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는 100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의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옛날의 어른들 보다 많이 오래사는 시대이다. 2020년 우리나라 국민의 기대수명은 83,5년(남성 80,5세, 여성 86,5세)으로 OECD 국가 중 일본 다음으로 2위이지만 건강수명은 66,3세에 불과하다. 대략 14년에서 17년간은 병으로 앓다가 죽는다는 것이다. 나는 70대 중반으로 지금까지 비교적 건강하게 살아온 편이지만 언제 병이 닥칠지 모른다. 병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 소문없이 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건강하고 장수하기를 바라지만 본인 뜻대로 되지않는 것이 인생이다.
요즘 죽음이란 단어가 이렇게 강렬하게 다가온 적이 없었다. 자고 일어나면 동기생들이 하나 둘씩 이 세상을 하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언젠가 떠나가겠지 하는 생각이 들때가 많다. 처음으로 죽음을 인식한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친구 할아버지 장례식을 직접 경험하고 부터였다. 그 당시 죽음은 두려움과 공포 그 자체였으며, 끔찍해서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일은 쉽지않다. 죽음을 터부시해 왔고 조심스러운 일로 여겼다.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게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인생의 한 과정이지만 죽음은 언제나 두렵다.
죽음 너머의 사후세계가 있는지, 그 무엇이 있는지 알수 없기에 더욱 두렵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죽음이라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죽음이 없는 세상이 없으며, 삶이 없는 죽음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나의 삶은 늘 죽음과 함께 동행하고 있다. 인간에게 죽음이라는 괴물이 출생에서 살아가는 매 순간에 이르기까지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따라서 사람은 태어난 이상 누구나 죽음 앞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피해갈 수 없는 자연 현상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결국 인간은 생명의 원천인 흙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죽음은 너무 멀리 있다고 생각한다.
죽음은 아주 가까이 있다. 우리는 언제나 오늘을 살아갈 뿐이며 당장 내일 죽는다 해도 이상할 것 하나 없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이 깊어갈 때 쯤 두려움과 고통은 사라지고 죽음이 찾아온다. 얼마전 작고한 이어령 교수는 죽음을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라고 말했다. 인간은 죽음을 사유하여 삶을 더 농밀하게 만들 수 있다고 강조해 왔다. '탄생 속에 죽음이 있고 가장 찬란한 대낮 속에 죽음의 어둠이 있다'라는 말을 남겼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라틴어의 명언 '메멘토모리(Memento mori)' 죽음을 인지하여 산다는 것은 그만큼 삶의 소중함을 깨달으며 산다는 것이다
그러면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은 심장및 호흡기능과 뇌반사의 영구적인 소실을 말한다. 호흡운동과 심장박동이 멈추고 뇌반사가 소실된 것이 불가역적일 때 죽음을 판단하고 다시 24시간을 기다려야 법적으로 죽었다고 판정할 수 있는 것이다. 죽음은 왜 찾아오는가? 죽음은 생로병사의 과정을 거친다.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은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과정을 순차적으로 거친다는 것이다. 분명 죽음이 언제 찾아오는 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죽음이 찾아온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죽음이 찾아온다는 사실 말이다.
우리 모두 우리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 사망자의 76%가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특히 암 사망자의 경우 90%가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으나 호스피스 완화 의료기관 이용률이 전체 사망자의 6,1%에 불과하다고 한다. 미국은 48%가 호스피스(hospice) 완화 의료기관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집안에 죽어가는 환자가 한 명 있으면 온 가족의 심신이 힘들어지고 삶의질이 현격히 떨어진다. 죽음이 우리 곁에 바싹 다가와 있는 환경속에 살고 있으므로 한번쯤 죽음에 대해 미리 생각해 보고 준비해 둘 필요가 있다.
죽음에 대한 대비는 건강할 때 빠를수록 좋은 것이다. 자기 죽음 문제를 본인이 주도적으로 다뤄야 깊이 있고 개성에 맞게 아름다운 삶을 마무리할 수 있다. 우리 실버들에게 좋은 죽음에 대한 관심과 사전 준비가 절실한 또 하나의 이유다. 좋은 죽음(well dying)이란 죽음을 앞둔 사람이 자신의 죽음이 현실이라고 받아들이며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러면 임종에 앞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우리나라에서도 좋은 죽음과 관련된 요건이 법률에 엄격히 정해져 있다. 2020년 4월7일 공포 시행된 호스피스 완화 의료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 그것이다.
본인의 의사를 반영하여 생애 말기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방지하고 호스서비스로 보다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사전 연명의의향서는 19세 이상 사람이 향후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되었을 때를 대비하여 자신의 연명의료및 호스피스에 관한 직접 문서로 밝혀두는 것이다. 지역내 의료보험공단에 가서 직접 신청하면 된다. 나는 지난 봄에 내자와 함께 건강보험공단에서 등록하였다. 마음이 휠씬 가볍고 편안하였다. 호스피스(hospice)는 죽음을 앞둔 말기환자와 그의 가족을 사랑으로 돌보는 행위로, 생명연장이 아닌 육체적 고통을 줄여주고
희망속에서 삶을 마치는 순간을 평안하게 맞이할 수 있도록 하는데 목적을 두고있다. 삶의 마지막 계획은 가족과도 미리 얘기해 두어야 한다. 좋은 죽음은 당사자 뿐만 아니라 가족들 삶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예컨대 어떤 상황이 되면 요양시설로 가겠다든지 더 이상 치료가 어려우면 고통완화 치료나 호스피스 돌봄을 받고 싶다든지 하는 등 얘기들을 폭넓게 대화하고 결정해 둔다. 죽기전에 꼭 해야할 일은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자기가 얘기하고 싶은 말들을 유언장에 쓰는 것이다. 그러나 생을 마감하면서 유언장을 제대로 써놓고 죽는 사람은 흔치않다.
특히 갑작스런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는 경우는 더욱 어렵다. 임종하기 전에는 반드시 주변 정리를 깨끗히 하는 것도 빼놓지 않아야 한다. 남은 인생을 어떻게 보낼것인가는 여러분들의 몫이다. 얼마 남지않은 인생 건강하게 후회없이 살기 바라며 죽음에 대한 대비를 미리미리 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