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과 기억 사이
우리는 자꾸 잊어버리고 산다 잊고사는게 편하니까 그런가부다
둘째를 임신중에 아는 언니 따라 사주카페에 간적이 있다. 용한 신점이라길래 궁금해서 따라간건데 볼록 나온 나의 배를 보더니 신말을 아이가 들으면 좋지 않다며 옷으로 덮던지 멀리 떨어지라고 했다 언니의 점사를 다 봐주고는 옆에 앉아있던 나에게 서비스 차원으로 몇마디 건냈다. 뱃속 아이가 딸이라는 것이다. 난 이미 5개월이 지난터라 아들인 것을 알고 있었고 아들이라니까 그럼 아주 영특한 아이로 자랄거니 잘 키우라고 했다. 딸과 영특함은 무슨관계인지 모르겠고 이제 중학교 1학년 멍뭉미를 넘어 멍충미를 뽐내는 녀석땜시 고민이 많은 난 종종 생각한다 ‘우리아이가 퀴어라면 지지해줘야지’
나는 10대때부터 공기처럼 존재하는 퀴어를 인식하고 있었다. (사촌 친구 선배등) 퀴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원인중 하나는 원가족에서의 불인정이다. 그 고통 때문에 커밍아웃을 못하고 커밍아웃을 하고나선 외로움으로 아파하다 떠나는경우를 종종 보아 왔다. 부모에게서 조차 부정당한 생명이라니. 사라지는이들 때문에 나는 견딜수 없이 서글펐다. 내 서글픔을 잠재우는 방법은 그들을 지지해주는것이었다 나의 평안을 위해 그들을 지지했다.
서울은 점점 비대해진다. 팽창하다 못해 수도권이라는 테두리까지 둘렀다. 경기도민의 서울출퇴근의 애환이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잘 보여졌다는데 지방소도시 주민이 보면 그게 뭔말인가 싶을 것이다. 이렇게 각자 서있는 곳에서의 시선은 각기 다를 수 밖에 없다.
불쾌한것들은 사람 많은 서울에서 되도록 멀리 지어진다. 쓰레기장 화장터 발전소 등 그중 원자력 발전소는 깨끗하고 안전하다고 하는데 양끝 최남단에 지으려한다. 후쿠시마 원전에는 지금도 세슘인지 뭔지 모를것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는데 우리는 바다수영도 하고 회도 먹는다. 천일염이 오염될것이라고 소금을 사재기 하던때가 벌써 15년전이다 5년이면 해류가 돌고돌아 우리나라 해상까지 도달한다던 공포가 십여년이 흐르니 희석되어 버렸다. 망각이 때론 약이 되려나 가뜩이나 머리아픈데 그까이꺼 하고 잊어버리나보다
밀양 산속에 천막을 치고 앉아 철탑을 세우려는 것을 막으려는 할망들과 아지매들이 있었다. 마을에서 대를 이어 농사짓고 살던 사람들을 새로운 곳으로 옮겨 준다해도 힘든 판에 푼돈을 준다는 것에 처음엔 들은채도 안했지만 마을 이장을 포섭해 cctv로 감시하고 주민들 사이를 돈으로 저울질하고 이간질을 했다. 필요하면 은근한 협박도했다. “아버님 아들 생각하셔야죠 아드님 모 동사무소 차장이죠? 이렇게 버티시면 아들한테 좋지않아요!“ 하며 기어이 도장을 찍게했다. 도장을 찍어 미안한 사람들과 그깟돈 안받고 말지 했던 이들의 사이는 당연 멀어졌다. 한국전력의 집요한 계략이었다. 그럼에도 9년동안 송전탑 1대도 세우지 못했다. 마음이 급해진 한전은 정부에 경찰병력을 요구하고 2014년 6월 11일 행정대집행이라는 이름으로 선전포고를 했고 쇠사슬로 서로의 몸을 묶어 버티던 할망들과 마을 여성들을 끌고 내려와 벌금형 징역형을 내렸다. 그 벌금형을 모을때 나도 함께 모금활동에 동참은 했지만 자세한 내막은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알게되었다. 이후 송전탑은 세워지고 저항은 실패된 듯 보였으나 밀양의 탈핵운동은 곳곳의 저항(청도,홍천,당진,울산지역) 과 연대하고 이어지고 있다. 이 사건을 우리 서울 사람들은 잘 모른다. 왜 알아야 하냐고? 서울사람들이?
밀양 주민들이 서울에 집회하러 올라왔을때 휘양찬란한 서울의 야경을 보고 “느그 여 전기 갖다 쓰느라고 우리집 앞에다가 말뚝 박아놨구나“ ”전기가 필요하면 즈그가 서울 시내 한복판에 세우면 되는데 안하잖아.“ ”시계를 보니 새벽 4시인데 대낮인기라 서울의 밤은 너무 밝더라고” (전기 밀양 서울 글 김영희 발췌) 이 말들은 오래오래 내 마음에 남아있다
광고효과를 위해 밤새 빈공간을 불켜놓는 상점들 에어컨과 난방기와 없으면 안되는 사람들. 겨울에도 더워서 반팔을 입고 사는 이들이 있고 누군가는(수도권 주민은 아니다) 그 편의를 위해 삶의 터를 빼앗긴다. 송전탑 몇백미터 반경에는 몸에 해가되는 전자파가 흐른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 특히 비가 올때면 그 파장은 더 강해지고 위험해진다. 송전탑 주변에 사는 주민들의 암발병 사망률이 유의미하게 높다는 것도 잘알려져있다.
4 년전 여름휴가를 울진으로 갔다. 동해 바닷물이 따듯해서 놀기가 참 좋았다. 그후로 몇 달뒤 오랫만에 만난 선배의 직업이 무인 로봇 자동화 시스템 엔지니어였다는 것을 알았다. 무인시스템이 필요한 원전에 시공 중인데 울진에도 공사중이라고 해서 나 몇 달전에 울진으로 물놀이 하고 왔다고 하니 표정이 굳는다, 원자력 발전소 근처 바닷물은 좋지 않다면서.. 그 따듯함은 위험한것이라며… 그 바닷물의 온기를 기억하던 나의 피부위에 소름이 돋았다. 원전만큼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가 없다고 떠드는데 관련 설비 기술자들은 위험하다고 하는 이 간극은 어찌해야 한다는 말인가?
원전 바닷가에서 나고 캐는 해산물들은 안전할까? 수입산은 안전할까? 유럽마피아들이 원전핵패기물을 대서양 바다에 몰래 무단 배출 매립시켜서 장애아 출생률이 솟구쳤다는 것은 소설이 아니고 현실이다. 일본의 바닷물이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 남북해 오대양을 거쳐 고루고루 퍼지는 것은 과학이다. 똥을 싸면 그 똥은 언젠가 흘러흘러 내 입으로 들어온다. 원자의 구성과 배열이 조금 달라질뿐. 우리 지구인은 둥근 공 안에서 모든 것은 공유하며 이어진채 살고있다.
지금 당장의 나의 편리 (쾌적함 시간절약 탐미 등)를 위해 망각되는것들을 하나씩은 기억해내보자. 세상에는 잘 보이진 않지만 수 많은 고통과 아픔이 존재한다. 노동권 안전권 여성인권 장애인권 퀴어인권 참사희생자 등 나와 하나도 상관없는 먼 일 같다면 당신은 나처럼 정말 복받은 인생이다. 그 복받은 인생에 한 곁을 내어주어보자. 염치를 조금 챙기자는 말이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정기 후원이다. 마음이 가장 쓰이는 한곳을 정하자. 그리고 그들이 하는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이어져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어느새 안 보이던것들이 보이고 자꾸만 잊어가던 것들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기억이 주는 불편이 망각이 주는 편리보다 따숩다. 소리없이 우는이들에게 손수건한장 건낼수 있는 여유를 부리면서 살아보자.
첫댓글 불편과 아픔을 주는 얘기들 잘 읽었습니다.
아픔이 공감이 되셨다면 성공입니다
“지금 당장의 나의 편리 (쾌적함 시간절약 탐미 등)를 위해 망각되는것들을 하나씩은 기억해내보자.” 저도 돌아보게 하네요.
십대부터 퀴어를 공기처럼 인식하고 있었다니 그 얘기도 궁금하네요.
존재와 인식 어느게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언젠가 풀어낼수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명감을 갖고 쓰신 게 느껴져 감동이고 멋있습니다. 염차 챙길게요^^
학인들을 향한 글은 아니었던지라..감정이 앞섰구나 합평하면서 깨달았네요
저는 망각과 기억사이라는 제목이랑 후쿠시마 원전이랑 가장 이어져있다고 생각했어요. 그 당시 핫했고 모두 문제를 인식 했던 것 같은데… 저도 오염수 방류 소식을 듣고 마지막 회랑 해산물이다 하면서 횟집에 가고 미역도 소금도 쟁여뒀던 기억이 있는데요 어느새 다 잊고 회도 열심히 먹고 미역국도 여전히 좋아합니다. 그 똥이 흘라흘러 내입으로 들어오고 있네요 추후에 어떻게 될지 상상하면 무서워지네요 🥹
저도 회를 너무 좋아해서 그때 당시 우울했는데 지금은 아무 생각없이 잘먹고있어요 망각이 순기능을 하는부분도 있지만 서늘해지는때가있지요 ㅠ
알고도 행동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부끄럽고 싫어서 외면해버리고 싶은 유혹이 참 많이 드는 것 같아요. 언젠가부터 적어도 “외면하지 않고 지지하기”만은 실천하자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아이를 낳고 세월호를 겪고 세상을 마주해 나갈 때 어시연이 정말 큰 산이었는데… 여전히 열심히 활동하고 계신 분을 만나니 너무 반갑네요~ 어시연의 살아있는 책읽기와 세상 안에서의 실천 모두 지지합니다^^
오늘 뒷풀이때 안계셔서 아쉬웠어요 메타포라에서 어시연회원을 만나서 너무너무 반가워요 알고 행동하는것은 저도 쉽지않아요 노력할뿐이에요 남은 5회동안 깊이 나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