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팔이를 자칭하는 내과의사가 시적 사유를 청진하다가 질병 코드도 없이 내미는 내밀한 불법 처방
김정웅
처음「돌팔이 의사의 생존법」이라는 제목의 책을 마주하면서 훅 들어온 감정은 그냥 의사가 쓴 책이고 의사가 진료하면서, 시도 쓰면서 스스로를 기록하려고 내는 책이려니 하는 조금은 진부한 느낌이었음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책장을 넘기면서 의사이기에 시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시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짙어졌음 또한 실토한다.
김연종 시인은 의사다. 아니 의사 김연종은 또한 시인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이다. 하루의 대부분을 동네 내과의원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매일 다양한 사연의 환자들을 접하고 진료하면서 각종 행정, 경영 업무까지 혼자서 다 해내며 바쁘게 보내는 대한민국의 보통의 단독 개원의사다. 그만큼 다른 생각이 비집고 들어 올 여유가 없는 것 또한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아주 짧은 시간의 첫 대면만으로도 환자의 성향을 바로 파악하고 말투와 행동, 안색 등으로 벌써 어느 정도 환자의 주소(Chief complaint)와 그에 따른 연관된 진단명들이 머릿속에 저절로 그려지는 노련미가 익어가는 연령대에 접어든 능숙한 내과의사다.
그런 노련한 의사에게는 또 다른 달란트가 있었으니 매일 수많은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단순하게 진료로 끝나지 않고 그의 눈앞에서 잠시 반짝이고 가는 한 인생의 굴곡이나 애환을 잘 캐치하는 능력이다. 이런 능력 덕분에 대기 환자가 없는 짧은 여유동안 의사 김연종은 하루에도 여러 번 흰 가운을 입고 있는 시인으로 변신하고 있을 것이다.
시인이 이번 시 산문집에서 인용한 고대 로마 철학자 세네카의 “쾌락을 정복하면 고통도 정복한다”는 명언이 있다.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공감하면서도 지키기 어려운 교훈 같은.
시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보통의 나약한 한 인간이 진료실 한 켠에서 시를 완성하는 쾌락을 위해 얼마나 긴 고통을 바보처럼 인내하고 있을지.
하루에도 수많은 환자들을 문진하면서 들어오는 감정이입에서 의연한 척 대처하다가 해마로 밀려드는 슬픔과 기쁨이 그의 대뇌피질로 영구히 메모리 되고 있지는 않는지.
아마도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시를 쓰고 싶은 자아가 문득 독이 될 수도 있는 술을 마시고 싶듯이, 시는 그에게 있어서 약이자 독이 될 수 있는 파마콘(pharmakon)은 아닌지.
의사 김연종이 메스를 든 외과의사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냉정하고 정확하게 병소를 도려내야만 하는 외과의사의 예리한 메스보다는 어쩌면 첨단 의과학보다는 상대적으로 고전적이고 운치 있는, 메타포 같은 청진과 문진으로 환자를 어루만지는 내과의사여서……. 그의 타고난 문학적 소양이 메스를 갈면서 무뎌질까봐 그저 시인의 날카로운 펜촉을 기다리는 독자의 마음에서 나오는 엉뚱한 생각이다. 앞으로도 그가 우리에게 어느 날 불쑥 내밀 것 같은 엉뚱한 처방전 같은 멋진 작품을 기대한다. 의학과 문학의 경계에서 새로운 질병코드를 개척하기를 기다려본다.
오늘도 그의 진료실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익숙한 계절의 한 쪽이 다정도 할 것이다.
첫댓글 "돌팔이를 자칭하는 내과의사가 시적 사유를 청진하다가 질병 코드도 없이 내미는 내밀한 불법처방"
이 한마디에 모든 게 다 들어 있네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