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자 시점에 비친 나의 이웃들
강성희(리디아)
# 101호, 노부부 이야기
그들은 20년 전, 지금의 나보다 젊은 모습으로 이 아파트에 입주했다. 노부부라고 하기엔 아직은 젊은 기운이 남아 있어 보였으나 남편은 본업에서 은퇴했으리라 짐작했다. 내가 출근하는 이른 시간이면 부부는 등산복 차림으로 나와 마주칠 때가 종종 있었다. 그래도 101호 할머니는 내가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면 날이 좀 풀렸지요? 하시며 밝은 웃음으로 인사를 잘 받아 주셨다. 1호는 현관문이라고 불리는 대문을 열어 놓고 있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에는 보지 않으려고 해도 슬쩍 보이는 현관 댓돌에 가지런히 두 부부의 신발만 놓여 있었고 마주 보이는 벽에는 달마대사의 수묵화가 걸려 있었다. 아마 이 분들은 종교가 불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이 아파트를 비웠던 10년의 시간, 그리고 돌아와서 흘러버린 8년, 그 사이에 101호 부부는 정말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셨다. 할머니께서는 많이 편찮으셨는지 지팡이를 짚고 할아버지의 부축을 받고도 한 발걸음 한 발걸음이 너무 힘들어 보인다. 어떤 날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장을 보아 오시는 광경을 14층에서 내려다보게 되었다. 장바구니 카트를 할아버지께서 밀고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옷깃을 잡고 느릿느릿 걸어오신다. 아파트 입구에서 아파트 동까지 50M 거리를 500M나 되는 듯이 느린 걸음으로 밀고 오시는 카트의 무게가 그분들의 삶의 무게인 것처럼만 느껴져서 마음이 짠하다. 얼른 뛰어 내려 가서 밀어 드리고 싶다. 10년 후, 20년 후의 내 모습을 미리 보는 듯하다. 그래도 명절이면 요즘은 열리는 날이 없던 대문도 활짝 열려 있고, 아이 어른 웃음 소리와 댓돌에 신발이 한 가득이다. 내 마음이 흐뭇하게 안도가 된다.
# 60X호 교장선생님 이야기
내가 이 아파트에 이사 오고 난 후 며칠 지나지 않아 6층에 이사 올 이웃이라며 한 부부가 집 구경을 좀 해도 되겠느냐고 우리집을 방문했다. 나보다 몇 살 더하거나 부인은 나보다 조금 어리거나 해 보였다. 입주하기 전에 거실을 확장하고 격자 창문을 달았더니 그것을 본 사람들에 의해 집이 예쁘다는 입소문이 났나보다. 그렇게 한 번 인사를 했던 60X호 남자는 출근 시간에 가끔 엘리베이트에서 만나면 그냥 눈인사 정도는 하는 이웃이 되었다. 그러나 그 부부가 601호인지, 602호인지도 몰랐다.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도 몰랐다. 그 부인은 그렇게 우리집을 모델하우스 보듯 여기 저기 살피고 갔었지만 가끔 마주치면 인사도 하지 않았다. 처음엔 나는 눈인사를 하다가 받아주지 않는 인사가 무색해 나도 그냥 모른체 하고 엘리베이터에서 숨죽이며 내릴 시간만 기다리는 사이로 지냈다. 그런데 내가 외지에서 살다 돌아온 후 어느 날, 직무연수를 받으러 갔다가 연수장에서 60X호 남자를 보게 되었다. 그 남자에게도 시간의 더께는 나와 비슷하게 내려앉은 듯 중후한 중년이 되어 있었다. 교직에 있는 사람들만 받고 있는 직무연수에 60X호 남자가? 그렇다면 이 사람도 나와 같은 업종? 순간적으로 반가우면서도 인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얼른 판단이 서지 않았다. 외지에서 이 아파트로 돌아온 이 후에는 엘리베이트든 어디서든 이 남자를 본 적은 없었다. 아직 우리 아파트에 살고 있나? 아니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셨나? 100명 남짓의 많은 인원이 큰 강당에 모여 조별 학습을 하는 활동에서 나는 60X호 남자와 같은 조가 아니기를 빌었다. 시야에서 먼 곳으로 피해 다니거나 연수를 받는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 등을 돌리고 있었다. 그런데 원수도 아닌데 외나무 다리에서 어색한 모습으로 두 이웃은 마주쳤다. 60X호 남자와 나는 한 조가 되었다. 원격 신청 접수 순서로 조를 편성했다는데 반갑지 않은 우연이었다. 진작 사모님과 인사나 잘 나누고 살걸......하는 후회도 순간적으로 들었으나, 표정을 바꾸며 ”어머나, 선생님이셨어요?” 하고 인사를 했다. “네, 전 선생님인 줄 알았어요. 늘 이마에 ‘선생님’ 하고 써 붙이고 다니시대요.” 하며 사람 좋은 웃음을 웃었다. 조별 개인 소개 시간에 아파트에서 가까운 모 중학교의 교장선생님이신 걸 알게 되었다. 연수 이 후에는 엘리베이트에서 그 교장 선생님을 만나면 열심히 인사를 했다. 교장선생님께서도 “일찍 출근하시네요.” 하며 인사에 반갑게 응대해 주셨다. 지금은 그 교장 선생님도 퇴직자가 되셨다. 인사를 하고 지내는 몇 안되는 이웃인 셈이다. 대구는 좁다. 사람은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만날지 모르니 항상 누구든 사람을 대할 때는 지성으로, 진심으로 대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 170X호 여 선생님 이야기
그녀도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입주한 이웃이었다. 거의 매일을 긴생머리에 헐렁한 티셔츠나 남방셔츠를 걸치고, 큰 가방을 어깨에 매고 다니는 수수한 차림이었다. 나보다 열 살은 족히 어려 보이는 그녀는 출근 시간대가 거의 나와 일치하는 듯, 자주 출근 시간에 엘리베이트에서 마주쳤다. 그녀가 내려 올 때는 엘리베이터가 늘 17에 머물다가 내려 오는 것으로 보아 그녀는 17층에 사는 이웃일 것이다. 엘리베이트가 열리면 나는 습관적으로 안녕하세요? 하거나 말없이 고개를 숙이며 눈인사를 한다. 그런데 그녀는 절대로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다. 더구나 표정마저 냉냉하다. 그의 표정은 습관성 무표정증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출근 시간대에는 14층인 우리집에서부터 1층까지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면서 서너 곳은 더 멈추어 선다. 그 때 엘리베이터에 들어오는 사람들 중에도 “안녕하세요”하며 큰 소리로 경쾌하게 인사하는 사람, 눈인사만 하는 사람, 그냥 미소만 지으며 들어오는 사람, 다양한 이웃을 본다. 그러나 170X호 그녀처럼 찬바람이 느껴지는 무표정은 본적이 없다. 그 버릇은 20년 전 처음 엘리베이터에서 만났을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어렴풋이 짐작하건대 그녀의 업종도 나와 같은 업종일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러나 초등은 아닐 것 같다. 초등교사들은 아이들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습관적인 미소가 나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북한미사일보다 더 무섭다는 중2의 담임일까? 그녀의 무표정을 보며 그녀의 학생들을 걱정한다. 늘 만나는 사이이면서, 모르는 척, 외면을 하고 한 평도 안되는 좁디좁은 공간에서 몇 초라도 함께 견뎌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일인지 겪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 불편함 때문에라도 우리 아는 척 하고 지내자는 표현을 나는 눈인사로 보냈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엘리베이트 벽면과 대화하고 있다. 그래서 나도 모른 척 하고 지내기로 했다. 그런데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긴 만나나 보다. 우연히 동료의 친정아버지 상의 상문을 갔다가 그녀를 만났다. 나는 내가 아는 얼굴이 있다는 것만 반가워 그녀를 보고 웃었다. 의도적인 웃음이 아니라 아는 사람을 만날 때 저절로 나오는 반사적인 웃음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그 때도 외면을 했다. 나한테 무슨 억하심정이있는 걸까? 불가사의하다. 나중에 아버지 상을 마치고 출근한 선생님한테 그녀에 대해 물으니 전 근무지에서 같이 있었던 초등교사란다. 학교에서의 그녀의 모습이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나이의 힘일까? 전 같으면 나보다도 더 어린 사람이 나의 인사를 무시하는데 내가 왜 인사를 해? 했을 터인데 나는 그녀에게 인사하기에 다시 도전했다. 웃을 줄 모르는 그녀가 안타까웠고, 그녀에게 가르침을 받는 아이들이 걱정되었다. 이제 눈인사가 아니라 큰 소리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했다. 드디어 ”안녕하세요?“ 영혼없는 말투지만 대답 소리를 들었다.
내가 진작에 먼저 다가가 말을 걸었더라면 우리는 좋은 이웃이 될 수 있었을까? 그녀의 직업이 나와 같은 업종일 거라는 예감이 있었을 때, 그 때 내가 큰 소리로 인사하며 좋은 이웃이 되자고 말했더라면 좋은 동업자로서, 좋은 이웃으로 아래 윗집을 오가며 이웃의 정을 쌓고, 유익한 정보도 나누는 그런 관계가 될 수 있었을까?
어릴 때 내가 살던 이웃은 옆집은 물론 한 동네가 모두 이웃이었다. 김장도 이웃의 아낙들이 모두 모여서 같이 하고, 별난 음식이 있으면 서로 나누어 먹고, 어려운 일, 힘든일, 즐거운 일들도 같이 나누었다. 누가 동네에 이사를 오면 오는 이는 팥시루떡을 집집마다 돌리며 이웃으로 편입됨을 신고하고 이웃들은 성냥통을 사다주고 부자되기를 빌어 주며 환영 의식을 치렀다. 시골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초등학교에 다니는 언니와 나는 결석을 하지 않기 위해 이웃집에서 일주일을 먹고 자며 돌봄을 받기도 했다. 가까이 있는 이웃이 멀리 사는 사촌보다 낫다는 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옆집에 사는 사람들조차 정보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그냥 우리 연배의 남자1명, 여자 1명. 식수를 택배로 시켜서 먹는다.(가끔 옆 집 현관문 앞에는 식수 여러 꾸러미가 쌓여 있다.) 그것이 옆집에 대해 내가 아는 전부다. 이런 피상적인 것 뿐이다. 옆집 사람들도 우리집에 대해서 마찬가지일 것이다. 시시로 이건 바람직하지 못한 일, 잘못된 일이라는 걸 생각한다. 그러나 잘못 끼워진 첫 단추를 새삼스럽게 20년이 지난 지금 다시 고쳐 끼우려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마음먹기가 너무 어렵다. 내가 어딘가로 다시 이사를 간다면 내가 먼저 다가가야지, 내가 먼저 인사하고 내가 먼저 문을 열어 좋은 이웃을 만들어야지 하고 후회되는 마음을 다질 뿐이다. (끝) 2019.06.12
첫댓글 APT에 사시는 다양한 이웃들의 생활상과 표정을 세밀하게 관찰 하시고 어떻게 이웃들과 정답게 살아갈까 고민하시는 흔적에 동감을 표합니다. 저는 아파트 생활을 해보지 않았기에 잘 모르지만 아파트는 정말 이웃이라는 개념이 없다는 이야기를 더러 듣습니다. 도시에는 단독주택도 예외가 아닌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날 우리들 이웃의 모습이 민낯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이건 아닌데 생각하면서도
"모두가 그러니..., 나도 어쩔 수 없다"고 자문자답해 봅니다.
하지만 같은 현관을 들어서서 살면서도 서로를 모르는 세상이 삭막하기만 하네요. 잘 읽었습니다.
글을 읽으며 좋은 이웃으로 사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엘리베이터 안은 하늘로 향하는 골목길입니다. 주택가의 골목길보다 더 진한 정을 나누어야 하는 좁은 공간입니다. 인사를 하지 않고 있으면 왠지 서먹서먹하고 분위기가 냉랭해져 고통의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사람은 먼저 말을 걸고 서로 대화를 나누어야 함을 엘리베이터 좁은 공간에서 느끼게 됩니다. 저는 동대표를 맡고 있기도 하지만, 엘리베이터 탐승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먼저 인사하며 말을 걸기 좋아합니다. 또 아이들 이름이나 학교를 물어보며 좋은 점을 칭찬해 주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최근엔 새댁들도 인사를 무척 잘 하더군요.
교훈이 되는 글 잘 읽었습니다.
아파트에 살고 있는 여러이웃의 모습을 심리학적 시각으로 정말 잘 표현하신것 같습니다. 에리베이트 안에서의 어색한 적막감이 너무 무거워 애써 인사를 하지만 인사조차 어색할때가 있기도합니다. 다른 자리에서 다시 만난 이웃은 대단한 인연인것 같습니다. 글을 읽으며 나부터 변화해야 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저도 20년전 입주를 하여 저절로 새로 이사온 이웃들을 잘 파악하고 있어 불편합은 없습니다. 먼저 인사해보면 대게 잘 응해주지만 때론 성격차이나 가정이나 사회에서 안좋은 일이 있는날 남에게 좋지않는 인상을 남길수도 있습니다. 몆차례 인사하면 해결되는 경험도 있습니다.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공동주택에 사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실감나게 묘사하였습니다. 내가 먼저 다가가서 상냥한 표정으로 인사를 하면 분명히 좋은 관계가 유지될것입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어색한 만남을 경험했을듯 합니다. 이런 이웃의 모습들을 재미있게 나타내신것 같습니다.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이웃에 사는 분들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심리 변화에 대한 표현력이 너무 놀랍습니다. 사람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있기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게도 되는 것 같습니다. 이웃과 더불어 늘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잘 읽었습니다.
한 아파트에서 20 년을 살다가 이사를 왔습니다.80 년대 초에는 아파트라도 반상회가 있었기에 달마다 돌아가면서 반상회를 했습니다. 그때치고는 고층아파트가 좀 귀한 시절이었습니다.12층 한라인 24 가구가 모임을 만들어 반원끼리 팔공산이랑 화원이랑 놀러도 갔답니다. 세월이 흘러 새로운 가구가 생기고 또 반상회도 없어지고 그래저래 지내다가 우연히 이곳 경산에 이사를 오게되어 그런대로 지냅니다. 특별히 내왕은 하지 않아도 약간은 시골이라 아이들도 인사하고 지내고 어른들도 눈인사 정도는 하고 지냅니다.아파트문화가 이웃이 잃고 살게 되어 삭막한 이웃으로 변하는 시대에 모두 살고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