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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관점에서 본 낙태
(A Study of Biblical Passage Related to the Issue of Abortion)
서론
낙태는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로 1년에 5500만의 불법적인 낙태가 행해지는데 한국에서는 1년에 150만의 낙태, 하루에 4000건 22초마다 한 생명이 낙태로 죽어가며 한 아이가 태어나면 두아이는 낙태되는 통계수치이다.
세계의 낙태 현황
1. 한국은 20% 기독교 국가인데 낙태 천국으로 목사부인도 “지워” 낙태건 수중 30% 미혼
*낙태원인
원치 않는 임심 : 54.2% 미혼 : 16.3% 티울조절 : 9.1% 경제 : 5.9%
* 원치 않는 임심 - 남아선호, 범띠, 말띠, 용띠해 - 여자 태어나면 팔자 세다.
* 남녀성비불균형 - 신부수입 아프리카
* 21번 낙태한 여인 - 심신의 상처
* 종교별 낙태 - 신앙 상관없다.
무교 : 32.6% 불교 : 46% 천주교 : 39% 기독교 : 34%
* 간호사의 낙태 25시고백
(1) 가방 메고 온 여고생들 바캉스, X- mas 임신 많으며 울면서 낙태 요청
(2) 부모들이 따라온 경우
남자 쪽은 수술비를 내라 할까바 지레 발을 빼려고 안간힘. 남자가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뭘 그러냐는 식이다. 딸 간수 잘해야지. 여자 어머니는 고개 숙이고 아무 말도 못한다. 그저 수술비만 보태 달라고 애원한다. 보다 못한 간호사가 남자 어머니를 불러 여자아이가 얼마나 고통이 크겠느냐고 다그쳤다. 그러자 조용해져 악착같이 수술비를 받아냈다.
(3) 가방 들고 친구들이 삼삼오오 떼어지어 병원에 들어와서 무슨 환송식을 하듯이 “잘하고 와, 별거
아니야” 수술 끝나고 나오면 “아팠니? 밥이나 먹으러 가자? 수선을 떤다.
(4) 고등학교 교사가 제자 건드려 병원 데려와서 선생님께 애원
2. 미국은 81.1%가 미혼 낙태 중 73%십대, 택시광고판에 낙태병원 전화번호 광고
* 필라델피아 - 걸스카우트 프로그램에 “낙태의 유혹”강의
* 미국 낙태전문의 NO1 Nathanson 75,000번 → 후에 생명존엄 연구 후 반대 지도자
* 워싱톤에서 30만 낙태 찬성자들 가두행진
* 과거 어두컴컴한 불법낙태 → bright&wide clinic
* LA 17000낙태아이 플라스틱 콘테이너 발견
3. 일본 - 불교사찰 낙태경험자 위안 의식으로 돈벌이 행사
4. 인도 - Lunchtime Abortion in mobil clinic
5. 런던 - 파리거리에서 낙태홍보 드라마, film show
낙태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는 언제 인간생명이 시작되느냐? 인데 낙태 찬성자들은 출생이후로 보기 때문에 태아를 살해하는 것은 정당한 행위로 보는 반면에 성경은 태아에게 중요한 가치를 부여하고 있어(시139:13-16) 새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보여주고 있다. 고로 태아는 모든 인간에게 특별한 존재이며 낙태는 범죄로 처벌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5,500만의 처벌받지 않는 범죄가 매년 자행되고 있는데 이는 히틀러의 600만 학살의 열배에 해당한다.
현재 많은 나라에서 낙태가 가족계획의 수단으로 합법화되어 인구조절 정책에 도움을 주었지만 더 나아가 사회적인 많은 문제를 야기 시키고 있다. 낙태를 인구평창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으로 가족계획을 실패하면 낙태라는 방법으로 해결하게 하며 가족계획을 낙태로 오해하게 한다.
오늘날 의학의 발달은 많은 유익을 가져왔지만 병원이 생명을 지키는 곳이 아닌 파괴하는 곳으로 바뀌었으며 낙태는 핏덩이를 가겹게 제거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Ⅰ. 성경에서 낙태를 찬성한다는 견해(Bibical Arguments of Those who Permit Abortin)
1. 성경은 낙태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다.(Scripture is Silent on Abortion)
낙태를 찬성하는 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성경 어디에서도 낙태에 대한 금지하는 구절이 없는 것은 낙태를 찬성한다는 것이다. 유명한 성경학자 Bruce k. Waltke도 “성경에서 직접적으로 낙태를 언급하는 구절이 없는 것은 낙태를 허용하는 증거다”라고 했다. 그는 모세 오경은 고대법에서 다른 나라의 법규에 비해 성적인 법규는 엄격하고 광범위 하였으나 낙태에 대해 다루지 않고 있으나 그 당시 앗시리아 법규는 낙태에 대하여 엄한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배경에 비하여 구약 성격은 낙태에 대하여 침묵한 것처럼 보인다. 이런 증거는 하나님은 낙태를 금지하지 않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2. 하나님은 태아를 생명(soul)로 간주하지 않는다. (God Does not regard the fetus as a soul)
성경이 낙태를 허용한다고 하는 주장으로 하나님은 태아는 생명이 아니고 단지 임신이 진행되어 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주장한다. 그 증거로(출21:22-24)을 인용하여 태아는 생명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사람이 서로 싸우다 아이 벤 여인을 다쳐 낙태케 하였으나 다른 해가 없으면 그 남편의 청구대로 반드시 벌금을 내되 재판장의 판결을 좇아낼 것이니라.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출21:22-24) 보상법이 적용된다.
모세의 법에 의하면 보상법은 생명은 생명으로 갚아야 하는데(출24:22-24)에서는 태아를 죽였는데도 “생명은 생명으로 보복이 적용되지 않았음으로 사형에 처할 범죄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이 구절로부터 태아는 생명이 아니다 라고 논리적인 추론을 얻는데 만약 생명을 살해했으면 생명으로 벌을 받아야 마땅한데 그렇지 않았다고 추정한다.
Waltke는 고대 앗시리아 법의 태아를 낙태한 경우를 들면서 만약 어느 남자가 다른 아내를 낙태케 했다면 그의 아내는 반드시 낙태를 당해야 되며, 아내가 죽었다면 반대로 아내의 죽음으로 벌을 받아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는 모세의 법과 앗시리아 법규사이에 분명한 대조가 되며 구약 성경은 태아를 생명으로 동등하게 간주하고 있지 않는다고 하여 살인하지 말라는 제5계명의 보호 하에 태아는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3. 태아는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다.(The fetus is not the image of God)
태아가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라는 제안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몇 가지 요소가운데 사람으로써 행동(Does)해야 한다는 것과 동일시하고 있다. D. Gareth Jone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형상은 대화의 능력, 관계, 선택, 자존감, 사랑 받고 싶은 욕망과 의미 있는 관계를 가질 때라고 했다. J. Fletcher는 하나님의 형상을 인간의 능력과 지능이 있는 것으로 인정했다. 이 논쟁의 본질은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의 능력을 나타내는 인간의 자격과 동일시 할 때 태아는 단지 잠재적인(potential)하나님의 형상이다.
성경적으로 이 주장을 제안하는 구절로 창1:28에 사람이 창조된 후 그는 피조물을 지배하도록 명령을 받았다는 사실에서 인간의 역할을 볼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생각할 수 있다. 모태에 있는 태아는 아직 어느 역할을 한다고 추정하거나 행동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볼 때 태아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간주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요약하면 낙태 찬성자들은 낙태에 대한 성경의 다음과 같은 증거들 때문이다. ⑴ 성경은 낙태 반대를 명백하게 말하지 않는다. (2) 성경은 태아를 인간 (person)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3) 성경은 태아는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다라고 한다.
Ⅱ. 낙태를 반대하는 성경적 입장(Biblical argument of those who are against abortion)
여기서는 신구약의 낙태에 반대하는 구절을 통하여 낙태를 반대하는 주장을 논하겠다. 낙태 반대 주장 자들은 기본적으로 2가지 견해로 낙태를 반대한다.
1. 하나님은 태아를 인간으로 본다(God considers the fetus as a person)
하나님은 수태사건 뿐 아니라 (창29:31-35, 룻 4:13) 태속에서 태아의 형성되는 모든 과정에 하나님은 개입하시고 관여하신다.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렘1:5) 이 구절은 예레미야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이미 선지자로 임명한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 외도 아직 복중에 있는 동안에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다. 야곱은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을 위하여 부름을 받았고(롬9:11), 레위는 조상 아브라함의 허리에 있는 멜기세댁에게 십일조를 드렸으며, 삼손의 어머니는 임심 중에 부정한 음식이나 독주를 마사지 아니함은 “블레셋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께 바쳐진 나살인으로 구별되기 위함이었다”(살1:3-5) 바울은 하나님이 나의 어머니 태로부터 사도로 구별했다(갈1:15)고 말하고 있다.
만약 하나님이 그들을 태에 있을 때 하나님의 일을 위해 불렸다면 태아는 높은 가치가 있음을 말해준다. 이렇게 하나님은 특별한 관계를 태어와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태아를 단순한 어머니 신체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러한 많은 근거에서 태아는 하나님 앞에 특별한 지위를 가진 존재임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렘1:5)에 “조성하다”(formed)라는 동사를 살펴본 필요가 있다. 렘1:5의 “나를 태에서 조성하기전” 구절에서 “조성하다”는 히 “yasar”로 “to form", "to fashion" "to frame", "to devise", "to create" "to shape"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단어는 마음속에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느 대상의 외형적 모형을 만들때 사용된다. 이 동사는 어느 물체를 만들고 형태를 조직하는 하나님과 사람의 활동을 나타낼 때 사용된다.
이 동사의 사용은 토기장이로서 사람이 진흙으로 사람이 토기를 만들 때 사용되었으며,(사29:16, 대상4:23), 사44:9절에는 사람이 우상을 만드는 것을 언급할 때 사용되었는데 사람은 조각가로서 나무에 우상을 새기거나 장인이 금속으로 우상을 만들 때 사용되었는데(사44:10 히2:18) 이 단어가 영적인 활동으로 사용될 때는 하나님의 창조적인 활동을 언급했다. 하나님은 영적인 토기장이로서 진흙으로 아담을 만들었다고 할 때 사용된 단어이다(창2:7-8).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했을 때 그는 생명이 되었다. 우리는 아담을 하나님의 걸작품 또는 하나님의 특별한 창조물로 생각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 이동사가 하나님의 특별한 창조로 아담을 만들 때의 동사와 태아를 태에서 조성할 때와 똑같은 동사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만약 하나님의 특별한 활동에 의하여(God's 'yasar') 태아가 창조되었다면 하나님의 특별한 창조에 의하여 조성된 태아의 존재가치를 덜하다고 말할 수 없다.
또 다른 중요한 점은 동사의 시제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조성하다”(Formed)는 히브리어 과거시제로 동작이 완성되었음을 나타낸다.(사49:5) 동사의 시제를 연결해 볼 때 아직 태중에 있지만 태아의 형성은 이미 완성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태아는 어머니의 태속에 있는 동안에도 완성된 특별한 창조물임을 나타낸다.
더 나아가 우리는 인칭대명사를 태아가 태중에 있을 때에도 사용했다는 점을 숙고해 보아야 한다. 인칭대명사 “me", "my", and "I"을 태어나기 전에도 인격체로서 사용되었다. 하나님은(렘1:5)에서 예레미야가 수태하기 전에도 예레미야는 그의 수태 전부터 그에게 인칭대명사를 사용하는 것을 보면 수태 전부터 존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목적과 부르심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수태 전 까지도 태아를 하나님은 인격으로 다루고 있음을 깊이 고려해야 할 것이다.
John Davis는 말하기를 “하나님은 특별한 인격체로 다루시는 것은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를 인식하는 것 보다 더 선행하며 하나님은 사회에서 인격으로 대우하기 전에 하나님은 태아를 인격체로 보신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그의 탄생 후 뿐만 아니라 탄생 전에도 알고 있었다. 하나님은 모태에서 사람의 선택이 결정되었음을 말하는데 성경은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엡1:4)라고 말하고 있다. 더나아가 수태되기 전에도 성경은 하나님 안에 인격체로 존재하며 하나님의 특별한 창조 과정에 참여하며 관여하고 있으며 하나님은 태아를 완전하고 성숙한 인격체로 보고 있다.
낙태에 대한 중요한 문제는 태아가 개인의 권리가 있느냐는 문제다.(출21:22-24)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주는데 태아가 죽었는데 “눈은 눈으로”의 보복법이 적용되지 않았다고 낙태 찬성자들은 보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낙태시키다 ‘yasa'인데 그들은 이 동사를 유산시키다 “miscarriage"(NASB)로 번역하고 있다. 그래서 싸우다 잘못으로 태아가 유산되었는데도 보복법이 적용되지 않는 것을 보면 태아는 인간의 권리가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낙태에 반대하는 견해는 이 동사(‘yasa')는 조산(premature birth)으로 해석하며 어린아이가 죽지 않고 나왔기에 보복 법이 적용되지 않았다고 본다. 그 근거로 구약에서 유산(miscarriage)을 언급할 때는 히브리어 ‘shacal'를 사용했으며(창31:39, 출23:26, 호9:14), 모세가 유산을 언급했다면(출21:23)에서 ‘shacal'을 사용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유산하다‘yasa'는 ‘낙태시키다’ 는 개념으로 사용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비정상적인 출생인 경우에 사용하고 있다(창25:25-26, 욥1:21, 렘1:5, 20:18) 이스라엘 사회에서의 모세법에 의하면 종은 30세겔의 가치를 부여했으나 모세법에서는 낮은 신분이라고 해서 인간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으며 이런 의미에서 태아는 완전한 인간이다.
또한 출21:22-24은 모세의 법에서 다루는데 길거리에서 싸우다가 유산 된 경우와 오늘날 생명을 없애기 위한 목적으로 병원에 찾아가는 낙태와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는가. (출21:22-25)에서 임심한 여인을 낙태케 하였으면 벌금을 내고 해가 있으면 “생명은 생명으로”의 법에 해당하기에 여인의 아기가 밖으로 나와 조산했으면 벌금을 내고 태아가 죽었으면 생명은 생명으로 갚아야 한다는 결론이다. 우발적인 사고도 중벌인데 고의적인 낙태는 얼마나 무서운가 범죄인가?
2. 태아는 하나님의 형상이다(The fetus is considered as image of God)
성경적으로 살인을 금하는 근거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동물과 사람을 구별하는 것은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했다는 것이다(창1:26-28, 창2:7). 하나님 형상은 더 의미있는 사실을 내포하는데, (창5:3)에 아담이 130세에 자기모양 곧 자기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는데 (창5:1)에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할 때 자기형상대로 창조했으며, (창5:3)에 아담은 자기 형상대로 아들을 낳았다. 고로 하나님의 형상은 생식에 의하여 다음 세대에 계승되어진다. 고로 태아는 하나님의 형상이다.
3. 태아는 인격을 소유했다.(The fetus has attributers of personality)
낙태 찬성자들은 태아는 단지 잠재적인 인간으로 인격으로서의 질을 소유하지 못했다고 보며 낙태반대자들은 태아도 감정을 느끼고 외부환경에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눅1:26-44)에서 태아로서의 특별한 구절로 예수님과 세례요한에 대한 구절인데 엘리사벳은 임신한지 6개월이 되었을 때 예수님 어머니 마리아가 방문하는데 이 당시 예수님은 단지 수정란에 불과했다. 그들이 만났을 때 6개월 된 세례요한은 기쁨으로 뛰었는데(눅1:41,44), 마리아의 태속에 있는 예수님 때문이었다(눅1:46). 이렇게 태아는 환경에 반응하며 감정을 나타내는 능력이 있다. 더 나아가 엘리사벳은 태아인 예수를 축복하고(눅1:42)있는데, 우리는 태아의 존재 가치를 인식하게 하는데 이것은 인격은 수정된 순간부터 시작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또 다른 중요한 점은 (눅1:26-44)에서 아기 “baby"단어를 태아인 세례요한을 말하고 있는데 헬라어의 ‘brephos'는 ‘태어나지 않는 아이, 태아 아이’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성경에서 태어나지 낳는 아이라든가 예수님이 태어났을 때의 새로 태어난 아이(눅2:12)을 언급할 때 사용되었으며, 신약에서 성경저자는 태아와 태어난 아이를 묘사할 때 이 단어를 동시에 사용했으며 그들은 태아와 태어난 아이를 구별하지 않았으며 이것은 태아가 완전한 인격이란 사실을 성경은 나타내주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는 것이다.
산모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when the life of the mother is endangered)
낙태에 대한 예외규정으로 극히 드물게 일어나는 경우로 산모의 생명이 태아로 인하여 위험한 경우를 예외규정으로 둔다. 그러나 이런 경우 태아와 산모 중 누구의 생명을 선택해야 하느냐? 라는 문제가 야기되는데 누구를 죽이느냐가 아니고 누구를 살리느냐에 집중하며 전통적으로 산모의 생명에 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 그렇지만 이 경우 3가지 문제를 시도하고 난 뒤 선택해야 한다. 첫째, 두 생명을 구하려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하며 둘째, 가능한 모든 수단을 강구했지만 동시에 다 살릴 수 없을 경우 한 생명을 선택해야 하며 셋째, 만약 두 생명이 똑같은 상황이라면 산모를 살리는데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 이런 경우는 극단적으로 어려운 문제이나 하나님의 절대주권 하에서 모든 것을 다 이해할 수 없지만 우리는 생명의 신성함을 생각하며 산모를 구하기 위해 낙태시키는 것을 허용하고 있는 특별한 상황이다.,
결론
성경의 근거에 의하며 태아는 성숙한 인간과 동일한 인격체이며 하나님의 특별한 창조물이다. 태아는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듯이 하나님의 특별한 창조적인 활동으로 수정하기 전부터 하나님의 임무가 주어지는데(렘1:5), 이런 근거에 의하여 태아는 인격체로 성장한 사람과 동일하게 가지고 있다. 수정란은 남녀의 23개의 염색체가 연합하여 더 이상 필요한 인자가 요구되지 않는 완전한 사람이다. 낙태를 묵인하면 점점 사람의 살인도 합법화되어질 것이다. 침묵은 살인방조행위이다. 한국 형법268조 “낙태죄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규정은 금지할 의사가 전혀 없음을 보여준다.
(ex) 마리아(M) - 보수적인 가정에서 자란 요조숙녀였다. 어느날 이 처녀가 임심하였다. 전통적인 보수지역이라 난리가 났습니다. 부모들은 너무 창피하여 낙태시키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 처녀는 신실한 여자로 하나님의 뜻을 받아 드리기로 했습니다.
* 베토벤 - 아버지매독, 어머니 폐병, 떼어버려야 하나? 경제적 상황에서 에라! 낫고 보니 멀쩡했다. 태아 때 영향으로 귀가 먹었다. 운명, 전원, 영웅, 월광곡, 비창곡
* 기도
1. 낙태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의 변화.
2. 성경적 관점에서 인간의 존엄성 강조하고 낙태의 비도덕성 강조 칩
3. 낙태자를 위한 상담실
4. 청소년의 이성교제, 순결서약 예배
5. 낙태 영상 상영으로 경각심과 캠페인 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