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산문)
희영이와 희영이 친구 넷은 언덕위로 올라가 해가 지는 것을 감상 했다
서쪽 하늘이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웃음을 해살거리는 미연이가
와~~멋지다아~ 하고 외치자
개미허리 낭창 거리는 채영이가
와~~황홀하다아~ 하고 외치고
뒤따라서 연꽃 같은 연심이는
와~~핏빛이다아~ 하고 외쳤다
희영이는 와~~먹음직 스럽다아~ 하고 외쳤다
외치고 나서 희영이는 깜짝 놀랐다 어떻게 붉은 노을을
먹음직스럽다고 할 수 있는가?
아마도 해가 떨어지기 직전의 노을이 잘 익은 토마토의 속살 같은
것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떤 때는 정육점의 샛빨간 고깃덩어리 같을 때도 있었다
그녀들은 언덕 위에서 해가 완전히 가라앉아 땅거미가 뱀처럼 기어 올 때쯤 내려와서
시장 끝 광장 건너편에 있는 극장 옆에 새로 생긴 샤넬 카페로 들어가 한시간 가량 수다를 떨었다
희영이 일행은 몇 달 전에 남자 친구가 생겼다는 연심이를 졸라서 연심이의 연애담을 들었다
연심이는 뜻밖에도 이야기를 재미있게 이끌어 갔다
그녀들 셋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부러운 듯 연심이를 경이롭게 쳐다보며 연애 얘기를 흥미롭게 들었다
양 볼에 보조개가 파이는 연심이는 얼굴을 붉히면서 연신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자신의 이야기를 해나갔다
미연이는 "야 ,너만 즐기지 말고 나도 하나 소개팅 해라" 하면서 까르르 웃었다
"희영아, 너도 하나 소개팅 해달라고 해라" 하면서 미연이가 헤실 거리며 희영이 옆구리를 쿡 찔렀다
하지만 희영이는 아직까지 연애할 마음이 별로 없었다 늙으신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막내딸이어서 일지도 모른다
희영이네는 딸만 넷이었다 희영이 큰 언니와 작은 언니는 각각 호주와 캐나다로 이민가서 살고 바로 위 언니는
제주도에서 귤 농장을 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샤넬 카페를 나와 시장통으로 들어가 입구 쪽으로 나갔다
오일장날 이었던 오늘 장사치들이 모두 파한 시장통은 한산 하였다
시장통 가운데로 쭉 나가면 세 갈래길이 나왔는데 삼거리 였다
장터 막걸리 집에서 거나하게 취한 늙수그레한 남자들의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들이 막 헤어지려는 찰나 막걸리 가게 앞에서 리어카에 찌그러진 못난이 토마토를 팔던 아저씨가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며 다 못 팔린 토마토를 주섬 주섬 리어카에 실었다
희영이는 그 토마토가 아까 보았던 노을 같다고 생각 했다
"아저씨 토마토 얼마예요?" 희영이가 물었다
밀짚모자를 쓰고 키가 겅증한 과일 장수가
"한 관에 만원이유"
"아, 그래요, 맛은 어떤가요?"
"맛이야 꿀맛이지"
"자, 이것 좀 먹어 보슈 아가씨들" 아저씨가 토마토를 하나를 사등분으로 잘라서 맛보기를 했다
햇살에 농익은 붉은 살점이 스르르 식도를 타고 내려가며 비명을 질렀다
그녀들은 그 달콤한 비명에 만족하면서 토마토를 샀다
희영이가 한 관에 만원어치 나머지 셋은 무겁다고 반관에 오천원어치씩을 샀다
과일 장수는 마지막에 많이 팔아서 흡족한 얼굴을 하였다
그녀들은 세 갈래 길 삼거리에서 각자 헤어졌다
미연이와 채영이는 쭉 뻗은 가운데 길로 가고 연심이는 오른 쪽 철길 둑을 따라 넝쿨장미가 우거진
아름다운 길로 갔다
그녀들은 손을 흔들면서 또 만나자고 했다
연심이가 손을 들어 흔들 때 그녀의 배꼽티가 당겨 올라가 땡그란 배꼽이 뾰족한 얼굴을 내밀었다
연심이의 밀집모자 아래서 긴 머리타래가 바람에 날려 넝쿨장미의 배경으로 아주 예쁘게 보였다
희영이는 아직까지 짧은 배꼽티를 입어 본적이 없었다 부모님 때문에 그런 옷은 삼가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연심이는 그다지 예쁜 얼굴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외모에서 풍기는 시원시원 함과
눈매에서 풍기는 서글서글함이 붙임성이 있고 활달한 성격에 건강미가 물씬 풍겨서 바다에서 막 건져낸
펄떡 거리는 물고기 같았다
연심이가 희영이 집에 놀러 왔을 때 그런 그녀를 희영이 부모님은 연심이를 무척 좋아 하셨다
그리고 자신들 슬하에 아들이 없는 것을 속으로 한탄 하였다
희영이는 왼쪽길의 넓은 콩밭이 펼쳐진 길로 걸어갔다 콩밭 사이사이로 수수를 심어 키 큰 수수대들이
어둑사니를 머금고 바람에 건들 거렸다 그 모습이 꼭 오일장날이면 읍내 극장가에서 삼삼 오오 모여
건달처럼 노닥거리는 패들 같았다
희영이는 거기서 30분을 걸어가야 했다
밭가에는 울타리처럼 빙 둘러 옥수수를 심었는데 빨간 수염을 늘어뜨린 옥수수 길다란 잎새들이
너풀거리는 것이 왠지 무섬증을 일으켰다
어둠은 순식간에 밀물처럼 달려들어 희영이를 보쌈 하듯이 애워쌌다
가로등이 듬성 듬성 서서 빈 길을 비추고 사방이 적막했다
멀리서 개구리 우는 소리만 들려 왔다 희영이 자신의 발소리만 들릴 뿐 희영이는 보통 이런길은 자전거를 타고 다녔으나
오늘은 친구들과 만나느라 거추장 스러워서 안가지고 나왔던 것이다
읍내에서 한우물로 들어가 충주쪽으로 빠지는 버스는 이미 떠나버려서 탈 수가 없었다
희영이가 택시를 안 타고 걸어오는 이유가 있었다 시골이라서 택시기사는 손님에게 왕복요금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닮아 알뜰한 희영이는 그래서 늘 자전거를 타고 다녔던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밤중에는 절대로 혼자서 택시를 타지 마라는 부모님의 신신 당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희영이가 30분을 걸어가는 동안에 무순일을 당하여 소리를 쳐도 마을 까지는 들리지 않는다 어림도 없다
갑자기 콩밭에서 검은 물체가 불쑥 일어섰다 희영이는 걸음아 나살려라 하고 뛰었으나
토마토 봉지가 갑자기 더 무거워서 크게 뛸 수도 없었다 토마토를 산 것이 후회스러웠다 그것도 한관 씩이나 샀던
자신이 미련스럽다고 생각 하는데
갑자기 밤골에 사는 승희 언니가 떠 올랐다 승희 언니는 재작년에 읍내에서 돌아오다 실종 되어 아직도 못 찾고 있었다
그 당시 테레비에 승희언니 뉴스가 크게 나왔고 마을은 날마다 경찰차들이 들락 거렸다
승희는 자신보다 두 살이 더 많은 스물 다섯이었다 승희 어머니는 딸이 실종 된 후 음식을 전폐하고 병을 얻어
지금은 요양원에 있다
등에서 식은 땀이 주르룩 흘렸다 이마의 송글 땀이 눈속으로 비집고 들어와 따가왔다
젖은 길다란 머리칼이 그녀의 땀에젖은 얼굴에 달라붙어 앞을 보기도 힘들었다
그녀는 토마토 봉지를 내버리고 뛰고 싶었으나 생각과는 달리 그녀의 손은 과일 봉지를 더욱 꽉 움켜쥐고 있었다
숨이 찼다 가슴에 통증이 왔다 선뜩한 강바람이 이마를 스치자 그제서야 정신이 조금 들었다
희영이는 자신이 너무 지레 겁을 먹어 헛것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마을이 바로 저기에 있었다 희영이는 마을이 이렇게 고맙고 따듯한 것이란 걸 오늘 처음 알았다
괴강 다리 아래에서 강이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물소리가 갑자기 속살대는 정다운 소리로 들려왔다
저만치서 까만 물체가 뛰어왔다 진순이였다 희영이는 구원자를 만난 듯 반가와서 진순이를 으스러 지도록 껴 안았다
"진순아 언니가 오늘 너무 무서웠어, 정말이야" 진순이도 희영이의 머리까지 뛰어 오르며 그녀의 손등을 마구핥았다
대문을 들어서자 연신 동구밖을 내다보던 늙은 어머니가 벼르고 있었던 듯 막내딸을 향하여 눈을 크게 뜨고 혼내려고 하다가는
차마 사랑스런 막내를 혼낼수가 없었던지 평소 몸가짐이 조신한 딸에게 눈을 곱게 흘기면서 "다 큰 체녀가
일찍일찍 댕겨야지 너, 재넘어 밤골에 오씨네 딸이 제작년에 그꼴로 당하고 집안이 풍지박산이 난걸 벌써 잊었남?"
희영 어머니는 딸 손에서 과일 봉지를 받아들고 부엌으로 들어가 치아가 부실한 영감을 위해서
토마토를 믹서기에 갈아 딸이 작년 여름 여행 갔을 때 사 온 예쁜 유리컵에 담아 내왔다
영감이 쥬스를 후루륵 마시고는 한마디 하고 들어갔다"
"도마투가 참, 달고나, 잘 먹었다 그런디 너는 좀 일찍 들어오지 않구 니 에미가 노상 걱정 하자녀, 조심허구 댕겨라"
"네, 알겠어요" 그녀는 공손하게 대꾸를 했다
그녀의 아버지는팔십을 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 자기가 죽기전에 이집의 데릴사위를 보고 죽는 것이 원이었다
유리컵 안에 아까 읍내에서 보았던 노을이 빨갛게 익은채 들어 있었다 그녀는 그 노을처럼 달콤한 꿈을 꾸고 싶었다
어느새 별들은 처마 밑으로 내려와 속살대고 있었다
진순이도 잠자러 들어가고 사방은 고요속으로 잠기어 갔다
희영이는 씻고 들어와 짤막한 일기를 쓰고 오늘 본 아름다운 '노을'을 (시)로 쓰고 나서 전등을 껐다.
눈 을 감고 아까 카페에서 미연이가 옆구리를 쿡쿡 찌르면서 말하던 것을 생각했다.
그러나 자신은 부모님이 바라시는 대로 데릴 사위라는 남자가 자기의 남편이었다.
집 앞의 넓은 논과 밭을 경작하고 우뚝 솟은 뒷 산과 넓은 집터와 대궐같은 집을 이어받아 대대로
지켜 나가는 고향 지킴이가 되어 줄 든든하고 믿음직한 남자가 굴러 오기만을 바랄 뿐이다
완고하고 보수적 기질인 부모 아래서 연애는 그녀에겐 환상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열어둔 창으로 앞마망에 심은 꽃향기가 스며 들었다 이제 스물 네 살의 푸른 청춘이
푸른 바다에 떠 있는 하얀 돛 처럼 순풍에 떠 갈 수 있기를 그녀 꿈을 꾸며 잠드는 밤이
축복으로 다가 올 수 있도록 풀벌레 소리 음악처럼 들리는 그밤이 깊고 푸르게 익어갔다
2024. 6. 2일 일요일 오전 9시 1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