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익히 잘 아는 찬송 가운데 Amaging Grace(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라는 곡이 있지요?
이곡은 노예상인이었던 존 뉴턴이 개심한 후 작사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너무나도 은혜로운 찬송이죠.
먼저 아래의 영상에서 한번 감상해 보실까요?
너무나도 은혜롭지요?
그런데 한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왜 관객들이 저렇게 구슬픈 모습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을까요?"
쉽게 대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이지요!
"당연하지! 이렇게 은혜로운 찬양을 듣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면 그의 신앙이 좀 ....."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아래의 글을 읽어보시면 달리 생각을 하실 수도 있으리라 봅니다.
" Amazing Grace
지금으로부터 170여년 전인 1838~39년.
지금의 미국 동부 테네시, 노스캐롤라이나, 조지아, 앨러배마 주 일대에 살고 있던 체로키 인디언이 백인 이주민 국가 '미합중국'의 강제 이주령에 의해 고향에서 5천리(2000km) 떨어진 머나먼 오클라호마 주 허허벌판으로 쫓겨났습니다.
이들이 미국 기병대에 쫓겨 피눈물을 흘리며 떠난 사연을 미국사에서 '눈물의 길' 또는 '눈물의 행로'(the Trail of Tears)라고 하지요.
정확히 말하면 '눈물과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화가 로버트 린드노(1871~1970)가 그린 '눈물의 길'(1942년 작)이라는 그림을 보면 마치 이들이 따뜻한 담요와 말, 마차를 갖고 떠난 것 같지만 사실은 몸에 걸친 옷 정도밖에는 거의 갖고 갈 수 없었답니다. 그야말로 맨몸으로 쫓겨난 거지요.
그래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거의 대부분 걸어서 이동해야 했고, 추운 한겨울에도 맨바닥에
누워 잠을 청해야 했습니다.
체로키 인디언은 강제이주로 고향에서 5천리 너머 중부지방으로 쫓겨났습니다.
결국 추위와 굶주림, 질병으로 대략 4,000명이 도중에 숨졌습니다.
이 피눈물과 죽음의 강제이주는 1839년 봄에 끝났습니다.
이때 이들이 부른 노래가 Amazing Grace였습니다.
죽은 이들을 땅에 묻으며 이 노래의 영감을 빌려 그들의 명복을 빌었고 살아남은 이들의 힘을 북돋우기 위해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 노래를 체로키어로 번역해 이들에게 전해 준 인물은 이들과 함께 살면서 강제이주에 끝까지 반대해 법정투쟁까지 하며 이들을 도운 백인 선교사 새뮤얼 워시스터(1798~1859)였습니다.
오늘날 체로키 인디언들은 이 노래를 거의 애국가처럼 부릅니다.
체로키 인디언이 부르는 이 노래에는 이런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지요.
말하자면 과거를 기억하기 위한 투쟁입니다."
어떠십니까? 위 글을 읽어보시니까 Amaging Grace가 좀 달리 느껴지시지요?
그리고 왜 위의 영상에서 관객들이 눈물을 흘리며 이 곡을 듣는지 가슴으로 이해가 되시지요?
자세히 보십시오. 눈물을 흘리며 애절한 마음으로 이 곡을 듣는 분들 붕 상당수는 America Indian의 후손임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원래 그 땅의 주인이었던 인디언들 말이지요!
이런 선이해를 가지시고 아래의 Cherokee Indian의 말로 불려진 Amaging Grace 영상을 보시면 또다른 감동이 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QqkpYgvIBtU
첫댓글 :) 은혜롭습니다
오랜만이죠? 공부는 잘 하고 있죠? 어메이징 그레이스... 달리 느껴지셨나요? 늘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인간은 죽음의 고통을 통과할때..
그때야 비로서 놀라운 그 은혜를
깨달아 알게 되는것 같습니다...
지금 이순간도 아픔의 시간을 지나가고 계시는 모든 분들에게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기를 기도합니다.
금요철야 찬양곡을 찾다가 우연히 들렀습니다. 참으로 은혜로운 찬양이기도 하지만,
그 속에 있는 의미가 더욱 감동이 됩니다.
전도사님 안녕하세요? 그간 잘 지내셨지요? 대전에도 미세먼지가 많은가요? 서울지역에는 많이 심각한가 보던데요. 무심코 마냥 은혜로운 곡으로만 느끼며 불렀던 곡에 또다른 애달픈 역사가 있다는 걸 알게 되니 좀 더 숙연한 마음으로 부르게 될 것 같습니다. 기도회에 은혜가 넘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