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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문화사랑 오솔길 원문보기 글쓴이: 광나루
숙휘공주 묘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 인평위(寅平尉) 정제현(鄭齊賢)과 효종의 4녀 숙휘공주(淑徽公主)의 합장 묘역 전경 |
숙휘공주(淑徽公主, 1642년~1696년)는 조선 제17대 왕 효종과 인선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 1653년(효종 4) 우참찬 정유성(鄭維城)의 손자인 인평위(寅平尉) 정제현(鄭齊賢)에게 하가하였으나 일찍 남편을 여의었다. |
▲ 묘역 찾기가 쉽지 않으니 하단의 지도를 잘 보시기 바라며, 묘역 주변까지 승용차가 들어 갑니다. 길도 없는 우측 산자락으로... |
▲ 숙휘공주 묘역 하단의 묘역 |
▲ 두 번째 묘역 전방 윗쪽에 살짝 보이는 묘역이... |
《조선왕조실록》현종 실록에 따르면, 효종은 숙휘공주 내외를 위해 크고 화려한 집을 지어 주었는데 정유성이 집의 크기를 줄여 달라고 간하였고 공주도 궁에 청하여 70칸을 줄였다. |
▲ 숙휘공주 묘역으로 오르기 직전에 내려다 본 모습과 숙휘공주 묘역으로 바로 올라서 본 모습입니다. |
1696년(숙종 22) 공주의 병이 심해져 숙종이 직접 병문안을 갔으나 별 차도가 없이 10월 27일 세상을 떠났다. 숙종은 공주의 집으로 조문을 가고 제수를 넉넉히 내리도록 명하였다. 소생으로는 직장(直長) 정태일(鄭台一)이 있다. |
▲ 숙휘공주와 인평위 정제현의 합장 묘역 전경 |
정제현(鄭齊賢, 미상∼1662년)의 본관은 연일(延日). 정몽주(鄭夢周)의 9대손인 우의정(右議政) 정유성(鄭維城)의 손자로 효종(孝宗)의 부마(駙馬)이다. |
▲ 숙휘공주와 인평위 정제현의 묘 |
▲ 묘비와 향로석 |
1653년(효종 4)에 인평위(寅平尉)가 되어 효종의 제4녀 숙휘공주에게 장가들었다. 1658년(효종 9)에 도둑 체포와 관련해 자신의 집에 관원(官員)이 들어와 모욕을 주었음을 상소하고 관리의 처벌을 빌었다. |
▲ 묘역내 좌우측 석물 모습 |
▲ 묘역에 곡장이 있었으나 지금은 초석만 남아 있습니다. |
이에 대해 당시 간원이었던 대사간(大司諫) 이홍연(李弘淵)과 정언(正言) 김만기(金萬基)는 정제현이 상소가 외람되다며 오히려 그의 파직을 청했다. |
▲ 숙휘공주 묘역 뒤에서 바라 본 모습 |
제17대 효종대왕(孝宗大王) [1619 ~ 1659] 가계도
정비 인선왕후 장씨(仁宣王后 張氏) [1618 ~ 1674] 적1남 군(君) [생몰년 미상]
서1녀 숙녕옹주(淑寧翁主) [1649 ~ 1668] |
신한첩 곤(보물 1629-2호) |
이 첩은 효종(孝宗, 1619~1659), 현종(顯宗, 1641~1674), 숙종(肅宗, 1661~1720), 효종비 인선왕후(仁宣王后, 1618~1674), 현종비 명성왕후(明聖王后, 1642~1683), 숙종비 인현왕후(仁顯王后, 1667~1701)가 효종의 넷째딸 숙휘공주(淑徽公主)에게 보낸 한글 어찰을 모은 것이다.
숙휘공주는 연일정씨 인평위(寅平尉) 정제현(鄭齊賢)과 혼인하였다. 수록된 어찰은 효종 2통, 현종 3통, 숙종 6통, 인선왕후 18통, 명성왕후 2통, 인현왕후 5통 등 모두 36통이다. 처음의 장황 그대로 남아 있는데, 표지에 “신한첩 곤(宸翰帖 坤)”이란 제서(題書)가 쓰여 있듯이 원래 건·곤(乾·坤) 2첩이었다.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이 소장한 조선시대 왕실의 편지첩인 '신한첩'(宸翰帖)은 효종, 현종, 숙종 등 세 왕과 인선왕후, 명성왕후, 인현왕후 등 세 왕비 등 6명이 효종의 넷째 딸인 숙휘공주에게 보내는 것인데 공주는 인일 정씨 집안의 정제현과 혼인해 자녀 2명을 낳았으나 1명은 어려서 죽고 남편과 다른 자식도 젊은 나이에 죽어 결국 양자를 들여 대를 잇는다는 내용 등이 수록됐다. |
숙휘공주 묘역 위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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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중앙의 시작에서 빨간 선을 따라서 오르면 능선상에 숙휘공주 묘역이 있습니다. 소재지 : 경기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고읍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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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상단의 빨간선 부분에 숙휘공주 묘역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하단 시작 부분의 온녕군 묘역을 기준으로 위치를 가늠하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