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9장 1-6절. 교역자의 사례비(이중직)에 대한 교훈
바울 사도는 자기를 거짓 사도로 공격하는 율법주의자들에 대해서 자기가 참 사도이며, 특별히 고린도 교회는 자신이 설립자이므로 특별한 관계에서 사도가 된다고 했습니다.
1절.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New International Version: 내가 자유자가 아니냐? 내가 사도가 아니냐? 내가 우리 주 예수를 보지 않았느냐? 너희가 내가 주 안에서 사역한 결실이 아니냐?
2절.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1. 고린도 교회에는 4개의 당파가 있어서, 바울을 거짓 사도라고 공격하는 율법주의 신자들이 있었습니다.
2. 고린도전서 1장에서 말씀드린 대로, 고린도 교회에는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들로부터 추천서를 받아 가지고 와서, 자신들이 참된 사도이고, 바울은 거짓 사도라고 공격하는 율법주의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인 중 일부가 바울의 사도권을 의심했고( 고후 11:5, 12:12), 갈라디아 지방 교인들 중 일부도 그러했습니다(갈 2:8).
3. 이 율법주의 지도자들은 자기들이 예수님 살아생전에 예수님을 보았고, 예수님의 부활도 보았고, 예수님이 12사도로 뽑으신 사도들로부터 추천서를 받아 가지고 고린도 교회에 사역자로 온 정통 교역자라고 주장했습니다.
4. 그러자, 바울은 1-2절에서, 자신이 참 사도라고 주장합니다.
즉 바울은 사도행전 9장 4-5절에서 자기가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다고 합니다.
5. 또, 바울은 자신이 사도된 증거는 바로 바울의 전도를 통해서 예수를 믿은 고린도 교인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의 사도됨을 주 안에서 인 친 것은 너희라”
바울의 사역으로 인해 고린도 교회가 창립된 것은 바울의 사도권을 확증해 주는 것입니다.
6. 바울 사도가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마음 아픈 일인지 모릅니다.
오늘날은 바울 사도가 사도들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사도라고 누구나 바울 사도를 높입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바울을 거짓 사도요, 바울이 전한 복음을 이단이라고 배척하는 교회 지도자들이 상당수 있었습니다.
7. 특히 바울을 거짓 사도라고 공격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바울이 다른 사도들과 달리 사례비를 받지 않는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사례비도 안 받고 사역을 하는 것은 얼마나 위대한 일입니까?
그런데, 당시 반대파들은 바울이 참된 사도가 아니기 때문에, 떳떳하게 사례비를 받지 못한다고 공격했습니다.
8. 그래서 바울 사도는 자신이 정말 사도이지만, 사도로서 사례비를 받을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교린도 교회에 대해서, 사도권자와 창립자로서 사례비를 요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권리를 유보하고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본장 12절에서, “그러나, 우리가 이 권을 쓰지 아니하고 참는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전도하여 설립한 교회가 아직 개척교회 수준이기 때문에, 교회를 아끼는 마음에서 사례비를 받지 않은 것입니다.
9. 이처럼, 바울 사도가 마땅히 받을 권리가 있는 사례비를 받지 않고 포기한 사실을 말한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자신이 사례비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는 것처럼, 우상의 제물을 먹을 수 있는 믿음을 가진 성도들도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을 위해서 자유와 권리를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8:9.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대부분의 문제들은 이 “양심의 자유”(adiaphora)에 관한 문제들입니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있는 “양심 자유의 문제”를 대처해 갈 때는, 자신의 자유대로 맘대로 행동하지 마시고, 다른 사람들의 입장도 고려하시기 바랍니다.
때로는 내 돈 가지고 내 맘대로 하는 일일지라도, 눈치껏 권리를 유보하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음식을 내 돈 냈고 내 마음대로 먹는데 누가 뭐라고 할 것이냐?”라고 생각지 말고, 이웃의 눈치도 보시라는 말씀입니다.
“내 돈 주고 내 맘대로 옷을 입는데 누가 뭐라고 하느냐?”라고 하지 마시고, 이웃의 눈치도 살피시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돈이 잘 벌리고, 자식이 잘 되어서 기뻐 웃는데, 누가 뭐라고 하느냐?”라고 하시지 말고, 가족이 돌아가셔서 슬픔에 젖고, 자식이 시험에 떨어져서 슬픔에 젖은 이웃을 생각하면서, 자제하시라는 말씀입니다.
이웃은 태풍 피해로 가족을 잃고, 재산에 큰 손실을 당해서 슬픔과 비탄에 젖어 있는데, 내가 기쁘다고 내 돈 내고 기분 내러 다니는 것을 삼가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주일 오후에 가족끼리 가까운 곳에 나들이하며 즐길 수 있어도, 자유하지 못한 분들의 신앙 손상을 위해서 자제할 줄도 알라는 것입니다.
내가 술도 먹고, 나이트클럽에서 즐기고, 노름을 할 수 있는 믿음과 자유가 있어도, 믿음이 연약한 성도의 양심에 손상을 주지 않도록 삼가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제사 지내는 데 가서 제사 음식을 먹을 만한 자유가 있어도, 이웃 성도의 신앙 양심에 손상을 주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유와 권리를 포기하며 살아가는 위대한 바울에게도 거짓 사도라고 공격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3절. 나를 비판하는 자들에게 변명할 것이 이것이니
1. ‘나를 비판하는 자들’이란 고린도 교회의 4당파들(1:12) 중에서 바울을 반대하는 다른 파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바울 사도같이 위대한 사도도 당시에는 사도됨을 인정치 않고, 잘못된 지도자들에게 고난을 당했습니다.
예수님도 인류의 구원자이신데도, 사람들에게 사회를 파괴하는 위험한 인물이요, 반체제 인사로 배척을 당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완전한 존경을 받을 생각을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순수하게 사역하는 종들이 세상에서는 천대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충성을 다 하시기 바랍니다!
이 고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쫓겨나면, 저 고을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대로, 오직 주시는 기회 동안에 주님 앞에서 충성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은 어차피 완전한 천국이 아닙니다.
디모데후서 3장에는, “무릇 세상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이 핍박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마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도들은 사례비도 받고, 결혼 생활도 하면서, 주의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는 결혼 생활도 않고, 또 자비량하면서 주의 일을 했습니다.
이것은 바울과 바나바를 더욱 칭찬해야 할 일이지, 비난할 일이 아닙니다.
4절.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New Living Translation: 우리가 너희의 집에서 살며 너희 음식을 나누어 먹을 권리를 갖지 않았느냐?
5절.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New American Standard Bible: 우리가 나머지 사도들과 주님의 형제들과 게바처럼 믿는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를 갖지 않았느냐?
6절.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1. ‘먹고 마시는 권리’란 복음 사역에 대해 교회로부터 사례를 요구할 권리를 가리킵니다.
2. ‘바울과 바나바’는 48년에서 51년까지 4년 동안(행 11:26-15:40) 같이 일했으나, 마가 사건으로 서로 싸우고 헤어졌습니다.
바나바는 바울과 안디옥 교회에서 1년 같이 일했습니다.
제 1차 전도 여행을 같이 했습니다.
밤빌리아에서 마가 요한의 일로, 제 2차 전도여행 시에 싸우고 헤어졌습니다.
그러나, 55년경 본서를 쓸 때는 다시 좋은 관계로 회복되어 있었습니다.
3. 본 절의 말씀은 바나바도 바울처럼 자급 전도하였음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본 절의 ‘일’이란 복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생계 수단으로 일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바울 사도는 생계 수단으로써 천막을 만들어 파는 장사를 했습니다(행 18:3, 고전 4:12, 살전 4:11).
오늘날(2024년) 목회자의 이중직 문제가 다시 일각에서 논의되고 있습니다.
즉 대부분의 교단들은 목회자가 오직 목회사역만 하고, 이중직을 못하게 규정하고 있는데(통합 헌법 시행 규정 제20조 제1항, 고신 헌법적 규칙 제3장 교회 직원 제9조 등), 일각에서는 여러 목회자들이 목회자의 이중직 허용을 위해서 교단에 헌의하고, 허락해주도록 요청하고 있습니다.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할 때까지는 대부분의 목회자나 전도자가 바울을 따라서 이중직 사역을 했습니다.
그리고 종교 개역 이후로 루터와 특히 칼빈은 만인제사장론을 주장해서, 목회만이 아니라 모든 직업이 다 하나님이 부르신 성직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목회자의 이중직을 허용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1950년경부터 목회자의 이중직을 허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지혜의 샘, 목회자 이중직에 대한 성경적, 역사적 고찰)
어쩠튼 바울의 자비량 전도와 전도는 목회자 이중직의 원조가 된 셈입니다.
4. 바울 사도는 교회로부터 사례비를 받을 권리도 있고, 결혼하여 가족들을 부양할 권리도 있고, 자비량 전도를 안 하고, 선교비를 받아서 전도할 권리도 있었습니다.
당시에 다른 사도들과 교회 지도자들은 오늘날 교역자들과 같이 사례비를 받고, 가족도 부양하면서 사역을 했습니다.
5.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는 한 교회에서 목회하는 분들이 아니고, 각처로 돌아다니면서 순회 전도하시는 선교사님들이었기 때문에, 정상적인 결혼 생활을 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바울과 바나바는 이방 지역의 선교사들로서 새로 갓 신앙을 가진 개척교회로부터 사례비를 받는 것이 부담을 주기 때문에, 개척교회로부터 사례비를 받지 않고 사역했습니다.
6. 물론 바울 사도는 기성 교회인 빌립보 교회로부터 여러 차례 선교비 지원을 받을 때도 있었습니다. (빌립보서 4:15-16)
7. 여기서 말씀한 것은 전도하여 개척한 교회로부터 사례비를 받지 않은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바울이 사례비를 받지 않은 것은 권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신생 교회를 아끼는 마음에서 그러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처럼 갸륵한 바울의 심정을 알아주지 않고, 바울이 사도로서 자격이 없어서 사례비를 안 받는다고 공격하고 괴롭히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세상에서는 진심을 알아주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진실된 마음으로 사랑과 충성을 다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