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 송카 박사와의 추억
며칠 전 송카 박사로부터 안부 전화가 왔다. 나는 20여 년 전 D건설 엔지니어링 디렉터로 정박시뮬레이터(anchoring simulator-接岸模型裝置) 설치공사 감독관을 맡은 바 있다. 독일 아틀라스Atlas사의 특허 장치를 세계최초로 설치하는 수월찮은 공사였다. 송카 박사는 장치의 정기검사 기일이 다가와 곧 방한할 계획이니 점검에 동참할 수 있겠느냐 물었다.
그때 독일 측 감독관으로 파견된 전자공학 박사 송카를 만났다. 기계담당, 전자담당, 전기담당 등 세 명의 독일인 보조진과 동행한 그는 창백한 얼굴에 예리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세계최초로 시도하는 일이긴 하지만 설치도면을 이해하는 데 어려운 부분은 없었다.
다만 미리 지어놓은 건물의 내면 치수가 설치할 기계 크기와 여유가 없어 설치가 어려웠다. 건물을 다시 지을 수도 없었다. 당연히 기계 크기를 줄일 수도 없었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기술자가 필요했다면 그들은 우리 회사를 잘 택한 셈이었다.
건물은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정부 측 요구조건이었다. 기계 작업보다 건축과 토목 일이 더 많았다. 지붕을 해체하는 방법이 가능하고, 벽 한 면을 철거한 후 실내설치를 끝낸 다음 벽을 다시 쌓는 방법이 있었다. 두 가지 모두 경비가 수주금액을 능가하여 실행이 불가능 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시공방법이 쉬 떠오르지 않았던 나는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혼자 해결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여러 관계자들을 모아 해결책을 의논하였다. 설계실장, 기계과장, 용접 주임, 비정기적으로 하청을 맡기는 운반업자도 포함시켰다. 그리고 자유토론에 붙여 결말이 날 때까지 나흘간 침식을 함께하였다.
거치용 H-빔을 반 등분하여 각각 반입한 후 실내에서 프레임을 재조립하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부산 최고의 기계 운반공 다섯을 한 팀으로 모았다. 6기통 지게차 2대가 필요하다는 운반전문가들의 요구를 수용하고, 이틀간 리허설을 거쳐 작업에 착수하였다.
송카 박사로서는 한국의 기술력도 걱정스러웠을 테고, 초정밀 기계를 지게차라고 하는 토목장비를 이용하여 설치를 하려 하니 그로서는 괴기스런 심정이었을 것이다. 시운전도 하기 전에 기계가 다 부서지지는 않을까 걱정도 했음 직하다. 전자공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는 납득 곤란한 공법이 진행되었다. 그는 어쩌자고 이렇게 일을 진행하느냐며 걱정이 태산이었다. “이건 피라미드를 쌓는 방식이야.” 부질없는 우려는 무시하는 것이 나의 업무 진행방식이었다.
송카 박사는 이리 찍고, 저리 찍고, 기록에 여념이 없었다. 하자가 생기면 책임소재를 설치자로 해 놓겠다는 심산이 엿보였다. 그는 매일 걱정 어린 표정으로 내 주변을 서성거렸다. 몇몇 장치가 현장과 맞질 않았지만 힘들이지 않고 수정하면서 진행하였다.
그는 한국 나들이가 처음이었으나 한국의 역사, 풍습과 남북문제까지 많은 정보를 갖고 있었다. 인사도 합장배례를 하고, 천성이 소탈해 국수도 잘 먹고, 라면은 기호품에 속했다. 포장마차에서 닭발을 안주로 막걸리도 잘 마셔 나와는 특히 잘 어울렸다. 그가 귀국하기 전날 그간의 정이 아쉬워 개인적으로 부산 관광을 제안했다. “부산이 아름답다,” “차량이 유럽의 도시들보다 많다,” “한국의 기술력에 놀랐다,” 관광부 직원 같은 이야기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늘어놓았다.
3부두에서 대형 트레일러 사이를 주행하는데 갑자기 “어이 미스터 배 저거 삼三과 사四 아냐?” 라며 유난히 길어 보이는 그의 검지가 앞차에 쓰인 글자를 가리킨다. 앞에서 달리는 탑차에는 (주)삼왕 (株)三王 이라는 회사 이름이 세로로 새겨져 있었다. 삼三과 사四라니? 얼른 감을 잡았다. 막대 세 개를 뉘어 놓고 셋이라고 하는 것은 굳이 한문 공부를 안 해도 알법한데, 그 가운데 내리그은 막대 하나가 덧붙으면 넷을 의미하지 않겠느냐는 그의 짐작을 알아챘다. 낯선 동양 문자를 짐작으로 맞추었다 싶어 내심 얼마나 기뻤을까.
운전 중이던 현장용 지프만으로도 소음이 심한데 트레일러들이 쿵쾅거리며 양옆을 싸고 달렸다. 일단 소음 지역을 벗어 날 필요를 느꼈다. 태종대 탁 트인 커피숍에 앉았다. 송카 박사가 짐작한 삼왕三王이 삼과 사가 아니라는 설명을 시작하였다.
“셋三에 막대 하나 내려 그은 글자를 보고 넷四이라고 이해한 너는 대단히 영리하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네가 사四라고 여긴 문자는 넷이 아니라 왕이라는 뜻이다.” “홧?” 그가 목청을 돋우었다. “너희는 막대를 세워서 하나라 표시하고, 우리는 뉘어서 표시한다. 그리고, 너희는 두 개를 세워 둘, 우리는 뉘어 둘, 또, 너희는 세 개를 세워 셋, 우리는 뉘어서 셋을 표시한다.”
“그런데, 한국에서의 일은 하나로서 가치도 있지만, 하늘이라는 뜻도 포함된다. 그리고 둘은 땅이라는 뜻이다. 삼은 땅을 딛고, 하늘을 이고 사는 사람을 의미 한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그건 알겠는데, 막대 세 개 가운데에 하나를 내려 그은 것이 어떻게 왕이 되느냐?”며 눈을 부라려 뜬다. “그것은 철학적 사고가 필요하다. 하늘과 사람과 땅을 꿰뚫어 통치하는 그자가 왕 아니냐?” 며 되묻듯 설명을 덧붙였다.
“야! 놀라운지고.” 송카 박사는 무릎을 소리 나게 치고 흰자위가 다 드러나도록 눈을 더욱 크게 떴다. 그만한 일에 호들갑 떨 것까지 없지 않느냐 싶었다. 개발도상국 낯선 땅에 자신이 고안한 발명품을 무사히 설치하였음에 긴장이 풀린 여유도 작용했겠지.
세계최초라는 자부심과 독일인 박사가 엄지를 세워 칭찬하는 부분에서 우리 팀원들도 다소 우쭐함을 감추지 못했다. 빨리빨리 근성과 프로근성이 맞물려 계약한 기간보다 한 달을 앞당겨 시운전이 완료되었던 그 작업은 모두에게 보람찬 일이었다.
왕王에 대한 오해는 일단락 지었으나 재독 한국인들에게 자랑삼지 말기를 바랐다. 니체의 초상을 닮은 첫인상처럼 독일인 특유의 치밀함과 전문가로서의 묵직한 고요를 품고 있던 그가 새삼 보고 싶던 차 곧 내한한다니 마침 잘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