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주의 춘천 이야기18
절실한 마음이 담긴 기자풍속과 장수기원
<신성한 춘천의 산하>
춘천은 산과 강이 잘 발달해 있다. 예부터 산을 등지고 물을 앞에 둔 배산임수(背山臨水)는 최고의 명당이라,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장소였다. 춘천에는 음택풍수[묏자리]와 양택풍수[집자리]가 잘 갖춰진 고장이다. 천년 집터가 있고, 천년 무덤이 있는 이유이다. 이런 환경도 사람이 있어야 가치가 있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사람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그래서 예부터 우리 가정에서는 자식들이 많이 태어나고 건강하게 자라기를 기원했다. 건강하고 안락하고 풍요롭게 사는 세상을 가꾸는 가장 기본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랑으로 맺어진 가족이야말로 최고의 삶터이기도 했으니, 아이 출생을 기원하는 기자풍속과 오래 살도록 기원하는 장수기원풍속은 어쩌면 당연한 행위였다. 얼마나 절실하면 그런 풍속이 신앙으로까지 되었을까.
<바위와 신수(神樹)에 기원>
춘천시 곳곳을 답사하다 보면 기자풍속과 장수기원풍속을 행한 장소를 찾기가 아주 쉽다. 잘생긴 바위와 나무, 그리고 개울 옆에는 온통 기도의 흔적이 남아 있다. 달나라와 화성에 사람이 가는 세상인 21세기에도 그런 정령신앙(精靈信仰)이 있을까. 우리 주변에는 경전(經典)을 갖춘 종교가 아주 흔하고, 그런 종교시설이 수천 개나 있는 춘천시에 아직도 정령신앙이 있을까? 우리는 그런 물음을 던질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과학이 발달하고 현대 종교가 혼재해 있어도 사람들은 산으로 강으로 찾아가서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춘천시 가운데 우뚝한 산이 봉의산이다. 봉의산에는 시민들이 아침저녁으로 쉴새 없이 등산하고 산꼭대기에서는 체력 단련을 위해 운동하고 있다. 그런 봉의산을 둘러보면 곳곳에 기도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그 흔적은 아주 오래되지 않고 바로 어제오늘 했던 흔적이다. 소금이나 쌀이 담긴 귀신 단지가 놓여 있고, 커다란 바위에는 태어난 연월일시를 적은 사주(四柱)와 이름이 빽빽하게 쓰여 있다. 특히 봉의산 부엉이바위에는 돗자리까지 갖춰놓고 기원했다. 고산의 바위와 소나무에는 작은 제단이 마련되어 있고, 신기(神旗)를 높이 세워 놓았다. 이런 기원 장소와 나무는 춘천의 산마다 계곡마다 있다.
<산신과 서낭, 그리고 가신>
요즘 일부 사람들이 흔한 종교시설에 가서 기복(祈福)하는 행위는 당연하고, 산이나 강을 찾아 기복하는 행위는 옳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런 관념은 버려야 한다. 세상에 미신(迷信)은 없다. 우리 조상들이 절대시하고 지금도 행하고 있는 가신(家神)과 동신(洞神)에 대한 신앙은 절실함에서 비롯하였다. 절실함이 없는 믿음은 없다. 그러니 미신이란 말은 쓰면 안 된다.
우리 선조들이 건강한 아이들을 바라고 장수를 바라며 행했던 풍속은 모두 사람이 주체가 되는 신앙이었다. 사람이 죽어 산신이 되어 산 사람들을 보살피고, 삼신이 아이들을 점지해 주고, 칠성신이 아이들을 무탈하게 길러준다고 했다. 아이들이 물놀이하다가 익사하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정월 대보름날에 강가에 가서 물고기와 오리에게 조밥을 던져주던 어부식(魚鳧食)도 부모의 자식 사랑에서 비롯했다. 아이들이 사고 없이 무럭무럭 자라고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의 표현이었다. 이처럼 춘천의 기자풍속과 장수기원은 모두 사람이 중심이 되는 세상을 가꾸고자 하는 절실한 마음의 소산이었다. 춘천사람들이 사람을 아끼고 위하며 행했던 소박하고 절실한 이런 신앙처럼 서로를 위해 베풀며 사는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