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투적인
표현 이제 그만 독창적·역설적
문장 구사
S라인과
동가홍상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고 했다. '동가홍상(同價紅裳)'도 같은 뜻을 가진
말이다. S라인으로 잘 가꾸어진 몸매가 보기 좋은 건 인지상정이다.
사실 쓰기도 어렵지만 차분히 앉아서 꼼꼼하게 읽는 일도 습관을 들이지 않으면 쉽지 않은 게
글이다. 읽을 만해야 좋은 글이라고 했는데, 그 읽는 맛을 일차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각각의 단어와 문장이다.
문장에도 맛이라는 게 있다. 음식에 다양한 맛이 있는
것처럼 문장도 담백한 문장, 쫄깃쫄깃한 문장, 밋밋한
문장, 고소한 문장, 부드러운
문장, 짭짤한 문장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종류가 다양하다.
읽는 이의 눈을 끌어서 전달하려는 효과를 드높일 수 있도록 글을 쓰는 게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그걸 문장 구사의 수사(修辭)라고
하는데,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그것이 얼마나 참신하고 그럴싸한가 하는 것이다.
자신만의 개성이 묻어나는 문장을 구사하고 싶으면 귀와 눈에 익숙해 있는 상투적인 비유부터 버리는
것이 좋다. 더 이상 '천사처럼' 착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라는 말이다. 굳이 쓰려거든 '크리스마스이브의
첫눈처럼' 착하다고 할 수는 있을지 모른다. 이제부터는
'성공의 달콤한 열매'니 '뼈를
깎는 고통'이니 '실패의
쓴잔'이니 '계란으로
바위치기' 따위의 낡은 말은 미련없이 쓰레기통에 버리자.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깊으면 여름이 이토록 뜨거울까요.'
아무리 그래도 이
무슨 억지소리란 말인가. 내가 그대를 깊이 사랑하기 때문에 여름이 뜨겁단다. 내가 만약 그대를 깊이
사랑하지 않으면, 내게 그런 마음이 없으면 여름이 선선할 거라는 얘긴데, 이건 대자연의 섭리나
인과관계에 역행하는 말 아닌가.
그럴 것 같은데 아니다. 그런 물음은 글의 속성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이런 표현은 첫눈을 기다리는 간절함과, 그대를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큰지를 표현하기 위해 쓴 역설의 수사인 것이다. 생각해
보자. 대자연의 섭리조차 그대를 사랑하는 내 마음만은 어쩌지 못한다고 하는데, 그만큼 그대를 열렬히 사랑한다는데 누군들 마음을 꼭꼭 닫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
고정관념과 오감의 문
나만의 색깔을
드러낼 수 있는 독창적이고 참신한 문장과 문체를 구사하려면 먼저 고정관념부터 깨야 한다. 미끈하게 잘 빠진
아가씨의 몸매는 예쁘고, 돼지 멱따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짜증나고, 재래식 변소에서 풍겨나는
똥 냄새는 역겹고, 그녀와 함께 떠먹는 아이스크림은 달콤하기 그지없으며, 내 어깨를 토닥여주는
엄마의 손길은 무조건 따뜻하다고만 생각해서는 오감의 문을 좀처럼 열 수 없다.
S라인을 자랑하는 몸매라고
무조건 보기 좋은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슬그머니 의문을 제기하면 자신이 갖고 있는 고정관념에 균열이 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할
것이다. 돼지가 꽥꽥거리는 소리는 과연 이맛살을 찌푸리게만 하는가. 죽음을 코앞에 둔 돼지의
모습을 떠올리다 보면 그 소리에 따뜻한 연민의 정 같은 것도 생기지 않을까. 똥 냄새가 구수하게
여겨진 적은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없었는가.
그녀에게 버림받은 뒤 옛 추억을 아프게 곱씹으며 먹은 아이스크림의 뒷맛은
어쩔 건가. 엄마의 손도 때로는 얼음장처럼 싸늘할 수 있지 않을까.
광화문 거리 흰 눈에 덮여가고
하얀 눈 하늘 높이
자꾸 올라가네
가수 이문세가 부른
〈옛사랑〉이라는 노래의 마지막
부분이다. 어떤가.
'하얀 눈'은 '하늘'에서 내리거나 떨어지기만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않고서야 그것이 '하늘
높'은 곳으로 '자꾸
올라'간다는 구절을 어떻게 쓸 수 있었겠는가.
독창적인 문장을 구사하는 방법은 또 있다. 평소 생활에서 오감의
문을 시시각각으로 활짝 열어두는 것이다.
오감(五感)은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이르는 말이다. 즉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을 보며, 손으로 만져서 질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오감의 문도 열기 위해서도 역시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색깔은 눈으로 보는 것이고, 소리는 귀로 듣기만 하는
것이며, 냄새는 코로 맡기만 하는 것이라는 보편화된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주황색에서 우리는 온몸을 진저리치게 하는 시큼한 맛도 얼마든지 느낄 수
있다. 노란색을 오래 바라보면서 유치원 아이들이 재잘대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지
않은가. 새신부의 입장을 알리는 경쾌하고 아름다운 웨딩마치가 한낮에도 어둠을 몰고 오는 암회색 먹구름이나
오디 씹은 혓바닥처럼 검보랏빛으로 보인다면 무조건 이상하기만 한가. 달달한 아이스커피 맛도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빨간색으로 보일 수도 있고,
연두색으로 느껴질 수도 있고, 또 계곡에서 물장구치는
소리로도 얼마든지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모든 글쓰기는 세상 속에 있는 사물이나 사건을 바라보는 데서 시작된다. 나와
가까운 곳에 있는 돌멩이 하나도 세상에 있는 사물이다.
나무와 풀, 꽃 한 송이도 나만의
개성 있는 문장을 만드는 데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재료들이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형형색색으로 고운 자태를 바꿔가는 온갖 자연현상도 물론 예외가 아니다.
알싸하게 튀는 나만의 색깔이 묻어나는 문장을 구사하고 싶은 당신은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언제 어느
곳을 가든 틈나는 대로 그런 것들에 눈길을 주어보자.
오감의 문을 활짝 열고 평소 눈에 보이는 온갖 사물들을 그에 어울릴 만한
빛깔, 냄새,
소리, 맛, 감촉
등으로 다양하게 비유(比喩)해 보기를 멈추지
말자.
예를 들어 색깔 하나에 눈길과 마음길을 주어본다. 늦가을이면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낙엽은 대부분 갈색이다.
갈색에서는 비 오는 날의 흙냄새가 풍겨난다. 갈색은 할머니가 끓여주신 청국장이고, 쿱쿱한 냄새가 진동하는
서재이며, 카라멜 마끼아또다. 입안에 군침이 저절로
돌게 노릇노릇 잘 구워진 바게트다.
앞으로는 눈에
비치는 어떤 빛깔이 있으면 그게 무엇이든 망설이지 말고 소리로도 바꿔 보자. 손이나 입술에 느껴지는
감촉은 눈에 보이는 다른 사물에 견주어보기도 서슴지 말자. 귓속을 파고드는 어떤
소리나, 코끝을 쥐고 흔들다 숨을 멎게 할 만큼 향긋한 라일락도 다른 사물로 은유하거나 직유해
보자.
그러면 사랑하는 이와 뜨겁게 키스를 나누는 동안 입술에 느껴지는 감촉이 보랏빛이거나 주황빛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보랏빛은 꿀벌의 날갯짓 소리일 뿐 아니라 입안에 새콤달콤한 막대사탕 맛을 가져다주기도 할
것이다. 시큼한 석류를 베어 한 입 무는 맛은 햇살을 튕겨내는 물고기 비늘이고, 물고기 비늘은 또 바위에 부딪쳐 잘게 부서지는 물방울들의 투명하게 빛나는 어깨와 어깨들에 은유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이로부터 절교를 통보받고 듣는 물방울 소리는 또 붉게 핀 동백꽃으로 얼마든지 직유할 수
있지 않겠는가.
당신도 이제부터는 매화든 산수유꽃이든 고로쇠나무든 시냇물이든 돌멩이든 올챙이든 잠자리든 참새든
독수리든 두더지든 호랑이든 축구장이든 커피숍이든 자동차든 냉장고든 눈에 보이는 건 무엇이든 의인(擬人)해서
그것들과 대화도 나누고, 어깨동무도 하고, 입맞춤도
하고, 포옹도 하고, 서로의 성감대를
어루만져주기도 하자. 가끔은 그것의 볼을 꼬집기도 하고, 옆구리에 발길질도
해보자. 지금 당신의 몸을 덮고 있는 옷을 하나도 남김없이 훌훌 벗어던진 알몸이 되어 그 내면으로 들어가
상상하기도 틈나는 대로 계속하자.
그러면 머지않아서 알싸하고 짭조름할 뿐 아니라 어릴 적 학교 앞 문구점에서 주로 사먹었던
불량식품처럼 쫄깃쫄깃한 맛이 살아 있는 나만의 문장을 구사할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