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동의 산행별곡 7/ 주자의 무이구곡가를 부르며
주희(朱熹, 朱子 남송시대, 1130년 ~ 1200년)는 중국 유학사의 큰 봉우리다. 공자로부터 발전한 그의 학문을 성리학 또는 주자학이라 한다. 한 때 조선을 주도했던 철학적 성향이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고 한국지성사의 줄기에서 떼어낼 수 없는 뼈다. 잔잔히 흘러가는 물결을 타고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바라보는 내 심상을 오늘은 주자선생이 지배하고 있다.
주자학의 기반을 간략하면 우주만물은 이(理)와 기(氣)로 구성되어 있다. 사물이 질량과 에너지로 구성되었다는 현대물리학의 이론에 견주어지듯 성리학에서 생명은 性(또는 理)이라는 본질과 그것을 변환시키는 情(또는 氣)으로 이루어져있다. 理의 본성을 仁義禮智에 두었고 氣의 작용으로 변환되는 삶의 구체적인 형상을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으로 표현했다. 理는 본래 착하지만 氣의 작용 과정에는 악이 섞일 수 있어 늘 수신(修身)해야한다.
이와 기가 잘 조화된 자유인, 바로 신선이 살고 있는 이상향은 어디일까? 그런 생명의 낙원을 일찌기 무릉도원이라 불렀고, 주자는 그 구체적 현장으로 자신이 살았던 무이산 마을, 武夷九曲으로 노래했다.
오늘은 대나무 뗏목에 몸을 싣고 이른바 우이구곡가를 불러본다. 조선의 문인들이 이 노래를 빌려와 한 때 조선의 곳곳에서 구곡을 흉내내었다.
(武夷九曲歌) 武夷山上有仙靈 山下寒流曲曲淸 欲識箇中奇絶處 櫂歌閑聽兩三聲
무이구곡가/ 무이산 산 위에 신선이 살고 산 아래 물길 굽이굽이 맑으니 절경을 더 알려거든 두서너 곡 뱃노래를 들어보게나. (신선과 자연이 어우러져 배타고 노래하는 모습이 선하다.)
(一曲) 一曲溪邊上釣船 慢亭峰影潛晴川 虹橋一斷無消息 萬壑千巖鎖翠煙
일곡에서/ 물가 낚싯배에 오르니 만정봉 그림자는 맑은 물에 잠기고 홍교는 끊어져 소식은 없고 만학천암에 푸른 안개가 자욱하네.
(二曲) 二曲停停玉女蜂 揷花臨水爲誰容 道人不復荒臺夢 興入前山翠幾重
이곡에서/ 우뚝 솟은 옥녀봉 보게, 물가에 꽂힌 꽃 누구를 뵈려는지 옛 꿈을 버린 도인 흥겨워 산에 드니 겹겹이 푸른 빛일세.
(三曲) 三曲君看袈壑船 不知停櫂幾何年 桑田海水今如許 泡沫風燈敢自憐
삼곡에서/ 매어있는 나룻배 노질 멈춘 지 몇 해나 되었는지 흘러간 세월은 알 길 없고 스러지는 인생살이 가련하네.
(四曲) 四曲東西兩石巖 岩花垂露碧氈渗 金鷄叫罷無人見 月滿空山水滿潭
사곡에서/ 갈라선 암벽엔 이슬 맺힌 꽃과 푸른 이끼 더욱 곱고 닭이 울어도 사람은 보이지 않고 달빛 찬 빈산에 물만 넘치네.
(五曲) 五曲山高雲氣深 長時煙雨暗平林 林間有客無人識 欲乃聲中萬古心
오곡에서/ 높은 산에 구름 깊고 오랜 안개비로 숲은 어두운데 산 속에 아는 이 없고 노래 가락에 세월을 담네.
(六曲) 六曲蒼屛繞碧灣 茅茨終日掩柴關 客來倚櫂岩花落 猿鳥不驚春意閒
육곡에서/ 산 돌고 물길 돌아드니 외딴 초가집 종일 닫쳐있고 님이 와도 꽃은 지고 원숭이와 새도 놀라지 않네.
(七曲) 七曲移船上碧灘 隱屛仙掌更回省 却憐昨夜峰頭雨 添得飛泉幾度寒
칠곡에서/ 배 저어 푸른 여울에 올라 은병봉 선장암 바라보니 아, 밤비에 젖은 봉우리여 쏟아지는 물길에 찬 기운 감도네.
(八曲) 八曲風煙勢欲開 鼓樓岩下水濚廻 莫言此處無佳景 自是遊人不上來
팔곡에서/ 바람에 안개 지고 앞이 틔니 고루암(鼓樓巖) 아래 물빛 선명타 어디에 이런 절경 또 있을까, 예서부턴 나그넨 오르지 마시오. (신선이 되어야 허락되는 모양이다)
(九曲) 九曲將窮眼豁然 桑麻雨露見平川 漁郞更覓桃源路 除是人間別有天
구곡에서/ 세상 열리니 이슬에 젖은 나무 사이로 흐르는 평천(平川)을 무릉도원을 찾는 이여, 여길 두고 별유천지가 어디 있으랴.
신선은 일곡에서 구곡으로 오르며 노래했고 나그네는 구곡에서 일곡으로 떠내려오며 물소리에 취했다. 그 때 신선은 도원(武陵桃源)을 찾아 올라갔을 테고 여기 속인은 풍진(風塵)의 명리(名利)를 차마 끊지 못하여 속세로 돌아가니 구곡이여 잘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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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숲속의 기쁨 원문보기 글쓴이: 금수산
첫댓글 잘보았습니다. 감사
좋군요,,잘보았읍니다
감사합니다.
무이구곡의 "무이"의 중국발음이 "우이"다보니 왔다갔다 합니다.
잘 보았습니다.