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사막/ 도복희
여자의 몸에 더듬이가 자라기 시작했다 밤이 익어갈수록 손톱을 물어뜯는 횟수가 빨라졌다 그가 벗어놓고 간 와이셔츠와 빠진 몇 가닥 머리카락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낯선 냄새가 여자의 몸에 붉은 발진을 일으켰고 시간이 지나면서 냄새의 농도는 차츰 진해지기 시작했다 너무 오래 그 남자만 바라보고 왔기에 손동작 하나하나 읽히지 않는 것이 없는 여자에게 냄새의 징후는 불길했다 그것은 편서풍이 불 때 느껴지는 묘한 기분으로 가만있어도 멀미를 일으켰다 여자의 밤이 길어지고 발진의 부작용으로 온몸을 벅벅 긁어댈수록 길게 뻗어가는 더듬이는, 닫힌 현관문을 빠져나가 그가 품고 있는 흔적을 찾아다녔다 몸 한쪽에서 길어진 더듬이가 낯익은 냄새를 찾아 나선 동안 그녀의 발이 검은 집을 기웃거렸다 키우던 난화분들이 배배 말라가며 뱉어내는 신음이 베란다 가득 쌓여가는 집, 생장점을 저당 잡힌 여자가 더듬이로 버티는 집에서 밤마다 목쉰 소리가 웅얼웅얼 창틀을 새나갔다 악어가죽 소파에 앉아 있는 등에 악어 한 마리 아가리를 쩌억 벌리고 있다 끝도 없이 중얼거리는 입 바삭하게 말라가는 말들이 악어의 목구멍 속으로 연신 뛰어 들어가는 저녁, 그녀의 사막에는 돌개바람 뿌리가 쭉쭉 뻗어가고 있었다
- 2011년 <문학사상> 신인상 당선작
■ 도복희 시인
- 1966년 부여 출생
-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 2009년 <시와정신> 등단
- 2010년 <천강문학상> 수상
- 시집 <그녀의 사막> 외
《 심사평 》
- 정면에서 응시한 여성의 진실과 육체
마치 신춘문예처럼 응모 작품이 많았다. “저걸 언제 다 읽어!” 기가 딱 막히는 순간도 있었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시심을 읽는 즐거움이 있어 지루하지는 않았다. 그 많은 작품에서 오직 한 작품을 고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래 이거다.”하고 잡아내는 일은 어려웠다. 결국 몇 작품을 가지고 고민을 거듭했고 결국 도복희의 〈그녀의 사막〉 하나가 손에 남았다.
〈그녀의 사막〉은 여자의 본질 속 그 깊은 본질을 끄집어내면서 정면으로 여자의 진실을 피하지 않고 직시하는 강렬한 작품으로 아프고 고통스러운 심리를 무리 없이 간파하고 있다. 가파르고 건조한 여자, 그녀의 진실과 육체 사이에서 일으키는 갈등의 흔적을 세밀하게 천착하면서도 위기의 표현들을 잘 견제하는 능력으로 본다면 앞으로 더 좋은 시들을 생산할 수 있는 큰 정신으로 믿고 밀어주기에 주저함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사막〉은 스스로 만들어 놓은 어휘와 상상력의 장치들을 너무 의식하여 작품의 더 깊은 바닥까지 내려가지 못한 아쉬움도 없지 않았다. 어휘와 짜 놓은 상상력에 스스로 갇혀 버리는 일을 조심하기를 당부해 본다.
조명희의 〈리비아는 주소가 없다〉, 정원선의 〈매달릴 수 없는 나무에서 태어난 방울토마토〉, 한민희의 〈아침 강구항에서 눈치도 없이〉등은 마지막까지 놓지 못하던 작품들이다. 다시 좋은 인연으로 만나고 싶다.
- 심사위원: 신달자, 권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