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교구 서석성당 물걸리공소 선교사 박 명 (토마스아퀴나스)
매일 아침 공소 문을 열고서 깊은 숨쉬기로 하루를 시작한다. 계절마다 맛이 바뀌지만 오늘처 럼 싸늘한 기온에 눈이 섞인 바람은 '프네우마' 가 되어 찬미와 감사의 기도가 저절로 나온다. 올 해부터 전 신자 성경 통독을 독려하기 위해 소공동체 모임에 참석해야 한다. 우리 본당에는 13개 소공동체가 있는데 오늘 12시 '생곡 상군' 반모임이 금년 첫 모임이다. 어제 밤늦게까지 준비를 했지만 어떤 질문이 나올지 몰라 창세기 해당 부분을 읽고 있는데 옆집 헝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옆집 형님은 84세이다. 공소에서 채 10미터도 떨 어지지 않은 곳에 70년째 살고 있는 비신자이다. 암 4기 진단으로 의사가 최대 7년 정도 살 것이라 했는데 14년째 생활하고 있다. 이에 본인은 나를 보면 '마리아상'(성모상을 이렇게 부른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교회에는 안 나오신다. 이 형님 집에서 공소의 성모상이 정면으로 보인다. 어제는 밤에 배뇨가 되지 않아 잠을 못 잤다고 읍내에 가면 약을 사달라고 하신다. 나의 임기가 끝 나기 전 세례를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다.
눈이 계속 내려 조심 운전하여 반모임 장소에 도착하였다. 6명의 자매님이 모였다. 70대가 대부분이다. 창세기 33장부터 윤독을 시작하였다. 라헬, 에사우, 파딴 아람, 엘 엘로헤 이스라엘 등 외국어 이름과 지명이 반복해서 나오니 읽기를 어려워한다. 가만히 눈치를 보니 1월 1일부터 매일 정해진 분량을 읽으라고 신부님이 그렇게 강조했는데 하지 않은 것 같다. 성경 통독에 무엇이 어려운지 나눔을 하였다. 작은 글씨 읽기가 힘들고, 외국 이름이 낯설고, 읽어도 이해가 안 되고, 이해를 해도 돌아서면 잊어버린다고 한다. 그래도 올해는 한 번 읽어 보자고 서로 다짐을 한다.
정성껏 준비한 만두국을 먹고 공소로 돌아왔다. 마을 반장에게 석산 개발 반대 데모 모임에 금주 에는 집사람만 참석한다는 문자를 보내고 저녁 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데 휴가 중인 본당 신부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미사를 드리기로 한 인근 수도원 신부님이 눈에 길이 막혀 도저히 올 수 없다고 연락을 받아 선교사가 공소 예절을 하라고 하신다. 공소에서 본당으로 가는 길은 13km가 된다. 비탈진 급 커브 고개를 넘어 눈 내라는 발길을 달려 성당에 도착하였다. 3명의 신자와 공소 예절을 마치고 무사히 돌아왔다.
저녁 기도를 바친다. 부족한 나의 활동을 도와 주는 가족과 이웃을 주심에 감사드리며, 항암 중인 예비신자, 치매 환자임에도 외딴 산에 홀로 사시는 자매님, 오래전 교회와 마음이 상해 냉담 중인 형제, 지난해 세례 받은 새 신자들... 그리고 나에게도 주님의 자비를 청한다. 창밖에는 눈이 계속 내린다. 주님 이 밤도 함께해 주소서!
가톨릭교리신학원 소식지
<한 알의 밀씨> (2024. 4. 20)
에 실린 글입니다.^^
첫댓글
이베드로 글 고맙게 보았어요
선교사님의 헌신에 신자 한사람으로서 감사드립니다
공소는 물론이거니와 본당의 여러행사에 적극적으로 도와주시는 걸 보면서 그런마음이 들었습니다
내내 강건하시기 기도드립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