하필이면 왜 여기서전쟁이 시작됐을까 이곳은 이미 100년전부터 얀후스라는 인물을통해 종교개혁의 바람이 거셌던곳이라 개신교 신자가 아주많았다 그런데 합스부르크 가문의 가톨릭황제가 이제부터 모두 가톨릭만믿어라 라고 강요하며 개신교예배당을 폐쇄해버린다 이때황제는 예수회교육을 철저히받은 지독한 원리주의자 골수 가톨릭신자였다 그문제의 인물이 30년전쟁의 도화선에 불을붙이고 내땅에서는 오직 가톨릭만 믿어야한다며 고집을 꺾지않았던 바로 페르디난트 2세다 그는 당시유럽에서 가장강력한 집안이었던 합스부르크 가문출신으로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이자 보헤미아의 왕이었다 종교라는이름으로 옆집사람을 물어뜯는 서구적광기를 상징하는 인물이기도하다 합스부르크 가문의심장은 지금의 오스트리아 빈이었다 여기서시작해 독일지역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자리를 수백년간독점했다 하지만 이들의영토는 오스트리아에만 머물지않았다 30년전쟁 당시 합스부르크는 크게 두줄기로나뉘어 유럽을 양옆에서 집어삼키고있었다 동쪽은 오스트리아 헝가리 그리고 전쟁의발단이된 보헤미아<체코>를 지배했고 서쪽은지금의 스페인과 네덜란드 벨기에 그리고이탈리아 남부와 저멀리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까지 다스렸다 지도를 펼쳐놓고보면 유럽의 한복판 독일/오스트리아 서쪽끝 스페인을 합스부르크라는 한집안이 꽉잡고 있었던셈이다 프랑스같은 나라들이 이러다 유럽전체가 합스부르크 가문의 개인 정원이되겠다며 공포를 느낀것도 무리가아니었다 30년전쟁 1618–1648 당시의 유럽지도를보면 왜 이전쟁이 거대한 난투극이었는지 한눈에 알수있다 한복판을 차지하고있는것은 지금의 독일지역인 신성 로마제국이다 하지만 이름만 제국일뿐 실제로는 300여개의 자잘한 영주국가와 자유도시들이 뒤엉켜있었다 북쪽은 주로개신교 루터교세력이 남쪽과 서쪽은 가톨릭세력이 촘촘하게 박혀있었다 거의 모든전투가 이 제국안에서 벌어졌다 스웨덴군이 북쪽에서내려오고 프랑스군이 서쪽에서들어오고 스페인군이 남쪽에서올라오며 이 누더기 지도위를 피로물들였다 합스부르크 가문이 유럽을양옆에서 쥐어짜는 형국이었다 오른쪽동부는 오스트리아 빈을중심으로 보헤미아 <체코>와 헝가리를장악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이고 왼쪽은<서부> 스페인본토와 네덜란드남부 이탈리아 일부를차지한 스페인 합스부르크 이 가문의영광을 하나로 잇기위해 중간에 낀 개신교지역들을 무력으로 압박하려다보니 유럽전체가 폭발 할수밖에없었던 지리적 구조였다 이때 정중앙에서 합스부르크에 포위된 형상이었던 프랑스는 가톨릭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생존을위해 개신교세력의 뒷배 노릇을하며 전쟁의 판도를흔들었다 스웨덴은 북방의 사자라불린 구스타프 아돌프 왕을앞세워 발트해를넘어 독일북부로 깊숙이 침공해들어왔다 이들의 군홧발아래 독일북부의 국경선은 수시로바뀌었다 이런상항에서 30년전쟁의 도화선에 불을붙이고 내땅에서는 오직 가톨릭만 믿어야한다며 고집을 꺾지않았던 그문제의 인물은 바로 페르디난트 2세다 보헤미아의 개신교귀족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가톨릭황제의 종교정책에 불만이 쌓여있었다 예배당은폐쇄되고 신앙의자유는 점점 좁아지고있었다 그런데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합스부르크 왕의사절단 세명이 프라하성으로 찾아온다 지금으로치면 대화로 풀어보자는 자리였다 하지만 그날 회의분위기는 처음부터 심상치않았다 이미분노가 하이바끝까지 차올라있던 보헤미아귀족들은 사절단의 설명을듣다가 결국 폭발하고만다 그리고 그들이선택한 항의방식은… 상당히 직설적이었다 귀족들은 사절단을붙잡더니 프라하성의 높은창문으로 끌고가서 그대로밖으로 던져버린다 이사건이 바로 역사에남은 프라하 창문투척사건이다 놀랍게도 사절단은 죽지않았다 아래에 쌓여있던 거름더미위로 떨어졌기때문이다 이장면을두고 당시 사람들은 또한번싸웠다 가톨릭 측은말했다 천사가 그들을구했다 개신교측은 냉정하게말했다 아니 그냥 똥위에 떨어진거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같았다 이창문 투척 사건하나가 결국 유럽전체를 30년동안 피로물들이는 거대한전쟁 즉 30년전쟁의 도화선이 되었기때문이다 당시전쟁의 중심에는 페르디난트 2세가있었다 그는 신성로마제국 황제이자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이었다 그의 생각은 단순했다 내땅에서는 가톨릭만 믿어야한다 문제는 그제국안에 개신교국가가 잔뜩 있었다는것이다 북쪽은 주로개신교 루터교세력이 남쪽과서쪽은 가톨릭 세력이 촘촘하게 박혀있었다 거의 모든전투가 이제국안에서 벌어졌다 스웨덴군이 북쪽에서내려오고 프랑스군이 서쪽에서들어오고 스페인군이 남쪽에서올라오며 이 누더기지도위를 피로 물들였다 합스부르크 가문이 유럽을양옆에서 쥐어짜는 형국이었다 오른쪽은 동부 오스트리아 빈을중심으로 보헤미아 체코와 헝가리를장악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이고 왼쪽은 서부 스페인본토와 네덜란드남부 이탈리아 일부를차지한 스페인 합스부르크 이 가문의영광을 하나로잇기위해 중간에낀 개신교지역들을 무력으로 압박하려다보니 유럽전체가 폭발 할수밖에없었던 지리적 구조였다 이때 정중앙에서 합스부르크에 포위된 형상이었던 프랑스는 가톨릭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생존을위해 개신교세력의 뒷배 노릇을하며 전쟁의 판도를흔들었다 스웨덴은 북방의 사자라불린 구스타프 아돌프 왕을앞세워 발트해를넘어 독일북부로 깊숙이 침공해들어왔다 이들의 군홧발아래 독일북부의 국경선은 수시로바뀌었다 결국 유럽전체가 전쟁에휘말린다 유럽은 말그대로 거대한 난투극이된다 당시군대는 지금처럼 국가 군대가 아니었다 대부분 용병이었다 돈만주면 싸우고 돈이끊기면 마을을털었다 군대가지나가면 남는것은 불타버린마을 굶주린아이들 텅빈 곡창뿐이었다 특히 독일지역은 거의 초토화되었다 전쟁으로 죽은사람만 약800만 명에이른다 당시 유럽인구의 상당한 비율이었다 30년동안싸운끝에 유럽은 결국 평화협정을 맺는다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이다 이조약의핵심은 사실 매우단순했다 서로종교 간섭하지말자 놀랍게도 유럽은 800만명이 죽은뒤에야 이상식을합의했다 결국 30년전쟁은 거창한 신학논쟁의 승리가 아니었다 그저 유럽인들이 서로를 너무많이 죽여버린뒤에야 깨달은 사실하나였다 남이 어떤신을믿든.. 그냥 내버려두자 인류 역사는 가끔 이런모습이다 아주당연한 상식을 배우기위해 상상 할수없을만큼 많은 피를흘리는것 30년전쟁은 바로 그런역사였다 17세기초중반 동양의 조선과 서양의유럽은 마치 서로짠듯이 신념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자해공갈단에 휘말려있었다 먼저 저멀리 유럽을보면 이들은 무려30년동안 우리집 하나님이진짜고 너희집 하나님은가짜라는 논쟁을 칼과총으로 해결하려들었다 말이좋아 종교전쟁이지 실상은 내신념이 옳다는것을 증명하기위해 옆집 사람의심장에 구멍을내고 도시전체를 바비큐로만드는 광기의 대잔치였다 수백만명의 생명이 연기처럼사라진 1648년이 되어서야 그들은피냄새 가득한 폐허위에서 멍한표정으로 주저앉아 겨우 한마디를내뱉는다 아, 그냥 남이누굴믿든 신경 끄고살걸 이 지극히평범한 상식하나를 배우기위해 유럽은 한세대의 미래를통째로 장례식장에 바친셈이다 그시각 조선역시 명분이라는 마약에 취해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미숨이 넘어가고있는 명나라와의 의리를 지키겠다고 눈앞에서 이빨을드러낸 청나라<후금>를 향해 너희는 오랑캐니까 예의나배우라며 훈수를 두었으니말이다 방안에 호랑이가 들어왔는데 너는 족보도없으니 내방에서나가라고 꾸짖는 선비의 기개였다고나 할까 결국 그 고결한 자존심의 영수증은 남한산성의 매서운 추위와 삼전도의 차가운바닥 그리고 청나라로끌려간 수십만 민초의눈물로 결제되었다 결국 이시기의 역사가 우리에게던지는 조롱섞인 질문은 단하나였다 당신의 그잘난신념이 굶주리고죽어가는 사람들의 목숨보다 무거운가 라는것이다 지도층이방안에서 붓을굴리며 대의와 진리를논할때 정작 그들이지켜야할 백성들은 명분이라는 제단위에 올려진 제물이되었다 30년전쟁과 호란은 우리에게 뼈아픈 교훈을남긴다 상식은 언제나 비극이 끝난뒤에야 도착하는 지각생이며 그 지각의대가는 언제나 아무죄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가장 가혹하게 치른다는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