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가사, 사모바위, 향로봉을 걷다
1. 일자: 2022. 12. 2 (금)
2. 산: 북한산
3. 행로와 시간
[이북5도청(07:48) ~ 승가사 탐방센터(08:00) ~ (도로) ~ 승가사(08:29~55) ~ 사모바위(09:15~28) ~ (비봉) ~ 향로봉(09:44~55) ~ 포금정사지(10:11) ~ 탕춘대 암문(10:53) ~ 상명대 정문(11:14) / 8.75km]
< 북한산 산행을 준비하며 >
몇 달 전부터 북한산에 가고픈 마음이 일었다. 지난 비에 날씨는 몹시 추워졌고, 덕분에 하늘은 맑아졌다. 회사 창으로 북한산 주 능선이 선명하다. 마음이 급해 진다. 아무래도 북한산에 가야겠다.
금요일, 휴가를 냈다. 북한산을 간다. 코스는 처음으로 내가 길을 내어 북한산을 올랐을 때 들머리가 되어준 이북5도청에서 시작하여 승가사를 거쳐 사모바위를 오른 후 비봉을 지나 탕춘대 능선이나 쪽두리봉을 넘어 하산할 생각이다.
오늘 산행의 키워드는 비봉, 탕춘대성, 향로봉이다.
유홍준 선생의 신간 나의문화유산답사기 서울편을 읽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비봉 위에 놓인 진흥왕순수비는 1972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전한 뒤 그 자리에 유허비가 세워졌다가, 2006년 당시 문재인 민정수석이 유홍준 문화재청장에게 비봉에 북한산순수비가 없는 것이 아쉬우니 그 자리에 복제품을 놓으면 어떻겠냐고 건의한 것을 계기로 세워지게 되었다. 이 콤비의 활약은 북악산 개방에도 큰 영향을 주었으니 그 인연은 깊다 하겠다.
북한산성은 1711년 완공되었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와 조약을 맺으면서 조선은 더 이상 산성을 축조하거나 보수하지 않는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65년 뒤 숙종은 신하들이 이 조항을 들어 반대하는 것을 물리치고 한양의 방위 체제를 완성하기 위해 북한산성 축성을 강행했다. 성문들이 안에서 잠그도록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유사시 한양을 버리고 산성 안으로 피신하기 위한 용도였다. 이후 1719년 한양도성의 인왕산 동북쪽 능선에서 향로봉 아래까지 연결되는 4km의 탕춘대성이 완공됨으로써 한양에 북쪽 방어체제가 완성되었다.
올 2월 처음으로 향로봉에 올랐다. 그간은 위험한 비탐구간으로 오해해서 오르지 못했던 곳인데, 그곳에서 바라본 풍경은 쉬이 잊혀지지 않았고, 오늘 나를 다시 북한산으로 이끈 주된 동인이 되었다.
< 이북5도청 ~ 사모바위 >
남들 출근하는 시간에 배낭 메고 전철을 타니 기분이 묘하다.
경복궁역에서 7212번 버스를 타고 이북5도청 전에 내렸다. 도로를 따라 걷다 승가사 탐방센터에서 산길로 접어든다. 널찍한 포장길을 걸어간다. 아무도 없다. 다람쥐가 숲을 지나는 소리도 무척 크게 들린다. 30분 만에 승가사 입구에 도착한다. 예전과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일주문 지나 긴 계단을 오르자 커다란 탑이 서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아침 풍경은 그윽하다. 아무리 건물이 많아도 산 능선이 풍경의 주인이다. 삼각대를 세워 사진을 찍고는 절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가파른 비탈에 축대를 쌓아 당우들을 세웠다. 용하다. 대웅전 바로 뒤로 사모바위가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치고 오르면 금방일 것 같은데, 길이 없다.
범종루에 올라 풍경을 바라본다. 올 겨울에 이리 맑은 하늘의 날이 얼마나 될까 싶다. 복 받은 날이다. 엷은 연무 뒤로 산들이 깨어나는 모습이 일품이다. 집을 일찍 나서길 잘했다.
승가사에서 사모바위로 오르는 길은 새로 정비를 해서 인지 크게 어렵지 않았다. 다만 빤히 보이는 길을 우회하는 거리는 생각 외로 길었다. 사모바위가 바라보이는 언덕 위에 선다. 언제 보아도 멋지게 생긴 바위다.
< 사모바위 ~ 향로봉 ~ 상명대 >
사모바위 옆 너럭바위에 선다. 서울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방향과 각도가 다르니 풍경도 색다르다. 변하지 않는 건 너울거리는 산들이 서울 풍경의 주인이라는 사실이다.
북한산의 연봉들을 둘러본다. 동쪽으로는 노적봉 넘어 백운대와 만경봉이 선명하다. 서쪽으로는 비봉이 우뚝하다. 북한산순수비의 모습도 보인다. 혼자 보기 아까운 풍경들이 이어진다. 숨 막힐 정도로 멋지다. 북한산은 싫증이 나지 않는 천의 얼굴을 지닌 서울의 진산이라는 말은 허언이 아니다. 백두산에서 시작해 한반도를 휘감아 내려오는 백두대간의 중간 지점인 금강산에서 서남쪽으로 갈라져 나온 한북정맥이 내려오다가 솟구쳐 오른 곳이 북한산이고, 그 여맥이 멈춘 곳이 북악산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인가 보다. 산의 맥이 그려진다.
사모바위에서 향로봉 가는 길, 비봉은 오르지 않기로 한다. 혼자 위험구간을 오를 자신이 없다. 편한 능선을 따라 향로봉에 오른다. 마침 봉우리를 내려오는 이들이 있어 사진을 부탁한다. 그들과 함께 북한산의 광활한 풍경을 즐긴다. 또 다른 황홀한 풍광에 놀라고 또 놀란다.
하산 길에 들어선다. 쪽두리봉으로 가자고 내려섰는데 걷다 보니 탕춘대성 위에 서 있다. 허물어져 윤곽만 남은 성은 여장 혹은 우리말로 성가퀴라고 부르는 성곽의 윗부분 담장이 없어 허전하다. 그래도 무너진 성곽을 따라 끝까지 걸었다. 그 끝에는 상명대학이 있었다.
< 에필로그 >
산을 내려오면 아랫동네 모드로 변해야 한다. 버스를 타고 통인시장 앞에 내렸다. 시장을 지나다 소머리국밥 집에 들러 점심을 먹었다. 그러고는 서촌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골목이 많다는 것 말고는 하나도 특이할 게 없는 이곳이 소위 핫플레이스가 된 이유를 나는 모르겠다. 내 어릴 적에는 삶의 현장은 늘 골목의 연속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와 세대가 바뀌니 지나간 흔적들에 대한 관심이 새롭나 보다. 아니면 천편일률적인 직선의 도시를 살며, 구불거리는 골목을 걸으며 나타나는 새로운 것들의 모습에 반하는 본능이 되살아나고, 그것에 끌리는 것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 본다.
집으로 향하는 전철 안, 사진을 정리한다. 나는 오늘 아침 꽤 근사한 곳을 다녀왔다. 무척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