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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ios!
파랑새 (2022.06.07.14:17)
저는 제가 전하고자 하는 복음을 모두 말했습니다. 이 까페에 무뢰한들이 집단으로 광기를 부리는 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교리를 방어할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제가 이단이라고 비난하고 게시글과 전혀 상관없는 욕설 댓글을 답니다. 이들 가운데 몇 명은 수년째 악연인 사람도 있습니다. 여하튼, 이들도 율법주의 굴레에서 벗어나, 북음의 자유가 뭔지 알기를 소원합니다.
저는 정통 칼빈주의자이여, 도르트 신경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표준교리로 삼습니다. 저를 비방하는 자들은 몇몇의 특정 신학자들의 교리를 광적으로 추종하는 자들입니다. 누가 옳은지는 마지막 심판대에서 결정 날 것입니다.
에드워즈의 죄의 전가 교리는, 이미 해외 신학계에서는, 결함이 있는 교리라는 것에 대해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성향적 구원론도 로만 카톨릭의 주입 개념이 들어가 있습니다. 물론, 용어는 다르게 표현되어 있기에, 유심히 보지 않으면, 눈치를 챌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영혼의 안녕을 위해서, 스스로 찾아서 확인해 보시길 바랍니다. 저는 여기에 글을 쓰지 않아도, 잘 먹고 잘 삽니다. 사실 더 이상 쓸 내용도 없습니다.
그럼 모두들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댓글
아굴 (2022.06.07.14:41)
가신다니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그래도 집에서 조용히 {도르트 신경}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다시 살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하시는 이야기가 특히 두 신앙고백을 거스르고 있습니다. 아집에 빠지지 마시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살아보십시오.
카나리아 朴埰同 (2022.06.07.18:24)
스마트폰 자판으로 쓰다 보면, ‘재론再論’을 “재논再論”으로 쓰신 puritan2r 목사님처럼 맞춤법이 틀릴 수 있습니다. 이를 우리는 “맞춤법이 틀렸습니다.” 말하기보다 “오타입니다.” 말합니다.
그런데 청교도 목사님이 파랑새 목사님에게 맞춤법 틀렸다고 면박을 당하시자 “재송합니다.” 하시더군요. 여기에서 “재송”은 오타가 아닙니다. 맞춤법이 틀린 것도 아닙니다. 청교도 목사님 위트(기지)로서 ‘再悚: 거듭 당황하다.’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영어과 출신임에도 영어가 짧은 저는 아름다운 한글 놔두고 별명을 영어로 쓰는 사람을 무척 싫어합니다.
계속 쓸 참이니, 글 삭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카나리아 朴埰同 (2022.06.07.18:30)
“까페”는 ‘카페’입니다. “북음”은 ‘복음’입니다. “칼빈주의자이여,”는 ‘칼빈주의자이며’입니다.
“세상을 막사는”이라는 말로 제 명예를 훼손했던 글, ‘허위사실을 적시’해 제 명예를 훼손하며 저를 ‘협박’하셨던 <범법행위>에도 오타가 있습니다. 네 개입니다. 그 하나는 “고발”입니다.
카나리아 朴埰同 (2022.06.07.18:43)
“무뢰한들의 집단 광기”??? 지난해 1월에 저를 두고 모 회원이 쓴 말 “시정잡배”를 잇는 ‘허위사실을 적시’한 명예훼손입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교리를 방어할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역시 ‘허위사실을 적시한 명예훼손’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 저격수 파랑새 목사님, 파랑새 목사님이 주장하시는 교리, 그 교리가 참 복음이고, 저희가 주장하는 교리가 “광신도들”의 다른 복음이면, “adios!” 하실 게 아니라, 양무리를 푸른 초장으로 이끌어야 할 목사로서, 양무리를 양의 탈을 쓴 이리떼들, 집단 광기에 어린 광신도들로부터 보호해야 할 목사로서 그 임무를 다해야 하시는 것 아닙니까?
카나리아 朴埰同 (2022.06.07.19:10)
“이들은 제가 이단이라고 비난하고”??? 이 역시 ‘허위사실을 적시’한 명예훼손입니다. ‘피해망상증’입니다.
파랑새 목사님, 저희 가운데 목사님을 “이단”으로 말한 사람 있습니까?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저러시다가 이단의 길로 가시겠다.’ 염려했을 뿐입니다. {개혁주의 마을} 검색창에 ‘이단’을 검색해 보십시오. 제 경우 예 하나는 “하는 짓이 이단과 같습니다.” 했습니다. 즉, ‘하는 짓이 이단입니다.’ 하지 않았습니다.
카나리아 朴埰同 (2022.06.07.19:28)
“이들 가운데 몇 명은 수년째 악연인 사람도 있습니다.” 하셨습니다. 그 악연을 제가, 저희가 만들었습니까? 아니면, 목사님이 만드셨습니까?
저에게 “인격 가출”이라는 단어를 쓰셔서 ‘허위사실을 적시’한 명예훼손을 하셨습니다. 지난해 1월, 제가 별명 ‘존 머레이’로 들어왔을 때를 돌이켜 봅시다. 제가 먼저, 목사님 인신공격을 했습니까?
목사의 권위를 소중히 여기는 저는 열두 살 터울 매제이지만, 매제가 하나님 말씀을 맡은 자로서 하나님의 종, 목사님이시기에 매제에게 극 존댓말로 예우를 다하는 사람입니다. 목사의 권위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기에 목사님이 연장자인 저에게 함부로 하시며 인신공격을 하실 때마다 예의범절에 어긋난 행위를 하지 마시기를 부탁드렸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른바 “인격을 가출” 행위를 하기 전, 목사님에게 경고까지 했습니다. 그러함에도 목사님은 제 경고를 무시하고 여전히 저에게 함부로 하셨습니다.
카나리아 朴埰同 (2022.06.07.20:00)
지난해 1월에 목사님이 쓴 뒤 얼마 안 돼 삭제하셨던 <대화명, 존 머레이>를 두고 있었던 일을 생각해 봅시다.
삭제하신 <대화명, 존 머레이>에 적힌 “여러 목사와 진흙탕 논쟁을 즐기는 사람”에서 “진흙탕”을 제가 ‘분탕질’로 기억한 나머지 저는 “분탕질”이라는 말을 써서 <대화명, 존 머레이>를 반론한 글을 썼습니다.
목사님은 ‘분탕질이라는 말을 쓴 적 없다.’며 “명예훼손 고소” 운운하며 저를 ‘겁박’하셨습니다. 저는 목사님이 글을 삭제(명예훼손죄 증거인멸)하셨음에도, 쓰신 적 없다 하셔서 곧바로 정중하게 사과드렸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계속 저에게 ‘증거를 대라.’ 하셨습니다.
카나리아 朴埰同 (2022.06.07.20:30)
곤경에 처한 저를 안타깝게 여기신 {개혁주의 마을} 형제님이 저에게 ‘구글 검색’으로 삭제하신 <대화명, 존 머레이>를 찾아낼 수 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목사님은 “선생님이 구글 검색이 아니라 이미 제 글을 캡처하셨다는 것도 압니다. 그리스도인이 정직하셔야죠. (ㅎㅎㅎ)” 하며 제 인격을 모독하셨습니다. 그리고 “교회 집사가 거짓말을 하네요.” 하며 계속 제 인격을 모독하셨습니다.
저는 결국 [나는 <대화명, 존 머레이>를 캡처해 뒀는가?]를 {개혁주의 마을}에 올렸습니다. 그 형제님과 제가 나눈 통화 시간대 기록과 카톡 대화들을 캡처한 사진들을 담은 글로, 거짓말이 아님을 밝힌 글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명예훼손 고소” 운운하며 목사님을 ‘겁박’ 하던가요? 혹은 저에게 사과하실 것을 요구하던가요? 물론, 제가 사과를 요구하지 않더라도, 자기 명예를 진정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라면, 타인 명예도 소중함을 알고 사과하심으로써 목사님 명예를 지키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이 일을 두고 저에게 사과하셨습니까?
어디에서 함부로 “인격 가출”이라는 말로 ‘허위사실을 적시’한 명예훼손을 하십니까?
카나리아 朴埰同 (2022.06.07.20:32)
저녁 먹고 계속 쓰겠습니다.
글 삭제하지 마십시오. 삭제하시면 게시글로 올리고, {페북} 여러 그룹에 링크합니다.
카나리아 朴埰同 (2022.06.07.21:46)
“세상을 막사는 목사와 집사”??????? 제가 세상을 막삽니까? 목사님이 막삽니까? 다른 사람 명예를 소중히 여기지 않음으로써 자기 명예까지 지킬 줄 모르시는 목사님이 막사는 것 아닙니까!
제가 1986년 봄부터 약 여섯 달 동안 출석했던 독립개신교회 강변교회 시절이었습니다, 최낙재 목사님께서는 ‘제9계명’과 ‘제3계명’을 강설하시면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까닭 없이 모독을 당할 때 자신의 이름이 모독을 당하는 것으로 여기십니다. 그런데 이 모독을 막을 수 있는 은사가 있음에도 이 모독을 막지 않고 방관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죄 없다 하시지 않습니다.” 하셨습니다.
카나리아 朴埰同 (2022.06.07.22:20)
6월 항쟁이 있었던 1987년 6월 11일 새벽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아버지 마지막 가시는 길 출상을 못 본 저는 ‘하나님과 허무 사이’에 빠져 탕자처럼 방황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1991년 광주대학교 영어과 3학년 2학기를 마칠 무렵에 공황장애가 찾아왔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알콜 중독에 따른 공황장애였습니다. 그 공황장애를 1992년 4학년 여름방학 때 ‘과거에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인도하셨나?’를 돌이켜 봄으로써 극복하고, 저는 1993년 가을에야 허무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허무에서 빠져나온 저는 ‘하나님의 백성인 내 명예는 하나님의 명예와 얽혀 있다.’, ‘하나님의 백성인 형제의 명예는 하나님의 명예와 얽혀 있다.’ 하신 고故 최낙재 목사님 말씀을 명심하며 살아왔습니다.
사울이 주님을 핍박한 적이 없음에도, “사울아, 사울아, 왜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하셨던 주님!!!
카나리아 朴埰同 (2022.06.07.22:46)
몇 달 전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으신 예장 고신 고故 강릉예명 박래구 목사님께서 2011년 12월 13일에 이른바 “연속적인 중생론” 문제로 {양무리 마을}에서 이런 분란이 있었을 때, {양무리 마을}을 떠나시면서 한국교회 연중론 수장 손성은 목사님, 카페지기 홀리조이 목사님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님을 온전히 감찰하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결국 사랑만이 정답이다. 님은 사랑입니까?”
제가 <대화명, 존 머레이> 건으로 목사님에게 왜 사과를 요구하지 않았겠습니까? 비록 ‘큰 실수를 하신 헤르만 바빙크 목사님 텍스트’를 근거로 하신 이단시, ‘정말 그러한가?’ 하는 신사의 자세가 없는 목사님 ‘교만’에 따른 이단시였지만,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과 ‘조나단 에드워즈 신학을 연구하신 신학 교수님들’을 이단시한 목사님 마음에서 바울 사도와 같은 형제 사랑,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으리라!”는 사랑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위 본문 “자신의 영혼의 안녕을 위해서”에서 드러나듯 목사님 마음속 ‘참 복음을 향한 사랑’과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형제를 향한 사랑’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카나리아 朴埰同 (2022.06.07.22:35)
이 논쟁을 책으로 펴낼 수 있냐는 문의를 하신 분이 있습니다. 만약 책으로 펴낸다면, 목사님 이름은 익명 처리하겠습니다. 또한 목사님이 떠나시더라도 비평은 계속될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해 1월에 목사님이 {Daum}에 신고하셔서 삭제당했던 제 글들을 {개혁주의 마을}에 올림으로써 다시 살릴 것입니다.
카나리아 朴埰同 (2022.06.07.22:38)
위 본문에서 “마지막 심판대”를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파랑새 목사님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사랑이었느냐?” 그러면 목사님은 “예. 사랑이었습니다.” 말씀드릴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저에게 “너도 그렇다고 생각하느냐?” 물으신다면, “예. 비록 지식을 따르지 않은 열심(롬 10:2)이었습니다만, 참 복음을 수호하고 싶은 마음, 거룩한 성향에 따른 파랑새 목사님 큰 사랑이었습니다.” 말씀드릴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결국 사랑만이 정답입니다.
주님 안에서 영육이 강건하시기를 빕니다. 하고픈 말은 많으나,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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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글 삭제하지 말라 했는데, 삭제해 올리는 글입니다.
물론, 파랑새 목사가 적반하장으로 또 “명예훼손 고소” 운운하는 마당에, 이 글은 ‘신학이 짧은 파랑새 목사가 어떤 큰 잘못을 저질렀나?’를 알리는 글입니다. 즉, 공익을 위한 글입니다.
어제와 오늘 새벽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아굴 ‘목사’가 부캐고 ‘명예훼손 고소’가 본캐인 것 같은 52세 젊으신 사장님께 태어나 처음으로 “할아버지” 소릴 들었는데, 약이 오른 늙은이(환갑)가 새벽에 잠이 오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