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 나정례
이번 추석은 각자 집에서 보내라고 전화를 했다. 옆에서 듣던 남편이 “둘이 같이 낳아 놓고, 대명절에 오가는 일을 혼자 결정하느냐”고 버럭 화를 냈다. 명절은 남자들이 별 관심 없는 줄 알았다. 혀를 물고 억지로 참으려 해도 킥킥거리다 하하하 하고 크게 웃음이 터졌다. 무슨 말을 해도 못 듣는 것처럼 대답도 없던 사람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 생각하니 신기하다. 나이 탓일까 하면서도 주장하는 말이 지금도 나를 웃게 한다. 옆 사람이 나를 보면 정상인가 할 것이다.
추석을 2~3일 앞두고 막내딸이 차에 타라고 한다. 갓 바위 남농 기념관 옆 나무 그늘 아래서 사위가 야외용 상과 의자 네 개를 놓고 자리를 잡고 스텐화로에 불을 지피고 고기를 구우고 있었다. 토요일이라 다른 사람들도 두세 명씩 아이들 대리고 입암산 밑에서 오르내린다. 고양이도 고기냄새를 맡고 옆에 와서 야옹야옹한다. 쇠고기 한 점 던졌더니 물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이 산에는 산토끼도 있다. 소나무 그늘 아래 앉아 확 트인 바다를 보면서 딸 사위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막내딸은 이번에 시댁 식구들과 콘도를 빌려서 모인다고 한다. “그래서 이렇게라도 얼굴 보고 싶어요.” 아쉬운 듯 아빠에게 기대어 있는 모습이 참 예쁘다.
작은아들과 며느리가 전화를 했다. “저희들이 아이들과 잠깐이라도 뵈러 가면 안 돼요?”그렇게 하라고 했다. 모두 오지 말라고 했지만, 자식들 기다리는 마음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복잡한 재래시장에서도 손에 바리바리 들고 다니지 않고 사이사이로 다니면서 민어 한 마리 7킬로를 십사만 팔천 원 주고 샀다. 요즘 세상 좋아져서 누구나 썰 수 있게 부위별로 손질해서 오토바이에 실어주면서 주인은 “맛있게 드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돼지 갈비 여섯 근, 송편, 전 도 샀다.
예전 같으면 두 며느리와 손자 손녀들과 송편도 만들고 전 도 붙이고 음식 만드는 재미가 있었다. 손자들은 강아지와 개구리 모양으로 떡을 만들어 찌면 서로 자기 것을 찾아 먹으면서 즐거워했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19 핑계로 며느리들을 편하게 해 주고 싶었다. 우리 집으로 시집와서 아이들 낳고 시부모 형제와 지내느라 고생하는 모습, 나 역시 그런 생활을 했기에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세대 차이로 요즘은 시부모가 며느리 눈치를 본다. 그러나 편하게 해 줘도 ‘시’ 자는 어렵다는 것이다. 시부모가 아무리 잘해 줘도 나를 낳은 친정 부모님과는 틀 릴 것이다. 그래서 여자는 친정을 그리며 살아야하는 운명인가보다. <고향 땅이 여기서 몇 리나 되나 푸른 하늘 끝 닿은 저기가 거긴가~>초등학교에서 배웠던 노래, 시집와서 엄마 생각나면 늘 부르며 눈시울 적셨다.
큰딸부부와, 외손자 손녀가 추석 다음날 왔다. 시어머니는 몇 년 전에 돌아가시고 시아버지는 곡성에서 홀로 사신다. 노인회 회장이라 점심은 그곳에서 노인들과 드셨는데,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문을 닫아, 집에서 손수 밥을 지어 드신다. 부부가 공무원이라 모실 수도 없고 주말마다 찾아뵙지만, 냄비나 그릇에 기름기가 묻어서 잘 지워지지 않으니 자주 바꿔서 새로 사드려야겠다고 한다. 친정집 며느리들은 아직은 호강이라고 했다. 시댁에서 추석 지내고 “엄마 집에 오니 편해요”하며 김치냉장고에 넣어둔 민어를 썰어서 준비 된 음식을 상에 차린다. “아무도 못 오게 하더니 누구 먹으라고 이렇게 많이 했나요?”한다. 자식들한테 집에 오지 말라고 전화는 했지만 기다리는 속내를 들키고 말았다. 큰아들 작은아들 가족들도 모두 왔다. 자녀들과 음식을 먹으며 술잔을 받는 남편은 행복하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