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말씀)을 가진 우리의 생활
고린도후서 7:1~7
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2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 우리는 아무에게도 불의를 행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해롭게 하지 않고 아무에게서도 속여 빼앗은 일이 없노라 3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를 정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전에 말하였거니와 너희가 우리 마음에 있어 함께 죽고 함께 살게 하고자 함이라 4 나는 너희를 향하여 담대한 것도 많고 너희를 위하여 자랑하는 것도 많으니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도다 5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 6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7 그가 온 것뿐 아니요 오직 그가 너희에게서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고함으로 나를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제 7장은 성도의 거룩한 생활과 복음 사역자들에 대한 관대한 이해를 촉구합니다.
그리고 전날의 불편한 관계가 잘 해결될 것을 믿으며 기뻐할 것을 권면합니다.
1~7절은 약속의 말씀을 가진 우리가 어떤 생활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교훈합니다.
A 이 약속(말씀)을 가진 우리가 지향할 것을 권면합니다.
1절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이 약속] = 에팡겔리아 = 알림, 발표, 약속 - 하나님께서 성도들과 함께 거하시겠다는 약속(6:16~18)입니다.
고후 6:16~18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17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약속을 받은 자는 하나님을 경외(두려워)하는 가운데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야 합니다.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는 것은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것인데, 육과 영이 온갖 더러운 것을 청산하고 더러운 것과 악한 자에게서 돌이켜야만 한다고 설명합니다.
성도의 성결에 대해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1) 성결은 하나님의 언약에 기초하여 하나님에게 요구받는 것입니다.
2) 성결은 단순히 윤리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에서 생겨납니다.
3) 성결은 영과 육, 즉 성도의 전인격에서 동시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영적 성결만을 중요시할 때는 쾌락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고, 육체적 성결만을 강조할 때는 율법적 금욕주의에 빠질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A' 권면의 목적은 함께 죽고 함께 살고자 함이라고 설명합니다.
2~4절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 1) 우리는 아무에게도 불의를 행하지 않고 2) 아무에게도 해롭게 하지 않고 3) 아무에게서도 속여 빼앗은 일이 없노라 3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를 정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전에 말하였거니와 너희가 우리 마음에 있어 함께 죽고 함께 살게 하고자 함이라 4 나는 너희를 향하여 담대한 것도 많고 너희를 위하여 자랑하는 것도 많으니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도다]
바울은 거듭 화해와 일치를 촉구합니다.
[영접하라] = 코레사테 = ~을 위해 장소를 마련하다는 뜻입니다.
[너희 마음속에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 자리를 만들라]로 직역할 수 있습니다.
[아무에게도] = 우데이스 = 어떤 누구에게도, - 불의, 해롭게, 속여 빼앗는 일을 행하지 않았음을 거듭, 거듭 강조합니다.
그럼 누구는 그랬다는 것일까요? - 거짓 교사, 율법주의자, 영지주의자, 이단들입니다.
바울은 자기가 돌봐야 할 성도들과 운명을 같이 하며 그들을 위해서 자기의 목숨을 희생할 수도 있다고 한 그 자세는 그의 전생애를 통해 일관하는 목회자의 신념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바울은 권면의 목적과 바른 자세에 관한 모범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사랑의 동기에서 출발하며 선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크신 사랑으로 우리와 함께하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것처럼 우리 마음 안에 있는 너희를 위해 우리도 사랑으로 희생하려고 한다고 고백합니다.
B 하나님이 디도를 통해 위로하셨음을 말합니다.
5~6절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 6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바울은 분쟁에 말린 고린도 교인들을 치유하기 위해 에베소에서 디도를 파견했습니다.
교린도교회의 분쟁은 디도를 만나기로 한 예정된 드로아에서 디도를 만나지 못함으로 생긴 염려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러나 마게도냐에서 디도를 만나 자신과 고린도교회 사이에 화해에 대한 염원을 알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음을 말합니다.
[낙심한 자] = 티페이노스 = 낮은, 비천한, 하찮은, 가난한 자를 가리킵니다.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위로해 주시기도 합니다.
B' 위로의 내용은, 가져온 연보였습니다.
7절 [그가 온 것뿐 아니요 오직 그가 너희에게서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고함으로 나를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사모함] = 에피포데시스 = 동경, 열망, 갈망을 의미합니다.
2:1 바울이 고린도에 [가슴 아픈 방문]을 한 후 둘 사이는 심각하게 냉각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다시 고린도를 방문할 때 서로가 더 어려운 상황이 되지 않기 위해 방문을 자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지금은 고린도 교인들이 오히려 바울을 몹시 보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애통함] = 오뒤르모스 = 애도, 비탄, 슬피 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의 슬픈 방문 때 있었던 일로 안타까워하며 애통하였습니다.
그 일은 적대자들이 바울을 공격했을 때 바울을 옹호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 통회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바울과 함께 있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열심 있는 것] = 젤로스 = 열정, 끓이다, 뜨겁다를 의미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놀랍게도 과거를 완전히 청산하고 바울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려는 열심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이 헌금으로도 표현합니다. - 헌금은 마음이 없으면 할 수 없고, 해도 무의미합니다.
이렇게 변화된 고린도 교인들의 소식이 바울에게 전해졌을 때, 그가 느꼈을 위로와 기쁨이 얼마나 컸는지, [나를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고 고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