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적 필연성
Inner Necessity 内在需要
내적 필연성(內的必然性)은 화가 칸딘스키가 말한 예술론이다. 칸딘스키는 색채, 형태, 조형 등 회화작품은 인간 내면의 정신적 법칙이 반영된다는 내적 필연성을 강조했다. 우주와 인간의 내면에는 필연적 법칙이 있고, 그 필연적 법칙이 정신과 감정으로 분출된다는 것이다. 표현된 결과는 사물의 형상과 같을 수도 있고 사물의 형상과 다를 수도 있다. 칸딘스키에 의하면, 사물의 형상과 표현된 결과가 같은 것은 재현예술이다. 그런데 재현은 가시적 표면을 묘사한 것이므로 본질이 아니다. 반면 표현은 내면을 묘사하는 것이다. 화가는 내적 본질을 묘사해야만 보편성을 얻을 수 있다. 사물의 형상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개별성은 있지만, 보편성은 없다. 그러므로 화가는 사물과 자신 내면에 있는 본질을 표현해야 한다. 이것이 본질적 진리이고 내적 필연성이다. 내적 필연성은 소책자 [예술의 정신적인 것에 관하여](1911)에 설명되어 있다.
칸딘스키가 인상주의풍의 구상회화에서 표현주의를 거쳐 추상화로 나간 이유는 자신의 내적 필연성 때문이다. 이런 그의 예술론에는 정신적인 러시아 정교와 신지학(Theosophy)의 영향이 컸다. 칸딘스키는 영적인 믿음을 중시하는 러시아 정교와 러시아 민속예술, 그리고 우주와 영혼의 교감을 중시하는 신지학으로부터 물질 이면의 정신세계를 알게 되었다. 우주에는 우주의 보편적 법칙이 있고, 자연에는 자연의 보편적 법칙이 있다. 그런데 인간은 우주와 자연의 보편적 법칙과 원리를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감각으로는 내면의 법칙과 원리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영혼의 울림(Klang)을 찾아 깊은 사유를 하면 내면의 법칙과 원리를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화가는 물질로 구성된 표면을 재현하지 말고 물질 내면의 정신 그리고 정신 내면의 우주적 본질을 표현해야 한다. 물질세계에 얽매이지 않으면 자유의 세계가 열린다.
내적 필연성(innere Notwendigkeit)이 정신의 직관과 사유를 거쳐 예술작품으로 표현될 때 사람들은 영혼의 내적 울림(inner vibration)을 느낀다. 그 내적 필연성은 다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우주의 필연성은 우주가 존재하고 진화하는 원리다. 둘째, 인간의 정신적 필연성은 우주적 필연성을 체화한 인간 내면의 필연성이다. 셋째, (정신이 표현된) 예술작품의 필연성은 우주의 영혼과 인간의 정신을 표현한 작품의 필연성이다. 예술작품의 필연성은 창작의 근본원리, 창작과정의 필연성, 작품 내의 색채, 형태, 구도의 필연적 조화다. 작품은 내적 필연성을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역시 내적 필연성을 공유하고 있는) 관객들도 영혼의 울림을 들을 수 있다. 영혼의 소리는 리듬, 선율, 박자를 가진 음악이다. 음악은 근본적으로 추상 예술이다. 따라서 우주의 깊은 소리, 영혼의 울림, 예술작품의 향연은 내적 필연성을 가지고 있다.
칸딘스키는 미의 기준인 내적 필연성의 원리를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색채와 형태 같은 요소의 조화이다. 이것은 ‘내적 필연성이 조화롭게 표현되었는가?’에 해당한다. 둘째,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조화로운 구성이다. 이것은 ‘내적 필연성이 균형 있게 표현되었는가?’에 해당한다. 셋째, 구성된 부분과 전체의 유기적 조형이다. 이것은 ‘부분과 전체가 유기적으로 짜여 있는가?’에 해당한다. 예술작품의 내적 필연성은 우주의 법칙이 자연, 인간, 화가, 작품에 모두 내재하는 것을 전제한다. 모든 존재에 공통적인 보편성은 수, 시간, 공간, 도형과 같은 것이다. 이것을 하나로 통합한 것이 기하(幾何)다. 칸딘스키는 [점선면](1928)에서 기하학을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원리로 꼽았다. 모든 기하 형태는 추상이다. 칸딘스키가 바우하우스 시절(1922~1933)에 추구했던 보편성과 객관성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기하학이었다.
내적 필연성은 색채, 리듬, 언어, 형태에도 모두 적용된다. 가령 노랑의 내적 필연성은 세모로 표현되고, 파랑의 내적 필연성은 원으로 표현되고, 빨강의 내적 필연성은 네모로 표현된다. 물론 이런 기하학적 추상의 원리가 작품 제작에 그대로 반영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내적 필연성이 실현되는 공간은 어디일까? 이에 대한 답으로 칸딘스키는 평면 사각의 캔버스를 제시한다. 평면은 가로 x, 세로 y의 이차원 공간이다. 실제 사물은 가로 x, 세로 y, 높이 z의 삼차원이다. 그리고 여기에 시간 t를 결합하면 4차원이 된다. 인간은 우주의 삼차원과 시간이 합쳐진 시공간 사차원(x, y, z, t)을 인식할 수 없다. 분석과 종합을 거듭하더라도 실제 시공간은 인식되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은 대상을 스크린처럼 2차원으로 압축하고 상징한다. 인간에게는 우주의 필연성, 시간의 무한성, 공간의 무한성을 아우르는 보편성이 곧 추상이다.★(김승환)
*참고문헌 Wassily Kandinsky, Über das Geistige in der Kunst, (München, R. Piper, 1911).
*참조 <감정⦁정서>, <기하학적 추상>, <미>, <바우하우스>, <보편>, <상징>, <서정적 추상>, <영혼>, <영혼의 울림>, <인상주의⦁인상파>, <재현>, <조형>, <추상>, <초현실주의>, <칸딘스키>, <칸딘스키의 추상>, <칸딘스키의 즉흥>, <표현>, <필연⦁우연>, <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